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강 요 1:35-51절 강해

참 이스라엘을 위한 메시아

요한복음1:35-51(45-51)

우리는 출애굽 사건 중에서 홍해가 갈라지는 사건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사건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사건과 비교하여 어떤 사건에 더 감격하고 더 놀라워할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 홍해가 갈라진 사건에 더 놀라워하고 비중을 두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일은 산부인과에 가면 늘 상 볼 수 있는 평범한 일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홍해가 갈라지는 사건은 늘 볼 수 없는 일이기에 더 놀라고 잊지 못해 일생에 간직하는 사건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렇게도 메시아를 기다리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예수님의 탄생을 몰랐으며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이해하지도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 나다나엘도 메시아를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예수님께서 메시아 되심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메시아는 좋은 조건에서 왕의 가문에서 태어나실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탄생부터가 짐승의 우리 안에서 탄생하셨고, 가난한 나사렛 동네에서 가난하고 평범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예수님은 평범한 생활을 끝내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고 요한의 제자들에게 \'메시아\'라고 불려지고 있습니다. (물론 메시아가 아니데 이 때부터 메시아가 되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메시아!\' 우리의 귀에 많이 익은 단어입니다. \'메시아\'라는 말을 우리가 교회를 다니면서 자주 듣던 단어입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이고, 헬라어로 번역하면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들은 \'제사장\' \'선지자\' \'왕\' 이었습니다. 이들은 메시아가 무엇을 행하실 분인가를 나타내 주는 그림자 역할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메시아 되시는 분이 오셔서 \'참 이스라엘을 위해 직접 몸으로 제사 드리려 들어가시는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로서, \'참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오실 것을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상식적인 얘기입니다.
좀더 나아가서 얘기 해봅시다. 메시아 얘기를 하려면 기름 얘기를 좀 해야 합니다. 구약에서 제사를 드릴 때 제물에서 나온 기름을 처리할 때 어떻게 하셨는가를 여러분들이 아셔야 합니다. 제물에서 나온 기름은 꼭 단 윗불에 있는 나무에 벌려 불살라 하나님께 드려지게 되어 있습니다.(레1:11-13; (레1:11) 그가 단 북편에서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레1:12) 그는 그것의 각을 뜨고 그 머리와 그 기름을 베어 낼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다 단 윗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레1:13)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가져다가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향기로운 냄새가 되었습니다. 꼭 기름을 하나님께서는 받으시는 분으로 성경은 표현되어 있습니다. 곧 기름을 받으셨다는 것은 기름과 기름칠해 진 것이 있으면 그것은 여호와 것이라는 표입니다. - 인간의 냄새 나는 것은 안 받으십니다.
그래서 구약에 메시아의 그림자 역할을 하던 \'제사장, 선지자, 왕\'들이 될 때는 기름을 발랐습니다. 결국 그들은 누구 것이며, 누구의 일을 하는 자인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였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으면 죽여 버리십니다.
바로 메시아가 지금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은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가리켜 메시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기름 부음을 받아 하나님 것이 된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왜 하나님 것이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것 아니면 안 받
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것이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메시아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메시아를 하나님께서 결국 두신 것은 다른 인간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꼭 기름을 부은 자만 인간으로 취급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메시아를 두어 인간들에게 자신들은 하나님께 인간 취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참 인간, 기름 부음 받은 분 때문에 우리는 인간이 된다는 것을 하나님은 보여 주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봅시다. 본문에 등장하시고 계신 메시아는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1장40-4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하고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메시아 예수님은 시몬이라는 인간의 이름을 게바(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바꾸는 분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곧 메시아는 인간을 바꾸어 놓는 분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하나님의 것이 된 참인간으로서 하나님께 대신하여 대표로 드려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말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자는 흔치 않습니다. 받아들이는 자는 자신의 뜻으로 알아내지 않은 자입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난 자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45절 이후로 빌립이 나다나엘을 만나 모세가 말했던 분, 선지자가 말하던 그 분을 만났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합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자신과 유대인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메시아는 삐까번쩍한 모습으로 등장하실 것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사렛이라는 촌에서는 선한 것이 나올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던 것을 보았다고 얘기합니다. 지금 메시아는 인간을 깨뚤어보고 계십니다.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무엇하시려고 말입니까? 참인간 만들어 가시려고 말입니다.
그리고 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을 듣고 깜짝 놀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더 큰 일을 보겠다고 나다나엘에게 알려 줍니다.
51절을 보십시오.
\"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나다나엘에게 메시아가 무엇을 하려 오신 분인가를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이 얘기는 구약 창세기 28장10-14\"(창28: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창28:11) 한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창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창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창28: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 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라는 말씀 속에 등장하는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두 말씀을 비교하여 보면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의 사자가 사닥다리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습
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자들이 사닥다리 위가 아니고 \'인자\' 곧 메시아 인 자신의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볼 것이라고 합니다.

