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배 학 강 의
<강의안>
성경말씀
(시134:1)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134:2)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28:2)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1. 우리는 찬양함에 있어서 어떤 신분인가?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떠한 분으로 계시하시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예) 아버지 - 자녀, 왕 - 백성, 주인 - 종, 창조주 - 피조물, 주권자 - 모든 소유를 맡긴자(나의 권리를 포기한 자), 신랑-신부, 목자-양,
우리가 행동할 태도에는 항상 같은 모습만을 보일 수 만은 없다. 예로 항상 종처럼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종과같은 신분으로만 평생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이면서 때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항상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만 자신을 여기고 살 수도 없다는 것이다. 때론 종처럼 남을 섬기는 모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신분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신분이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서시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종이 된다고 종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인의 모습으로 다가섰을 때 종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버지로 다가오시면 나의 신분은 \'아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주로 다가오신다면 나는 그의 피조물의 신분이 되는 것이다.
무슨말인가? 우리는 하나님께 반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에게 때때로 여러 가지의 모습을 받으시기 원하신다. 자녀의 모습을, 종의 모습인 섬김의 모습들 말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반응해야 할까?
먼저 예배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신분을 살펴보자.
1.1. 죽은 자의 신분이다. - 아무런 육신의 주장이 죽은 자이다. 권리가 없는 자이다. 내 뜻을 피지 못하는 자이다. 내 생각을 주장하는 자가 아니다. 나의 겉사람이 죽은 것을 말한다. 하나님앞에선 나이 어떠한 권리도 없다는 말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모든 주관자이며 인도자이며 선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는 주님께서 하시면 나는 그대로 따라가는 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생각에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라고 자신의 의지를 피지 못한는 자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죽은 자 이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1.2. 종의 신분이다. - 하나님께서 하라라고 명령하시는 것을 그대로 순종해야 하는 신분이다. 충성된 종이다. 종은 주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하는 자가 종이다. 자신의 의견이나 반항할 수 없는 자가 종이다. 따라서 종의 신분에서 배울 것은 순종이다. 하나님이 하라면 무조건 따르는 모습이 종에게서 배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종으로 주님앞에 반응해야 할 것이다. \'찬양하라\'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 명령에 우리를 하나님은 \'여호와의 종들아\'라고 우리의 신분을 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주님의 명령에 우리는 그대로 복종과 순종을 해야 한다.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 많은 구절은 어떻게 찬양하라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럴 때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어떤 것인가? 나의 인격에 어떻게 그런 행동으로 할 수 있느냐?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챙피하니까 조용하게 할거야 하는 자도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은 주인이신 하나님앞에 종으로 반응할 줄 알아야 한다.
(시134:1)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134:2)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1.3. 찬양은 우리가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찬양은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찬양의 출발은 우리의 욕망이나 소망에서 출발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높이고 찬양하라라고 내게 명령하시고 요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순서가 올바른 찬양하는 자의 자세인 것이다. 만일 전자와 같은 경우는 자신이 감정이 상하고 기분이 상하면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후자와 같은 사람은 자신의 감정과 상황과는 전혀 관계없이 하나님을 높이는 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함은 하나님의 명령이시다. 시편의 기록들을 살펴보자. 찬양에 관한 기록은 모두다 명령형이다. 권유형이나 청유형의 기록이 없다. 찬양하라, 찬양하라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종된 신분에서 명령하신 하나님께 순종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2. 하나님께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 즉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이 누구인가?
2.1. 예배자이다. 예배자는 크게 세가지의 종류로 구분지을 수 있다.
(요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 예배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을 섬기는 것이 예배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예배는 주일 대예배를 연상할 것이다. 그것도 예배인다. 회중예배이다. 그러나 정말 예배라는 의미는 바로 하나님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가 예배인 것이다.
1.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신다. (예배자와 대조되는 말 ; 사역자) Worship와 Worker
*요4:21 하나님은 이 시대에 사역자를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예배자를 찾으신다.
① 하나님 자신을 섬김 = 예배 ② 사람을 섬김 ; 사역자,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 중의 하나 ③ 세상을 섬김 ; 사역자
예배의 의미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모든 것이다.
