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강 눅 15:11-24절 강해
둘째 아들의 행복
성경본문: 누가복음 15:11-24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말씀은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가 어렵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두 아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데
그 중 한 아들이 집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내용입니다. 우
리는 이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에게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
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청소년들이 지닌 문제점들도 발
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는 행복을 찾아서 가출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비유에 나오는 이 둘째 아들은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여러 명의 종을 거느렸을 정도로
부자였고 품군을 많이 쓸 정도로 땅도 많이 소유했습니다. 따라
서 둘째 아들은 특별한 고생도 하지 않았고 부족한 것도 모르며
하루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는 점점 자라 사춘기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청년이 되었는
지도 모릅니다. 그 나이 되면 누구나 으례히 그러듯이 자기 자신
이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
까요? 여러분들이 잘 알지요? 그는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하고, 놀고 싶을 때
놀고,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들어오고 싶을 때 집에 들어오고, 여
자 친구와 손 잡고 입맞추고도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
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그는 이래라 저래라 하는 아버지
의 간섭이 싫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아버지의 책망이
듣기 싫었습니다. 물론 형의 간섭도 싫었습니다. 집은 숨 막힐
것 같은 공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는 자유로와지고 싶었습니다.
아무의 간섭도 받지 않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고 싶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결국 그는 가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먼저 필요한 돈을 마련하
기 위해서 아버지에게 자기 몫으로 남겨질 재산을 미리 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멀쩡하게 두 눈을 뜨고 있는데 재산을 요구
한 것입니다. 말도 안되는 요구였지요. 그런데도 아버지는 자식
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그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은 돈
을 챙겨서 집을 떠났습니다. 가출을 한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그가 먼 나라 로 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아무의 간섭도
받지 않으려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갔습니다. 두번 다시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을 것입니다.
이 둘째 아들처럼 가출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창무 기자> 10대 청소년과 여성들의 가출이 해마다 늘고 있
는 것으로 나타났다. 96.5.2일 경찰청에 따르면 20세 미만 청소
년의 가출은 93년 1만1천9백33명에서 94년 1만3천5백22명, 95년
1만6천13명으로 3년동안 매년 13.3∼18.4%씩 증가했다. 올해에도
지난 3월말 현재 3천5백59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의 3천1백99명에
비해 11%가 늘어났다.
여성 가출도 94년 2만4백58명에서 지난 해 2만4천2백68명으로
19%나 증가했고 올 들어 지난 3월말 현재 5천8백8명이 가출한 것
으로 집계돼 전년 같은 기간(5천3백15명)보다 9%가 늘어났다.
가출 청소년들은 집을 숨막히는 공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집을 멀리 떠나기만 하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
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둘째 아들이 가출해서 행복했습니
까? 아닙니다.
혹시라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 학생들을 위해서 한 마
디 하고 싶습니다. 집을 뛰쳐 나가면 행복해질 것 같다고 생각하
는 것은 집 바깥의 세상이 얼마나 위험하고 험악한지 모르기 때
문입니다. 세상에는 악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이
가출 청소년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가출 청소년들을
철망이 쳐져 있는 지하실에 가두어두고 가혹 행위를 가하며 일을
시키던 사람들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그 청소년들의 실상이 말
이 아니었습니다. 얼굴이며 몸이며 할 것 없이 담배불로 지지고
매질하고 밤낮으로 일만 시켰습니다. 다행히 한 소년이 탈출해
나와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강갑생,이지영 기자> 96.5.16일 오전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
조사반. 허름한 옷차림의 丁모(13)군은 지하구두공장의 생활에
진저리가 난다는 표정이었다. 丁군이 서울 성동구 금호동 제화공
장인 동성상사에서 노예같은 생활을 시작한 것은 1월 중순. 지
난해 12월 충남 부여 집을 나와 서울시내를 떠돌던 중 청량리역
에서 \"좋은 직장을 소개해주겠다\"는 노점상 정영탁(鄭永鐸,3 7)
씨의 꾀임에 빠진 것이다. 鄭씨는 가출 청소년들을 유인, 1인당
2-5만원을 받고 이 공장에 팔아 넘기고 있었다.
