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강마가복음 1장 강해
마가복음 1장 1-8절
마가복음(2) 생활로 회개를 외치십시오
오늘날 스피드 시대라고 합니다. 급속도로 사회가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입니다. 복음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급변하는 시대에 잘 적응하며 사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보다 중요한 일은 변하지 않는 복음을 목숨처럼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제 1절에서 복음이 무엇인지 보았습니다.
1절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복음이라고 말입니다.
로마 네로 황제의 핍박 속에서, 카타콤의 지하 무덤 속에 숨어살면서
당시 그리스도인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복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복음만이 우리의 생명이 새로워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의 역사는 무엇으로 시작됩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2-8절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이야기는
그 복음의 역사가 회개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본문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이 구절에서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는 세례 요한을 말합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의 터 위에 세워진 역사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가 있으면 기쁨과 위로가 됩니다.
오늘 수많은 사람 중에 우리가 새벽 제단을 지키는 심령으로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선구자의 자부심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 때문에 교회의 길이 닦이고, 교회가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때문에 우리 자녀의 길이 닦이고, 자녀가 살게 될 것입니다.
선구자는 길을 닦기 위해서 희생하면서도 영광은 덜 받을 수 있지만
어느 누구보다 그의 삶은 행복하고, 하늘 나라의 상급이 클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좋은 일이라면 앞서 동참하고, 앞서 희생하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길을 예비하러 온 세례 요한이 무엇을 전파했습니까?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꼭 기억하십시오. 새로운 삶은 회개와 함께 시작됩니다.
정말 새롭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회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중요한 경제적인 사건과 정치적인 사건은 상황과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과 환경과 만물을 새롭게 하는 것은 한 사람의 회개에서 시작됩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죄를 뉘우치는 것은 작은 의미의 회개입니다.
보다 큰 의미의 회개는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아야 길이 열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문제와 상황과 사연은 다 다릅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푸는 유일한 길은 회개하고 주님을 만나는 것에 있습니다.
가끔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저지른 일인데 내가 책임져야지.\" 그 생각이 지나치면 교만입니다.
\"의사도 포기했는데 길이 있겠어!\" 아닙니다. 그런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어떤 형편이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만나면 그때부터 새로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살길이 열리고, 문제가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되는 축복을 받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회개하기 싫기 때문입니다.
정말 자세히 보면 우리 주위에는 회개하기 싫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우리가 회개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우리로부터 새로운 역사,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는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광야의 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회개의 메시지는 사실 오늘 우리가 들어야 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광야의 소리를 듣는데서 끝나면 안됩니다.
우리는 광야를 소리를 외칠 준비도 되어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존재 이유가 무엇입니까?
더 잘 먹고, 더 잘 누리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증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부담감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 내 몸과 시간과 물질을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광야의 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서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소리가 진짜 소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을 위해서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3절과 4절에서는 연속적으로 광야라는 단어를 강조합니다.
왜 강조합니까? 광야의 자리가 우리의 삶의 자리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가 광야일 때 우리의 외침은 능력 있는 외침이 될 것입니다.
왜 회개를 외치는 세례 요한의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까?
그것은 세례 요한의 삶의 자리가 광야였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의 별명은 3절에 나오는 대로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그는 배부른 자로 회개를 외친 것이 아니라 삶의 모범을 먼저 보여주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말씀과 생활이 일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3장 1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부자, 세리, 군인들도 세례 요한에게 나와 회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사실은 우리에게 무슨 도전을 줍니까?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삶에 모범이 되어야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세례 요한은 약대 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지냈습니다.
그가 돈이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부모 양가가 제사장 출신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의 가문은 명문가였습니다. 그는 풍족한 삶을 충분히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검소하게 삽니다. 단순하게 삽니다.
회개를 외치면서 말로만 외치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외치는 자는 많이 있지만 생활로 외치는 자는 별로 없습니다.
교회에도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은 있지만 생활을 보여주는 사람은 적습니다.
말은 있지만 십자가가 없으면 그 신앙은 허무한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 속에서도 메뚜기와 석청을 회복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너무 많이 가지려고 하면서 살지 마십시오. 그것은 탐욕입니다.
반대로 많이 나눠주고 베풀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 목적이 뚜렷하면 하나님은 나눠줄 수 있는 물질적 은총도 주실 것입니다.
집이 두 채 새 채가 되고 많이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저금 통장의 액수가 늘어가는 것과 주식의 액면가가 늘어나는 것에
소망을 두는 삶이 얼마나 가련합니까? 우리는 그런 삶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단순하게 사십시오.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소망임을 고백하며 사십시오.
그렇게 살면 우리에게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삶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처럼 이 땅의 부귀영화에 인생의 전부를 거는 인생들에게
새롭게 차원 높은 삶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려면 검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과 삶이 일치하는 광야의 삶을 살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그런 삶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