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십자가 마가복음 (15:1-47) \"제 구 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34).\" 인간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죽습니다. 이 죽음은 죄의 결과로서 오는 필연적인 죽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은 대속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채찍에 맞으시고, 수치와 조롱을 당하시고, 철저하게 버림받으셔서 30대의 꽃다운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처럼 고난받으시고 버림받으셔야만 했습니까? 이 시간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과 십자가 죽음의 의미, 그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재판받으신 예수님(1-15). 14장을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눅22:44). 곧이어 예수님은 체포당하시고 철야심문과 고문을 받으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께 참람죄, 곧 신성모독죄를 적용하여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밤새 심문받고 고문을 당하시느라 지칠 대로 지치셨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종교지도자들은 새벽에 불법공회를 열어 예수님께 내린 사형판결을 추인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로마법의 법을 빌어 예수님을 죽이고자 빌라도에게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자칭 \'유대인의 왕\' 이라 하여 가이사를 반역하려 한다는 정치적인 죄목으로 예수님을 고소했습니다. 빌라도는 이에 대해 예수님을 심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여기서 예수님이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 시인할 경우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를 부인하든가 아니면 묵비권을 행사하셔야 옳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2b절을 보십시오. \"네 말이 옳도다.\" 예수님은 자신이 유대인의 왕, 곧 메시야이심을 분명하게 시인하셨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일이 자기들의 각본대로 되어 가자 신이 나서 여러가지 거짓 고소를 하였습니다(3). 그러자 빌라도는 예수님께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기회를 이용해 종교지도자들의 거짓과 위선을 폭로하고 예수님 자신의 무죄함을 밝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4,5). 예수님은 자기를 시인해야 할 때는 분명하게 시인하시고, 또 침묵해야 할 때는 끝까지 침묵하셨습니다. 이는 요즘 재판을 받고 있는 두 전직대통령과 아주 대조적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범죄 사실에 대해 갖가지 해괴한 변명을 합니다. 또 저명한 변호사들을 세워서 자신들의 죄를 정당화하고 변명합니다. 플라톤은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너무 억울해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는 책을 써서 변명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조금도 변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이들의 거짓 고소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한 결과 아무 죄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대제사장들이 시기심 때문에 예수님을 넘겨준 줄 알았습니다(10). 당시에는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구하는 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었는데, 빌라도는 이 기회를 이용해 예수님을 석방코자 했습니다. 빌라도는 무리들이 지금까지 예수님께 많은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예수님을 놓아 달라고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무리들은 예수님 대신에 살인자인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대제사장들이 돈을 주고 무리를 충돌질했기 때문입니다(11). 빌라도는 당황하여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는 내가 어떻게 하랴?\"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무리들은 피를 본 야수와 같이 외쳤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는 이성을 잃은 무리들에게 반문했습니다.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러자 그들은 더 큰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쳤습니다. 빌라도는 무리들에게 만족을 주고자 바라바를 놓아 주고 예수님은 채찍질한 후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 주었습니다(15). 그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고자 아무 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했습니다. 이 때 그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유지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얼마 후 파면되어 유배를 당했다가 결국 자살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도 빌라도와 같이 조그만 현실의 유익 때문에 예수님을 외면하고 은혜를 배반합니다. 조금만 손해보고 희생해야 할 것 같으면 자기 것을 꾸리고 자기를 지키고자 하는 보신주의가 팽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진리 편에 서서 진리를 수호하는 진리의 수호자요, 진리의 파수꾼이 되어야겠습니다. 둘째, 고난받으신 예수님(16-32). 예수님은 빌라도의 지시대로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15b). 채찍의 끝에는 납덩이나 뼛조각이 붙어 있어서 한 번 맞을 때마다 피가 튀고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로마법은 로마인에게는 채찍질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으로서 무려 120대의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맨몸에다 채찍질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벌거벗은 수치스런 몸으로 120대의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채찍이 예수님의 몸을 한 번 휘감을 때마다 예수님의 등에는 골이 패이고 붉은 피가 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신음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채찍이 날아 왔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의 온 몸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고, 낡은 헝겊 조각처럼 너덜너덜하게 되었습니다. 채찍질을 다한 후 군병들은 예수님을 브라이도리온이라는 관정 안으로 끌고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이 온 군대를 모으고 예수님을 희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왕이 입는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면류관을 엮어 푹 씌웠습니다. 날카로운 가시가 예수님의 이마를 뚫고 들어갔습니다. 고개 숙인 예수님의 얼굴에는 한 줄기 두 줄기 피가 흘려 내렸습니다. 그들은 이런 예수님을 앞에 놓고 꿇어 엎드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조롱하며 히히덕거렸습니다. 그리고 갈대로 머리를 톡톡 치고 침을 뱉었습니다. 이들은 마치 고양이가 쥐를 잡아서 가지고 놀듯이 예수님을 노리개감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는 대화 도중 상대방의 실수로 침이 한 방울만 튀겨도 불쾌하여 인상을 쓰고 화를 냅니다. 