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강 요 6:16-21절 강해


물위를 걸어신 예수님


요한복음 6:16-21

어두움과 빛은 분명한 구분이 됩니다. 빛 비슷하면서 어둠이라던가 어두움 비슷하면서 빛이란 것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빛과 어둠 중간은 없다는 것입니다. 빛이면 빛이고 어두움이면 어두움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빛에 속한 자녀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자라하고, 어두움에 속한 자녀를 어둠의 권세자 마귀의 자녀라고 합니다. 왜 어둠의 자식들이 어둠을 좋아하느냐 하면 자기들의 악이 드러날까 두려워서 어두움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빛에 속한 자는 결국 진리를 좇소 빛 되시는 예수님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요3:20-21)
이러한 사실을 요한복음 속에서 요한은 밝혀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 중 6장에 나오는 오병이어 사건은 예수님을 좇던 자들이 얼마나 어두움에 속한 자들이 추구하는 썩는 양식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피해 산으로 가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께서는 도대체 빛에 속한 자들이 무엇을 추구해야하는 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결코 빛에 속한 자녀는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추구하는 것을 추구하는 자가 아님을 우리에게 누누이 알리고 있습니다.

이 교훈에 이어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물위로 걸으시는 사건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슬쩍 지나가는 듯이 보이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 속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해답부터 알고 다음 이야기를 계속해 내려갑시다. 그 의미를 설명하자면 예수님께서는 빛 되신 분으로서 빛의 일만 한다는 것입니다. 빛의 일이란 다름이 아니라 어두움에 속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 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지금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으셨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시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물위를 걷는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기적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겨우 할 수 있는 것은 배를 타거나 수상스키를 탄다거나 헤엄을 치는 것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세상에 속해 있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물위를 걷는다는 것은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사람들의 사고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초자연적인 일을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얼마 전에 일으키신 오병이어의 기적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일으키신 것인가를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시고 계시는 일이란 어두움의 자식들이 추구하는 자연적인 것,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들고, 직장생활과 회사경영, 자식의 장래 진학 문제, 돈 버는 법, 출세하는 길 등을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철저히 초자연적인 문제 때문에 예수님은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물위로 걸으시는 사건은 물위를 걸으셨으니 \'오 놀라워라. 대단하신 분, 어찌 이런 일을 하실 수 있을까? 대단한 존재! \'라고 하는 단순한 기적을 알리거나 자기 존재 정도를 알리기 위한 기적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물위를 걸으시는 사건은 오병이어 사건을 연장하여 도대체 내가와서 하려고 하는 일이란 철저히 인간이 이해 할 수 없는 초월적인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하실 일을 예수님은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좇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24절 이후로 보면 무리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 또 디베랴(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던 곳)에 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다시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가서 예수님을 애타게 찾다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때 무리들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이러한 그들의 질문은 예수님을 보는 시각이 예수님과 일치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분위기를 한 번 읽어봅시다. 어떤 분위기 같습니까? \"랍비여 어제 우리에게 말 한마디 없이 그렇게 습습하게 우리기대를 저 버리고 가셨습니까? 그만 빼시고 저희들의 임금이 되어 주시지요? 그러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투가 썩여 있는 질문 같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속셈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26절부터 보겠습니다.
\"(요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6:27)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요6:28)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요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
지금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이 무엇을 위해 자기를 좇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무리들은 오직 자기들을 위하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 떡 먹고 배부른 까닭에 예수님을 따랐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그들의 정곡을 찔렀던 것입니다. 곧 이 말씀은 무리들이 얼마나 세상적인(자연적인) 것으로 자기들의 생명이 된다고 하는가를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표적은 결코 세상적인 것이 생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강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리들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에서 표현해 봅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생활하는 가운데 그들이 애굽을 그리워하며 \"애굽에 있을 때에는 고기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를 그리워합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애굽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소원을 들어 고기나 떡을 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준 것은 \'만나\' 였습니다. 왜 만나 였습니까? 만나는 세상에 있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들이 살길은 땅에 것으로는 불가능하며 철저히 하늘에 것으로 살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렸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질문이 나올 것입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라고 하시는 데, 그러면 지금 세상에 살면서 신자가 육신의 양식을 사기 위해 직장생활을 하거나 돈을 벌면 죄입니까? 그리고 육신의 양식을 먹으면 죄입니까? 1) 죄다 2) 죄가 아니다. 3)모르겠다. 답은 2)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도를 잘 읽어 봐야 합니다.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이것을 수단으로 여기고 사느냐 이것을 목적으로 여기고 사느냐는 문제입니다. 만약 이것이 인간의 생명을 위한다고 여기고 사는 자가 있으면 이것이 죄인 것입니다.

이것을 좀더 이해하기 위해 구약 레위기17장 10절에 나오는 \"짐승을 잡았을 때 피체 먹지 말라\"는 말씀을 좀 이해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레17:10) 무릇 이스라엘 집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레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오늘날에는 피로 만든 음식을 먹습니다. \'선지국\'(소피를 응고시켜 만든 요리)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이러한 금지명령을 왜 내린 것입니까? 이 명령은 구약에서 굉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레위기 17장 11절에서 \"육체의 생명은 피에\"있다는 말씀에서 잘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육체를 유지하려면 피가 있어야 마땅합니다. 피가 없어지면 땅에 사는 인간의 육체는 끝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땅에 사는 육체를 더욱 유지시키려면 피를 더 먹어야 육체의 생명이 더욱 유지 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거꾸로 육체의 생명이 되는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은 무슨 말인가?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린 율법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자세히 보시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짐승의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은 결국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자녀 된 자는 땅에 있는 피(육체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가 영생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생명은 위로부터 오는 것, 광야에서 먹고 있는 하늘에서 내리는 것, 만나, 오늘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하늘의 양식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를 먹지 않고 이를 지킨다는 것은 더 이상 이 땅에서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에 의존하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으로 영생하는 자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이시고 물위로 걸으시는 사건이 전개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