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마가복음 (8:27-38)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29)\" 우리는 지난 주 1학기를 결산하는 기말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모하고 기다리던 여름 수양회가 2주 앞으로 성큼 다가왔습니다. 이번 여름 수양회를 통해 그 동안의 대학 생활을 결산하고 새롭게 예수님 안에서 2학기를 준비하는 알찬 여름방학을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공부할 말씀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 제자의 길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을 통해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의 인격을 올바로 알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따르는 올바른 자세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베드로의 신앙 고백(27-31). 2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랴 빌립보 여러 마을로 가셨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헬몬 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로서, 이번에 우리가 여름 수양회를 갖는 장심리 만큼이나 물이 맑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를 중심으로 한 1학기 교육을 마치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전에 바로 이 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여름 수양회를 갖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노중에서 갑자기 제자들에게 \'oral test\'로 기말시험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두 가지 질문은 모두 \'예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의 인격에 관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동안 가르친 내용을 제자들이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가 확인하시기 위해 이런 질문을 하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 나오는 네 가지 마음 밭에 대하여 논하라\', \'문둥이와 중풍병자를 비교하여 설명하라.\' 그러나 예수님은 단순히 지식적인 내용을 묻는 이런 질문 대신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질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영생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요17:3).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바로 아는가, 알지 못하는가 하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구원과 심판, 영생과 영벌을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알 수 있도록 여러모로 예수님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약 3년 동안 갈릴리 사역을 통해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에 대한 무리와 제자들의 견해가 각각 어떠합니까? 28절을 보십시오. \"여짜와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예수님께 대한 사람들의 견해는 대체로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소수 의견으로 \'미쳤다, 바알세불을 지폈다\' 고 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나 구약의 대표적인 선지자인 엘리야와 같은 위대한 사람으로 보고 존경하였습니다. 오늘날도 대부분 사람들은 예수님을 4대 성인 중의 하나요, 인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 위대한 휴머니스트로 생각합니다. 또 위대한 교육가요, 존경할 만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의 겉모습만을 보고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성만 보고 신성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렇게 볼 때 존경의 대상은 될 수 있지만 경배의 대상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견해를 들으시고 기다렸다는 듯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의 견해를 물으셨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제자들 자신의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답을 요구하시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대답을 기대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이 수제자인 베드로가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그의 대답은 짧지만 정확했습니다. 역시 베드로는 찬스에 강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과 늘 함께 하며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무리들은 주로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과 기사와 능력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대한 소문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예수님에 관한 피상적인 지식은 많이 있었지만, 예수님 자체를 아는 참된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통해 예수님의 인격과 사상과 가치관 등 내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풍병자의 죄를 사해 주시는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 죄를 사해 주시는 죄 사함의 권세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광풍을 잔잔케 하신 사건을 통해 예수님이 바로 자연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실제 생활에서도 섬김과 희생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결과 제자들은 이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께서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메시야, 곧 그리스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란 뜻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이나 왕, 또는 선지자를 세울 때 기름을 부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제사장이나 왕, 선지자들은 대부분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그림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된 그리스도로 오심으로 이들의 역할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로 통합되고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제사장이요, 왕이요, 선지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나와 하나님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의 왕, 주의 주가 되십니다. 또 예수님은 그 동안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된 모든 말씀을 성취하시고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완성하신 마지막 선지자가 되십니다(히1:1,2). 