**골3:16,17 시, 찬미, 신령한 노래, 말, 일 모든 것이 하나님을 향한 예배이다. (생활 예배, 의식 예배
예배란 형식이 아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는 행위며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모든 행위가 예배이기 때문이다.
(골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아래 도표에서는 예배하는 삶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삶의 가장 우선에 무엇이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예배(Worship)와 일(Work)의 우선순위
예배하는 일
친구 만나는 일
예배하는 일
찬양단 봉사하는 일
가정을 돌보는 것
예배하는 일
성가대 연습
교회 회장일 담당
친구와 사귐
부모님께 효도
공부하는 일
2.2.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고 있으시다.
2.2.1. 예배하는 것이 그의 삶속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있는 자를 의미한다.
2.2.2. 2번째의 예처럼 삶의 일부분에 예배하는 것을 원치 하니하신다.
성경에서 이 세가지의 예를 찾아보면서 예배하는 삶이 얼마나 귀한가를 보자.
1. 예배하는 일이 삶의 일부분인 사람(우선순위가 잘못 놓여진 사람 ; 학개 1:1∼11)
이들의 모습에 어떤 어려움들이 임했는가? 6절, 9∼11
(학1: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학1:9)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학1:10)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학1:11)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
1.1.1.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성전의 삶이 뒤에 놓여진 것이다.
1.1.2. 자기의 일들이 더 중요한 것이다.
1.1.3. 9절 -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다라고 했다. 하나님앞에 예배하며 하나님 중심의 삶이 없이 오직 자신의 집과 자신의 일에 항상 우선이었던 것이다.
적용 ; 우리의 모습에서도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첫째, 학생이니까 공부를 하기 위하여 하나님앞에 가는 것을 뒷전으로 여기는 행위.
둘째, 친구들과의 사귐 때문에 주일 날 예배하지 못하는 일.
셋째, 예배시간에 그 다음 프로그램을 준비하느라 빠져서 일을 준비하는 일.
등등 이런것들이 바로 자기일에 빠른 것을 말하고 있다.
1.1.4. 대부분 우리의 모습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1.1.5. 하나님은 우리의 삶 언제라도 가장 높은 곳에 계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주일 날 11시만이 예배 시간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주일 저녁, 수요 저녁 등등. 예배하는 시간은 매일 매일, 그리고 매 순간 순간 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1.1.6. 아내보다, 친구보다, 내 직장보다, 공부보다 항상 우선으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2. 예배만을 드리는 자의 오류(첫 번째 사람)
첫째, 에스겔 44:12∼14
이들을 제사장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지파중 레위지파가 이 일을 담당하는 자들이다. 오직 그들은 아무런 일을 하지않는 예배하는 일을 전담하는 자들로 하나님께서 부르셨다.
문제가 생겼다.
제사장의 특권 -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자이다.
(겔44:13) 내게 가까이 나아와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며 또 내 성물 곧 지성물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이 자기의 수욕과 그 행한바 가증한 일을 담당하리라
2.1. 제사하는 예배가 어느새 일로 바뀐 것이되었다.
2.1.1.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데 사람을 섬기게 되었다. 예배를 인도하는 생활이 습관화 되어 제사장들은 하나님앞에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예배하도록 인도하는 것만을 하게 되었다.
2.1.2. 우상이라고 말한다. (겔44:12)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전에 백성을 위하여 그 우상 앞에서 수종들어서 이스라엘 족속으로 죄악에 거치게 하였으므로 내가 내 손을 들어 쳐서 그들로 그 죄악을 담당하여
2.1.2.1. 우상의 의미 : 예배드리는 행위 그 자체를 위하여 제사장들이 행동하고 있다. 그들의 우선순위는 하나님이 아니었다. 예배드리는 순서, 예배 시간, 예배 행위에만 관심이 있다. 이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비록 제사장들이지만 그들의 행위를 \'우상\'숭배로 보고 있다.
2.1.2.2. 백성을 섬기는 것 : (겔44:11) 그러나 그들이 내 성소에서 수종들어 전문을 맡을 것이며 전에서 수종들어 백성의 번제의 희생과 및 다른 희생을 잡아 앞에 서서 수종들게 되리라
2.1.3. 자신들만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까지도 죄악을 범하게 하였다.
2.2. 그 결과는 어떠한가?
