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강 막 1:1절 강해
마가복음 1장 1절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제자와 같은 역할을 했던 마가가 쓴 복음서입니다.
그래서 일명 \'베드로복음\'이라는 명칭을 붙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성격대로 마가복음은 문체가 간결하고 행동적인 복음입니다.
마가복음은 마태복음처럼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많이 소개되어 있지 않고,
누가복음처럼 문학적인 세련미나 아름다움이 돋보이지 않고,
요한복음처럼 영적인 깊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마가복음의 문체는 무뚝뚝하고, 꾸밈이 없고, 대중적이고, 편한 문체입니다.
그렇다고 마가복음이 다른 복음서보다 더 낫다고 하거나 더 못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에 왜 하나님께서 4복음서를 주셨는지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에는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향해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복음에는 교훈적인 마태복음 스타일도 있고, 대중적인 마가복음 스타일도 있고,
세련된 누가복음 스타일도 있고, 영적인 요한복음 스타일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이 다른 복음서보고 왜 교훈적인 내용이 없느냐고 말할 수 없고,
마가복음이 다른 복음서보고 왜 그렇게 복잡하게 꾸미느냐고 말할 수 없고,
누가복음이 다른 복음서보고 왜 그렇게 투박하게 말씀을 전달하느냐고 말할 수 없고,
요한복음이 다른 복음서를 보고 왜 그렇게 영성이 없느냐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양성 속에서 서로 존중하며 일치를 찾아가라는 겸손함에 대한 도전이
하나님께서 4복음서를 우리에게 주신 사실에 숨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것이 제일 영적이라고 주장하는 그런 유치함이 더 이상 없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자기를 제일로 알고 산다면 어떻게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홍수 후에 하나님은 인류를 다시는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기로 작정하시고,
언약의 증거로 무엇을 주셨습니까? 무지개를 주셨습니다.
무지개는 다양성 속에 아름다움을 나타내라는 하나님의 언약의 징표입니다.
오늘날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교회와 성도는 무지개 빛깔의 교회와 성도입니다.
교회도 마태복음적 교회, 마가복음적 교회, 누가복음적 교회, 요한복음적 교회가 있고,
설교도 마태복음적 설교, 마가복음적 설교, 누가복음적 설교, 요한복음적 설교가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설교에서 때로 아름다운 시도 인용하면서 누가복음적인 설교를 할 때
왜 예수 그리스도만을 말하지 않느냐고 마가복음적 설교를 최고인 줄 알면 안됩니다.
어떤 목사님이 설교에서 때로 삶의 윤리를 강조하면서 마태복음적인 설교를 할 때에도
\"영성이 부족한 것 같다!\"고 하면서 요한복음적 설교를 최고인 줄 알면 안됩니다.
설교자의 특성을 무시하고 자기 것이 최고인 줄 알 때 교회적 자세가 무너지게 되고,
하나님 보시기에 그런 모습은 축복을 예비하는 겸손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서로 존중하고, 서로 격려하는 겸손한 언약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마가복음은 오직 1장 1절 한 구절이 서론입니다.
그처럼 서론을 간단히 끝내고 바로 2절부터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이 한 구절만 봐도 이 복음서가 얼마나 간결하고 직설적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처럼 서론이 한 구절밖에 되지 않지만 이 한 구절이 참으로 의미 있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명백히 밝혀 주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명백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복음이 시작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모든 복된 일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시작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얽힌 어떤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하십니까? 기적을 체험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어떻게 시작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어떤 분이 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주일에도 일하는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 별로 나아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서야 그분이 말합니다.
\"저는 돈 문제만 해결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역시 신앙의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먼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관계가 어떤 관계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 관계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진지하게 해야 합니다.
이번 마가복음 밀착강해 시간에 다시 한번 그리스도를 만나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분은 하나님이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을 잘 가꾸려고 합니다.
말이 얼마나 중요한 줄 알고 함부로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에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속상하지 않고,
남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마음이 높아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분들은 말이 따뜻하고 눈빛이 따뜻합니다.
말은 조리 있게 하지 못해도 그 말을 들으면 힘과 용기와 위로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힘과 용기와 믿음과 불굴의 투지가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유혹에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냥 조용히 사는 것 같으나 그 안에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는 곳에 기적이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나고 사랑이 피어오릅니다.
그들 안에 무엇이 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번 마가복음 밀착강해를 통해서 주님을 새롭게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통해서 또 한 가지 얻게 되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작은 시작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작게 시작되었지만 지금 얼마나 크게 되었습니까?
모든 하나님의 역사는 작은 시작을 통해서 이루어졌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729년 11월의 어느 날 몇 명의 젊은이가 영국 런던의 한 모퉁이에서 모였습니다.
그 때 아무도 이들의 모임을 몰랐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은 모임은 나중에 기독교 역사상 큰 일을 하는 모임이 됩니다.
이 모임에 소속된 조지 휫필드는 산업화 속에서
온갖 무질서와 범죄로 신음하던 영국 안에 새로운 복음의 불을 붙였고,
요한 웨슬레는 그 일의 계승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계몽주의 철학과 산업혁명으로 신음하던 시대에
복음의 기치를 역사와 민족 앞에 높이 들었습니다.
이들의 모임은 비록 작은 시작에 불과했지만 위대한 희망의 씨앗이었습니다.
성경은 항상 작은 시작과 새로운 시작을 중시하는 책입니다.
하나님은 새 일을 시작하게 하시는 분, 일을 새롭게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참된 성도는 항상 새 일을 시작하기를 즐겨합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복음을 시작하셨다고 선언합니다.
복음이 시작되자 그 안에서 병든 자들에 대한 치유가 시작되었습니다.
율법 아래 억눌린 사람들에 대한 해방이 시작되었습니다.
진정한 용서가 시작되었습니다. 복음과 함께 구원도 시작되었습니다.
복음은 그때까지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형태의 삶을 시작하게 만들었습니다.
복음이 생기면서 포악한 자가 아닌 온유한 자의 승리가 시작되고,
십자가에 못박은 자의 승리가 아니라 못 박힌 자의 승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것은 복음이 있기 전까지는 없었던 전혀 새로운 일이었습니다.
복음이 주어짐으로 말미암아 아주 새로운 차원의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사실은 복음을 아는 우리에게 어떤 도전을 줍니까?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로서 항상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영적인 일을, 아름다운 일들을 시작하기로 작정해야 합니다.
시작이 없으면 고인 물처럼 썩고 퇴보하게 될 것입니다.
그처럼 매일 새롭게 시작하려는 자세만이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본문은 우리를 앞으로 뛰어나가게 만드는 출발 신호와도 같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시작되었으니 우리도 복음을 따라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도 먼저 시작하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 그 거룩한 행렬에 참여해야 합니다.
여러분! 시작을 두려워하면 안됩니다. 모든 시작은 초라한 법입니다.
말구유에서의 작은 시작이 세상을 변화시킨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 한 분의 작은 시작이 인류를 구원하는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시작하면 좋겠습니까? 대략 알지 않습니까?
감동되는 대로 힘써 실천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