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걍 마가복음 13장 강해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마가복음 (13:1-37)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하리라(10).\"

20세기 말의 과학 문명은 가공할 만큼 발달하여 인간을 풍요롭게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보다도 인간의 영성과 도덕성은 부패하여 짐승처럼 되어 가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이런 시대에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며, 또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합니다(1-13).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성전을 나서고 계셨습니다. 이 때 제자들은 성전을 보고 놀라 소리쳤습니다. \'선생님,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합니까?\' 예루살렘 성전은 솔로몬 시대에 건축되었다가 바벨론에 의하여 파괴되었습니다. 그 후 에스라와 느헤미야 선지자들에 의해 재건되었다가 헤롯이 정권을 잡자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을 재건축했습니다. 공사 기간이 무려 82년이나 되었으며 성전은 웅장하고 장엄했습니다. 성전 입구의 기둥은 13m나 되는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지붕은 금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문틀은 두꺼운 황금으로 입혀 있어 햇빛이 비치면 눈이 부셔 바라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갈릴리에서 양철집만 보아온 제자들이 이런 건물을 보았으니 놀랄만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성전을 보고 놀라는 제자들에게 장차 성전이 무너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성전을 보시는 예수님의 눈과 제자들의 눈이 다름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성전의 외형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의 내면을 보셨습니다. 성전은 만민을 위해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시장 바닥으로 만들어 성전을 세속화시켰습니다. 마가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으로 잎사귀만 무성하고 내용이 없는 성전을 심판하실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이 예언은 A.D. 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하여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특히 돌과 돌 사이에 황금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서 돌 하나 하나를 헐었기 때문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졌습니다.

성전은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생활과 신앙의 중심이요, 히브리 문화의 금자탑이요, 이스라엘 문명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도 내적으로 부패할 때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인류 문명의 종말에 대한 예고입니다. 오늘날 인류가 만든 물질 문명과 기술 문명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사람들은 인간의 지식을 자랑하고 풍요를 자랑합니다. 인하대 주위만 보더라도 몇 년 사이에 놀랄 만큼 변했습니다. 80년대는 입간판과 네온 사인이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서울의 로데오 거리를 뺨칠 정도가 되었습니다. 캠퍼스도 많이 변했습니다. 겉모습을 보면 서구 학생들처럼 키도 크고 모두 예쁩니다. 어떤 형제는 여학생들의 외모를 보고 이렇게 탄식했다고 합니다. \'저 다리는 어떠하며 저 얼굴은 어떠하뇨?\' 그러나 인간의 영성과 도덕성은 부패할 대로 부패하여 짐승처럼 전락하여 캠퍼스에는 동성연애가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캠퍼스는 물질과 향락과 쾌락으로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소수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부정하는 유물사관을 기초로 한 주사파를 신봉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캠퍼스는 민족의 심장입니다. 민족의 심장이 물질과 쾌락과 거짓된 사상으로 썩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회개치 않을 때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아니 지금도 하나님은 여러 모양으로 심판하고 계십니다. AIDS와 각종 성병과 각종 질병으로 이들을 심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심판의 예표에 불과합니다. 이런 심판 앞에서도 회개치 않을 때 하나님은 인류가 만들어 낸 물질 문명의 산물과 무서운 재앙으로 이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내면은 어떠합니까? 여러분은 죄악으로 하나님의 집을 더럽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삶은 깨끗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영적으로 깨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높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물질과 쾌락에 쉽게 무릎을 꿇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 교회는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교회는 \'이화 GOLD 2000\' 의 벽돌로 지어진, 글자 그대로 금 벽돌로 지어진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은 이 집이 Bible House, Prayer House, Mission House, Sending Missionary House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집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가득 채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사명을 감당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이 시대에 마음을 뺏기고 놀랄 것이 아닙니다. 화려한 저택이나 몸 치장과 유행에 따라 사는 사람들을 보고 부러워하거나 놀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눈으로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민족의 심장인 캠퍼스를 1:1 말씀으로 살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나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에 올라가 성전을 마주 보고 앉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장래와 인류 종말에 대하여 깊은 생각에 잠기셨습니다. 누가복음 19:41절을 보면 예수님은 부패한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더 이상 부패하여 멸망당하기 전에 회개하고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제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가 조용히 예수님께 나아와 물어 보았습니다. \'선생님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나며 어떤 징조가 있으리까?\' 이제 제자들은 눈에 보이는 외적인 물질보다 인류의 종말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문제 의식을 가지고 묻는 제자들에게 징조와 장차 있게 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5-13). 그러면 말세에 나타날 징조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입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거짓 메시야들이 나타나 사람을 미혹하여 진리에서 떠나도록 유혹합니다. 한국에만도 재림 예수가 12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십자가의 길보다 쉽고 편안한 길을 가르칩니다. 하나님 나라의 소망보다는 지상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유토피아를 제시합니다. 사람들이 왜 이런 이단에 빠지는 것입니까? 이는 미혹의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요일4:1). 미혹의 영이 우리를 미혹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서 미혹의 영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는 재난의 연속입니다. 7,8절을 보십시오. 말세에는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들리며, 전쟁이 연속적으로 일어납니다. 지구촌에는 하루라도 전쟁이 없는 날이 없습니다. 요즈음 쿠르드족의 분쟁은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 넣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곳곳에서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 언제 어디서 핵전쟁이 터질 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전쟁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달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부동산에 투자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각 곳에서 지진과 화산이 터지고 있습니다. 부동산 투자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일은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재난의 시작이 \'The beginning of birth pains\', 즉 산통의 시작이라 했습니다. 산모가 아기를 낳으려면 산통이 점점 빨리 오다가 어느 순간이 오면 아기가 태어나듯이, 재림이라는 옥동자를 낳기 위해서 신자의 고통은 당연한 것입니다.

