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강 마가복음 10장 강해


영생을 얻는 길

마가복음 (10:17-3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21).\"

예수님은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 편, 곧 베뢰아 지역에 이르셨습니다(1). 이 때 한 청년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관원이었고, 특별히 부자였습니다. 그는 세상에 보이는 모든 보화를 소유한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늘의 보화, 영생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 그의 내면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찾아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진지하게 묻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오늘 말씀에서 젊은 청년은 어떤 사람이며, 그의 문제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의 보화, 곧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재물과 하늘의 보화(17-22). 어린 아이를 안수하고 길에 나가실 때 한 젊은 청년이 달려와서 예수님의 무릎 아래 꿇어 앉아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청년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관원이었습니다(눅18:18-30). 그는 세상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인생을 즐길 때 열심히 공부하여 최연소의 나이로 고시에 패스하여 사회적인 지위와 권세를 얻었습니다. 그는 많은 돈을 소유한 부자 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렸을 때부터 미쉬나를 통해 율법을 알고, 율법을 흠 없이 지킨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산 청년이었습니다. 대개 이런 사람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교만한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무릎 아래 꿇어 앉을 만큼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인생 문제가 있을 때 눈에 보이는 정욕과 쾌락과 마약을 통해 해결하고자 합니다. 아니면 세상을 등지고 산 속이나 도심 속의 담 안으로 들어가 수도승이나 수녀가 되어 세상을 은둔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통해 가상 현실의 세계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더 극단적인 사람은 한강 다리나 아파트에서 몸을 날려 괴로운 세상을 떠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인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께 나올 만큼 고상한 인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사람들은 심각한 인생의 문제가 있으면 \'인생은 다 그런 거야!\' 하며 체념하며 인생을 쉽게 살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의 질문을 볼 때 그는 영생을 행위를 통해서 얻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하여 관원이 되고,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영생도 행위를 통해 얻어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자기보다 좀 훌륭한 선생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를 책망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18).\" 예수님은 점 없고, 흠 없으신 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만민의 구주가 되시며, 만왕의 왕이 되십니다. 예수님을 단순히 도덕 선생 정도로 받아들일 때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절대적으로 영접하고 순종할 때 생명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말씀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여 영생을 얻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책망하시고 물으셨습니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를 열거하시고, 이를 지켰는가를 물으셨을까요? 10계명을 크게 요약하면 첫째 계명에서 넷째 계명까지는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자세요, 다섯째 계명에서 열 번째 계명까지는 수평적인 인간과의 관계로 인간 상호간의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 상호간의 계명을 다 지켰는가 물으셨습니다. 이는 그가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인간 관계성을 더 중히 여기고, 이것을 지키고자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과의 관계에 더 신경을 쓰고, 이를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면 그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이런 계명요, 저는 어려서부터 이런 계명은 다 지켰습니다\' 고 당당하게 대답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대인들은 6살 때부터 계명을 암송하며 지킵니다. 그는 계명을 따라 남을 해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컨닝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자 보기를 돌처럼 여겼습니다. 그는 배꼽티를 입은 여자를 볼 때 음욕을 품지 않으려고 눈을 감고 지나가기를 수없이 했습니다. 그는 많은 업자들로부터 뇌물의 유혹을 수없이 받았지만 뇌물의 유혹을 이기고 주는 봉급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참으로 고결합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또 있을까요? 그는 실로 인간 기초가 있고, 내용이 있고, 소망이 있고,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습니다. 그리고 영생에 관하여 깊이 생각할 만큼 형이상학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그는 뭇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청년의 고민이 무엇입니까? 신앙 생활도 잘 하는 것 같은데 기쁨이 없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의 내면은 행복이 없고,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는 편안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평안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얻었지만 내면에 기쁨과 행복과 평강과 쉼이 없었습니다. 그의 영혼은 무엇인가 채워지지 아니하여 공허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없는 고뇌의 밤을 지내야 했습니다. 이를 볼 때 소유는 인간의 삶을 편안하게 할 수는 있을 지 모르지만 영생과 평안을 주지 못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벤츠를 타면 티코 타는 것보다는 편할 수는 있어도 벤츠를 타고 가며 \'아, 내 마음이 어찌 이리 평안한가\'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티코를 타더라도 내면에 평강이 임할 수 있습니다. 그는 편안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의 영혼은 점점 메말라 갔습니다. 그는 왜 그러한지 그 원인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젊은이는 외적으로 부족함이 없고 흠이 없으며 조금도 나무랄 데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보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내면에 한 가지 부족함을 아시고 말씀하십니다.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Go, sell everything you have and give to the poor, and you will have treasure in heaven. Then come, follow me.\").\" 그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물질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온전히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신앙이란 anything이 아니라 everything임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영생을 얻으려면 something이 아니라 everything입니다.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팔아야 합니다. 왜 다 팔아야 합니까? 조금이라도 자기 것을 꾸리면 거기에는 영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 팔 때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생은 값싼 것이 아니라 귀하고 값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귀하고 값진 것을 얻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생명이 귀하고, 영생이 귀한 것이라면 그만큼 희생이 요구됩니다. 한 예가 있습니다. 항해를 하다가 불의의 사고를 만났습니다. 배가 점점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구명선으로 갈아타야 했습니다. 구명선까지는 가는 줄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빈 몸이라야 겨우 그 줄을 타고 갈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모든 것을 버리고 구명선으로 가는 줄을 타고 갔습니다. 그런데 많은 금을 가지고 여행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금이 너무 아까워 망망대해에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금을 허리에 메고 마지막으로 그 구명줄을 붙잡았습니다. 그는 조심조심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중간쯤 되어 그만 줄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그가 어떻게 되었다고 생각됩니까? 그는 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생명 앞에 금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영생 앞에 물질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생명 앞에 명예, 권세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영생이 귀하고 하나님 나라의 보화가 귀합니다. 그러므로 물질을 팔아 영생을 얻고, 물질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섬겨야 합니다. 이 때 하늘에 보화가 쌓이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돈보다 귀한 젊음과 시간을 죄와 육신의 쾌락에 팝니다. 자기를 위해 팝니다. 이것은 참으로 비극이요, 슬픈 일입니다. 그런데 팔아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좇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좇지 않을 때 이는 한낱 자선사업에 불과합니다. 자선사업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좇고 배울 때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살 때 영생을 얻습니다.