2.2.1. 내게 가까이 나아와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치 못하게 하였다.
2.2.1.1. 하나님앞에 나오지 못하게 한 것이다. - 가장 큰 형벌이었다. 왜? 제사장의 직분이 하나님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2.2.1.2. 성물(聖物)과 지성물에 가까이 못하게 한 것이다. - 영적으로 예배하지 못하는 것이다.
2.2.1.3. 수종 드는 일을 맡겼다. - 지금의 교회 지기이다. 일하는 자이다.
(겔44:14) 그러나 내가 그들을 세워 전을 수직하게 하고 전에 모든 수종드는 일과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맡기리라
2.2.2.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특권을 빼앗긴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이다.
둘째, 삼상2:12∼17(엘리의 두 아들, 제사장의 행위)
1.1. 예배드리는 모습이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하신 평가)
1.1.1. 29절 -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았다\'라고 평가하셨다.
1.1.2. (삼상2: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1.2. 예배해야 하는 자들이 예배를 멸시하는 일이 있었다.
1.3. 결과가 어떠했는가?
1.3.1. (삼상2:34)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의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셋째, 예배하는 제사장이 있었다. (에스겔 44:15∼19)
1.1.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들의 행위를 보자.
1.1.1. 성소의 직분을 지켰다라고 칭찬하고 있다. (15)
1.1.2. 그 축복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서 하나님을 수종들 수 있었다.(15∼16)
1.1.3.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섬기는 축복을 허락 받았다.
적용
예배를 인도하는 자, 찬양을 인도하는 자, 앞에서 순서를 맡는 자, 설교하는 자, 가르치는 자등등 모두 할 것없이 그 일자체가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우상이 될 수 있다.
\'다와서찬양해\'도 마찬가지이다. 경배와찬양을 하기 위하여 모였다면 우리는 우상숭배자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높이지 못하면서 남들을 하나님께 인도한다면 우리가 죄악을 저질르는 것이요 예배에 참석하는 자들로하여금 그들까지도 죄악을 범케 하는 것이다.
철저히 조심할 것은 예배하는 그 순간이 우리에게 일로 다가올때가 많다. 예배 순서 순서를 의미없게 보낸다면 그것은 우상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일하는 자보다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3. 예배하는 자(세번째 경우)
(행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행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행13:1-3
안디옥 교회의 하나님의 사람 5명. 출신도 얼굴빛도 다양한.
3.1. 금식한 것이 두 번 나온다. 그 차이점을 보자.
첫 번째 금식기도와 두 번째 했던 금식기도와 차이점이 있다. 어떤 것이 차이점인지 살펴보다.
안디옥 교회가 왜 금식했는가?
첫 번째는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예배를 하기 위해.) 그들은 먼저 금식했다.(2절) 모여서 일을 잘하기위하여, 선교가 잘 되기위하여 금식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금식을 하더라도 먼저 주님을 섬기면서 금식한 것이다. 예배하면서 금식한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기위하여 금식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금식하는가. 일 때문에 금식할때가 많다. 잘되게 해 달라고 금식한다.
주님을 섬기기 위해 예배(금식)할 때,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마음, 계획이 나온 것이다.(순서 주의) 그러나 우리는 항상 반대로 먼저 우리가 계획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금식한다.
두 번째 금식은 왜 했는가? (3절)
주님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성령님이 말씀하는 일이 있었다. 그들의 계획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신1:33)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
하나님은 미리 앞서 행하시는 분이시다. 출애굽때 하나님은 어디에다 장막을 쳐야 할는지 아셨던 분이셨다. 그런 하나님께서 예배할 때 말씀하시는 것이다. 주님을 섬길 때 일어나는 일인 것이다.
이제 그들은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금식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게 하기위하여 사역과 일을 위하여 금식하고 있다.
첫 강의 말 줄임
예배에 대한 자세한 개념이나 정의는 다음 시간에 하기로 하고 첫 강의에서는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이 찾고 있고 예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살펴보는 것으로 약하겠다.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면 큰 성과이다.
결코 하나님은 예배를 하찮게 여기는 자나 예배하지 않고 오직 사역하는 사람들을 찾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모든 형제, 자매님들이 예배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은사중심 교회의 예배신학 -정장복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예배학 주석 2000/08/10 19:4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