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장 32-39절 마가복음(8) 기도와 전도를 미루지 마십시오 사람에게 만남이란 대단히 중요합니다. 누구를 만나 누구와 사귀느냐는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청소년들의 행동이 이상해지면 어떤 친구를 사귀고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만남을 통해서 사람은 영향을 주고받아서 인격과 가치관이 형성됩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성패는 만남에 의해서 상당 부분 달려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는 우리는 가장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만남을 현재의 삶에서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어떻게 지속적으로 이 만남을 유지시킵니까? 그래서 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어떤 그리스도인은 염려와 근심과 걱정으로 세월을 보냅니다. 그 시간이 의미 있는 시간일까요? 아닙니다. 거의 버려진 시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 상황을 이길 수 있는 창조적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을 얻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될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가정이 어렵습니까?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 가정은 반드시 길이 열립니다. 교회가 어렵습니까?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 교회라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려움이 느껴집니까? 다른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기도를 미루지 않으면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삶이 빈곤한 이유는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쁠수록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히려 바쁘기 때문에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통해서 삶의 방향을 잘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도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기도를 핑계할 수 없습니다. 기도의 실패는 신앙의 실패이고, 신앙의 실패는 결국 인생이 실패입니다. 오늘 본문 32-34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부터 정말 바삐 하루를 보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때까지 사람들이 몰려들어 정말 분주하게 지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 다음날 어떻게 하십니까? 35절을 보십시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그 다음날 주님은 힘들도 지치고 바쁜 중에도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기도 시간을 가장 가치 있는 시간으로 보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새벽을 좋아하셨습니다. 새벽시간의 묘미를 알아야 합니다. 대체적으로 새벽시간 활용은 성공인에게 있는 공통적 특징이라고 합니다. 어떤 여론 조사기관이 성공한 사람 백 명을 놓고 설문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의 하나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루에 조금 늦게 일어나면 하루 종일 과속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하루에 일찍 일어나 유용하게 쓰면 인생이 밝고 축복된 인생이 됩니다. 더 나아가 아침 첫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시작한다면 축복이 없겠습니까? 가끔 목회자들이 불평합니다. \"새벽기도는 누가 만들었나? 그것 때문에 한국 목사들이 배로 고생한다.\" 그러나 배로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배로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것입니다. 새벽 시간의 성공은 하루의 성공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새벽 5시를 마법의 시간이라고 지칭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인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새벽을 깨우십시오. 새벽 5시의 의미를 소중히 여기며 사십시오. 가장 소음이 적은 그 시간에 마음을 정리하고 주님과 교제하십시오. 새벽이 부흥하면 반드시 인생은 부흥하고 교회도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왜 매일새벽기도가 좋습니까? 기도는 비상시에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차근차근 저축되어야 합니다. 그 저축된 기도의 힘이 삶에 능력으로 어려운 때에 나타나게 됩니다. 급할 때 기도하면 이미 많이 늦은 것입니다 미리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새벽 기도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어렵게 생각합니다. 새벽 기도시간은 좋지만 그러면 하루가 힘들어진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렇겠지만 아예 그렇게 틀을 잡으면 점차 나아질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새벽에 함께 기도하는 기도 동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서로 새벽기도를 격려하고, 서로 깨워주고 이끌어주면 보다 나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새벽에 기도하셨습니까? 38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전도하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그 목적을 분명히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기도와 전도는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룹니다. 기도한 후 전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제발 부탁합니다. 무작정 기도만 하지 마십시오. 내가 기도하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발견하지 않으면 기도의 가치는 줄어듭니다. 성경공부하고 제자훈련을 하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 거기에서 끝나면 안됩니다. 그것을 활용해야 합니다. 그처럼 어떤 것을 하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처럼 목적이 분명한 삶을 가리켜서 사명적인 삶이라고 합니다. 즉 내가 왜 이 땅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꼭 붙들고 그것을 위해 살려고 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그것이 바로 전도라고 가르쳐줍니다. 오늘 본문 37절 말씀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주를 찾았습니다. 바로 그때 많은 사람들은 인기에 취해 사명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명을 망각하지 않았습니다. 38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주님은 전도하자고 말씀하시며 \"내가 이를 위해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이 사명을 가져야 합니다. 이 사명이 망각되면 우리는 게임에서 선수가 아닌 관중의 삶이 살기 쉽습니다. 그러면 시야가 좁아지고, 환경에 따라 흔들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어느 곳에 가든지 우리는 관중이 아니고 선수가 되어야 합니다. 관중들은 잘하면 신난다고 칭찬하고 못하면 욕하고 야유합니다. 그러나 사명에 눈을 뜨고 진정 사명을 위해 힘쓰는 선수는 그럴 겨를이 없습니다. 그것이 관중과 선수의 차이입니다. 여러분! 정말 선수가 되어야 합니다. 주어진 사명이라는 게임에서 선수가 되어야 공동체의 창조적 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곳곳에 통증이 옵니다.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의 혈액이 소통되지 않으면 건강이 훼손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를 하지 않으면 교회가 병들게 됩니다. 기도해도 답답합니까? 찬송을 해도 감격이 없는 것 같습니까? 그때 더 기도하면 될까요? 더 찬송하면 될까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좋은 처방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내 영혼의 피가 약동하며 순환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상하게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자랑하기 시작하면 내 속에 복음의 힘찬 기운이 약동하고 내가 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나누십시오. 축복을 나누려고 힘쓰십시오. 그래야 내 영혼이 사는 일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혼자 가지고 있으면 곧 침체가 오게 됩니다. 그러면 기쁨이 사라지고 은혜가 사라지고 부정의 꽃이 피어나게 됩니다. 그 사실을 알고 주님은 가버나움의 성공을 뒤로 하고 제자들에게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결국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에 왜 프로그램이 있습니까? 왜 우리가 말씀 듣고 영혼을 새롭게 합니까? 그것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목적이 빠지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힘써 전도하십시오. 고구마가 익었는지 계속 찔러 보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영혼을 얻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내 영혼도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전도를 담임목사의 강요로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존재 목적이자 사명으로 생각하고, 더욱 기도와 전도에 힘쓰고 노력하는 성령 충만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