제31강 요나 4:6-9절 강해

박 넝쿨(Ⅱ)


성경:요나4:6-9

지금까지 당신은 주 하나님을 향하여 못마땅히 여겨 화를 낸 적이 몇 번이나 됩니까? 감히 성을 낼 수 있습니까? 라고 오히려 반문할 것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인 주제에 어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그저 존귀와 영광 중에 거하시는 주 여호와 앞에 설 때마다 거룩한 두려움에 압도되어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솔직한 심정입니다. 하나님께 대들다가 화가 미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우리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를 가혹하리만큼 다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가슴속에 원망과 불만이 격한 감정으로 소용돌이치기도 하지만 그럴 경우도 노골적으로 속마음을 잘 드러내놓지를 못합니다. 다만 속으로 움츠러 들 뿐입니다.

Ⅰ. 간(肝) 큰 요나(9절)
하룻밤 사이에 시든 박 넝쿨을 보자 울컥 솟는 분노에 자기 통제를 잃어버린 요나는 하나님을 향하여 거칠게 대들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요나에게 경고했습니다. 박 넝쿨을 인하여 너는 하등의 성낼 아무런 자격도 없다. 그러나 요나는 수긍하지를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실컷 분노의 감정을 터트리고 죽어도 좋다고 항변합니다. 절 보고 화내지 말라니요, 무슨 뚱딴지같은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저에게는 화를 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을 모르고 계십니까?( I am angry enough to die. ) 악에 바쳐 바짝 달라붙습니다. 며칠 전에도 불의하게 성내다가 하나님께로부터 책망 섞인 따끔한 지적을 받았는데(요나4:4)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참 간 큰 사람 요나입니다. 심기가 몹시 불편하다하여 감히 하나님을 향하여 입에 담지 못할 무례한 언사를 쏟아 부을 수가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입김에 목숨이 달려 있는 연약한 인간인 것을 우리는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Ⅱ. 박 넝쿨
살아가며 주변에서 만나는 식물입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위하여 박 넝쿨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를 가르치고자 하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박 넝쿨을 주연 배우로 출연시키고 해충과 이글거리는 햇볕을 조연으로 쓰셨습니다. 뜨거운 태양빛을 가려주다가 해충에 의해 한순간 시들어 죽은 박 넝쿨을 보며 요나는 단지 자신에 관계된 이해득실을 따졌고, 그리고 거기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을 하며 감정을 처리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 계속 이어지는 10절 이하에서 박 넝쿨을 통한 하나님의 값진 교훈을 보게됩니다. 요나에게 무엇을 보여주시려고 또한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박 넝쿨을 사용하셨는가를 무릎을 치며 감탄을 하게됩니다.

때때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 주변의 작은 것들을 사용하시어 가르쳐 주시기도 하십니다. 영적으로 늘 깨어 있는 삶이 필요합니다. 불쑥 내 뱉는 아이의 거슬리는 말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실려 있을 수도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지나쳐 버리는 작은 사건에 우리의 심금을 만져주는 주의 놀라운 가르침이 담겨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무심코 읽어 내려가는 신문기사를 통해 오늘 나에게 다가 오시는 주님을 만나기도 합니다. 거실을 물걸레로 닦다가 힘든 허리를 잠시 펴며 베란다에 눈길을 돌리는데 언뜻 들어오는 난초의 꽃이 잊었던 주님의 감미로운 손길을 느끼게 해줍니다. T.V 화면에 잡힌 어느 노숙자의 잔뜩 주름진 얼굴을 보는 순간 편히 누울 수 있는 보금자리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 뭉클한 주님의 은혜를 느낍니다. 고등학교 친구로부터 반갑게 받은 전화통화를 마치고 수화기를 내려놓을 때 답답한 문제에 명치끝이 얹혀 있었던 심정이 통화 중에 오간 이야기 가운데 뜻밖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자 참 기이하게도 섭리하시는 주님의 배려를 깨닫기도 합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받고 승용차 안에서 기다리다가 횡단보도를 건너가며 조잘거리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모습 속에서 주님의 책망을 발견 할 수도 있습니다. 박 넝쿨, 바로 우리가 주변에서 부닥치는 작은 것들을 통해서도 주님은 우리를 효과적으로 교훈 하실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