30평 남짓한 어두컴컴한 지하공장에서 비슷한 처지의 가출청소
년 5명과 함께 겪은 생활은 노예 그 자체였다. 오전 8시부터 시
작된 구두제조작업은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끝났고 휴식시간이
라고는 5분씩 주어지는 식사시간이 전부였다.
공장 내 모든 창문에는 달아나지 못하도록 철망이 쳐져 있었고
건물 밖의 화장실을 갈 때도 직원이 항상 따라다녔다. 공장 내에
는 가죽, 본드냄새가 진동을 했고 하루 1백여 켤레의 구두를 만
드느라 손에는 물집이 잡혔다.
1개월쯤 뒤 \"그만 두겠다\"는 말을 꺼냈다가 작업용망치로 온
몸을 얻어맞았고 뺨을 맞은 것은 셀 수도 없었다. 한달에 20만원
씩 주기로 했던 월급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함께 있던 金모(15)군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빨갛게 달
구어진 연탄집게로 매를 맞아 이때의 충격으로 팔다리가 중풍처
럼 떨리는 증상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노예생활은 丁군이 철망을 뚫고 탈출, 15일 경찰에 신
고함으로써 끝났다. 경찰은 16일 가출 청소년들을 유인해 팔아넘
긴 鄭씨와 가혹행위를 하며 이들을 고용해온 동성상사 대표 황래
성(黃來星,42,성동구금호동)씨등 모두 3명을 긴급구속했다.
그뿐이 아닙니다. 외딴 섬 새우잡이 어선에 팔려가서 고된 일을
억지로 몇 년씩 하게 되기도 합니다. 여학생들의 경우는 다방이
나 술집 접대부로 팔려갑니다. 그나마 좀 낫다는 것이 주유소에
취직하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에도 밖에서 달달 떨면서 춤을 추
면서 고객을 유인하는 일을 합니다.
아마 같은 반 급우 중에도 가출했다 돌아온 학생들이 있을 것
입니다. 그들이 행복해 보이던가요? 지난 5월 8일 서울의 세종문
화회관에서 한 여학생이 수기를 발표했습니다. (병든) 어머니가
옆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96.5.8일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 효세미나.천안상고 3년 김
미정양의 「가슴 아프면서도 착하게 사는 이야기」를 듣던 사람
들은 눈물을 흘리며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장애인 아버
지의 구타,장애인 어머니의 암 질환.그리고 3남매를 남겨 두
고 가출한 아버지.이런 가운데서도 김양은 지극한 정성으로 어
머니를 돌보며 착실하게 공부,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았다.
「윤리상실」과 「의지박약」의 세태를 향해 김양은 말한다.
『엄마가 곁에 계신 것 만으로도 제게는 큰 힘이 됩니다』
아무리 가정 형편이 어렵다 할지라도, 아버지가 술주정뱅이고
부모가 자주 싸운다 할지라도 가출한다는 생각은 하지 말기 바랍
니다. 가정은 행복의 보금자리입니다. 가정보다 더 나은 곳을 세
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행복은 주위 환
경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가정이 싫다고 하기보다 가정의 좋은 점을 찾아보십시오.
공자가 하급관리로 있는 조카 공멸에게 물었다.
\"네가 이 자리에서 일하며 얻는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
인가?\"
공멸은 대답했다.
\"얻은 것은 하나 없고 세 가지를 잃었읍니다. 일이 많아서 공
부를 못했고, 보수가 적어서 친척 대접을 못했으며, 공무가 다급
해서 친구와의 사이가 멀어졌읍니다. \"
그후 공자는 공멸과 같은 벼슬을 살고 있는 제자 자천에게 같
은 질문을 했다. 자천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잃은 것은 하나 없고 세 가지를 얻었읍니다. 배운 것을 실행
해보니 배운 내용이 더욱 확실해졌고, 보수를 아껴 친척을 대접
하니 더욱 친숙해졌고 공무의 여가를 친구들과 교제하니 우정이
더욱 두터워졌읍니다.\"
부모의 간섭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겠습니다. 나 자신도 다른
사람의 간섭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내 마름대로
할 수 있는 자유는 소중한 것입니다.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유명한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다 하는 것이 행복은 아
닙니다.
