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양식 요한복음 4:27-38 오늘의 이야기는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과 얘기하던 중에 예수님께서 메시야 인 것을 알아보고 물동이를 버려두고 자기 동네로 들어가 동네 사람들에게 \'자기가 만난 그리스도\'를 소개하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려 나오게 되었습니다. 한편 예수님의 제자들은 동네에 들어가 먹을 것을 구해와 예수님께 드렸더니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누가 예수님께 잡수실 것을 드렸는가?\'의아해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양식은 땅에서 나는 식물이 아니라 자기의 양식은 자기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여 온전히 이루는 것\' 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보내졌는가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양식을 더 구체적으로 요한복음 6장 38절부터 확실히 밝혀 놓고 있습니다. \"(요6: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요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곧 예수님은 식물을 먹는 재미로 이 세상에 보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재미는 어찌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고스란히 다 살려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양식(주식)으로 삼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이런 이야기를 연상시킵니다. 옛날 샌드위치 백작이 카드놀이를 너무 너무 좋아하던 나머지 밥먹는 것을 잊고 카드를 하자 하인이 빵 사이에 치즈나 야채와 햄을 넣어 식사를 대신하게 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식사하는 것보다 카드놀이에 미쳤으니 샌드위치 백작의 양식은 바로 카드놀이였습니다. 얼마나 카드놀이에 미쳤으면 그렇게 했을까요. 바로 예수님께서도 그러시다 는 것입니다. 땅에 식물 먹는 것보다 더 중요시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자들을 잃지 않고 다 살려 영생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죽으실 계획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에 미쳐 계신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실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진정한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그 동안 그렇게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죽게 하셨는지 그리고 그 많은 성경 기록자들을 두시고 성경을 기록하도록 하셨는지를 말입니다. 우리는 이해가 갑니다. 그것은 오직 성도된 우리를 하나도 잃지 않고 다 살려 영생을 얻게 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여기에서 잊어 버려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성도가 영생얻게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얘를 쓰실 것입니다. 만약 성도가 손으로 영생에 관심이 없는 짓을 하면 손을 짜르는 한이 있어도 영생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실 것입니다. 만약 머리로 영생에서 벗어난 짓을 하면 머리를 자르는 한이 있어도 영생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시겠다는 각오를 하고 계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구약에서 이 사실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한 영생의 의지가 어떠했는지 우리는 법궤에 든 세 가지 물건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9:4-5 \"(히9:4)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히9: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1)만나를 담은 금항아리 출애굽기 16장1-5절을 보면 \"(출16: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대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 이 월 십오일이라 (출16:2)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출16:3)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 도다 (출16:4)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출16:5) 제 육 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이러한 원망이 있은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원망을 들으시고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출16:33) 또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출16:34)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 (출16:35) 이스라엘 자손이 사람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되 곧 가나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곧 하나님께서 만나가 든 항아리를 언약궤 안에 넣고 속죄소(언약궤 뚜껑)를 덮었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살리기 위한 엄청난 조치 였다는 것입니다.- 속죄소 위에 희생의 짐승 피 뿌림 2)아론의 싹난 지팡이 민수기 17장10절을 보면 \"(민17:10)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민17:11) 모세가 곧 그같이 하되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하였더라.\" 이같은 일이 발생 한 것은 민수기 16장 이후에 \'고라, 다단, 아비람, 온\'이 당을 지어 하나님이 세운 제사장직에 대해 반기를 들고 나온데서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 결과 모세는 아론의 제사장직이 하나님이 세운 것이므로 아무나 그 일을 맞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자 그들은 듣지 않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기를 \'너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에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있는 그 곳의 땅이 갈라져 죽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동조하여 여호와께 향로를 들고 드리겠다고 나왔던 250명도 하나님의 불에 의해 죽게 되었습니다. 