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강 요나 4:10-11절 강해

하나님의 심정


성경:요나4:10-11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심정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심정은 정도(正道)에서 벗어나기 쉬운 우리네 삶에 은혜의 고삐 역할을 효과적으로 감당하여 주고 또한 매일 비슷하게 되풀이되는 삶에 자칫 마음이 흐려져 영적 방심의 늪에 빠지기 쉬운 우리네 자세에 자극을 줍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심정을 알기에 힘쓰며 아울러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려고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네 삶을 진정 가치 있게 만들어 줍니다.

Ⅰ. 박 넝쿨의 교훈
불과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죽은 박 넝쿨을 보며 극단적인 감정을 표출한 요나를 보시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심지도 돌보지도 그리고 기르지도 아니한 박 넝쿨 하나를 넌 그토록 아꼈는데, 자 한번 생각해 봐라. 영적으로 눈이 가려져 있어 자기네들이 걷고 있는 길이 멸망하는 길임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니느웨 성의 자그만치 십 이만여 명의 이 가련한 영혼들을 내가 아끼는 심정, 넌 그 심정을 이해하겠니? 넌 오늘 있다가 내일이면 아궁이로 들어갈 식물 하나를 무척이나 아꼈는데 말야. 입장 바꿔 놓고 곰곰이 생각해 봐라. 네가 얼굴 붉히고 불같이 성낼 만한 일이었던가? 눈초리 치켜 뜨고 나에게 거칠게 대들었는데 내가 너에게 심하게 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근시안이고 지극히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요나를 가르치시기 위하여 박 넝쿨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니느웨의 불쌍한 심령들을 그토록 사랑하시는 심정을 요나에게 보여주시기 위하여 박 넝쿨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Ⅱ. 구원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결코 불의를 슬쩍 눈감아 주시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죄에 대한 상응한 대가를 치르십니다. 하나님의 공의 앞에 죄인인 우리는 뼛속까지 떨리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누가 하나님의 공의를 피하여 지나갈 자 있습니까? 그렇다고 절망 가운데 고통의 수렁으로 빠져들지는 마시오. 여기 소망의 빛이 있습니다. 한가지 놀라운 진리가 우리네 가슴속으로 밀물처럼 밀려들어옵니다. 이 진리는 우리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죄악 가운데 멸망하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진정 하나님은 원하십니다(디모데전서2:4). 악인이 망하는 것을 우리 주님은 조금도 즐거워하지 않으십니다(에스겔18:23). 죄인이 불의에서 돌이켜 떠나 구원에 나아가는 것을 우리 주님은 크게 기뻐하십니다(에스겔33:11). 그러기에 죄인이 회개하는 자리로 나아가도록 기회를 반드시 주십니다. 니느웨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죄악 가운데 망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주님의 심정이 불같이 타오릅니다. 영혼 구원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선지자 요나를 보내어 회개하는 자리로 나아 오도록 은혜의 기회를 주셨고 그들이 재 가운데 뒹굴며 마음을 찢고 진정 통회 자복하는 모습을 보시자 우리 주 하나님은 너무도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이러한 주님의 심정을 가슴으로 담아 내지를 못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요나는 \'박 넝쿨도 네가 그토록 아꼈다면, 나는 얼마나 니느웨 백성들을 아끼고 사랑하겠는가?\' 라고 말씀하시는 주 하나님 앞에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을 것입니다. 지옥의 자리가 늘더라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는 우리네 무딘 심령에 확 불을 붙여 주는 말씀의 교훈이 바로 요나서입니다. 지옥의 자리가 텅텅 비고 천국의 자리가 차고 넘치기를 그토록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주님의 심정을 꿈에라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지옥 불구덩이로 달려가고 있는 영혼들을 아무런 느낌도 없이 멀뚱멀뚱 바라다보고만 있다면 아직 우리 주 하나님의 그 뜨거운 심정을 제대로 가슴에 담고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화들짝 놀라며 거꾸러져야 합니다. \"오, 주님, 주님의 심정을 품고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