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강 마 3:13-16절 강해
예수님께서 세례(침례)받으심과그이유(1)
마태복음3:13-16
본문은 예수님의 세례(침례)받으심에 대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공적 생애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유대 제사장들은 그들의 직무를 시작할때 물로 씻었습니다 (출29:4). 우리 대제사장 예수께서도 그가 세상에서 이루실 큰 사역을 시작하실 때 공적으로 세례(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세례(침례)와 그것을 따른 사건을 생각합시다.
1. 예수님의 세례(침례)받으심
백성들이 세례(침례)를 받고 예수님이 세례(침례)를 받으신 곳은 요단강입니다. 요단강은 헬라어로 요르다네스(2446)입니다. 이 단어는 훌레 호수(Lake Huleh)에서부터 지상에서 가장 깊은 협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강에 대한 헬라어 명칭입니다. 그것은 팔레스타인의 주요한 강이었고, 성경에서 근동의 다른 모든 강보다 더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명칭은 초기 가나안어 야르돈(yardon)에서 파생된 아람어형인 마소리 본문의 야르덴 (yarden)에 해당하는 헬라어 입니다. 마소라 본문의 야르덴 (yarden)의 의미는 그 어원이 인도 아리아어인지 흑은 서부 셈족어인지에 달려있습니다. 만일 전자라면 그것은(영구한)강을 뜻하게 될 것이지만, 후자라면 \'내려가다\'라는 뜻의 어근에서 나온 \'내려 가는 것\'이라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두가지 의미가 다 언어학상으로 뒷받침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요단강에 관련된 사건들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이 그 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일이 가장 주목할 만합니다(수3:16). 그 강의 물은 또한 나아만의 병을 기적적으로 고치는데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왕하5:14). 나아만이 몸을 담그어 깨끗하게 된 요단강이 세례(침례)요한의 선교와 세례(침례)의 현장이 된 것은 우연한 일 이 아닌듯합니다.
온 이스라엘은 요한이 일으킨 이 회개와 하나님을 찾는 운동을 목적하는 세례(침례) 의 부름에 직면해 있고 많은 사람들은 이 부름에 호응하여 세례(침례)를 받았습니다. 유대교에서는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하면 죄를 씻는 표로 세례{침례)를 받았으나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받은 선민인 유대인들이 세례(침례)의 필요를 느끼거나 받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거족적 세례(침례) 운동은 유대민족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나사렛 동네에서 사는 한 유대인으로 뿐만 아니라 메시야로서 이 부름을 들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자기와 자기 아버지 사이에 독특한 관계가 있다는 것과 메시야로서 그의 사역을 시작하기 위하여 부름받았다는 의식은 그에 대한 중대한 의미를 지닌 요한의 예언적 전도로 확실하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확실히 자기와 자기 사촌 요한에 관한 예언에 대하여 자기 모친에게 들으셨을 것이며, 그가 요한의 전도에 대하여 듣자마자 그것이 의미하는 것, 즉 요한은 자기 앞에 길을 준비하는 선구자이니 나의 때가 가까왔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침례)를 받으려\" 하셨습니다. 이 문장은 속격 관사 투가 붙은 부정사 구문으로, 결과 대신 목적을 나타내 는 경우는 \'세례(침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리에서 요단강으로 요한에게 오셨다\'는 의미를 지니며,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더우기 그는 요단강에서 백성들에게 세례(침례)를 주는 요한에게 나타나셨을 때 메시야로서 자기의 사역을 시작할 결정적 시기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침례)를 받으려\" 하실 때 \"요한이 말려\"말하였습니다. \"말려\"에 해당하는 디에콜뤼엔은 디아콜뤼오(1254)의 미완료 3인칭 단수입니다. 이 단어는 \'방해하다, 막다\'를 뜻하는데 이 합성어에서 디아()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노력을 나타내지 않고 분리를 나타내기 때문에, \'가로막아 분리시킨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여기서 미완료 시제가 사용되어 \'내가 당신에게 세례(침례)를 받아야 할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라고 말하면서 계속 가로막거나 저지한 것입니다.
요한은 자기와 자기의 세례(침례)보다 예수님과 그의 세례(침례)가 더 큰 능력이 있다고 설명을 했는데,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와서 세례(침례)를 받으려고 하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회개를 위한 세례(침례)를 받을 필요가 없으므로, 그에게 세례(침례)를 베풀고 싶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그 일을 행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세례(침례)를 주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 허락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아르티, 헬737)는 \'바로 지금, 지금 곧\'이란 뜻입니다. \"허락하라\"에 해당하는 압헤스는 \'보내다, 가게 하다, 통과 시키다, 허락하다\'를 뜻하는 압히에미(헬863)의 명령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에는 막지 말고 \'바로 지금 가게 하라\'나 \'통과시키라\'는 의미가 강조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지도를 받아 백성이 세례(침례)받는 곳으로 가야하는 것입니다(참조, 눅3:21). 그리하여 예수님은 요한의 부름에 따를 것을 결심하고 세례(침례)를 받으신 것이다.
