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강 요 6:14-15절 강해
임 금
요한복음 6:14-15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일어 키고 난 후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이 기적을 보고 말하기를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 자기들의 임금 삼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를 피하여 혼자 산으로 가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본문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는 이유는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는 것 때문입니다. 여기 나오는 \"그 선지자\"는 신명기 18장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언한 내용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신명기18장 15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신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신18:16)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산에서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나로 다시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신18: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신18: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모세 같은 선지자, 즉 모세 같은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세우리라는 것입니다. 모세의 유언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받아 들였고 \"그 선지자\"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해한 \"모세와 같은 그 선지자\"에 대한 개념과 모세의 유언 속에서 말한 \"모세와 같은 그 선지자\"에 대한 개념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당하게 되자 그 선지자에 대한 이해를 모세와 같이 애굽에서 인도해 낸 정치적으로 민족의 위대한 영웅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을 일으켰을 때 유대인들은 크게 오해 한 것입니다. \'야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우리가 기다리는 먹을 것 해결해 주고 풍요를 제공할 그런 하나님의 선지자가 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경제적인 문제와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분으로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을 삼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자리를 피해 도망을 가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의 생각과 인간들의 생각이 너무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들은 자기 위주입니다. 인간들이 원하는 것은 자기들의 현재와 미래를 보장해 주는 하나님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었을 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먹을 것을 해결해 주자 인간들은 이렇게 나왔습니다. \"이제 됐다 우리는 먹을 것 보장이 되었다. 이 분만 우리들의 임금 되어 주면 경제적인 문제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이렇습니다. 정말 성경은 하나님께서 약속한 선지자,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그리스도가 그런 분입니까? 성경은 그 어디에도 이런 경제적인 것을 해결하는 해결사로 보내시겠다고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 위주가 아니고 자기 위주인가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면서도 자기가 주인행세를 하고 살아갑니다.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마술램프를 자기 손에 넣은 알라딘과 같습니다. 알라딘이 자기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마술램프를 문질렀습니다. 그러면 마술램프 속의 거인이 램프 속에서 나와 \'주인님 주인님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그릅니다. 분명 힘을 가진 자는 램프 속의 거인입니다. 그런데 힘있는 거인이 주인이 아니라 어려움을 당한 알라딘이라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이것을 바꾸어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 나오는 사람들 중에 분명 힘 가진 하나님에게 인간을 자기 소원 성취를 위해 얼마나 억지를 됩니까? 기도하다 한되면 금식하고 금식하다 안되면 잠을 자지 않기까지 하면서 금식하며 부르짖습니다. 그래서 자기 목표를 하나님 영광이라는 명목 하에 성취하려고 합니다.
성경은 타락한 인간을 표현하기를 지금 알라딘과 같은 존재들이라고 합니다. 분명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주인이신 데 교회 나오는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주인이시지\"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자기들이 주인이 되어 하나님의 소원이 뭔지는 안중에 없고 자기들 소원만 이루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종을 부려먹듯이 자기들을 위해 \"하나님 이것 해주세요, 저것 해주세요. 만약 안해 주시면 교회 안 나오겠습니다. 안 믿어 드리겠습니다.\"라고 협박반 공갈반 하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것이 오늘 교회 나오는 사람들의 실정이라는 것을 믿겠습니까? 교회 나온 신자들은 자기 욕망을 채워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계시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됩니다.
사무엘상 8장을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 선지자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왕을 세워 달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하라 한 그것을 사무엘이 기뻐하지 아니하여...\"(삼상8:4-6)
여기 보다시피 이스라엘이 왜 주변 나라와 같이 인간 왕을 달라고 했는가하면 자기들이 주변나라의 공격을 받고 어려움을 당하니까 그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주변 나라의 공격을 받게 되는 이유가 이스라엘 백성들 자기들의 범죄에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범죄란 주변나라 사람들과 같이 이스라엘을 총칼로 유지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도 주변나라 처럼 정치적인, 경제적인 힘가진 자에 의해 유지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크게 노엽게 하는 짓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보통 세상 나라와 나른 나라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출애굽 때의 어린양의 피 때문에 시작된 나라요 하나님의 덕분에, 하나님이 왕이 되셔서 다스려 져야만 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변 나라와 같이 인간 왕을 달라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결국 스스로 돈으로 밥으로 정치로 이스라엘을 유지시키겠다고 하니 하나님께서는 노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에서 말하는 경제적인 풍요를 정치적인 안정을 주는 왕을 달라고 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어떤 나라가 되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바라는 이스라엘 나라는 철저히 \"하나님이 준비한 희생이 우리를 살린단다. 하나님께 순종하자.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나라는 망한다.\"는 사실을 유지하는 나라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뭣했습니까? 이스라엘은 \"아니다 우리의 살길은 돈이다, 총이다, 미사일이다, 경제적인 안정에 있다. 정치적 안정에 있다고 고집한 것입니다. 이것이 왕을 달라고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속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속마음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주변 나라들에게 공격을 받아 고통을 받게 하여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그랬는데 그것을 모르고 돈이, 칼이, 힘이, 자기들을 살린다 우리에게 이런 것을 없으니 우리가 진다. 이것을 보장하는 주변나라의 왕과 같은 존재를 세우자 하고 있으니 한심스러운 노릇이지요.