그가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볼 때 그래도 다 지켰다는 것입니다. 이를 볼 때 그의 신앙 생활은 상대적이었습니다. 그는 적극적으로 남을 위하여 희생하고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철학은 \'손해도 보지 말고, 손해도 끼치지 말자\' 였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정신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율법의 정신은 모르고 소극적으로 계명만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하나님보다 세상 보화를 더 사랑했습니다. 그 때 그는 영생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영생이란 무엇입니까? 영생이란 eternal life로 영원한 영적 생명을 말합니다. 그런데 영생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하며 오래 사는 것은 영생이 아닙니다. 영생에는 행복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영생에는 두려움과 불안이 없습니다. 영생에는 생명이 있고, 비전과 쉼과 평강이 있습니다. 영생은 세상의 모든 것을 팔아 소유해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시간과 청춘과 젊음과 정열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습니다. 영생이란 하늘 나라의 보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영생이란 선한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요(엡2:8), 거듭남과 성령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딛3:5). 영생은 영원합니다. 반면 세상의 보화는 풀의 꽃과 같아서 얼마 못가 시들어 버립니다. 우리 인생은 단 한 번 밖에 없습니다. 한 번 밖에 없는 값진 인생을 값지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각기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99%도 아닌 1%의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할 만큼 했다고 합니다. \'나는 새벽 기도도 열심히 하고, 헌금도 열심히 하고, 양식도 열심히 쓰고, 양도 열심히 일대일한다\' 합니다.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양들을 사랑한다\' 고 합니다. 우리는 나처럼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 훌륭한데 물질에 대한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그는 물질 이야기만 나오면 인상을 씁니다. 어떤 사람은 헌신적이며 양도 잘 칩니다. 그런데 정욕에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참 훌륭한데 허영심에 대한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격도 훌륭하고 매너도 훌륭한데 결혼에 대한 지나친 이상에 대한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진실치 못한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객관성이 없는 자신의 외모를 과시하고자 하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공을 버리지 못하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꿈과 이상, 어떤 사람은 젊음과 청춘, 어떤 사람은 감정적인 것, 어떤 사람은 절제를 못하는 것, 어떤 사람은 부정적이고, 운명적인 생각에 대한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 훌륭한데 안일에 대한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만한 마음을 팔지 못하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다 팔아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황금 시계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작은 부속 하나가 고장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한 가지 부족한 것을 온전히 회개하고, 주님께 드릴 때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화를 약속하신 후 \"나를 좇으라\" 고 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예수님만이 참된 보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고, 예수님 안에 영원하고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예수님 자체가 하늘 보화입니다. 예수님을 배우고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요17:3).