2. 예수님께서 세례(침례)받으신 이유
그러나 우리는 무죄하신 예수님이 회개와 죄에 그렇게 관련된 요한의 세례(침례)를 왜 요구하여 받으셨는가 하는 의문을 가집니다. 그 대답의 열쇠는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는 주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의\"에 해당하는 디카이오쉬네(헬1343)는 \'의로음, 의무를 행하는 자의 상태, 하나님 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조건\'으로서, 여기서는 \'하나님의 명령이나 요구하시는 것\'을 의 미합니다.
\"이루는 것\"에 해당하는 플레로사이는 \'충만하다, 이행하다, 이루다, 완성하다\'를 뜻하는 플레로오(헬4137)의 과거 부정사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는 \'하나님의 명령, 곧 요구하시는 것을 이행하여 이루거나 완성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을 위한 그의 사역의 이행 및 완성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깨서는 한 인간으로서의 몫과 메시야로서의 몫이 있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의 세례(침례)는 그가 한 인간으로서 하나님께 헌신과 복종을 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신적 제도 및 의식을 승인하고 하나님의 모든 의로운 교훈을 따르려는 그의 준비(혹은 결심)를 보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에 게 요구하신 모든 것은 예수님이 인간과 그 죄악한 세상과 운명을 같이 하셨기 때문에 행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영적 지도자로서, 이 세례(침례)는 느혜미야, 에스라, 모세, 다니엘과 같이 인격적으로 백성 곧 국가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며, 요한의 사역을 지지하는 것이며, 유대 대제사장들의 경우와 같이(출29:4), 그의 공적 선교사역에 취임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세례(침례)는 그가 메시야로서 하나님께 헌신과 복종을 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의 행위의 중요한 의미는 Levertoff가 말한대로 세례(침례)를 받음으로 예수님은 자기 운명을 받는 것입니다. 그는 세례(침례)에서 자신을 자기의 거룩한 사명에 헌신하여 그의 백성 및 인류와 일체로서 그들의 죄를 지며, 또 침례에서 그들의 죄를 그에게서 씻어버리는 것입니다.
백성의 세례(침례)는 죄에서 떠나서 하나님께 헌신하는 상징이요, 주님의 통치를 받기 위한 백성의 준비요, 그에게 복종을 맹세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세례(침례)는 사적 생활을 떠나 메시야의 사명에서 하나님께 \'헌신하는 상징이요, 백성을 위한 준비요, 죽음 곧 십자가의 죽음까지의 복종을 맹세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세례(침례)에서 예수님은 갈보리의 십자가의 죽음과 장사로 끝나는 그 짐을 지기 시작하는 동시에 그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받을 세례(침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고 그가 메시야로서 세례{침례)시에 짊어진 짐을 말하고 있습니다(눅 I2:50).
그는 백성을 통치하는 왕이기 전에 백성의 죄사함을 얻게 하는 고난받는 종이되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에게 요구하신 모든 것을 이루시는 것입니다(히I0:5-7).
그러므로 예수님의 세례(칭례)는 십자가로의 출발이요, 백성을 위한 그의 고난과 죽음과 장사까지 내려가는 인격적 세례(침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을 때 세례(침례}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깨 죽고 함께 사는 것을 표시하는 것과 동시에, 그러한 사람으로 살기를 결심하고 고백하는 행위입니다(롬 6:3-5; 골 2:12).
3) 예수님은 세례(침례)에서 그의 메시야 성의 공적 입증을 위한 하나님의 은총적 표시를 기대했으리라 생각됩니다.
3. 예수님의 세례(침례)시에 일어난 천적 사건
1) 첫째로 하늘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 오실 때 하늘이 열린 것입니다. \"하늘이 열리고\"란 말은 하늘들의 영적 열림을 표현한 것입니다. 유대인의 기록에 하늘들은 3층천, 즉 제 일 하늘은 새들이 날아 다닐 수 있는 대기권인 공증, 둘째 하늘은 별 들의 공간인 하늘, 세째 하늘은 하늘들의 하늘로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천국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하늘은 예수님이 승천하여 계시고 그의 백성을 인도할 곳으로 사랑과 평화와 기쁨과 광명이 층만하며, 계시의 빛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있고, 최고의 순간에 거룩한 인간이 볼 수 있고, 따라가 본 천국입니다(고전12:1). 이 하늘들이 영적 무엇이 통과하게끔 예수님에게 어떤 형태로 열려진 것이 보인 듯 합니다.