그러면 우리가 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예수님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는 신랑과 신부가 많은 사람 앞에서 결혼서약을 함으로써 비로소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루는 것과 같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로마서 10:10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이 사실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할 때 우리는 죄로부터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을 수 있습니다. 또 이 고백은 신랑되신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거룩하고 영화로우신 예수님의 신부가 될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거룩하고 영화로우신 예수님의 신부가 되려면 우리 자신이 순결하고 거룩하고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내면은 죄로 인해 더럽고 추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다 씻으시고 우리를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삼아 주셨습니다. 자격이 안 되고 수준이 안 되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삼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You are the Christ!).\" 이 고백은 예수님만이 나의 유일한 구원자이시요, 나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유일한 왕이시요, 이제부터 일생동안 이 예수님 한 분만을 사랑하고,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겠다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꼭 예수님만이 유일한 그리스도신가, 다른 것도 그리스도가 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상대적인 생각을 갖습니다. 꼭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자신을 만족시켜 주고 구원해 줄 수 있는 그리스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유일한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상대적인 그리스도로 믿고 상대적으로 섬깁니다. 예수님은 단지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그리스도요, 실제로는 물질과 명예와 쾌락과 사람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섬깁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을 그리스도로 생각합니다. 돈만 많이 있으면 행복하고 아무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노사분규가 일어나고, 왜 약사들과 한의사들이 싸우겠습니까? 결국은 물질을 그리스도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사람들은 사랑하는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그리스도로 생각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그리스도로 생각합니다. 세상이 뒤집어져도 사랑하는 사람만 옆에 있어 준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노래를 부릅니다.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리고 신세대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나 연예인, 운동선수를 그리스도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나 연예인이 죽으면 더 이상 살아야 할 의미를 찾지 못하고 따라 죽기도 합니다. 또 좋은 차나 넓고 쾌적한 아파트를 소유하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점점 가치관과 도덕이 붕괴되어 가면서 육신적이고 쾌락적인 삶에서 만족을 얻고자 하는 쾌락주의가 사람들의 그리스도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한편 목자님들은 양들이 여름 수양회에 많이 참석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차 목자 박사가 되거나, 목자 박사가 되지 못할 경우 목자 박사와 결혼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결코 우리의 진정한 그리스도가 될 수 없습니다. 돈과 명예와 쾌락은 순간적인 기쁨과 편안함을 줄 수는 있지만, 결코 참 만족과 영원한 행복을 줄 수 없습니다. 특히 돈은 우리에게 편안한 생활을 제공해 주지만 평안함은 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돈의 뼈저린 한계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거짓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거짓 그리스도로부터 만족을 얻고자 할 때 목마른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되고, 이기적인 세리와 같은 비참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과 이러한 것들을 겸하여 섬기고자 상대적인 신앙 고백을 할 때 여기에는 결코 구원이 있을 수 없고, 영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상대적인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섬기는 사람은 전혀 예수님을 믿는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마치 맛을 잃어 버린 소금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거짓 그리스도들을 내 마음에서 몰아내고, 다시 한 번 예수님을 나의 유일한 그리스도로 고백해야겠습니다. 예수님 한 분만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신랑되신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 때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이 시간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예수님을 나의 유일한 그리스도로 신앙 고백하고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0,3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받으시고 이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계하셨습니다. 이는 십자가와 부활로 복음이 완성되기까지 방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받게 될 많은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예수님은 \'must\'라고 하심으로 이것이 그리스도로서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임을 강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처럼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린 바 되고,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셔야만 했습니까? 이는 인간의 근본 문제인 죄와 죽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에게 많은 문제가 있지만 가장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죄 문제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죄를 범함으로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죄와 죽음의 늪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더럽고 추한 죄의 세력에 지배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죄의 세력은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우리의 양심을 파괴시키고 원치 않게 우리를 짐승만도 못한 자로 전락시킵니다. 죄의 세력은 너무 강하여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고,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 깊이 죄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를 미워하면서도 원치 않게 계속 죄를 짓습니다. 