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강 마 3:11절 강해

성령의 불 세례(침례)(2)

마태복음 3:11


3. 불세례(침례)는 타오르게 하고 깨끗하게 합니다.

요한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세례(침례)와 그리스도의 세례(침례), 이 양자 간의 차이를 대비하여, 두 사역과 그 효력의 차이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지적된 대로 그는 자신의 가르침에는 \'차갑고 부정적인\' 어떤 것이 있음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가 세례(침례)를 주는 물은 이러한 것을 표현하기에 알맞은 것이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신적인 것이며, 참된 것이었으나 또한 엄격한 것이었습니다: \'회개하라, 너희가 마땅히 행할 바를 행하라. 왕국과 왕을 기다리라\'. 그리고 제자들이 그의 명령에 순종하여 요단강물에서 올라올 때 기껏해야 표면적으로 깨끗하게 될 뿐이며, 이 물 세례(침례)에서 시작한 과정은 요한의 메시지가 발하는 능력보다 더 강한 능력에 의해 완성되지 않으면 않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외적인 싸움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였습니다. -그들은 내적 정화가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회개와 윤리의 설교 이상의 무언가를 필요로 하였습니다. -그들은 생명과 은사를 필요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영혼에 쏟아지는 새로운 능력이 필요하였습니다. 그 불같은 흐름이 산림 (torests)을 휩쓰는 용암의 흐름처럼 이리 저리 굴러다니며, 그들의 본성 속에 있는 온갖 악의 생장물을 붙잡아 불태워야 합니다.

그들은 물이 아닌 성령이 필요하였습니다. 물이 아닌 불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들의 진정한 생명에 대해서는 생명이되고, 그들을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내부의 온갖 사망에 대해서는 사망이되는 그 무언가가 필요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표현된 두 가지 주요 효력은 바로 타오르게 하는 것과 깨끗케 하는 것입니다.

(1) 불 세례(침례)는 열기로 타오게 합니다.
불은 따뜻하게 합니다. 우리는 열렬한 욕망, 따스한 가슴, 달아오르는 사랑, 열정의 불, 생명의 불꽃 등등의 표현을 곧잘 사용합니다.
우리는 이를 사랑 없고 감정 없는, 흥분시키고 고무시키기 어려운 차가운 성질들과 대조합니다. 우리는 얼어붙은 마음을 녹인다느니, 얼음 같이 무감각하다느니 하는 표현 들을 사용합니다.
분명 본문에서도 이와 유사한 인유(引喩)의 경향을 추적할수 있습니다. 본문 속에 그밖의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든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 것만은 확실합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영혼 속에 세상이 결코 보지 못한 열정적이고 신적인 사랑의 불길을 붙이기 위해, 그리고 마음 속의 얼음 같이 차겁고 딱딱한 온갖 요소들올 녹이고 차거운 이기심을 자아 포기의 헌신으로 변화시킬, 열정적인 불꽃이 심령 속에서 타오르도록 하기 위해 오섰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본문은 인간 삶의 한 능력으로 생각되는 그리스도교의 가장 심오한 특성들 가운데 하나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와 기타 모든 종교 및 윤리 체계 간의 현격한 차이점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는 사랑과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열정에 기초를 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표준에서는 이 그리스도교의 특징이 미덕의 요소로 별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관념에는 온건한 신앙을 수용할 자리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영을 줌으로써 열정을 주십니다.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 자신의 따스한 사랑을 우리의 가슴에 부음으로써 열정을 주시며, 그것이 우리의 사랑에 불을 붙입니다.
인간을 위한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역을 믿고 신뢰하는 곳, 거기에서 오직 거기에서만 그리스도를 향한 강렬한 열정이 일어나 일생 내내 타오르게 됩니다. 그리스도교가 열정 을 미덕으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종교와 도덕 체계들 가운데 특이한 존재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그리스도교의 독특성은 보다 깊은 것, 그 열정을 산출하는 방법에 있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까지 이르신 사랑의 진리를 수단으로 사용하여 그 열정에 불을 붙입니다. 복음의 비밀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혼 속에서 사랑을 일으키신다는 말만으로 풀리지 않습니다.

