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강 마 12:38-41절 요나의표적
요나의 표적(The sign of Jonah)
성경:마태복음12:38-41
일단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표적을 보여주시기를 구할 때 우리 주님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달리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12:38-41, 누가복음11;29-32). \'요나의 표적\',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시기 전 약 팔 백년 전에 일어난 요나의 사건이 오늘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요나서를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발견해야 하는가? 요나서를 덮으면서 우리는 요나서의 핵심을 붙들어야 합니다. 성경은 흘러간 역사 속에 고이 간직하여만 하는 퀘퀘묵은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우리들에게 강력하게 부딪쳐 오는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심령 골수를 찌르며 우리네 삶을 뿌리째 흔들어 놓는 권능의 말씀입니다.
Ⅰ. 요나서는 영광스러운 부활의 모형입니다(40절)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같이 인자도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40절). 물고기 뱃속에 사흘을 갇혀 있었던 요나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흑암의 죽음에 갇혀 있으셨습니다. 사흘 밤낮 무덤에 내려가신 예수님의 모습이 전부입니까? 요나서는 단지 이것만을 보여주고 있나요? 아닙니다. 사흘 땅속은 부활을 알리는 서막입니다. 마치 일 막이 끝나고 대형 천이 무대를 가리운 뒤 흥분된 긴장으로 무대를 향하여 호기심 어린 시선을 모으고 있는 객석의 관객들에게 그 다음 극적인 장면을 보여주기 위하여 잠시 어두움과 침묵의 적막 속에 시간을 끄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요나서는 멀리서 보여주고 더 나아가 궁극적인 승리인 영광스러운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밤낮 사흘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요나가 극적으로 물고기 뱃속에서 나왔듯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사흘을 땅속의 무덤에 머물러 계시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덤을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요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표적입니다. 사흘이라는 시간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이에 일어난 시간에 정확히 이루어 진 것 또한 이 얼마나 놀라운 증거입니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부활하심은 오늘 우리에게 확실한 표적이 됩니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을 따라 훗날 우리들도 영광스러운 부활을 체험하게 됩니다(고린도전서15:20, 23).
Ⅱ.요나서는 심판에 대한 경고입니다(41절)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41절 하반절).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있음을 전해 듣자 니느웨 백성들은 일제히 두려움에 떨며 참회의 무릎을 꿇었습니다. 심판의 경고는 한편으로는 분명히 회개를 촉구하는 은혜의 복음이었습니다. 즉 회개에 이르는 결단의 시간을 얻게 되는 긍휼의 기회인 것을 니느웨 사람들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두려운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서의 은혜를 극적으로 만끽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보다 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은 세상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두 귀를 꽉 막아버리고 있습니다. 은혜의 기회를 멀리 차 버리고 등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마지막 날 심판의 때에 니느웨 백성들이 일어나 회개치 않는 패역한 사람들을 정죄할 것입니다. 우리는 요나의 전도를 받고 견디지 못하고 거꾸러졌는데 너희들은 심판의 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도 감히 회개치 않다니 마땅히 저주받아 지옥 불구덩이에 떨어질 강퍅한 자들이로구나! 회개하지 않고는 심판의 칼날을 결코 피하지 못합니다. 회개하여 니느웨 백성들이 구원받았듯이 이 시대에 예수 복음을 듣고 진정 회개하는 자만이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요나서는 심판과 회개 그리고 구원을 보여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 될 심판과 구원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요나서를 대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압도되어 거꾸러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영혼 깊숙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은혜의 복음 속으로 떨리는 감격 가운데 파 묻혀 들어가야 합니다.
요나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구수한 옛날 이야기처럼 아련한 추억 안으로 우리들을 끌고 가지 않습니다. 요나서, 바로 오늘 우리들의 삶이요 신앙의 체험입니다. 요나서의 진리가 다시금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가운데 생생하게 살아나 우리네 심령 속으로 밀려들어올 때, 바로 그때가 우리 영혼이 역동적으로 꿈뜰거릴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