죄를 짓고는 죄의식으로 괴로워합니다. 이 죄의식을 떨쳐 버리고자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러 보기도 합니다. 죄의 고통을 잊고자 컴퓨터에 몰두하기도 하고 여행을 해 보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하루 12시간씩 잠을 자기도 하고, 벽에다 머리를 부딪히며 자신을 자학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죄는 시간이 가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죄는 환경의 변화나 조건 개선을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합리화하고 덮어 둔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나쁜 기억들은 다 지워 버리고 좋은 추억들만 간직하고자 해도 죄는 결정적일 때마다 생각나서 우리를 깊은 죄의식 가운데로 몰아넣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죄 문제를 가지고 마음 속으로 탄식하며 울부짖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롬7:24).\" 하나님은 이런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죄로부터 구원할 메시야를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죄의 대가는 곧 죽임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22절은 \"피 흘림이 없은즉 죄 사함이 없다\" 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양이나 염소 등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림으로 인간의 죄를 속하였습니다. 이는 장차 올 그리스도의 속죄를 위한 예표로서 그 효과 또한 일시적이요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을 때마다 번거롭게 피 흘리는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게 하심으로 속죄의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일찌기 이사야 선지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당하실 수난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누구든지 이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와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 참 자유를 얻고 영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정욕과 시기심, 욕심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열등감과 무기력과 패배주의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경쟁심, 미움, 증오심, 교만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부처님이나 공자님, 다른 어떤 것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분들도 나름대로 인류를 위해 많은 고난을 받고 희생을 하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인류를 위한 봉사와 희생, 불쌍한 중생들을 위한 연민이지, 그 속에는 대속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실 피의 의미를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막14:24).\" 그러므로 십자가에 달리신 이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대속할 수 있습니다. 이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이 예수님만이 우리의 주요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아멘. 사도행전 4:12절은 말씀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우리가 이 예수님을 나의 유일한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신앙 고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제자의 길(32-38). 3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자 베드로는 깜짝 놀랬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간했습니다. 공동번역성경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옆으로 모시고 가서 그래서는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 베드로가 이처럼 펄쩍 뛰었을까요? 그는 예수님께 모든 희망을 걸고 가족과 직장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볼 때마다 이 예수님이야말로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할 그리스도시요, 갈릴리에서 썩던 자기 인생을 보상해 줄 메시야임을 확신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사역을 정리하시고 예루살렘으로 가시려 하자 그의 꿈은 한껏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대권을 잡으시는 날 2인자인 자신이 국무총리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요즘 들어 소감을 쓰는 대신 몰래 총리 취임 연설문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의 이런 기대와는 정반대로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린 바 되고 죽임을 당하게 된다고 하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예수님께 버럭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도 이런 베드로를 보시고 버럭 화를 내시면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33)\" 라고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말 속에 사단의 유혹이 들어 있음을 아시고 단호하게 이를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책망하신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이란 사람이 항상 추구하는 것으로서, 좀 더 쉽게, 좀 더 편하게, 좀 더 고난을 덜 받으면서 영광을 누리고자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생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생각을 하는 베드로를 보시고 사단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가져야 할 기본 자세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이 말씀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어떤 분은 이 말씀을 UBF 요절로 알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이라고 말씀하심으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순종해야 될 진리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대개 사람들이 성경을 공부하거나 신앙 생활을 시작하는 동기는 자기들의 무거운 짐을 예수님께 내려 놓음으로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신앙 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 생활이란 무거운 죄짐과 인생 문제를 예수님께 내려 놓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 생활이란 나의 죄짐과 인생의 짐을 예수님께 내려 놓고, 대신 예수님이 주시는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아마도 마태복음 11:28절일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러나 우리는 그 다음에 계속되는 29,30절 말씀도 읽어보아야 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이처럼 신앙 생활이란 예수님이 주시는 멍에를 메고 예수님이 주시는 짐을 지고 예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죄의 멍에는 너무나 무겁고 고통스럽습니다. 