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강 마가복음 1장 강해


마가복음 1장 21-28절

마가복음(6) 능력과 권세의 원천


누가 신앙생활을 제일 잘할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말씀 속에서 권세를 느끼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 같습니다.
말씀을 진정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면 거기에서 기적과 축복을 시작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21-22절 말씀을 보십시오.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는 서기관들이 말씀을 가르치는 것과 전혀 달랐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주님의 말씀에는 그런 권세가 있게 되었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주님이 말씀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주님이 말씀이 육신이 된 분이니 주님의 말씀이 권세 있게 들리겠습니까?

그리고 주님이 말씀이 육신이 된 분이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주님께서 말씀대로 사셨다는 말입니다. 바로 거기에서 권세가 나옵니다.
우리도 권위 있는 사람이 되려면 말씀대로 행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의 권위가 떨어지는 이유는 가르친 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목자가 권위를 찾으려고만 하면 권위가 올라갑니까?
그렇게 하면 오히려 권위는 떨어지고 불평과 비난의 대상만 됩니다.
권위는 말씀을 재미있게 하고, 웅변적으로 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권위는 말씀대로 살고,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부모의 권위가 나타납니까? 말씀대로 살 때 부모의 권위가 나타납니다.

오늘날 부모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자녀가 유행을 타서 그렇습니까? 시대가 그래서 그렇습니까? 자녀 잘못입니까?
아닙니다. 역시 가장 큰 이유는 부모에게 본이 되는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부모의 말이 권세 있는 말씀으로 들리지 않고 잔소리로 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함께 생활 속에서 권위를 찾아나가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이 권세가 있으려면 그 말씀과 가르침 속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가르침은 권위가 없습니다. 지식만 전달하는 것은 죽은 것입니다.
정말 권위 있는 말을 하려면 사랑하는 마음, 사랑하는 눈빛이 있어야 합니다.

미워하는 마음, 귀찮은 마음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하고, 좋은 일을 해도 권위가 서지 않습니다.
오늘날 권위를 이상하고 신기한 방법으로 세우려고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랑함으로 권위를 인정받기를 힘써야 합니다.

교회생활을 하다 보면 직분을 받습니다. 그 직분은 부분적으로 권위를 줍니다.
그러나 직분만으로는 권위를 인정받게 하지는 못합니다.
권위를 인정받는 자가 되려면 신뢰받을만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거룩한 삶과 사랑과 긍휼이 넘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 속에서 권위가 나타난 것은 바로 이런 삶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말씀의 권세가 바로 드러난 사건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가로되.\"
왜 소리를 질렀습니까?
24절 말씀을 보니까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깜짝 놀라서 소리지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귀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1. 귀신은 깨끗한 것을 무서워합니다.

성경을 보면 귀신을 말할 때 자주 등장하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어떤 수식어입니까? 23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무슨 수식어입니까? \'더러운\'이라는 수식어입니다.

귀신은 그 본질 자체가 더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깨끗한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깨끗한 삶은 귀신을 물리치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안타까운 얘기지만, 더럽고 치사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고 귀신 들리는 경우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말합니다. 귀신의 평생 소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집을 가지는 것입니다. 어디로 그들의 집을 삼기를 원합니까?
사람으로 자기의 거처를 삼기를 제일 원합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사람 몸 속으로 들어가려고 노립니다.
그러므로 틈을 보이면 안됩니다. 항상 깨끗함으로 우리 자신을 단장해야 합니다.

2. 귀신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무서워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귀신 문제와 관련해서 큰 문제점이 2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귀신을 지나치게 믿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귀신을 안 믿는 것입니다.

귀신은 있습니다. 성경이 증거하고 있고, 우리의 삶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귀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귀신을 지나치게 믿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두려움이 많습니다.
귀신을 무서워하고, 심지어는 교회에서 혼자 기도할 때도 두렵다고 합니다.
귀신을 지나치게 믿습니다. 귀신을 지나치게 의식합니다. 그것은 큰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귀신을 의식하면 할수록 귀신에게 사로잡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귀신을 더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더 생각하고 더 의식해야지요.

왜 무속인들이 귀신 얘기를 많이 하고 귀신처럼 행동하고 표정을 짓습니까?
두려운 마음이 들게 해서 사람의 마음을 약화시키고
그 약해진 마음을 이용해 쉽게 그를 통제하고 조절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을 지나치게 믿고 의식하고 두려워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특히 예수님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 믿음을 오히려 귀신이 두려워합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이 두려움이 없고 오히려 귀신이 두려워해야 정상이지
믿는 사람이 귀신을 두려워하면 그것은 주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믿음입니다.

그래도 분명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귀신을 두려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귀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진다고 해서 믿음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는 사람 중에서 특별히 그 측면이 약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귀신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되도록 영계 얘기를 많이 하고, 귀신 얘기를 많이 하는 사람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얘기를 들을수록 약한 부분에 두려움이 틈타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 부분이 강한 사람도 귀신 영화보고, 귀신 얘기 들으면 겁이 날 때가 있는데
하물며 귀신에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오죽 영향을 많이 받겠습니까?

그러므로 귀신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사람은 귀신을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귀신으로 인해 어떻다는 식의 말을 많이 하거나 듣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어둠을 파헤치는데 신경을 쓰는 것을 결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닙니다.
그런 분일수록 더욱 밝은 세계를 가까이 하고, 밝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며,
신앙생활도 밝은 것을 좋아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수님 안에서의 굳건한 믿음의 확신입니다.

3. 귀신은 예수님의 말씀을 무서워합니다.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무엇으로 귀신을 쫓아냅니까? 말씀으로 쫓아냅니다.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우리는 말씀이 가장 큰 능력이고 권세의 원천인 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은 우주를 창조한 능력의 원천입니다. 그런데 왜 말씀이 능력이 되지 못합니까?
히브리서 4장 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말씀이 능력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믿음으로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음으로 잘 듣는 사람은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귀신은 말씀을 믿음으로 듣는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의 삶에서 진정 말씀의 권세가 나타나
어떤 상황에서도 능히 담대하게 그 상황을 극복하며 사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