또 자존심이 상하고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될 때 참지 못하고 폭발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 모든 조롱과 멸시와 침뱉음을 그대로 당하셨습니다. 시편 22:6절은 조롱받는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예수님은 이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십자가를 져야 했습니다. 십자가의 무게는 70kg입니다. 사형수들은 자기가 못 박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은 무거운 십자가의 무게에 눌려 몇 발짝 가시다가 그만 쓰러지셨습니다. 그러면 여지 없이 군병들이 발길질을 하고 채찍질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있는 힘을 다해 일어나 가시다가 또 쓰러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악물고 일어나 가시다가 쓰러지고 또 쓰러지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은 기진맥진하여 더 이상 십자가를 지고 가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군병들은 옆에서 구경하던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잡아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무정하고 무자비한 로마 군병들이 보기에도 도저히 십자가를 질 수 없을 만큼 초죽음 상태가 되셨습니다. 마침내 해골이라는 골고다 언덕에 이르러 군병들은 마취제인 몰약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다 받고 거룩한 속죄의 피를 흘리고자 하셨습니다. 십자가형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잔인한 형벌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면 당장에 죽지 않고 2,3일 동안 처절한 죽음의 고통을 맛보다 물과 피를 다 쏟고 기아와 갈증으로 죽게 됩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 지 죽기까지 무려 1000번 이상 까무러친다고 합니다. 못을 박을 때도 신경이 가장 많이 모인 손목과 발목에 못을 박습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상했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의 손목과 발목에 굵은 대못을 \'쾅! 쾅! 쾅!\' 박았습니다. 못이 예수님의 살을 뚫고 뼈를 으스러뜨리며 나무에 박혔습니다. 이 때 피가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근육이 진동하고 온몸에 경련이 일어났습니다. 몸에서 물과 피가 빠져나가자 갈증으로 입천장이 갈라지고 목구멍이 타 들어갔습니다. 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과 호흡곤란으로 예수님은 거친 숨을 몰아 쉬셨습니다. 평소 해와 같이 빛나던 예수님의 얼굴은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치욕으로 창백해지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예수님의 고통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시22:14,15).\" 2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도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와 모욕은 계속되었습니다. 지나가던 자들은 머리를 흔들며 모욕하였습니다.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예수님을 희롱하였습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를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를 보고 믿게 할지어다.\" 심지어 같이 십자가에 달린 강도조차도 예수님을 욕하고 조롱했습니다. 이는 결국 예수님의 감정을 건드려서 십자가를 지지 못하도록 하는 사단의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유혹을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남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를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구원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희생이 없는 곳에는 결코 구원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희생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생명 구원 역사가 있습니다. 셋째, 버림받으신 예수님(33-47). 33절을 보십시오. 제 육 시 곧 낮 12시가 되자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 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 시간은 하루 중 가장 날이 밝고 해가 찬란하게 빛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 캄캄한 어두움이 임하였습니다. 이는 인간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위에 내려지는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무려 6시간 동안이나 십자가에 달려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 때문에 기절하시고, 다시 그 고통으로 인해 깨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무서운 저주와 고통을 당하시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사람들을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고 침뱉고 조롱하는 자들을 위해 조용히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그러나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절규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여기서 볼 때 예수님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육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통보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고통이었습니다.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은 버림받는 고통입니다. 예수님은 일생 버림받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사야 53:3은 말씀합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사람에게 버린 바 되어 냄새나는 말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에게 버림을 받으시고, 빌라도에게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3년 반 동안 섬긴 무리와 제자들로부터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이것 때문에 고민하시거나 고통하시는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습니다. 120대의 채찍에 맞으시고, 침뱉음을 받으시고, 조롱과 멸시를 당하시는 동안에도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받는 고통은 너무나 견디기가 힘들어서 큰 소리로 절규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이처럼 채찍에 맞으시고, 수치를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또 이로 인해 우리가 누리게 되는 은혜와 축복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죄의 심각성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가 얼마나 무섭고 지독한 것인가를 보여 줍니다. 사람들은 죄를 가볍게 여기고 죄가 가져올 결과를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는 죄가 보편화되고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죄를 짓고도 이를 합리화하고 변명합니다. \'나만 그런가? 다 그런데\' 하며 부담 없이 죄를 짓고 즐깁니다. 