또 이 땅에서 먹고 살기 위한 ego의 십자가는 우리를 무겁게 짓누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멍에는 쉽고, 예수님이 주시는 짐은 가볍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무거운 죄짐과 자기를 위한 ego의 십자가를 예수님 앞에 내려 놓고, 대신에 예수님이 주시는 쉽고 가벼운 사명의 십자가를 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린 바되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이를 통해 부활의 영광에 이르셨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삶은 십자가를 통한 영광입니다. No cross, no crown! 예수님의 삶은 실로 고난이 없는 영광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고난이 없는 영광을 바라고 신앙 생활을 하고자 합니다. \'세상에서 고난받는 것이 지겨워서 예수님께 왔는데, 또 고난을 받으라고 하는가?\' 생각하고 반발심을 갖습니다. 그리고 내가 세상적으로 잘되고 십자가 없이 편안하게 사는 걸 하나님도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큰 착각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고, 영생을 얻고자 한다면 고난은 피할 수 없습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고난을 피하라는 말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고난받는 의미와 목적을 가르쳐 주셨지, 고난을 피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 고난은 유익한 것입니다. 어차피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떤 형태로든 고난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과거 우리는 자신의 문제로 인해 괴로워하고 죄로 인해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주와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물론 신앙생활 가운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많은 아픔이 있고, 희생이 따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좇고자 마음의 결단을 하고 나면,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길도 아닙니다. 얼마든지 여유와 낭만을 가지고 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세상 욕심과 죄의 짐들을 하나도 내려 놓지 않고, 그 위에다 예수님이 주시는 십자가를 하나 더 지고 가려고 하니 괴롭고 힘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자기 것을 과감하게 부인하고 버려야 합니다. 자기 것을 예수님께 다 내려 놓아야 합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 결혼에 대한 이상, 인간적인 목자 박사의 야심을 내려 놓고 예수님이 주시는 1:1과 제자 양성, 여름 수양회 초청과 학과 공부의 십자가 등을 져 보십시오. 이것들이 조금도 우리를 짓누르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죄로 인해 고난받고 괴로워하다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저희들에게 주와 복음을 위해 고난받는 길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이 주신 이 생명길, 영광에 이르는 고난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No cross, no crown\' 의 진리를 자기 중심적으로 받아들여 \'고난도 싫고 영광도 싫다\' 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노는 쪽으로 신앙 생활의 방향을 잡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인간적인 욕심이나 야심 없이 순수하게 주님을 섬기고자 한다며 아무 것도 안 하고, 앉아서 단지 성경만 읽고자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욕심을 버리라고 했지, 의욕을 버리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극적으로 영광을 얻기 위해서 고난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양들 중에는 \'처음부터 이 길이 고난의 길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으면 따라오지 않는 건 데, 목자님이 안 가르쳐 주는 바람에 멋모르게 여기까지 따라왔다, 완전히 속았다\' 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목자님을 원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속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제자들도 다 예수님에게 속은 것입니다. 속은 것이 아니라 아주 제대로 온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35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의 목숨은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고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생명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습니다. 세상을 거꾸로 매달려 살아도 어찌하든지 살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안 죽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에는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결국은 죽게 될 생명을 가지고 살고자 아둥바둥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목적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많은 열매를 맺도록 주신 것입니다. 생명 그 자체를 보호하고 보존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이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열매를 맺도록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을 한 알의 밀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그러므로 자기 생명을 보존하고자 자기를 위해서 사는 자는 결국 자기 생명을 잃게 되고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한 번 밖에 없는 고귀한 목숨을 주와 복음 역사를 위해 사용하는 자는 자기 생명을 보존하게 되며, 또 그 과정에서 많은 열매를 맺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38절을 보십시오. 세상은 음란하고 죄가 많아 십자가의 길을 용납치 않고 조롱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부끄러워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부끄러워 하게 되면 장차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오실 때 우리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나를 부인하시고 부끄러워 하시면 정말 끝장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와 복음을 위해 살 때 주님은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유일한 생명의 구주요 참 경배의 대상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시간도 조용히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지 우리는 이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신앙 고백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이 예수님을 끝까지 좇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고 영생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