셋째는 신자들이 핍박을 받습니다. 9-13절을 보십시오. 신자는 공회에 넘겨지고 회당에서 매질을 당하며 세상 권세자들로부터 핍박을 받게 됩니다. 신자는 예수님을 믿는 것 하나 때문에 애매히 핍박을 받습니다. 이 때 신자들은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신가?\' 하는 회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는 자들이 이런 고난을 당하는 데에는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9a절을 보십시오.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 함이라.\" 그러한 모든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복음이 증거됩니다. 신자가 핍박을 받으므로 가정과 직장과 캠퍼스에 복음이 전파됩니다. 이처럼 신자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핍박을 받을 때에 오히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인해 감사해야 합니다. 죽음 앞에서는 부활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두렵지 않아야 합니다. 말세의 때에는 재림에 대한 소망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끝까지 견딜 때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면 이 때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예수님은 세상 종말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여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어야 비로소 세상 끝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볼 때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파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에는 크게 세속사와 구속사가 있습니다. 세속사는 인간을 중심으로 한 역사입니다. 이 역사는 한 시대로 끝나며 역사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구속사가 있습니다. 이 역사는 복음 전파를 통해 이루어지는 역사로 영원합니다. 하나님은 이 계획을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변개치 않고 이루셨습니다. 노아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이루어 오셨습니다. 이 역사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 오셨고, 지금도 우리를 통해 이루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최대 관심은 누가 무슨 옷을 입었는가, 학점이 얼마나 되느냐, 오늘 TV 프로그램이 무엇인가, 누가 대권을 잡는가, 주식이 올랐는가, 누가 어느 회사에 취직이 되었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누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영접하느냐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갖습니다. 누가 일대일 몇 팀을 했는가에 깊은 관심을 갖습니다. 사람들은 역사의 주체를 여러 각도에서 말합니다. 한국에서는 근대화를 이룬 세대가 주체냐, 아니면 민주화를 이룬 세대가 주체냐로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주역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자신의 연약함과 추한 모습으로 인해 \'내가 무슨 역사의 주역이야!\' 하며 자학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떠하든지 역사의 주역, history maker로 보십니다.

이 복음 전파는 우리의 절대적인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must란 단어를 사용하심으로 복음 전파는 반드시 해야 할 사명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여 복음 전파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할 지상 명령인 것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파해야 할 사명입니다.

