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강 요1:29-34절 강해
하나님의 어린양
요한복음1:29-34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일까? 우리의 머리로 상상해 봅니다. 그냥 인정이 챨챨넘치고 잘못이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으신 것처럼 \'잘해\'라고 하면서 어깨를 쳐주시면서 눈감아 주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뭐던지 슬쩍 넘어가는, 그냥 인정 많은 아저씨같은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혹독한 분이십니다. 그 사실을 이사야 성경에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좀 먹고 살만해지자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진노를 내리기로 계획을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천상
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진노를 알리는 자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 때 선지자 이사야는 환상 중에 자신이 갈 것을 청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기는 하는데 참 이상한 의도로 보냅니다. 이사야 6장 9-10절을 보십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게하는 이유는 잘알아 듣게하여 설득시켜 회개시키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그러면 뭐냐? 오직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의 귀가 막히고 눈도 감기게 하려는데 있습니다. 참 희한합니다. 하나님은 참 이상한 취미를 가지신 분같습니다. 이냥이면 인간들의 귀를 열고 눈을 열어 잘 알아 듣게하여 하나님께 회개하여 돌아 오도록 하시지 왜 그러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께는 악취미를 가지신 분입니까? 장난하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하시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전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출애굽을 하기전 모두 다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사자를 애굽의 전지역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전지역에 쳐들어 왔습니다. 그 곳의 장자를 죽이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애굽의 장자들은 죽음의 사자가 그들의 생명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장자는 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집안에서 키운 흠 없는 어린 양이 대신 피를 흘리고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 양의 대신 죽는 죽음이 그 집을 구원한 것입니다. 은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같은 경험을 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선조들에게 그 사실을 듣고 유월절을 지냈습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생존하게 되었음을 기억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은혜를 생활 속에서 늘 기억하기 위해 가난한 자들, 고아와 과부와 학대 받는 자들을 돌아보는 일들을 해 나갔습니다. 이와 같은 그들의 생활은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희망이 없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은 억지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생활은 영생이 있고 없음은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음을 신앙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배부르게 살기 시작하면서 은혜를 저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은혜의 흔적을 가진 나라 이스라엘, 이 나라는 철저히 은혜의 백성으로 남아야 합니다.은혜를 저버리면 끝장입니다. 결과는 뻔한 것입니다. 애굽처럼 심판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은혜를 저버린다는 것은 인간들의 어떠한 열심이나, 인간들이 쌓아올린 공로가 자기들을 살릴 수 있다고 하는 태도 입니다. 다른 것으로 영생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가차없으신 분입니다. 심판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면서 \'너희 스스로 은혜 아닌 것으로 영생을 만드려 하는 인간들은 영원히 인간 힘으로 영생이 없음을 만천하에 알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힘으로 영생을 만들어 낸다는 인간의 눈을 가려 버리고 귀를 막아 이런 인간은 끝장인줄 알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인간 스스로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리시고 계십니다.
자 그런데 이런 인간 가운데 만약 만에 하나라도 구원받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 사람은 어떤 자 일까요? 도데체 그는 누구의 도움으로 구원 받은 자가 도는 것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오늘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주고 있을 때입니다. 그 때 등장하신 분이 있는데 그가 바로 인간 가운데 만에 하나라도 살아 남게할 수 있었던 분입니다. 그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을 세례요한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29절)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하기 전 그는 세례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베다니\'지역 요단강이 있는 광야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왜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이렇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소개하면서 세례를 주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세례요한이 광야에 나와 참 이스라엘을 어디론가 유인하고 있습니다. 어디로 말입니까? 새하늘과 새땅으로 말입니다. 옛날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나왔던 그 때를 기억하게하는 것입니다. 광야에 나와 현재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인간들이 틀려 먹어도 보통 틀린 것이 아니요, 정신 나가도 보통 정신 나간 인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참이스라엘이 현재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종교 지도자들이 혈통적 이스라엘이 참 이스라엘이었다면 그는 그 안에서 나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정치적인 메시야, 경제적인 메시야를 기다리는 것이 올았다면 그는 광야에서 외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광야에서 외친 것은 다시 출애굽을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이 세례를 통하여 참 이스라엘에게 알리고 싶은 계시가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그것은 참 이스라엘이 되려면 혈통적 이스라엘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으로는 안된다. 인간에게 준비되어 있는 것은 이렇게 죽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 이스라엘이 되는 길은 죽고 다시 살아나는 방법인 회개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례요한이 세례 - 나는 죽어 마땅하다 - 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인간이 생명을 얻고 영생을 얻는 길이 없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인간은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습니다. 유전자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으며, 인간이 어떻게하면 하늘을 날 수 있는가를 알아내었습니다. 그래서 과학, 의학 등의 학문에서 인간의 심리까지도 파악하여 어떻게하면 인간이 더 인간다울 수 있을까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이루어 보려고 합니다. 틀렸습니다.