사람은 가만히 놔두면 편하고 쉬운 것만 찾도록 되어 있습니
다.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것이 편합니다. 씻는 것보다 안 씻는 것
이 편합니다. 서 있는 것보다 앉아 있는 것이 편하고 앉아 있는
것보다 드러눕는 것이 편합니다. 이런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
문에 그대로 놔두면 쓸모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사람을 망치
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 멋대로 하게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꽃이 많은 화단을 망쳐버리는 방법을 아세요? 그 꽃
밭에 불을 지르고 물을 많이 부어버리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렇게 수고를 하지 않아도 쉽게 망칠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 화단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잡초가 무
성해지고 저절로 망쳐집니다.
또 어떻게 하면 친구 간의 우정을 망쳐버릴 수 있을까요? 돌아
다니면서 마구 헐뜯고 비방을 하면 그 친구와의 우정을 망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수고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친구
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냥 내버려 두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을 망쳐버릴수 있을까요? 방탕하고 법을
어기며 타락해 버리고 건강을 마구 상하게 하면 될 것입니다. 그
러나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세상이 악하게 돌아가는 대로 그
냥 편하게 두면 우리의 인생은 저절로 망쳐버릴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어떻게 하면 망쳐버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진리를 철저히 배반하고 나서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수
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영혼을 끊임 없이 돌보고 말씀의 양분
을 주며 기도의 호흡을 하며, 끊임 없이 세상의 먼지들로 더럽혀
지는 영혼을 청소하는 일들을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기만 하
면 될 것입니다. 아무런 관심도 갖지 말고, 그냥 버려 두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인생, 우리의 영혼은 무참히 망쳐서 멸망으로 갈
것입니다.
어느 정도 통제된 자유만이 진정한 행복을 줄 수 있습니다. 특
히 나이가 어릴수록 더욱 많은 통제가 필요합니다. 부모의 통제
를 속박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사랑의 표현이고
관심의 표현입니다.
둘째로, 그는 오늘을 즐기는 데서 행복을 찾으려 했습니다.
가출한 둘째 아들에게 간섭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한 명도 없
게 되었습니다. 그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유를 만끽했
습니다. 그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습니다. 그에게는 아버지로부
터 받은 많은 돈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힘들여 벌은 것이 아니라
그냥 생긴 것입니다. 아까운 줄도 모르고 멋대로 썼습니다. 먹고
마시고 즐겼습니다. 그에게는 오늘이 중요했습니다. 당장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습니다. 내일은 염두에 없었습니다. 처
음 한달 두달은 좋았습니다. 다섯 달 여섯 달까지 좋았는지도 모
릅니다. 그러나 일은 하지 않고 먹고 마시고 즐기기만 하는데 마
냥 좋을 수는 없습니다. 결국 예견된 것이지만 그는 빈털털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가지고 있는 돈을 유흥비로 다 써 버렸습니
다.
사람들은 이 둘째 아들처럼 우선 즐기기를 원합니다. 당장 좋
아 보이는 것을 사기 원합니다. 한국 청소년 중에서도 외모에 치
중하고(48%), 유명상표 옷 등에 대해서는 값에 관계없이 가지기
를 원하는(36%) 학생들이 비교적 많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아시아에서 인도·일본 다음으로 3위 수준이다. 이것도 사고 저
것도 사고.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빗댄 우화가 있습니다.