문제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 어떻게 일으킵니까? 이에 대해 오직 하나의 답변이 있을 뿐입니다 : 주님은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진리를 성령께서 우리의 가슴에 심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알리십니다(참조, 요16:I4). 그리고 그 진리만이 우리의 차가운 가슴에 불이 붙게 만듭니다.
여기에 그러한 내적 열정을 낳는 힘이 있습니다. 이 열정이 없으면 미덕은 한낱 유명무실한 것이 되고 종교는 멍에가 됩니다. 여기에 요한의 세례(침례), 세상의 온갖 종교, 온갖 형식주의 및 죽어 있는 외적인 예의범절 등과의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에 열정의 헌신이 있습니다. - 그것은 무지한 광신의 무섭고 음침한 열기가 아니라 불붙은 본성의 살아있는 작열입니다. 그것이 불꽃을 내며 타오르는 것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신, 끌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불길에 의해 불이 붙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불로 너희에게 세례(침례)를 주실 것이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에 이르렀다고 고백한다면, 여기에 우리에 대한 예리한 시금석, 우리의 삶에 대한 준엄한 책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냉냉한 상태에 있는 것은 죄입니다. 우리의 냉냉함은 심령 안에 있는 그 은사를 북돋우는 일에 있어 게으름을 피우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며 책망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책망에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종교에 대한 세상의 이상(ideal)은 점잖은 냉정성입니다. - 세상의 이상이 우리의 실제 생활은 아니었습니까? 우리는 너무 격해질까봐 염려하지만 진정한 위험은 얼음 같은 무감각에 있습니다. 우리는 동상에 걸린 채 않아 있으며, 거반 죽은 채 눈 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에도 내내 은혜로운 햇빛은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덮고 있는 새 하얀 죽음을 능히 녹일수 있으며, 우리를 꽁꽁 묶어 무감각하게 만든 결박에서 능히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 날의 그리스도 교회에서 이 \'불타는 심령\'의 부재보다 더 두드러진 해악은 없습니다. 우리들 중에는
- 관대하고 후한 마음과 수고는 풍부합니다.
- 신앙적 문제에 대한 관심은 많습니다.
- 온화한 관용과 폭넓은 교양미는 있습니다.
- 높은 표준의 도덕율은 있습니다.
- 그리고 전반적으로 이를 꽤 잘 지킵니다.
- 그러나 사랑은 거의 없다. 열정은 별로 없습니다. 예수님은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책망하십니다(계2:4).

- 오순절에 쏟아진 그 성령은 어디에 있습니까?
- 불의 혀 같이 갈라진 것은 어디에 있습니까?
- 그리스도께서 일으키기 위해 돌아가신 그 불꽃은 어디에 있습니까?
- 이미 다 타버리고 회색 재만을 남겼습니까?
- 아니면 켜진 채 방치된 어떤 화덕의 불처럼 종이와 나무 등 가벼운 조각들만 태운 후 단단한 석탄에는 불을 붙이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습니까?
- 그 불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이 의문은 답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의 약속은 여전히 신실합니다. 그리스도는 성령을 보내십니다. 성령은 불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 우리의 태만, 세상사에 대한 몰두, 마음과 가슴으로 그의 진리를 끈기있게 명상하지 못한 일, 이러한 것들이 급기야는 성령의 불을 끄고 말았습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이 불어 있고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취한 열기로 타오르고 있습니까?

그 사랑이 우리의 가슴에 충만해 삶 속에서 빛을 발하며 타오르고 있습니까?
화로에서 취한 관솔이 횃불이 되어 심야 속을 타오르듯 그 사랑이 우리를 어둠 속의 빛으로 만들었습니까? \"그는 불로 세례(침례)를 주실 것이요\".

오 순결한 하늘의 불을 나누어 주시려
위로부터 내리시는 성령이시여
거룩한 사랑의 불꽃을
미천한 내 가슴의 제단에
붙여 주시옵소서

2) 불 세례(침례)는 따뜻한 열기 뿐만 아니라 그 열기로 깨끗케 합니다.
불은 깨끗합니다. 성령은 불입니다. 성령은 자신의 수많은 기능 가운데 최고의 기능 인 이것을 통해 마음과 인격 속에 거룩함을 산출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불을 일으키고, 순백으로 작열하는 불로써 우리의 영혼 을 태워 깨끗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 그리스도교의 방법입니다:
- 첫째는 그의 사랑을 아는 것,
- 다음은 그것을 믿는 것,
- 그리고 이번에는 내속에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
- 다음에는 그 따뜻한 열기가 우리의 모든 삶에 고루 침투하게 하는 것입니다.
- 그러면 어느 곳에나 아름다운 꽃이 피고 성결의 열매가 맺어 광야의 초장을 희락으로 옷입힐 것입니다.

당신은 용광로를 본적이 있습니까? 사람이 망치나 끌 또는 화학적 수단에 의해 모암 (母岩)으로부터 광석 조각을 얻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나 그것을 커다란 원통 속에 집어 넣고 불을 지피고 강한 통풍이 불타는 덩어리를 통과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저녁 때에 모든 찌꺼끼와 불순물이 제거된 순수한 금빛 빗나는 금속 액줄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불이 정복하고 녹이고 순화시킨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에 부어 진 바된\" 사랑(롬5:5), 그리스도의 사랑에 응하는 사랑, 순결하여 죄인들과는 분리되어 계시는 그분에게 고정된 사랑이 우리를 순결하게 하고 죄와 분리시킬 것입니다. 그것 외 아무것도 이를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기타 모든 정화 작업은 요한이 세례(침례) 주던 물처럼 피상적인 것입니다. 도덕과 종교의 외적 요소들이 표면에 있는 불순물을 씻어낼 수 있으나 영혼의 본질 자체 속에 깊이 가라 앉아있는 앙금, 그리고 씨줄과 날줄로 얽힌 온갖 실의 중심부까지 착색된 얼룩은 재거될 수가 없습니다.