죄가 죄인 줄도 모르고,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줄도 알지 못한 채 함부로 죄를 짓습니다. 당시 십자가형은 사람들이 이 참혹한 형벌을 보고 죄를 두려워하고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경계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 죄가 얼마나 무섭고, 죄로 인한 그 결과와 형벌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죄로 인한 마음의 고통과 깊은 내면의 상처가 생깁니다. 죄의식과 수치심,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하게 됩니다. 죄는 마음의 평화를 앗아갑니다. 무엇보다 죄가 가져오는 가장 무서운 결과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기 때문에 죄를 결코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죄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성을 단절시켜 하나님의 긍휼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을 때 더 이상 구원의 기회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는다는 것은 영원한 파멸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채찍에 맞으시고, 수치와 조롱과 침뱉음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저주와 버림을 받으신 예수님을 볼 때 나의 죄가 얼마나 무섭고 지독한가를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만일 우리가 양심대로 나의 죄값을 다 치른다면 죄를 지은 수만큼 채찍에 맞고, 수치와 멸시를 당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더러운 피를 다 쏟고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을 내 대신 채찍에 맞게 하시고, 조롱과 멸시와 수치를 당케 하시고, 십자가에서 버림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임할 저주와 진노를 예수님께 쏟으심으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죄를 사랑하는 독생자에게 다 뒤집어 씌워서 십자가에서 저주와 심판을 받게 하심으로 모든 죄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 방법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또한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2:24,25).\" 예수님께서 내 대신 120대의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는 열등감과 패배감의 상처, 미움과 증오심의 상처에서 나음을 입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부끄러운 정욕의 죄 때문에 조롱과 침뱉음을 받으시고 온갖 수치와 정죄를 받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고개를 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 때문에 버림받으시고 내대신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내가 아무리 흉악한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이 예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조건 없이 죄를 용서받고 아름다운 새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죄로 인한 마음의 상처와 고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정욕의 죄로 인한 상처로 인해 죄의식에 시달리며 수치심으로 괴로워 합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파괴된 가정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깊은 슬픔에 잠긴 분도 있습니다. 미움과 증오심, 열등감과 운명주의로 무기력한 삶을 사는 분도 있습니다. 완벽주의로 인해 늘 불안하고, 냉소주의와 우울증으로 내면이 병든 분도 있습니다. 누가 이 마음의 죄 문제와 인생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고상한 철학이나 예술, 스포츠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단전호흡이나 명상을 한다고 해결됩니까? 아닙니다. 죄로 인한 고통과 내면의 상처들은 오직 내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수치를 당하시고 버림받으신 예수님만이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상처를 안고 혼자 괴로워 할 것이 아닙니다. 나의 허물과 죄악을 짊어지고 비참하게 살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무거운 짐들을 내 대신 버림받으신 예수님께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 때 모든 죄의 고통이 사라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평화가 내 마음에 임하게 됩니다. 내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수치를 당하시고 버림을 받으신 예수님께 나아올 때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건강하고 희망찬 삶을 살 수 있습니다. 3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마침내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셨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했습니다. 이 때 놀랍게도 성소의 휘장이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 성소의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는 커튼으로서 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의 장벽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의 장벽이 허물어진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온전한 성전이 되시고, 죄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이 되셨습니다(히10:19,20). 3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죽으심을 지켜본 로마의 백부장은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고백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누가 보아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요, 메시야로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대속의 죽음임이 객관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42-47절을 보십시오. 날이 저물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당돌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두려움 때문에 지금까지 숨어서 예수님을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목격한 후에 심령이 담대해졌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시체를 세마포로 싸 자신의 새 무덤에 장사했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완전히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이와 함께 우리의 죄도 완전히 죽고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롬6:10,11).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우리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수치를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모든 상처를 치료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만이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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