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강 요 3:22-30절 강해
흥해야 하시는 예수님
요한복음 3:22-30
세례 요한과 그의 제자들은 살렘 근처 애논이라는 곳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습니다. 이 때 요한의 제자들 중에 한 사람이 요한에게 와서 보고하기를 \'전에 선생님께 세례를 받았던 예수라는 분이 유대지방에서 세례를 주고 있고 그기다 사람들이 모두 예수라는 분에게 모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제자의 보고는 \'예수라는 분이 감히 자기 선생을 제치고 자기가 세례주는 것을 독차지 하고 있으니 이거 문제가 있는것이 아닌가?라는 의도가 담겨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요한은 그 제자에게 말하기를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면서 자신과 예수님을 대조하여 말해 주었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며,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가 아니라 증거하는 사람이요,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분임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마치 신부를 차지하는 신랑이라고 표현을 하면서, 마땅히 하나님께서 보내신 신랑이 신부된 참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에게로 모이게하는 일이 있음은 당연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그는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살펴 보면서 한가지 의문을 가져 보려고 합니다. 왜 예수님은 흥해야 하겠고 세례요한 자신은 쇠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살펴 보려고 합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지금 에틀란타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데 우리나라 대표 팀들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 주어야 국가의 위신이 섭니까? (1) 모두 다 탈락하고 힘이 빠져서 그곳에서 도주하여 북한으로 망명을 한다. (2) 한명만 누런 동메달을 따온다. (3) 3/2는 탈락하고 3/1은 은메달과 누런 동메달을 따온다. (4) 모두가 출전한 종목에서 금메달을 다 따온다. 답은 4번입니다. 국위를 선양하는 길은 자기의 맡은 종목에서 흥해야지 국가의 위신이 서게 되어 있습니다.
자 그런데 문제는 오늘 본문에서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흥해야 하다고 하면서 어찌해서 자신은 쇠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적으로 말해 세례요한이 자기 맡은 일을 팍팍 해서 금메달을 따오는 일이 벌어지면 예수님에게 도움이 되지않겠습니까? 그가 하는 일이 척척 잘 풀려서 요사이 식으로 표현하자면 큰 사업도 벌려 많은 사람도 도와 주고 아니면, 좋은 학생이 되어 좋은 대학에 딱딱 붙어 사람들의 칭찬을 많이 받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소위 말하는 예수님께 영광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자기 체면도 서고 예수님의 일에 큰 도움이 안되겠습니까?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이러한 것이 전혀 예수님께 도음이 안된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흥해야 하고 나는 쇠해야 한다고 합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그러면 이 사실에 의문을 가지고 먼저 세례요한이 말한 \'예수님이 흥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 보도록 합시다. \'예수님이 흥한다는 것\' 이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지금까지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려 오신 분이라고 말했는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무엇하려 오셨습니까? 요한 복음 2장 혼인 잔치 집에서 \'자신의 때\'를 알리며 그 때가 자신의 죽음을 말씀하신 것과 3장14-16절에서 장대위에 달린 뱀과 같이 대신 저주의 죽음을 위해 오신 분이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희생의 죽음을 위해 오신 것입니다. 곧 이러한 죽음을 예수님께서 제대로 이행하시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는 것이 됩니다. 만약 이 일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 예수님은 자신의 목적을 제대로 이행하시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흥\'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가 옵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희생의 죽음을 제대로 치루시는 것이 예수님께는 \'흥\'하는 일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래야만이 성도되는 자들이 죄에서 용서함을 받고 성도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옳다 인정 받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런 과업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이 일을 누가 방해하는 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단입니다. 그러면 사단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뻔하지 않겠습니까? 어찌하던지 예수님께서 수행하시려는 죽음을 달성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주야를 먹지 못하시고 계셨을 때 사단은 시험한 것입니다. 첫번째 시험에서는 돌로 떡을 만들어 먹고 다른 인간들에게도 땅에것 먹고도 영생이 있는 것처럼 소개하는 경제적인 해결사인, 경제적인 그리스도가 되라고 했습니다. 또한 두번째 시험에서는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 버리고 오직 종교심만으로 가득찬 유대인들이 모인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 뛰어 내림으로 전혀 다치지 않게되어 기적이나 보이고 그것에 메료된 인간들의 종교심을 부추겨 종교적인 그리그도가 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시험에서 천하 만물을 보이며 그것을 다 얻어 그것이나 지배하며 정치하는 정치꾼으로서의 그리스도가 되라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일을 위해 오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희생의 죽음을 이루시기 위해 오신 분이셨습니다.