그는 마땅히 세상의 보화보다 예수님을 더 귀히 여겨야 옳습니다. 그러나 그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22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히브리 외경에 보면 머리를 긁적거리며 나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평소에 물질을 사랑하는 세리들을 경멸했습니다. 자신은 결코 천한 돈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물질을 사랑하는 본성이 드러났습니다. 그는 영생의 중요성을 알았지만 물질을 팔아 살 만큼 절박하지 않았습니다. 괴로우니까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신앙을 하나의 자기 위안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영생을 단지 지금까지 가진 것 위에 하나 정도 더 얻는, 하나의 license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영생을 얻고자 했던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영원히 누리고 싶었던 욕망에서 온 것 같습니다. 그보다도 그는 값지고 귀한 것을 얻으려면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알았다 할지라도 그것을 위해 자신을 드릴 용기가 없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에는 두 손을 꼭 쥐고 태어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갈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갈 때에는 빈손으로 갑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인생은 벌거숭이, 빈 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이라고 노래합니다. 여러분, 산 사람이 입는 옷과 죽은 사람이 입는 囚衣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에 호주머니가 몇 개 있는가 세어 보십시오. 적어도 4개 이상은 될 것입니다. 그러나 囚衣에는 호주머니가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놓고 가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보화를 하나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리석은 원숭이와 같이 죽는 줄도 모르고 놓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상 보화를 팔아 하나님 보화를 살려면 어떤 것이 귀한 것인가 하는 가치관이 있어야 합니다. 돈보다 예수님이 귀하다는 가치관이 있을 때 예수님을 택할 수 있습니다. 세상 보화보다 예수님이 귀하다는 가치관이 있을 때 예수님을 택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보화가 얼마나 귀한가를 알고, 이를 얻고자 바로의 공주의 아들의 자리를 버렸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바로 귀한 보화임을 알고, 이를 얻고자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값진 진주와 같아서 모든 재물을 팔아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어리석게도 세상에 보이는 보화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지만 하늘의 보화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을 투자하지 않고 인색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어떤 보화보다 예수님을 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구원과 하나님의 능력(23-31). 2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이 청년이 나가자 제자들에게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놀라는 제자들을 보시고, 더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25).\" 이 때 제자들은 심히 놀라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현재는 좀 가난하게 살지라도 장래에는 부자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니 부자는 다 틀린 것 같아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 왜 가난한 자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신자는 냉수 마시고 이를 쑤셔야 합니까? 이 말씀은 사람이 물질을 사랑하면 그만큼 예수님을 사랑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9,10,17,18절을 보면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네가 이 시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고,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돈을 벌어야 됩니다. 그러나 돈을 벌 줄도 알아야 하지만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하는 방법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 때 유혹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돈이란 근본적으로 의지할 것이 못 됩니다. 돈이란 정함이 없는 것으로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입니다. 돈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보이는 모든 보화는 모두 다 그러한 것입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자 제자들은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의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할 수 없지만 우리 하나님은 부자도 구원하시고 가난한 자들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예수님께 자신 있게 예수님의 제자가 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사실 부자 청년과 비교할 때에 제자들은 용기와 믿음이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보화들인 부모, 형제 자매, 자식, 전토, 좋은 직장 등을 다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제자들이 금세에 구원을 받고, 100배나 축복하여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핍박을 겸하여 받으면 내세에 100% 영생이 보장된다고 하셨습니다. 핍박은 우리가 세상 보화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정금보다도 더 귀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과 믿음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현재 부자 청년보다 낫다 생각하고 성장하지 않으면 나중된 자가 먼저되고, 먼저된 자가 나중된다고 경고하십니다. 영적 교만은 금물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으려면 한 가지 부족한 것을 팔아야 합니다. 동시에 세상의 보화와 하나님 나라의 보화를 동시에 소유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냐? 돈이냐? 그리스도냐? 향락이냐? 그리스도냐? 욕심이냐?\' 결단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세상 보화를 팔아 하늘에 보화를 쌓고 영생 얻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