그러나 \"하늘이 열리고\"를 뒤따르는 두 현상인 성령의 강림과 아버지의 증거의 소리를 누구든지 볼 수 있는 놀라운 객관적 현상이었는지에 대하여는 의논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유대 민족이 흔히 경험한 것과 같은 보고 들은 영적 체험의 사실을 표시한다고 볼지라도, 그러한 영적 정황에 함께선 사람은 누구나 볼 수 있었다고는 할 수 없으며, 그것이 어디까지나 계시(啓示)인 이상, 하나님이 특별히 보여 주시려고 목적한 자들만이 볼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과 그에게 세례(침례)를 베푼 요한이 응시할 있도록 하늘이 열려졌다고 하나 무리들이 그것을 보았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아니합니다. 스데반이 살인자들 증에서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으나 살인자들 은 그것을 보지 못한 것처럼, 예수님의 세례(침례)시에도 예수님과 요한 외에 요단에 있는 군중들에는 오직 구름이나 무한히 청청한 하늘만이 보였을 것입니다. 천국에 관한 것은 오직 예수님과 그 안에 있는 자들에게만 열려진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마13:1)(G.A.Chadwik).
여호수아를 통하여 요단 강물을 갈라서 지상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만드신 하나님은 이제 하늘을 열어 천상 가나안과의 통신을 여신 것입니다.
- 천국은 세상의 죄를 짊어진 예수님과 교류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열려진 것입니다. - 천국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를 없이하는 사역을 맞이하였을 때에 그를 영접하기 위하여 열려진 것입니다.
- 천국은 예수님 안에서, 또는 통하여 우리와 교통하고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복종할 수 있도록 격려와 능력을 주기 위하여, 또 우리를 천국으로 영접하기 위하여 열려진 것입니다.
죄는 하늘을 닫고, 하나님과 인간의 친교는 단절되었으나 지금 예수님은 모든 신자에 게 천국을 열어서 하나님의 빚과 사랑과 자비와 모든 은혜의 선물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 그와 어떤 즐거운 통신을 가지며, 마지막 날에 천국에 들어갈 즐거운 희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세례(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리며..하였는데, 이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식들에 정당히 참예할 때나 어떤 일을 직면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과 친교와 그로부터 어떤 통신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2) 둘째로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 위에 강림한 것입니다.
\"성령이... 자기 위에 임하심\"은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성령으로 기름부으심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스리엘의 지도자들과는 달리, 기름이 상징한 성령, 즉 열려진 하늘에서 강림한 성령으로 기름부으심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성령이 강림하셨으니, 주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할 것이라는 예언대로 되었습니다(사 61:1).
예수님은 출생시부터 성령과 함께 하셨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사역을 이루기 위해 그의 은혜와 능력의 충만에서 성령을 한량 없이 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는 성령을 한량없이 받으신 것입니다. 그의 현현은 진실로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임한 것과 아주 다른 것이었습니다.
오순절 날에 그는 보여졌으나 제자들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오직 일부분만을 받았습니다. 그의 적당한 상징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나 그 의 전 활력 주는 인격으로 아니고 선물의 부분적 성질을 지적하는 강력하고 퍼지는 요소로 임하였습니다.
요한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것이라\"는 천사의 말도 이 한도를 말합니다. 요한은 그가 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받았으니 그는 성령으로 충만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수용력이 신의 전부(fulness)를 어떻게 흡수할 수 있습니까? 성령이 한 마리의 비둘기 같이 완전체와 산 유기적 연합으로 누구 위에 임하셨습니까? 오직 무한자가 이런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이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는 자\"십니다(골2:9).
그러므로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에게만 임하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에 게 이런 성령이 임하신 것은 그에게 성령으로 기름 부어 그의 그리스도 즉위를 표시하고, 그의 사역을 위하여 충분히 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사6:1-13).
이는 구약시대에 왕이나 제사장에게 그의 임직을 표시하고, 그의 사역을 위한 은혜가 필요하다 하여 성령을 상징한 기름을 부어 세우는 것과 같이 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은 큰 시은자(施恩者)가 되며, 성령은 장미가 찢기었을 때 향기를 내는 것처럼, 그에게서 나오게 되었습니다(G.A.Chadwik). 그리하여 예수님은 메시아시요, 그의 사역을 이루실 신령한 능력을 가진 자시요, 성령으로 세례(침례)를 주시는 이로 알려지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비둘기\' 제목에서 충분히 다룰 것입니다.]
