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 요 3:1-15절 강해

거듭남


요한복음 3:1-15



어느 날 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유대인의 관원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자 이쯤 되면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칭찬할 만하지 않습니까? \'니고데모 당신은 나를 하나님께로 왔다는 것과 내가 행한 표적들이 하나님이 함께한 결과란 것을 받아들이고 있으니 내 마음에 들군요. 다른 사람들은 나를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부터 거부하고 있으니 말이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니고데모에게 하시는 말씀이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하니 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런 대답을 했을까요? 그것은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지금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랍비라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랍비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은, 유대인들 중에 아주 훌륭한 선생님, 인간 중에서도 좋은 교훈을 남기는 분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표적을 남긴 것도 하나님께서 훌륭하게 여긴 인간이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결과로 일어난 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니고데모의 표현은 예수님을 잘 알아보지 못한데서 나온 표현입니다. 왜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하늘에서 오신 하나님으로 못 알아보는 것입니까? 그것은 니고데모가 육으로 난 그대로 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육이라는 말은 단순히 인간 살점, 고깃덩어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
다. 여기서 말하는 육이라는 것은 창세기 6장 3절에서 말하는 육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곧 하나님과 도무지 만날 수도 없는 타락한 상태, 무한정한 인간의 탐욕성, 영원하지 못하는 상태, 비거룩 상태,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어버리는 상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죄성을 가진 상태, 기대해 볼만한 것이 전혀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고 합니다. 예수님의 이 표현 \'거듭나야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의 성경 아래를 보십시오. 거듭난다는 말은 \'위에서 난다\'는 말입니다. 하늘의 개입에 의해 하나님의 나라에 살아 남을 수 있는 인간 되는 일이 있어야 한답니다. 본문 6절에 의할 것 같으면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곧 성령으로 난 것을 \'거듭났다\' \'영으로 났다\'고 합니다. 좀 더 세부적으로 봅시다. 5절 말씀입니다. \"...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여기에서 거듭나는 것을 위해 동원되는 것이 있습니다. \'물과 성령\'입니다. 보십시오 먼저 성령에 의해 우리가 거듭 나야 된다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성령 하나님만이 아버지 하나님의 심정을 가장 잘 아는 인간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나라에서 살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물이 동원됩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심판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심판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육을 심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면할 수 없는 인간에게 있는 육을 죽이고야 준비된 물 심판을 지나야 하는 것입니다. 곧 세례의 물을 연상해 보십시오. 육을 죽이는 의식이지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니고데모는 바로 육을 아직도 가진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영 엉뚱하신 분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요한복음 6장 26절에서 하신 말씀을 한 번 봅시다. \"(요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6:27)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산에서 가르치시다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 이상의 사람들을 먹이시고 난 뒤에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이유는 바로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요 예수님 자신이 진정한 풍성이요, 생명을 주는 자요, 영생을 주는 양식이 된다는 것을 알리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오해 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15절에서는 \'예수님을 자신들의 배채워주는 임금으로 억지로 세우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육을 가졌고 육의 눈으로 고작 보는 것은 나의 표적(사인)을 보고 나를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는 없어야 되는 육적 욕망, 배부름 때문에 나를 좇는구나고 한탄하신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같지 않습니까?
다시 본문으로 갑시다. 분명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못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 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지적했고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는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를 하는 분이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아 니고데모가 지금 예수님을 못 알아 본 것은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러니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는 방법으로 \'물과 성령\'을 말씀해 주시는 구나\' 이것은 큰 오해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결코 니고데모가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거듭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예수님을 못 알아본 니고데모를 통해서 알려 주는 사실은 거듭나는 일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것을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거듭나지 않았으니 하늘에서 오신 예수님을 못 알아 볼 수밖에요. 거듭남은 결코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거듭나는 방법은 모르지만 거듭난 결과만 알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요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거듭 난다는 것에 대해 니고데모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찌 다 큰 사람이 어머니의 배속에 들어 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찌 이런 거듭나는 일이 일어나느냐에 대해 정말 모를 일이라고 합니다. 거듭나는 일은 육으로 난 사람으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거듭나는 것에 대해 또 이렇게 13-1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3: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육으로 난자가 물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야 하는데 그럼 무엇을 근거해서 거듭남이 시작되는 가를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 이야기는 민수기 21장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함께 광야의 길을 이곳 저곳 인도함을 받게 되었을 때 길이 나쁘다는 것과, 식물도 없고 물도 없음을 원망하였을 때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광야의 불뱀을 보내어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게 하여 죽은 자들도 있고, 죽어 가는 자들은 모세에게 자기들의 원망함이 범죄임을 시인하고 뱀이 물러가게 해 달라고 합니다. 이 때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장대에 불뱀을 만들어 달아 맨 그것을 보는 자는 살게 될 것이라고 지시합니다. 지시를 받은 모세는 놋으로 놋뱀을 만들어 달아 보게 하자 그것을 본 자는 살았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자세히 보십시오. 거듭남의 근거를 옛날 놋뱀을 든 것 같이 인자(예수님)도 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무슨 말입니까? 자 천천히 모세 당시로 다시 가 봅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 물렸습니다. 그런데 놋뱀이 왜 장대에 달려야만 합니까? 어린양이 아니고 말입니다. 여기 놋뱀이 달렸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보자 살았답니다. 왜 하나님은 살려 주셨을까요?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쳐다보았기 때문에 살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단정해 버리면 이렇게 되는 것이지요. 당신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되는데 왜 안 믿고 그러느냐는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지요. 지금 놋뱀이 달렸다는 것은 인간의 죄악의 원흉이 달렸다는 것입니다. 곧 죄악의 원흉이 저주를 받았다
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장대 위에 달려 있는 놋뱀을 보게 하여 살려 주시는 이유는 지금 자기들은 언제라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악덩어리인데 자기들이 살아남는 길은 죄악의 원흉이 제거되어야만 살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놋뱀이 장대 위에 들려 오려진 것은 단순히 불뱀 퇴치용도 아니었습니다. 만약 불뱀 퇴치용이었다면 그것은 일회용에 불과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불뱀이 잠시 없어진다고 해서 죄를 안 짓습니까? 또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불뱀의 모양을 한 놋뱀을 장대에 매달은 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신들의 죄를 보게 만든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 앞에서 그들이 다시 살수 있는 길은 죄악의 원흉이 제거되고 영원히 심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들이 살게되는 것입니다.
지금 요한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거듭남의 근거가 어디 있느냐는 것을 마치 광야에서 놋뱀이 들려야 하듯이 예수님 자신이 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 됩니까? 놋뱀은 예수님(?) 이렇게 되는 것입니까? 그 말씀이 아니지요.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자신이 놋뱀같이 들여야한다는 말은 예수님 자신이 죄악의 원흉과 같은 저주와 심판을 받는 자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저주를 받을 만 합니까? 전혀 없는 것 아닙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거듭남의 근거를 바로 자신에게 두고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거듭남은 인간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인간은 바로 죄악 덩어리 자체입니다. 인간은 육체가 되어 하나님에게 갈 수도 없고,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런 죄악덩어리가 죽어야 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성도를 거듭나게 하기 위해 대신 죄악덩어리가 달려야하는 자리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남이 시작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