복음 전파는 최우선적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제일 우선적으로 생각하십니까? 시급한 일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남북 통일도 해야 하고, 장학금을 타기 위해 열심히 공부도 해야 하고, 부모님께 효도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고, 취직도 해야 하고, 목자 박사도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일보다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무엇보다 먼저 성경을 가르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박사가 되기 전에 먼저 목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때 박사도 될 수 있고, 전문인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종말에 대한 예고(14-37). 14-23절은 예루살렘의 종말에 관한 예언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있을 대환난의 그림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예언대로 로마 군대는 독수리 휘장을 들고 예루살렘 성전을 침범했습니다(눅21:20). 예수님의 예언은 예루살렘의 멸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종말이 가까워오면 영적인 타락의 때가 올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이런 징조가 보이면 신자들은 속히 산으로 도망가야 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침공을 받았을 때 예루살렘 성전이 안전할 줄로 알고 성전에 있다가 최후의 멸망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기억하고 요단 계곡인 펠라로 피난간 사람들은 생명을 보존했습니다. 말세에 사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첫째는 세상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바로 도망을 가야 됩니다. 집에 무엇을 가지러 가서는 안 됩니다. 또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를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야 됩니다. 겉옷은 유대인들의 생활 필수품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것까지도 가지러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환난이 급박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것들에 매이지 않아야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롯의 아내에게 소돔과 고모라가 불과 유황불에 탈 때에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에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그녀가 평소에 물질에 가치관을 두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가치관은 갑자기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훈련을 통해 형성됩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세상과 물질에 미련을 버리고 주님을 좇아야 합니다.

둘째는 세상의 것들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즉 나그네와 같이 살아야 합니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사람들과 젖을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게 됩니다(17). 도망을 가지 못하기 때문에 화를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환난의 날이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18). 겨울에는 환난 중에 피난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19절을 보면 이 날에는 전무후무한 대환난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중에도 택하신 백성들을 위하여 그 날을 감하여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20b).

21,22절을 보십시오. 환난의 때에는 적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며 택하신 백성들을 미혹하게 됩니다. 환난 후 인류 역사의 종말이 오게 됩니다.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잃습니다.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게 됩니다(24,25). 26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예수님께서 초림하셨을 때에는 한 아이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재림하실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십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오십니다(계21:23). 27절을 보십시오. \"또 그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이 날은 세상과 죄악의 욕망을 좇아 살면서 예수님을 배척하던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이 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던 자들, 예수님을 핍박하던 자들, 예수님보다 세상 욕심을 더 사랑했던 자들이 울며 이를 갈고 통곡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만하여 복음을 영접하지 않은 자들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과 유황불 못에 던져 버리실 것입니다(계21:8). 그러나 주와 복음을 위하여 산 자들에게는 영광의 날입니다. 그 날에 예수님은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 21:1-4절에서 마지막 날에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한 것과 같습니다. 그 곳에서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하십니다. 그 때 주님은 주와 복음을 위해서 많은 눈물을 흘린 주님의 자녀들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주님은 모든 고통과 슬픔을 없애 주시고 온전한 평안을 주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의 머리 위에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잘 하였도다 충성된 종아!\" 그리고 우리는 영원히 주와 함께 왕 노릇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큰 권능과 영광으로 재림하십니다(26). 그러나 악하고 게으른 사람들은 이 진리의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노아 시대와 롯의 시대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만 마음을 씁니다.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주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신자들을 기롱합니다.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벧후3:4).\" 그러나 신자들은 세상이 악할수록 깨어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합니까?

첫째는 징조를 보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28,2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무화과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말씀하신 말세의 징조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인자의 재림이 가까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볼 때 곳곳에 전쟁이 끊이질 않습니다. 도처에서 지진과 기근이 끊이질 않습니다. 세계 도처에 자칭 구원자라고 하는 거짓 메시야들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가 임박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한 마디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집니다(31). 우리는 격동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징조를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이 시대가 지나가기 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현재적인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30).

둘째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언제 재림하실 지 아무도 모릅니다. 천사도 예수님 자신도 모릅니다.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만 아십니다. 재림의 때는 오직 아버지의 주권에 속한 일이기 때문에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올 지 알 수 없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처럼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35). 본문에는 \'깨어 있으라\' 는 말이 네 번 나옵니다(33-35,37). 깨어 있는 생활이란 영적인 긴장을 풀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이요(34), 준비된 삶입니다. 성경에 슬기로운 10처녀와 어리석은 10처녀가 나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과 어리석은 처녀들의 차이는 기름을 준비했느냐, 아니했느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 지라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언제 재림하실 지 우리는 모릅니다. 만일 우리가 영적 안일에 빠져 있을 때 주님이 재림하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서 맡기신 캠퍼스 개척과 세계 선교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할 때 주님께서 오신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영광스러운 인자의 재림을 소망하며 깨어서 주님께서 맡기신 일대일 성경 선생의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경배 찬양] 주님과 담대히 나아가
  • 글쓴이: 두나미스 신학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