3) 세째로, 하늘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증거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었습니다. \"하늘로서 소리\"는 하나님이 계신 하늘에서 오는 소리, 곧 하나님의 음성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침례)받으실 때 성령은 자신을 형체로 비둘기 같이 나타내셨으나 성부는 소리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는 것은 매우 증대한 의미를 지닌 이적 입니다. 과거 유대 역사상에 하늘에서 음성은 오직 시내산에서 율법을 수여받을 때만이 들려왔습니다(신4:12).
이 두 경우는 특별한 증대성을 지니었습니다. - 모세의 율법은 육적 이스라엘의 영광과 가장 큰 축복이며, 예수님의 은혜의 복음은 영적 이스라엘의 영광과 가장 큰 축복 입니다.
진실로 이 복음은 예수님과 그 안에 있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총을 분명히 그리고 충분히 말했기 때문에 하늘에서 땅에 온 가장 좋은 소식 입니다. 하나님은 율법과 복음의 소개에 음성으로 말씀하셨으니, 이 둘을 특별한 존귀로 표하기를 기뻐하신 듯 합니다.
\"하늘로서 소리\"는 예수님에게 아주 적절한 말씀입니다.
* 그 소리의 전반부 - \"내 사랑하는 아들\"이란 말씀은 시편 2:7과 관련하여 예수님이 지니신 메시아적 왕직을 증거합니다. 특별히 이 시편은 옛날에 왕들이 등극할 때 거행하는 즉위식에 공식적으로 사용했던 찬가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 그 소리의 후반부 -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은 이사야 42:1이하를 참고하면, 예수님이 지닌 메시아적 선지직을 증거합니다. 한편 이 구절에서 복종과 봉사 의 길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행하는 하나님의 이상적인 종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나 그의 백성 의 대리로서 고난받기 위하여 부름받으셨을 때, 특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종이 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들린 예수님에 대한 증거가 구약의 두 성구를 결합시켜서 예수님의 품격과 사명을 선언한 일은 매우 의미 깊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예언들이 이루어질 자로 택함 입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것, 즉 예수님은 다윗의 위를 이을 왕이시며, 여호와의 종으로서 메시아의 직책을 다할 자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이 증거는 하나님이 예수님은 구속 사역을 이루시기 위하여 영원부터 지정 하시고 인치신 신적 구주시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 증거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증보자로 세우셨다는 것을 공포하는 것입니다.
이 증거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그의 백성을 위한 화해자, 대속자, 보상자, 구속된 백성 의 머리로서 만족히 여기신다는 것을 공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초대 교회 시대에 어떤 이단의 가르침과 같이 세례(침례)시에 성령의 능력 을 받음으로 비로소 하나님이 기뻐 하는 아들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영원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요l:1-2), 아버지의 품속에 있는 독생자로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바가 되셨습니다(요I:18).
그는 특별히 세상 창조시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바가 되셨으며 (잠8:30), 이제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을 구속하는 아들로 임명되시어 그 짐 을 실제로 짊어지는 자가 되셨을 때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시어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신 것입니다.
이 하늘에서 소리는 역시 우리에게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영원한 아들 안에서 우리를 아들로 보시고 우리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례(침례)받으실 때에 나타난 천적 사건을 통하여 많은 교훈을 받습니다. 우리는 천적 사건이 예수님께서 세례(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예수님에게 임했다는 사실을 생각합시다.
신앙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그 안에 거하는 모든 신자들은 성령이 임하여 함께 합니다. 더욱이 그들이 성례에 참예하거나 어떤 신령한 사명에 새로 몸바치거나 특별한 일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주의 권능으로 충만되고 일할 힘을 얻으며, 하나님의 아들된 증거와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확실한 증거를 받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 역사를 통하여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특별한 사명을 위하여 기름부음을 받거나 또는 그런 사명에 부름받았을 때 그 부름에 복종했을 때 새 능력으로 채움을 입고 일했습니다.
사사 시대에도 그들이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몸바쳐 기도할 때에 성령으로 충만하여 큰 일을 했습니다.
우리는 주의 깊게 예수님께 임한 천적 사건을 숙고하면 그것은 우리 영혼에 풍성한 양식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피난하고 자기 영혼을 그에게 위탁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용기와 능력과 위로와 평화와 기쁨이 충만하여 있는 것입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