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 마 2:4-8절 강해
왕의 탄생과 이해 당사자들
마태복음 2:4-8
우리는 여기서 새로 탄생한 왕에 대한 신학자들의 회의와 이해 당사자들의 처신을 봅니다.
헤롯 왕은 박사들로부터 새 왕의 탄생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모든 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 곧 신학자들을 소집하여 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이 회의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분명한 의도는 메시야 탄생의 장소에 대한 종교계 지도자들의 뚜렷한 증언을 끌어내고 자 한 것입니다.
헤롯 왕은 이 회의에서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라고 물었습니다. 신학자들은 \"유대 베들레헴\"이라고 대답하고 구약 미가서를 인용하여 이를 확증했습니다.―\"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느니라\".
먼저 중요한 단어를 살펴봅시다.
\"고을\"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게몬은 \'통치자들\'을 의미하지만 \'성읍들, 족속들\'이란 의미 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메시야가 나올 성읍, 족속과 그 통치자의 위대성을 지적하기 위한 것입니다.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우다모스 엘라키스테)는 문자적으로‘결코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베들레헴을 근거지로 한 유다의 한 족속이 어떤 의미로 다른 유다 족속에 비해 작은 족속같이 보일지라도 메시야가 이 작은 족속에게 올 것이기 때문에 유대 족속들 중 가장 큰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다스리는 자\"에 해당하는 헤구메노스는‘통치(인도, 지도, 지배)하다’를 뜻하는 헤게오마이(헬2233)의 수동분사로서 신약성경에서는 이 수동 분사만이 왕권에 대해 사용 되었습니다.
\"목자가 되리라\"에 해당하는 포이마네이는 포이마이노(헬4165)의 직설 미래 능동태입니다. 이 단어는‘목자’를 뜻하는 포이멘(헬4166)에서 유래했으며, 본래의 의미는 \'먹이다, 양(또는 가축)떼를 돌보거나 지키다\'를 뜻합니다.
비유적으로는 \'돌보다, 다스리다\'를 의미하는데 돌보고 다스리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왕권을 가진 통치자이시지만 통치자의 행위보다는 목자의 행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양의 큰 목자\"(히13:20), \"선한 목자\"(요10:11), \"목자장\"(벧전2:25)으로서, 백성들 을 양치듯 돌보고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공관복음서는 예수님이 구세주 목자의 약속임을 세가지 방법으로 주장합니다.
(1)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을 모음으로써 구세주 목자의 역할을 이행하기 시작합니다(마 9 : 36; 10 : 6; 15 : 24; 참조 : 겔 34 : 15와 함께 눅 19 : 10). 이것은 선지자들이 선언한 구원의 시대가 열림을 나타냅니다. 그는 미가 5 : 3(4)에서 약속 한 목자없는 무리를 모으는 이스라엘의 통치자입니다(마 2 : 6; 9 : 36; 막 6 : 34; 참조 : 겔 34 : 5).
(2)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양떼를 위해 먼저 죽어야 하고,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참조 : 마 26 : 31, 32; 막 14 : 27, 28). 여기서 예수님은 스가랴 13 : 7에 나오는 말들을 인용하여, 자신이 구약에서 고대하던 약속된 목자, 즉 그의 대속적 죽음으로 인해 구원의 시대가 열리게 되는 목자라고 주장합니다(참조 : 사 53).
(3) 하나님의 백성인 양떼가 선한 목자 아래 모이는 구원의 시대는 심판의 날에 그 절정에 이릅니다. 모든 민족이 그의 영광의 보좌 주위에 모여들 때 예수님은 양과 염소를 분별하실 것입니다(혹은 검은 염소들 가운데 흰 양을 분별하실 것입니다).
그는 심판의 자리에 앉으실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의 선교 사명의 시대의 종말 을 가져올 것이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래 그의 양떼들이 열방으로부터 불러모아 질 것입니다(마 25 : 32).
진실로 그리스도는 한 왕으로서 이스라엘 및 모든 그의 백성의 목자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이 증언과 관련하여 헤롯의 처신, 박사들의 처신, 서기관들의 처신 이 서로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처신을 살펴보겠습니다.