진작 인간이 알아야 할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 입니다. 참 이스라엘이라면 이것을 앎니다. 그것은 \'인간은 정말 안된다. 우리에게는 심판 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있는 것은 회개밖에 없구나\'하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3장에서 어떤 두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말미암아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의 사람이 치어 죽었습니다. 그들은 18명의 사람의 죽음이 자신들 보다 더 죄가 많아서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같이 망하리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 앞에서 잘난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회개해야만 하는 자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게 되어 있는 자입니다.
지금 세례요한의 세례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혈통적인 것을 가지고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떠더는 사람이나, 인간적인 모든 내세울만한 어떠한 것, 그것으로 참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자가 있다면 장차 오시는 분께서 망하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다 버리고 회개하지 않으면 말입니다.
31절에서 \"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는 자; 31절,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분으로 소개; 33절)
자 이와 같은 상황에서 세례를 주고 있는 세례요한에게 예수님께서 등장하신 것은 엄청난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29절)
심판과 저주의 대상인 인간을 위해 희망으로 다가온 분이 있었으니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끝장난 우리를 위해 오신 분, 엣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탈출하게 하게할 때 그 양을 기억 시키는 말입니다. 세례요한은 지금 예수님께서 그 어린 양과 같이 출애굽하여 새하늘과 새땅으로 이끄는데 그 일을 한 어린 양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하는 것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출애굽 당시의 양은 흠없고 1년된 양입니다. 그런데 그 양을 대신하여 등장하신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위해 오신 하나님의 어린 양인가를 요한은 굉장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상 죄를 지는 양 입니다\'. 인간들에게 세상의 권력이나 돈이나 주는 양이 아닙니다. 인간의 출세를 위해 온 양이 아닙니다. 인간의 욕망을 이루어 주기 위해온 양이 아닙니다. 결코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세상 죄를 지는 어린 양입니다.
그 뿐입니까? 이 어린 양 되시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 말은 하나님에 의해 준비된 양이라는 말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식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 하나님에 의해 이삭을 살리기 위해 대신 준비된 수 양과 같은 것입니다. (이삭을 바치라는 사건) 인간에 의해 준비한 것으로는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 모두에게 할레를 하게한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하여 인간의 혈통을 철저히 차단하시고 인간의 혈통 아닌 하나님이 준비한 하나님의 것으로 복을 주시기로 한 것 아닙니까! 이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이분이 \'하나님의 어린양\'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한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오시게 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내가 의미가 없었는데 그러나 이제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의미 있게 된 것입니다.
저 멀리 광야에서 셰례를 주는 세례요한의 모습이 보입니까? 그 세례요한이 보이면 우리는 외쳐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끝장나야돼\'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주님 우리는 회개할 것밖에 없내요\'라고 해야 마땅합니다. 인간은 모두 심판 입니다. 그런데 만에 하나 죽어 마땅한 인간 중에서라도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살아남은 자임이 분명 합니다. 그것은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때문입니다. 정말 감사 해야 합니다. 정말 매일 보고 싶은 내 친구, 내 애인보다 더 보고싶고 더 그리워해야 하는 분이 아니겠습니까? 그 분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을 믿읍시다. 세상 끝날때까지 믿어 봅시다. 정말 예수님께 가치를 둡시다. 그 분의 은혜를 사랑을 늘 얘기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