송(宋)나라에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저(狙)란 원
숭이를 뜻한다. 그 이름이 말해 주듯이 저공은 많은 원숭이를 기
르고 있었는데 그는 가족의 양식까지 퍼다가 먹일 정도로 원숭이
를 좋아했다. 그래서 원숭이들은 저공을 따랐고 마음까지 알았다
고 한다. 그런데 워낙 많은 원숭이를 기르다 보니 먹이를 대는
일이 날로 어려워졌다. 그래서 저공은 원숭이에게 나누어 줄 먹
이를 줄이기로 했다. 그러나 먹이를 줄이면 원숭이들이 자기를
싫어할 것 같아 그는 우선 원숭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에게 나누어 주는 도토리를 앞으로는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朝三暮四]\'씩 줄 생각인데 어떠냐?\"
그러자 원숭이들은 하나 같이 화를 냈다. \'아침에 도토리 세
개로는 배가 고프다\'는 불만임을 안 저공은 \'됐다\' 싶어 이번에
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朝四暮三]씩 주마.\"
그러자 원숭이들은 모두 기뻐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한자숙어가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조삼모사(朝三暮四) - 아침 조, 저물 모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라는 뜻.
곧 ① 당장 눈앞의 차별만을 알고 그 결과가 같음을 모름의 비
유. ② 간사한 잔꾀로 남을 속여 희롱함을 이르는 말.
둘째 아들의 경우에서 보여지듯이 과소비의 끝은 행복이 아닙니
다. 그것은 궁핍입니다. 향락의 끝은 행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허전함입니다. 최후에 웃는 자가 승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은 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다 사지 못하더라도 괜찮습니다. 절
약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나중에 웃을 수 있습니다. 지
금은 즐기고 싶은 것을 다 즐기지 못하더라도 기 죽을 것 없습니
다. 절제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나중에 웃을 수 있습니다.
여름철에 노래하며 즐기지만 추운 겨울에 굶주리며 동냥 다니는
베짱이가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땀 흘리며 일하지만 겨울에 난로
가에 앉아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개미가 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지금 좀 덜 쓰고 덜 즐기더라도 장차 천국에
서 더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 되지 않겠습니
까?
둘째 아들은 과소비와 쾌락을 추구하다가 빈털털이가 되었습니
다. 설상가상으로 그 나라에 큰 흉년이 들어 경제가 어려워졌습
니다. 생활필수품 가격이 폭등했습니다. 비로소 그는 굶주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배고품이 무엇인지 체험하게 되었습
니다. 그래서 난생 처음 일하려고 일자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
러나 배우기를 제대로 했습니까, 이렇다 할 기술을 익혔습니까?
기껏 구한다고 한 것이 돼지 치는 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돼
지를 부정한 짐승으로 여기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지도 않고 돼
지를 치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할
수 없이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보수가 좋은 것도 아니었습
니다. 재워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조차도 배불리 먹지 못하는 신세였습니다.
주인은 그보다도 돼지 한 마리를 더 중요하게 대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돼지만도 못하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사람도 아니야. 나는 돼지만도 못해. 그는 굶주림과 절망에 깊
이 빠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도 합니다. 특히 나름대로 고민을 안고 있고 감수성이 예민한 청
소년들이 자살하는 일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제목 : 국민 48%가 자살충동 경험-전국 8백명 설문조사
이는 최근 정무제2장관실이 현대리서치에 의뢰,전국남녀 8백명
을 대상으로 실시한 \"생명존중에 관한 국민의식조사\"에서 밝혀진
것. 자살충동 경험률은 특히 서울에서 살고 있는 20대인 경우 66
.2%나 돼 ″위험수위″로 이른것으로 평가됐다.
발행일 : 96년6월25일
이달 2일에는 여고 1년생이 성적부진으로 고민해오다가 학교
생활이 힘들다 는 쪽지를 남기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습
니다. 공부 못하는 학생만 자살하는 것이 아닙니다. 5월 6일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줄곧 전체 수석을 했던 여고 1년생이 고
교 입학후 첫 시험에서 전체 수석을 놓친 것을 비관, 음독 자살
했습니다. 세상은 요지경이지요. 5월 13일에는 지난 1월에 음독
자살한 인기가수 서지원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인천 남구 용현2동
동아아파트에 살던 중2 여학생이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 자살했
다.