1.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처신
\"대제사장\"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르키에류스(헬749)는‘거룩한’을 뜻하며 제의와 연관 성을 가지며 신적 능력에 의해 정해진 것과 구별된 것, 충만된 것을 가리키는 히에로스 (2413)에서 형성되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제사장들의 우두머리로 제사장의 지도권과 산헤드린 공회에서 최고 상석을 차지했으며(마 26 : 3; 행 22 : 5; 23 : 2), 그의 가장 큰 임무는 대속죄일에 공동체의 죄를 속하는 일입니다(레 16장; 히 9 : 7, 25).
모세 율법에 따르면 아론의 지파가 아니고 더욱이 대제사장 가계의 후손이 아닌 사람 은 어느 누구도 대제사장직을 바랄 수 없었으며, 대제사장은 종신토록 그 직책을 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시대 이후로, 세레우시디(Seleucidea)의 왕들과 그후의 헤롯가의 왕들과 로마인들이 대제사장에게 주어진 권리를 침해했을 때 이 직책은 대제 사장 가문에 속한 채로 남아 있지도 않았고 종신토록 수여되지도 않았습니다.
이 직책은 타락하게 되었으며 시민 통치자나 군사 통치자의 마음대로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을 임명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헤롯 대왕과 예루살렘의 멸망 사이 107년 동 안 28명이 대제사장직을 맡았습니다.
이 구절에서 복수형 아르키에레이스가 사용된 것은 아마도 실제로 대제사장직을 맡고 있는 자들과 이미 해임되었으나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큰 권력을 가진 자들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서기관들(그람마테이스,복수). 서기관 곧 그람마튜스(헬1122)라는 칭호는 아테네와 그외 나라에서 비서와 기록계원에서부터 성직자에 이르기까지 공직자에게 붙여진 명칭입니다.
신약에서 이 칭호는 ‘시의 관리, 에베소 성읍의 사무원’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행 19 : 35), 그렇지 않을 경우 언제나 ‘토라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 서품을 받은 신학자’를 지칭하는 유대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서기관들을 단순한 사무원이나 필자사와는 달리 교사요(마 7 : 29; 막 1 : 22), 교법사요, 율법 박사였으며, 그들 중에서 몇몇 사람들은 산헤드린 구성원이기도 하였습니다(마 16 : 21). 여기의 서기관들도 이런 유력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메시야가 어디서 태어날 것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우 리는 메시야가 태어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이 누구보다 먼저 베들레헴을 향해 급히 갔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과연 그가 탄생했는지 가서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에 대하여 생소한 동방의 박사들은 왕의 탄생지에 대한 증언을 들었을 때 열심히 급히 베들레헴을 향해 달렸습니다. 이는 정통주의와 실생활의 차이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성경의 문자에 대한 단순한 지식은 제 아무리 정확하다 하더라도 속빈 강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진실로 그리스도는 자기 땅에 왔으나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종교적 특권을 가지고 있는 종교 지도자들까지도 자기들의 구주인 메시야를 영접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의 소망은 이제 빛을 잃은 흔해 빠진 평범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종교에서 개종한 자들은 우리의 문자 지식과 비교해 제 아무리 무지하다 하더라도 기쁨과 열심과 경건과 헌신을 가진 것이 특징입니다.
이에 비교해보면 그리스도에 대해 너무 많이 들어 이제는 싫증까지 내는 우리의 미지근한 열성과 냉정한 태도가 부끄럽지 않습니까?
여기 복음사의 첫 출발점에서 머리로만 아는 지식의 무가치성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지의 순종과 가슴으로부터의 순종을 그 지식으로 대체하고 싶은 유혹에 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과 신뢰만이 참된 신앙입니다.
복음을 막는 꿰뚫기 가장 어려운 갑주는 바로 복음에 대한 오랜 세월 동안의 익숙한 지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리나 성경의 지식으로만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성경의 지식 이나 전통적 교리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머리로 알아도 마음의 체험,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없으면 구원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교리나 성경에 대한 지식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리나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구원의 종교, 그리스도교의 뼈대라고 하면 신앙은 살입니다.
그래서 이 교리와 신앙이 완전한 일치 혹은 조화를 보아야 원만한 구원이 성립되는 것 입니다.
마치 살없는 뼈가 사람이 아니고 뼈없는 살이 사람이 아닌 것처럼 교리없는 신앙은 참 종교가 아니고 신앙의 행위 없는 교리도 참 종교가 아닙니다.