이일이 있은 후 다음 날 이스라엘 회중은 모세와 아론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죽게 되었다고 원망하며 모세와 아론을 칠 때 하나님께서 순식간에 염병이 발생하여 일만 사천 명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운 중보 역할을 하는 제사장을 거부하는 것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가를 분명히 하기 위해 아론을 비롯한 11족장의 지팡이에 이름을 써서 증거궤 앞에서 싹이 나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 세우진 자이므로 이를 거부하는 해서는 안됨을 밝혔습니다. 그 결과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지팡이를 법궤 안에 넣고 속죄소 위에 짐승의 피를 뿌림으로 영생을 놓치지 않게 했습니다. 3)언약의 비석들(십계명 돌판) 신명기 10장2절 \"(신10:2)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쓴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너는 그것을 그 궤에 넣으라\" 이 십계명 돌판이 법궤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모세가 전에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산에 올라가 받아온 십계명 돌판, 이것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오고 있을 때 아론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밑에서 애굽에서 자기들을 구출한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을 보고 모세는 깨뜨리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그 십계명판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들어간다고 한들 그들은 이미 첫 계명을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법에 설 인간이 없기에 깨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명하여 십계명 판을 다시 준비 시켜 그것을 법궤 안에 넣고 속죄소 위에 짐승의 피를 뿌림으로 십계명에 중하여 살아갈 자 없음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한 조치를 취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취한 자기 백성들을 영생하게 하기 위한 끊없는 사랑의 조치였습니다. 이것이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 아버지의 양식이었습니다. 이것을 인간들이 해달라고 해 본 적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의로 자기 백성들을 위해 인간의 어떠한 간섭이나 도움 없이 해 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얼마나 인간들은 이것도 모르고 하나님을 방해만 하고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살아갔는지 우리는 성경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인간은 땅의 양식으로 살 수 있다고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하늘에서 주어지는 희생에 의해 영생이 있다고 그렇게 가르치고 계시는 데 인간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이 세우신 자를 통해 영생의 길을 보이시고 인도하시겠다고 하는데 인간들은 끊임없이 인간들 자기들이 개입해서 하나님께 뭔가 도움을 드려서(자기들의 향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온 자들) 영생이 있을 것처럼 뭔가 열심을 보이려 합니다.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인간은 스스로 윤리적이고 도덕적이고 교양 있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아주 고상한 인간이라는 말을 듣기를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런 인간은 하나님의 법 앞에 아무 문제없는 자 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영생을 방해하는 자입니다. 결코 교양이 도덕이 윤리가 영생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십계명 돌판이 법궤 안에 들어가야만 했던 이유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기 백성을 영생에 백성 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는 그처럼 법궤 속에 세물건을 넣으시고 속죄소 위에다 피의 희생의 흔적을 보이셨습니다. 이것이 구약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의 양식이었다면 바로 여기 신약에서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다시 그것을 재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자들을 잃지 않고 다 살려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을 양식으로 삼고 자신의 몸을 짓고 피 흘리기 위해, 희생의 죽음을 위해 가고 계시는 것을 잊지 맙시다. 이것을 양식으로 삼고 살아가셨던 예수님, 이 예수님을 바로 이해한 사람은 정말 성도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들의 욕망과 자기 이익을 위해 예수님을 찾는 사람은 가짜 신자인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칠까 합니다. 우리가 누구인가를 잊지 맙시다. 예수님께서 끊임없이 우리를 영생에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을 양식으로 삼고 우리를 택했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 오늘날 교회는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잘못된 전도 방식을 통해 방해하고 있다. 잘못된 전도란? 1) 인간을 긍정해 주고 있다. 기분을 좋게 하여 관심을 끌어 교회에 오게 하는 방식. 2) 돈을 풀어 사람들이 교회를 긍정적으로 보게 하는 방식. 그러나 예수님의 전도 방식은 인간을 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죄성을 고발하고 스스로 \"어찌할꼬\"하는 탄식을 자아내게 하는 방식이다. - 수가성 여인을 만나 여인의 과거(남편을 갈아치운 사실)를 폭로시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다는 방식이다. 전면 인간 부정하는 심판을 전재로 하는 전도이다. (행17:30-31; 벧후3:1-13) 그런 다음 십자가의 은혜성을 설명해 주는 방식이다.(행2:37-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