위대한 극작가가 여왕 살인녀의 입에 둔 그 두려운 말들은 지극히 엄숙한 진리를 가득 담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녀처럼 얼룩을 깨끗이 제거하고자 갖은 헛된 노력을 다한 후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피 냄새가 있어-이 양손이 결코 깨끗해질 수 없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진정 그렇습니다, 피를 씻을 수 있는 물보다 더 강한 것, 세척력이 더 깊이 침투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회개하고 개혁하라. 보다 더 나은 어떤 복음이 없다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이 모든 것보다 더 강력한 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신적 성령, 그리스도께서 안겨 주시는 신적 용서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거기에서, 오직 거기에서만, 우리는 흠과 죄가 가득한 우리의 과거를 씻을 수 있으며, 새로운 보다 나은 생명을 받아 우리의 미래를 그리스도의 위대한 순결과 닮은 삶으로 점차 엮어갈 수 있습니다.
오 그 자비로운 불, 침투력이 강력한 불을 거절하지 마시오. 그 불은 우리의 뼈와 골수에 까지 침투해 들어가, 마음속 깊은 곳에 잠복해 있는 사망의 씨앗을 불태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그 은혜로운 세례(침례)의 불 속에 집어 넣도록 하시오. 마치 진흙 덩어리를 불 속에 넣듯이 그리하면 당신도 불이 붙어 백색을 띠게 되고, 모든 것을 정복하는 정화의 불꽃 앞에서 온갖 반점이 녹아 없어질 것입니다.

그 도가니 속에서, 인자 곁에 사는 이들은 지상의 어떤 힘이 이를 수 있는 것보다 7 배나 더 뜨겁게 가열될 수 있습니다.
그리할 때 그들을 묶고 있는 온갖 결박은 완전히 타버릴 것입니다. 주의 영은 불입니다. 그런고로 그 불의 영은 성결의 영입니다.

3) 결론적으로 한 마디 경고의 말을 하겠습니다. 모든 인간이 선택해야할 한 가지 길은 불로 세례(침례)를 받든지 아니면 불에 타서 멸망하든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논한 이 상징은 정화와 파멸이라는 이중적 사상을 전달해 줍니다. 우리가 전자에 대해 여러 가지로 논하였지만 그렇다고 하여 후자를 약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 저변에는 공포의 측면도 있습니다. 이 상징의 묘미 가운데 하나가 이러한 이중적 의미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신성에는 성경이 진노라고 일컫는 것, 곧 죄와 행 악자들에 대해 거룩한 사랑이 느끼는 필연적으로 불쾌감과 혐오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빛이 타오르는 불이 됩니다\'.

무서운 지옥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동일한 하나님의 계시 그 자체가 감사로 받아들여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정화의 매개체와 즐거운 삶의 원천이 되고,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슬픔의 원천과 사망의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얼굴 가운데서 자신의 상태와 어울리는 쪽과 접하게 됩니다. 행악자는 진노의 얼굴, 선행자는 은혜의 얼굴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온갖 은사는 인간들에게 있어서 어느 한 쪽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냄새가 되고 어떤 이들에게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망의 냄새가 됩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는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 오셨지만 바로 그 보편적인 구원의 목표 때문에 구원하는 행위 에서 심판자가 되시며, 자신의 결점으로 그 목표에 부합되지 않는 자들에게는 정죄의 원인이 되십니다.

홍해 가에 진을 친 이스라엘의 행렬을 기쁘게 하였던 그 동일한 불기둥이 애굽 군대 에게는 고통과 공포의 빛을 발하였습니다.
언약궤가 오벳에돔의 집에는 복을 주고, 시온은 거룩하게 하고, 예루살렘은 구원하였습니다. 그 동일한 언약궤가 불레셋인들을 치고 짐승 형상으로 된 그들의 신들을 파괴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은 현세에서도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줍니다.
생명을 주는 동일한 불이 사망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여러 가지로 예증할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말속에 심오한 진리가 있습니다.

천국을 만드는 것,
그것이 지옥을 만들도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소금에 절이듯 불로 절이느냐 아니면 불에 사라지느냐? 불로 세례(침례)를 받느냐? 아니면 불 속에 쳐박히느냐? 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 게 주어진 선택의 갈림길입니다.
이스라엘은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70년이 지나 시온산 위에 로마의 깃발이 나부끼고 성전 주변에는 불꽃이 타올랐습니다. 이는 요한의 말 가운데 포함된 반쪽의 진리가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반면 오순절에 붙은, 불의 힘은 요한의 말 가운데 내포된 다른 반쪽 진리를 이룬 것입니다. 그 때 이래 많은 국가와 교회가 양자 택일을 하였습니다.
당신도 선택해야만 합니다.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입니다\'. 우리의 공력과 일이 불 속에서도 반짝거리며 빛날 금과 은과 보석인가 아니면 순식간 에 불타 사그러질 나무와 건초와 그루터기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십니다\'. 이 말씀이 내가 언젠가는 모든 죄에서 벗어나리라는 확신의 토대입니까? 아니면 평소 거부했던 거룩한 사랑, 믿지 않았던 구주, 슬프게하고 소멸하였던 성령과 접촉함으로써 쭉정이처럼 파멸당할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두려움의 모체입니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시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