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강 요 1:9-18절 강해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1:9-18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큰 기적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그것은 자기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힘에 의해 큰 기적을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하나님만이 예수님을 믿게하는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하여 성도가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 이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세례요한이 증거자로 있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세례요한은 참 빛을 증명하는 자가 아니라, 증거자 라는 사실을 얘기 했죠. 증명한다는 것은 이성의 논리로 이해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증거한다는 것은 본것에 대한 전달이지 이성적으로 납득시키려는 의도는 빠져 있는 것입니다. 듣는 쪽이 믿던 못믿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 오늘은 성도가 믿고 있는 예수님에 대해 오늘 본문 속에서 좀 더 깊이 이해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중요한 절기가 3개 있습니다.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입니다. 이 중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면서 광야에서 초막, 즉 텐트를 치던 때를 그리면서 지키던 절기 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난안에 도착한 후 자손 대대로 이 절기를 지내면서 과거 그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고생하던 것을 기억하면서 지키던 절기 였습니다. 그 초막 생활을 하면서 밤이면 그들이 어둠 속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둠에 있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막위에 불기둥으로 어둠을 물리쳐 주시며 그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그 불기둥은 광야에서 인도하여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이 빛은 이스라엘에세 새하늘과 새땅을 선사하는 역할을 확실히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에서 \'참 빛\'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참 빛이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이같이 참 빛으로 소개 되고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지난날 초막절의 완성자로서 참 이스라엘을 새 하늘과 새 땅에 집어 넣고야 마실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빛이 세상에 왔는데도 세상은 알아 보지 못했답니다. 그 이유는 지난 주에도 살폈듯이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 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더 상세하게 알아 봅시다. 당시 예수님께서 초막절을 이루신 참 빛으로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영접치 못하고 이해 하지 못했던 것은 당시의 메시아관이 이미 오해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이해하고 있었던 메시야는 위로부터 갑짜기 오시는 메시야, 혈통을 알 수 없는 분으로 이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셉의 집안에서 태어났고 부모 형제들을 당시 유대인들이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이 알고 있는 메시야는 그 분이 오셔서 성전을 짓고, 다른 민족의 정치적 압박에서 벗어나게하고,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게 하는 왕으로 등극할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전을 헐라고 하시는 분이셨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켰을 때 예수님을 군중들이 왕 삼으려고 했을 때 왕되는 것을 거절하시도 도망치셨던 분이셨습니다. 뿐만아니라 메시야는 이 땅에 와서 영원할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자신이 죽으셔야 한다고하니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여길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은 메시야는커녕 재수없는 원수 덩어리였던 것입니다. 이같은 메시야관은 유대인들의 눈을 어둡게 했던 것입니다. 이같은 메시야관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율법을 오해 한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다른 민족보다 우월해서가 아니요, 종교성이 뛰어나서도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선택된 결과 율법이 주어진 것입니다. 곧 율법은 진리로 가는 지도 역할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망각하고 우월감에 빠져 하나님께서 자기들이 잘났기 때문에 준 것으로 오해하기 시작 했습니다. 마치 길가는데 지팡이가 있어면 유리합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이 좀 잘난게 있기 때문에 지팡이인 율법을 주어 길 가는데 유리하게했고, 다른 민족은 유대인 보다 잘난 구석이 없으니 지팡이인 율법을 안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얼마나 율법을 잘못이해한 것입니까? (여기서 유대인들이 다 그랬다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유대인들이 잘나서 하나님께서 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갈3:24) 다시말하면 \'인간 너희들은 죄악 덩어리지! 그러니 어찌해야 하느뇨. 하늘에서 오시는 분이 있어야 구원이 있겠지!\' 이것을 끝까지 상기 시키려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바로 이해했으면 율법의 말씀에 의존하여 은혜를 갈망하며 \'은혜가 이 땅에 임해야만 우리들에게 구원이 있겠구나! 주여 은혜를 내리소서!\'하며 은혜를 갈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오해하니 유대인들은 은혜를 갈망하지 않고 율법을 자신들의 종교적 겉치래를 위해 지켜나가야하는 경전으로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메시야는 이 땅에 오시되 은혜를 주시려 오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제해결사로 정치적,경제적 해결사로 이 땅에 와서 도와주는 메시아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있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말씀을 전하시다 저녁이 되자 먹을 것이 없어 먹을 것을 찾게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안드레는 군중들 속에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찾아와 예수님께 주어 예수님께서 5000명의 남자와 그외 아이들과 여자들을 먹였습니다. 이 때 군중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이 이해하고,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메시야(해결사)로 받아 들이고 존경의 눈빛을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군중들은 억지로 자신들의 임금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를 피하여 산으로 피신해 버렸습니다. 왜요. 예수님은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메시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오해하니 결국 메시야가 \'은혜\'를 가져오시는 분임을 놓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리고 16절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고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유대인들에게는 \'은혜\'가 이해되지 않고, \'진리\'가 예수님에게 왜 충만하신 분이어야 함을 이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가 충만하시다고 하는데 한 번 살펴 봅시다. 14절 말씀을 다시 봅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그리스도가 은혜의 충만하신 분이라는 말은 우리가 거듭 들은 바와 같이 인간으로선 안되는 영생, 인간으로서는 안되는 만족, 인간으로서는 안되는 구원, 인간으로서는 안되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이루어 졌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우리 가운데 찾아 왔다는 사실 입니다. 그렇게하여 인간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서 속시원하게 해 주시지 못했던 것을 속시원하게 해 주셨다는 것 아닙니까! 다시말하면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독생자 아들이 되셔서 죄인된 인간들과 관계를 회복하시는데 자신이 육신이 되셨다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의 은혜만이 이 일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라는 것은, 율법으로는 인간을 하나님과 관계를 다시 회복 시키는 일을 할 수 없고 예수님만이 율법을 능가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8장32절에서 율법에 사로 잡힌 유대인들에게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오늘 본문 1:16-17절에서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은혜입니다. 기적입니다. 도무지 인간으로는 불가능 했던 일 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은혜가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 이었던 것임을 거듭거듭 강조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요한은 강조 하느냐 하면 믿는 성도들이 어떻게 성도되었으며 예수님이 성도들에게 어떤 일을 일어켜 두었는가를 확실이 알리고 싶은 것입니다.
이 은혜의 절정을 18절에서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돗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합니다. 진정 은혜의 절정은 하나님을 볼 수 없던 자가 하나님을 보게 된 일입니다. -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을 보았다하여 브니엘이라하고 하나님을 보고도 살았음을 놀라워 한다.
오늘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남의 행복을 짓발고 자신의 행복을 누리시는 분이 아니라, 성도의 행복을 위해 자기가 불행을 자처하시기까지 하신 분입니다. 이러한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성도에게 은혜를 베푸신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