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강 요나 1:1-17절 강해

(요나서 1:1-17)소명받은 자의 자세




우리나라에는 나이에 따라 서로 다른 동물의 이름으로 된 띠를 가지고 있지요. 쥐띠, 소띠, 용띠, 토끼띠, 말띠... 등등
이 띠의 순서를 정할 때 달리기를 해서 제일 먼저 도착하는 순서대로 했지요. 12명의 동물중에 쥐가 제일 작은 놈이었지요. 자기 힘으로는 영락없는 꼴찌입니다. 그래서 쥐는 잘 달리는 동물의 등에 타고 붙어 있기로 했습니다.
잘 달리는 호랑이도 있고, 말도 있고, 용도 있는데, 쥐는 소를 선택했습니다. 잘 달리는 동물들은 그만큼 꽤도 많아서 요령을 피우는데, 소는 끈기있게 끝까지 걸어가 마침내 1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골잉순간 쥐는 소등에서 얼른 뛰어내려 결승 테이프를 끊었습니다. 쥐가 1등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기는 놈 위에 뛰는 놈 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붙어 다니는 놈 있다\"

제일 강한 자는 붙어다는 놈이라는 겁니다. 성경에서도 제일 강한 자는 붙어 다니는 놈입니다. 생쥐같이 약삭빠른 야곱이지만, 하나님과 붙어다니니까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이스라엘이 됐습니다.
이사야 41장 14절에,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 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성도란 \'붙어 다니는 놈\'입니다. 우리는 항상 주께 붙어 있는 자들입니다. 그래야 강합니다. 소명받은 자란 하나님께서 당신께 붙어있으라고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그럼 소명받은 자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끝까지 붙어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요나라는 예언자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요나를 부르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 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너는 일어나... 가서... 외치라\"
지극히 간단 명료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전쟁에 임한 군인의 명령과 같습니다. 교회를 세상의 기관에 비유한다면 어디와 가장 유사할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회는 학교다?
교회는 병원이다?
교회는 군대다?


교회는 군대와 가장 유사합니다. 물론 군대에는 학교도 있고, 병원도 있습니다. 군대학교의 목적은 군사를 교육하여 전쟁에 임하여 이길 수 있도록 훈련하는 곳입니다. 군대병원의 목적은 병든 군사를 치료하여 전쟁에서 싸울 수 있는 군인으로 만드는 곳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이지요. 교회에서도 말씀을 가르칩니다. 말씀을 배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좋은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도 병자를 치료했습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육신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시대는 믿음의 확신을 가진 영적 군사들이 요청되는 때입니다.

군사로 소명받은 우리들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요나는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쳤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자기 주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여럽보암 2세때 활동했던 이스라엘의 예언자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앗수르라는 나라로부터 늘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요나는 이스라엘이 평안하려면 앗수르가 멸망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원수와도 같은 나라인 앗수르의 수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원수의 나라를 위해서 복음을 전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시스라는 곳으로 도망가기 위해 지중해변의 항구도시 욥바에서 배를 탔습니다.
다시스는 당시 지구의 끝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세상 끝까지 가겠다는 것이지요. 3절에 보면 배를 탈 때 선가를 주고 탔다고 했습니다. 선교사로 부름받은 사람이 관광객이 되었습니다.
요나의 문제는 요나를 쓰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불순종이었습니 다. 자기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지 모르지만, 전쟁에 임한 군인에게 있어서 불순종은 즉결처형 감입니다.

둘째,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합니다.

문제는 바다에서 일어났습니다. 요나가 탄 배가 큰 풍랑을 만난 것입니다.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거의가 불신앙인들이거나 우상숭배자였지만, 그들은 배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그런데 정작 요나는 배 밑창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교회가 잘못하면, 사회가 혼란스럽습니다. 소명받은 사람이 잘못하면, 세상이 시끄러워집니다. 그래도 자신은 깨닫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11-12절 말씀에,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 하여 잔잔하겠느냐 ?\'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

소명받은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비록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중요한 것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적인 자세입니다. 소명받은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참으로 회개했다면, 내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다면, 나의 잘못된 삶에 대해 책 임을 지고 수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회개와 구원외 확신 등,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희망이 있습니다.

셋째, 풍랑에 자기 몸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14절에,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까닭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 대로 행하심이니다\"

이것이 부흥입니다. 배 안에 있던 무리들이 처음 풍랑을 만났을 때는 저마다 각기 자기의 신들 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요나의 고백과 결단을 통해 배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역 사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풍랑의 문제가 배안에 물질을 버리거나 우상신에게 매달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달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무신론자, 다신론자 할 것 없이 모두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었습니다. 요나의 고백과 결단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깨닫도록 인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