여러분, 교리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 해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2. 헤롯 왕의 처신
헤롯은 우스꽝스런 모순에 휘말려 있었습니다. 그는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 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가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믿어야할 그 일이 성취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마음 속으로‘그 아이가 만일 하나님의 메시야라면 내가 그를 죽이리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는 박사들을 그의 계획에 인용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확실히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이상한 미친 정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들의 많은 행동 역시 그러한 광기를 발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분명히 알고 있는 일에 반(대)하여 의식적으로 그것을 방해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의 자리와 이권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이 는 마치 어린 아이가 기관차를 막아 열차를 멈추게 하려고 하는 것만큼이나 성공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내가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그의 일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는지 매일 매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헤롯에 관해 더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그의 교활한 꾀도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는 사실입니다. 그의 꾀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 아이가 메시야가 아니라면 그는 놀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 아이가 메시야 라면 그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은 이것을 알지 못했으므로, 왕으로서의 통치 기술이라는 미명하에 은밀히 계획을 꾸며 실행에 옮겼습니다.
헤롯이 박사들에게 별이 나타난 때를 물은 이유는 유아의 대략적인 연령을 알아내 유아의 범위를 측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유아 학살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박사들을 속여 보다 상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그 때까지는 자신의 음모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은밀하게 일을 추진했습니다.
위대한 사상에 잡혀 사는 학자들과 은둔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마고스들은 헤롯의 말에 쉽게 속아 넘어갔습니다.
박사들은 선량하고 우직한 사람들이었으므로, 헤롯의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헤롯의 신앙심을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그들은 의심하지 않고 그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 놓았습니다. 그들은 헤롯을 전적으로 믿은 가운데 아이를 찾아 떠났습니다.
반면에 헤롯은 분명히 그들을 떠나 보내고 나서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들을 자신의 스파이로 파송한 것에 대해 자축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가 아마 헤롯이 사망하기 몇개월 전이었을 것입니다. 세계는 이미 자신의 손아귀를 벗어나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셈하기 전 그 역시 그리스도를 뵈옵고, 그가 찬탈한 통치권을 참되신 왕께 넘겨줄 소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의 적개심 및 그 잔인성과 어줍은 간책과 무력한 실패는 그리스도께 대한 세상 권력의 관계를 보여주는 한 모형입니다.
성경은 시인의 입을 통해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 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 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시2:1-4).
우리는 때때로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해서 악한 자들의 꾀에 순진하게 속아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자들은 우리를 완전히 결정적으로 속이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꾀를 실패로 돌아가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주의하여 생활해야 할 것입니다.
3. 박사들의 처신
박사들은 종교지도자들, 곧 신학자들의 증언을 통해 절대적 신뢰로서 정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별을 따라 왔습니다. 그들은 동방에서 그들의 학문을 통해 그리스도의 별을 발견하고 그 별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한 동 안 그의 별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신학자들의 증언을 통하여 더욱 확실한 말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말씀을 따라 행하던 중 다시 그의 별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학문을 통해 참된 인도자와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지극히 희미한 빛을 사용하는데 충실한 자는 자신의 빛이 더욱 밝아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과학의 임무는 그 자체가 발견한 길을 통해 사람을 그리스도께 안내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에로 사람을 인도하는 일입니다.
이 두가지 인도 방법이 연합하여 온갖 형태의 안내를 쾌히 따를 준비가 되어있었던 이 열성적인 구도자들을, 그들이 찾던 왕에게로 데려다 주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심오한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별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진정한 지혜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왕이 탄 생한 나라의 수도 예루살렘까지 찾아왔으나 예루살렘의 상황을 보고는 실망하고 빛을 잃었습니다.
예를들면 사람들은 그들의 지혜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구세주의 나라인 교회로 구세주를 찾아 나아옵니다.
그들이 교회에 나왔을 때, 거기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정직이 없고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생활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빛을 보지 못하고 실망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이렇게 보인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그리스도를 인도하는 별입니다. 그런데 빛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빛을 다시 비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면 다시 메시야의 빛을 찾고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국 교회가 암흑하다 할지라도 실망하지 맙시다.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만 붙잡고 그 말씀의 인도를 받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박사들은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를 찾아서 경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