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강 요 6:47-51절 강해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


요한복음 6:47-51

요한 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먹을 것을 제공해 주었고 앞으로도 먹을 것을 해결받게되는 기대감이 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그들을 피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님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오병이어의 사건은 단순히 물질적인 만족이나 물질적인 불충분 상태에서 충분 상태를 주겠다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 자신을 계시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세상 속에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오셨지만 자신을 통해 영원한 만족이 있을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사건을 일으키시고 이 사건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나를 먹었던 것과 비교하면서 설명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살펴 볼려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만나와 비교하면서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하는가?하는 것입니다.

자 이 사실을 우리가 살피기 위해서는 구약 신명기 8장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신8:1)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신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얻어 먹게 된 것은 출애굽기에서 우리가 보았듯이 먹을 것이 없어 애굽을 그리워하며 원망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이 만나였습니다. 이렇게 먹게된 만나를 신명기에서 이것을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나오게하여 배고프게하고 만나를 내리는데까지 간 것은 배고플 때든지, 만나를 먹고 배부를 때에든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시 여기며 살아가라는데 있었습니다. 곧 하늘에서 주어지는 것 때문에 너희들이 살아가야 된다는 것을 알리려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만나를 먹을 때마다 \"그래 맞아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리는 것으로 우리는 살길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이용하여 그것으로 자기들의 만족을 채우기 위한 에너지로 삼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 먹고 고작 생각한 것은 광야에서 먹던 음식보다 더 나은 음식, 광야에서보다 좀 더 나은 생활, 광야에서보다 좀 더 나은 문화 시설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애굽을 그리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주실 때에는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만나는 가나안으로 가는데 필요한 생명의 양식 이었습니다. 결코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얻어 내게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로서의 양식이 아니었습니다.
신명기에서 그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십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만나는 하나의 시험 이었습니다. \'너희들이 배고프니까 못믿고 못 따른다고 좋다 그러면 배부르게 해 줄게 그래도 못 믿는다면 어떻게 할래\'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신자에게 있는 시험 입니다. 오늘날 물질 만능이 판을 치는 이 시대에 교회도 이 분위기에 아주 민감하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있어야 신자 노릇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없으니까 갈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지고 난뒤에 신자 노릇 단단히 할테니 하나님 먼저 가지게 해주십시오. 그럽니다. 신자가 가지면 신자노릇 하고 못 가지면 신자노릇 톡톡히 못합니까? 천만에 말씀입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가지고 못가진 것이 신자의 신자되게 하는 근거를 성경은 삼고 있지 않습니다. \"누가 갈세하지 않겠는가? 체면이서지 않아서?\" 이것이 신자의 신앙생활을 제대로하게하는 것인가 아닌가로 핑계를 된다면 분명 병들었습니다. 신자의 신앙 생활의 주 양식은 먹는 것 입는 것 가진 것 못 가진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의해 신자의 신자됨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리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배고파서 나를 못 믿고 못따르겠다고, 좋다 내가 먹여주지\" 였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어떻게 했습니까? 못 믿고 안 따랐습니다. 그것을 증명하는 사건이 무엇입니까? 바로 12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파송하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되어 있는 땅이라는 것을 믿고 그 땅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고 당당히 말합니다. 그런데 그외 10명의 정탐꾼은 가나안 땅에 사는 거민들의 건장함에 기가 꺽여 하나님을 불신하고 모세를 원망하는 분위기로 이끌어 갑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10명의 정탐꿈의 말을 듣고 원망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 결과 이 원망의 편에 선 남자들은 결국 가나안에 들어자기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죽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배고파도 믿지 못하고 배 불러도 믿지 못하게 되어 있음을 보여 주었던 사건 입니다. 신자의 신자됨은 먹고 마시는 문제에 메여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적인 예로 목사가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 당면한 가운데 복음을 전할 것인가 말것인가? 그래도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 더럽지만 어쩔 수 없이 처 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월급받아 눈치 봐가며 신자들을 위한답시고, 교회를 위한답시고 목회를 해야 합니까? 목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이 때 목사는 결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목사를 집어치우는 한이 있더라도 목회를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복음을 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목사는 분명 말씀이 우선인 자들입니다. 먹고 사는 것 때문에 복음을 복음으로 선포하지 말기로 한 자가 아닙니다. 복음 때문에 죽고 복음 때문에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목사에게 문제는 목사가 복음을 위해 살려하지 않고 목사라는 직책을 지켜서라도 가정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살려고 한다거나, 명예를 위해 산다거나, 체면을 위해, 위신을 위해 살려 할 때 문제입니다. 이것 까지도 버릴 수 없느냐하는 것입니다. 돈을 벌려면 목사하여 돈 벌지 말고 다른 직업을 가져 노동판에 나가 벌면 안됩니까? 꼭 목사하여 벌려고 하니 문제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리신 것은 일용할 양식가지고 너희들이 가나안 들어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로 삼아라 였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철저히 저쪽 나라에 기대를 걸게하는 것으로 주어진 에너지원 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이스라엘은 저버렸습니다.