창세기 28장에 나오는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사닥다리를 동원하셔서 하나님의 사자를 땅에 내려 야곱과 같은 인간을 만나 주시겠다는 계시였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장자권과 싸움을 하던 야곱과 에서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야곱은 당시 하나님의 복(복이라는 말을 구원이라는 말로 바꾸어 이해하시면 쉽습니다.)을 장자권을 가진 사람이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의 형 에서는 혈통적으로 처음 태어났으면 자동적으로 장자가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복(구원)은 얻는 길은 하나님이 약속한 장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희한하신 분입니다. 장자에게 복을 주시기는 주시는데 야곱이나 에서가 생각하는 인간의 혈통인 장자나 장자권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의 복을 내리시지 않기고 하십니다. 그러면 어떤 장자에게 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장자는 장자인데 하나님께서 만든 장자에게 하나님의 복을 주시기로 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장자를 만듭니까? 하나님의 장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희생이 있고 난 뒤에 살려 둔 자가 장자가 되게 하는 방식입니다. 바로 야곱이 얍복나루 강가에서 자기 힘으로 인간적인 장자권 가지고 하나님 복 받아 보겠다고 발버둥쳤던 인간을 만나기 위해 천상적인 분이 낮아져 오시는 희생을 치르고 그를 만나 주심으로 말미암아 야곱, 그를 죽이시지 않고 살려 두심으로 말미암아 장자 되게 했던 것입니다.
마치 출애굽 할 때 1년 된 흠없는 어린양을 대신 죽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안의 장자를 살려 하나님의 장자 삼았던 방식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요구를 하십니다. 출애굽기13:1-2을 보겠습니다.
\"(출13: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출13:2)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 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에서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 곳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해마다 장자로 태어나는 짐승이나 사람을 다 하나님께 구별하여 바치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명령을 하신 것은 바치면 복받는다 그러니 받쳐라도 아니었고, 애굽에서 나올 때 장자를 살려 주었으니 그것을 기념 해라고 하는 의미에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뭐냐? 장자와 짐승의 처음 태어난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 것으로 돌리라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가 흠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음이 하나님의 장자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식이 야곱에게 주어졌으며, 그의 후손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어린양의 희생을 통해 확실히 하나님께서 만든 장자가 되게 하여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얻어내어 보겠다는 인간 이런 인간은 야곱입니다. 이런 인간은 하나님의 복(구원, 영생)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야곱과 같은 인간을 위해 하나님을 만나는 사닥다리가 되어 준 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메시아 예수님 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 창세기 28장의 이 말씀을 얘기하시면서 자신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낸 메시아로서 야곱의 꿈속에서 본 사닥다리라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인간을 하나님 여호와와 만나게 하는 사닥다리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 아버지의 품속에 계셨던 독생하신 분으로 하나님 자신이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낮아져서 인간으로 오시는 희생을 치러서 참이스라엘, 참 하나님의 장자를 만드시는 사닥다리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그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일은 인간의 손에 없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고 믿는 자들입니다.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는 안되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메시아 예수님을 보내셔서 혈통적인 이스라엘을 참이스라엘이라 하지 않으시고 주님이 직접 변화시켜서 참 이스라엘로 만들어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혈통적으로가 아닌 예수님이 변화시켜 참이스라엘을 위해 계신 분입니다. 그러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바로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가 참인간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고 예수님만으로 아버지를 만나 볼 수 있는 축복이 있음을 믿는 자라면 우리는 참이스라엘이요 참으로 하나님의 장자로서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있는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