마치 부모가 자식의 잘못에 대해 다시는 반복하지 말라고 매를 들어 아픔을 줍니다. 그런데 자식이 이것을 모르고 하루는 철공소에 가서 맞아도 아프지 않고 때려도 매가 부러지는 갑옷을 부모님께 사달라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정말 한심한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달라고 하는 것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사무엘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세워 주십시오\'라고 하는 부르짖음이 사무엘이 기뻐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자기들의 생각대로 자기하고 싶은 대로 자기 욕심들을 이루어 주는 하나님이 되어 달라는 요구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오늘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모세와 같은 그 선지자로 말하고 있습니다만 자기들이 잘못 이해한 경제적인 정치적인 안정을 주는 분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겨우 예수님을 찾아 하는 짓이라고는 자기들의 일을 이루어 주는 동업자로 생각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답시고 하나님께 매달 100,000원 십일조 투자하고 1,000,000원 주시옵소서 씩의 자기 욕심 채우기씩 헌금을 하고, 소위 총동원 전도라는 명목을 내세운 집회를 위해 사기꾼 장로 하나 데려와 소요되는 경비를 종이에 쓰게 하여 백만원 투자하면 그 결과 수천 만원의 돈을 하나님께서 다시 주시더라는 것에 솔깃해서 바치는 식의 헌금,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 자기 소원 이루는데 관심이 있으니 어찌 이것을 신앙이라고 하겠습니까? 이러한 것을 신앙이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들이 자기를 억지로 임금 삼아 자기 욕망을 채우려 하자 그 자리를 피해 산으로 가버렸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이런 일을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어찌하여 예수님을 자기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까? 교회당을 짓기 위해 성도들의 호주머니를 끌어내기 위해 사기꾼 부흥사들을 동원하여 경매 붙이듯이 헌금을 강요하고, 소위 총동원 전도 주일이라는 것을 앞두고 사기꾼 부흥사들을 초청하여 바쳐서 부자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잔뜩 말하고 받치면 이렇게 부자 된다는 얘기와 함께 예수님을 이런 것 해주려오신 분으로 소개하고 있으니 어찌 주님께서 분통이 안 터지겠습니까?
도대체 예수님께서 이 땅에 무엇을 하려 오셨습니까? 잊어버리지 맙시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려 오셨습니다. 죄를 대속하려 오셨습니다. 우리를 이 세상에서 부자 되게 하려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6장27절을 보십시오.
\"(요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여기에서 썩는 양식이 무엇이며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이 무엇입니까? 썩는 양식이란 오늘 본문에서 유대인들 찾고 있는 눈에 보이는 돈이요, 떡이요, 밥입니다. 그러나 영생의 양식은 바로 예수님 자신인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살리는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당당히 나갈 수 있게 하는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이 때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요6:28)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요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합니다.
누가 언제 신앙을 예수 믿고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까? 누가 언제 남보다 잘된 것을 하나님 앞에 축복 받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까? 성경은 결코 그것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교회는 이런 가르침을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 것입니까? 하나님을 이용해서 부자 되고 출세하는 길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옳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이용하지 말라 하나님은 인간의 욕심과 인간 소원을 이루려 오신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려 왔으니 예수님을 따르자 그렇지 못할 때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자 그것을 위해 기도하자.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 옳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기뻐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뿐입니다. 복음을 복음 되게 하며, 영원을 준비하고, 내 이웃과 물욕으로 인해 싸우지 않고 이생의 자랑 때문에 서로 다투지 않는 인간 되는 것을 위해 싸워야하는 것입니다.
꼭 기억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인간들 중에 자기 소원을 들고 오는 인간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소원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양식으로 삼고 예수님께 기대를 걸며 예수님께 순종하기를 원하는 인간을 찾고 계신다는 것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