자살은 결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가수 때문에
죽은 여학생은 같은 반 친구 5명과 담임선생 앞으로 각각 유서를
남겼는데, 유서에는 죽음이 내 앞에 올수록 죽는다는 것이 두렵
고 무섭지만 앞으로 헤쳐나갈 세상이 더욱 두렵다 며 인생의 4
분의 1도 못살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 서지원과 만날
수 있다니 행복하다 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다 고 말
씀합니다. 그리고 죄인이 가게 될 지옥은 이 세상에서 겪는 그
어떤 고통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곳이라고 지적
해 주고 있습니다. 자살은 결코 모든 문제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도피구가 아닙니다. 단지 미봉책일 뿐입니다.
며칠 전에 가난한 고등학생이 면허도 없으면서 친구 오토바이
를 빌려 타다가 사고를 냈는데 100여 만원에 이르는 배상금이 없
어 염려하다가 자살했다고 합니다. 온몸에 에이즈의 증상처럼 반
점이 생기는 것으로 염려하다가 멀쩡한 처녀가 자살하는 일도 있
었습니다. 가난에 찌든 생활에 염증을 느껴 자살하는 일도 있습
니다.
예수님은 목숨이 음식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먹을 것
이 없더라도 살아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입을 것이 없어도 마찬
가지입니다. 몸이 의복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삶을 둘러싼 환경
이 추하고 가혹하게 여겨질지라도 삶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이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기회라고 생각해야 합니
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
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자살을 하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
니다.
이 땅위에서의 일시적인 삶도 그처럼 귀한데 영원한 삶은 얼마
나 더 귀하겠습니까? 영원한 삶 즉 영생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
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받고 영생을 얻습
니다.
셋째로, 그는 아버지 집에서 마침내 행복을 발견했습니다.
둘째 아들도 절망 중에 자살하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
러나 마지막 순간에 그는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아버지 집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면 어떨가 생각합니다. 내가 이제
와서 무슨 염치로 돌아간단 말인가. 아니야 갈 수 없어. 그는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러나 방법은 짐승만도 못한
생활을 하느니 죽어버리거나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길밖에 없었습
니다. 그는 어렵게 결심했습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리
라.
어떤 상황이 여러분에게 닥칠 지 모릅니다. 사랑의 시련을 겪
을지도 모릅니다.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교통사고로 한날 한시에
부모가 세상을 떠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생명을 포기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상황에 하나님을 기억하라.
그는 가출하기 전까지 아버지가 제재만 가하고 이것 해라 저것
해라 강요하는 폭군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결코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정말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누더기를
걸치고 더러운 모습으로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가 먼저 발견했습
니다. 그리고 그 몰꼴 그대로 감싸앉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
래, 잘 왔다. 잘 왔어. 그동안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그 많
은 돈 다 어따 써 버렸니? 하며 따지지 않았습니다. 애비 보기
싫다고 네 발로 나갔는데 무슨 낯짝으로 기어들어온거야? 하며
호통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하며 애
처로와 하시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고 큰 잔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이 둘째 아들
은 그때 비로소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둘째 아들은 세상 사람들입니다. 바로 나
와 여러분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하나님입니다. 이 비유의 둘
째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멀리 떠나 행복을 찾고자 하지만 궁핍과
절망에 이르듯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멀리 하게 될 때 종국에는
절망에 빠집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집에서 참된 행복을 찾았습니다. 행복을 멀리서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가까이에서 찾으십시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
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
라 (렘2:19)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
을 많이 두고 (딤후4:3)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우리의 행복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보
장해 주기 위한 것입니다.
경찰이 가출청소년들을 발견하여 집으로 연락을 취하는 데 적
지 않은 부모들이 부모 자식의 연을 끊겠다고 하며 데리러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육신의 부모는 이처럼 자식에 대해서 무정하게
대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분께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버리시지 않
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49:15)
행복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가까이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
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
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사55:6-7)
이 둘째 아들이 또 다시 집을 나가겠다고 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