그런데 잠시 집고 넘어가야할 것은 우리는 여기에서 자칫 이렇게 가면 안됩니다.\"봐라 이스라엘이 이렇게 실패 했으니 우리는 그러지 말자\"라는 쪽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실패 하는 쪽으로 가지 말아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여기 본문에서 강조되는 것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하여 만나를 이렇게 이해하지 못했으니 우리는 그러지 말고 우리는 만나와 비교되고 있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도록하자.\" 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만나와 비교 되시면서 하늘에서 오신 산 떡, 생명의 떡으로 비교 되는 것은 인간은 이렇게 처음 이스라엘 백성들과 전혀 다를바가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비인격체로서의 만나가 아닌 인격체로서의 예수님 자신이 오시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분명해지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습니까? \"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멍청해서 못믿었지만 똑똑한 우리는 틀리지 말고 한 번 잘 믿어드리자!\"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결코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그렇게 되면 요한 복음 6장 44절 말씀에 배치되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요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그렇다면 이제 다시 우리들의 주제로 돌아 옵시다.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예수님께서는 왜 자신을 만나와 비교 되면서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 생명의 떡이라는 말씀을 해야만 했는가를 밝히려 합니다.
48절 이후로 다시 봐 주시기 바랍니다. \"(요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요6: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요6:50)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요6: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 하시니라.\"
잊지 마십시오. 이 말씀은 오병이어의 사건에 이어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만나와 비교하고 계시는 이유는 만나 사건과 오병이어의 사건이 주는 이중적 의미 때문에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중적 의미라는 것은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내렸습니다. 1) 먹는 것 있다고해서 하나님을 따를 수 없는 것이 결코 아니다. 결국은 먹는 것 있었어도 죽었다는것과 2) 진정 이스라엘이 살 길은 하늘에서 내린 양식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사건을 일으키고 따르는 무리들을 떠나셨다 다시 만나서 \"내가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나늘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라고 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역시 오병이어의 사건의 이중적 의미는 1)광야에서 먹은 떡과 고기 그것은 너희가 먹고 배부를지 모르나 죽고만다. 그것 기대하지 말하라라는 것이요. 2)그리고 그것 가지고 안되기 때문에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 되어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만나가 안되니까 어쩔 수 없어서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필수적으로 오셔야만 하는 하늘에서 오신 산 떡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격체로서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자신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철저화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51절말씀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6: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요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요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 자신이 자신의 살을 떼어 주려 왔답니다. 곧 죽음으로, 희생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영생이 있게하려고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 복음 속에서 예수님을 분명히 정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로 이해 하지 못하면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우물물을 길르러 온 수가성 여인같이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라고 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배부르게하는 존재로서 무리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자기들의 임금 삼으려 덤벼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려고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철저히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를 먹고 가나안으로 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로서 만나가 주어 졌듯이 예수 그리그도로 말미암아 진정 하나님께로 가게하시는 양식으로서 오신 것입니다.이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끝까지 하늘에서 온 산 떡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렵니다. 그것을 고집하십니까? 세상이 변하고 교회가 변한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이것을 고집하는 자는 하늘로서 온 산 떡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참 영생이 있고, 참 자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누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