사단은 이것으로 끝내지 않고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에게도 그러한 마움을 가지게 했습니다. 어느날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게 될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간청하면서 말하기를 \'그리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아마 베드로가 요사이 사람이라면 예수님께서 그러시겠다 했을 때 그 붙들고 간청하는 태도가 매일 컵라면 싸들고 다니면서 말리려는 태도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열심은 예수님을 도와 드리려고 안타까워한 심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것이 문제가 된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지금 베드로는 사단 그 자체가 하는 것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지 않고 (세우는) \'흥\'하게 할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내가 죽음을 향해가고 있다고 하시는데 대해 그냥 두셔야하는 것입니다. \'주님 그렇게 하옵소서. 주님이 그러셔야만 합니다. 이렇게 나와야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인간은 자기의 열심과 자기의 안타까운 심정이 하나님의 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는 것이 지금 \'흥\'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몇년전 우리 나라 대통령 선거 때에 충현 교회 장로인 김영삼씨가 대통령 출마를 했을 때 입니다. 저가 있던 교회 어느 집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김영삼씨가 대통령이 되면 기독교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집사님께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영삼 장로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던가 기독교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라고 단호히 말씀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은 그래도...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이제 세례요한의 말 \'그는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쇠해야 하리라\'라는 부분에서 왜 세례요한은 자신이 쇠해야한다는 것을 이해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세례요한이 인간을 바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어떠한 생각과 말이 예수님이 이루어 가시는 구원에 도움이 된다던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껀덕지가 조금이라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례요한은 자신이 쇠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 자기가 들어가면 망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예수님이 하시는 구원 사역에 어떠한 노력을 집어 넣는다고 해서 될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례요한의 말에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어떠합니까? 분명 성도들 간에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의 어떠한 공로가 필요 없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럽니다. 철저히 우리는 십자가가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놓았다. 그럽니다. 사랑하며, 의롭게, 깨끗하게, 썩어져가는 세상에서 빛으로 봉사하며 행동을 보여야 한다. 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그래놓고 어떻게 사십니까?
\'우리가 사랑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 될까? 우리가 사회의 직장 속에서 거룩한 신자로서 행실을 바르게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들이 변화 될까? 나의 가정에서 내가 빛과 소금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저들이 변화될까? 이렇게 생각하며 삽니다. 이 말이 맞습니까? 곰곰히 생각해 보십시오. 이 말은 맞는 말 같지만 성경적으로 틀린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기에서 말하는 바는 십자가가 빠져 있는 것입니다. 처음 우리의 구원이 십자가 때문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다음 모든 이들의 변화도 분명히 십자가가 아니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거룩한 생활이, 사랑이, 사회 봉사가, 빛과 소금의 생활이, 전도가 인간을 변화시킨다고 한다고 잠시라도 생각한다면 이와 같은 괜찮은 생활이 십자가를 대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종 오늘날 교회에서 지도자들이 이런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고3으로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정말한심스러운 것은 장로나 집사인 분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이제 고3이니 대학들어 가야 하나님께 영광되니 되도록이면 1년동안 집에 털어 박혀 교회에 나가지 말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어찌 대학들어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까? 결코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인간의 어떠한 노력과 지극한 정성이 도움이 되었다면 예수님께서 왜 오신 것입니까?
김영삼씨가 대통령이 된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된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학생이 좋은 대학에 들어간 것 역시 영광이 안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시는 그것이 예수님을 흥하게 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며,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예수님을 흥하게 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슈바이쳐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의사였고, 오르가니스트 였으며, 휴머니스트 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신학자 였습니다. 그의 신학의 밑바탕에 흐르는 사고 방식이 아프리카의 흑인들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굉장히 존경할 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그는 정말 예수님의 흥하심을 방해한 사단 중에 사단입니다. 왜냐구뇨. 그는 예수님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십자가를 지고 희생의 죽음을 치루기 위해 오시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은 인간들을 계몽하고 지도하여 하나님 나라의 비밀들과 진리들을 알려 인간들을 분발시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려고 오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그의 마음을 인간들이 모르고 추종하지 않자 마침내 모든 사람들을 분발시키기 위해 자신이 희생의 제물이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슈바이져의 생각은 정말 사단 그 자체 입니다. 그러니 슈바이쳐는 예수님의 십자가 없이도 분발하여 인간을 계몽하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이고 봉자적인 사랑의 실천자로서 있을 때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아프리카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자신이 쇠하지 않은 사탄의 사고 방식입니까? 정말 인간 자기가 쇠해야 한다는 세례요한의 말을 다시 상기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어떤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외 어떠한 것으로 인간이 대체하거나 위장하여 그것을 더 중요시하면 이런 인간을 가리켜 사단의 추종자요 이단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는 분명 이 세상과 다른 모습으로 깨끗하고 정직하고 의로운 모습과 착한 행실을 보이며 빛과 소금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구원을 받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도가 이렇게 살아가야하는 이유는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 가며서 져야하는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무거움 짐으로서가 아니라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의 영생을 얻게 되었기에 주님을 사랑하는 자로서 지는 책임입니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이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나를 따라 오려거든 네 것 가지고 오자마라. 네가 가지고 오는 것 중에는 아무것도 나에게 도움되는 것이 없어니 다 너의 무덤에 쳐넣어 죽여라\'는 말 아닙니까?
철저히 인간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거부합니다. 오직 자기들의 윤리로 도덕으로 치장하여 예수님의 십자가가 필요없다고 말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