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강 요 6:60-71절 강해

영생의 말씀


요한복음 6:60-71

지금으로 부터 몇년전 어느 여름날 저희 집에서 창문을 열어 놓고 점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왠 사람이 보였습니다. 그 사람은 승려였습니다. 그 승려는 열려있는 저희 집 창문을 통해 저를 보고 시주를 좀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예수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느닷없이 그 중이 하는 말이 \"예수 그 새끼\"라고 하며 예수님을 욕하며 가버렸습니다. 가고 난 뒤에 의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중이 이런 반응을 일어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 중의 자존심을 이미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스스로 생명도 없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이 전혀 없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더럽다. 인간이 덕도하여 그 힘으로 극락왕생한다고 웃기지 말라. 인간의 힘으로 극락왕생해서 가는 곳이 바로 지옥이 될것이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이미 성경에서 계시하고 계시니 어찌 그 중이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 중이 예수님을 좋아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줄 압니다. 아무리 역사가 바뀌어도 장소와 환경이 바뀌어도 그 중과 같은 생각을 하는 인간의 본성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런 인간이 어디 갑니까?

우리는 요한 복음 6장을 몇차례 살피면서 이런 인간의 모습을 또 다시 보고 있습니다. 자기 가 주인이 되어 자기위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인간을 말입니다. 요한 복음 6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일으키자 그들은 자기 사고방식 안에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자기의 먹는 문제를 위해 예수님을 자기들의 임금되어 주기를 원했습니다. 결국 인간은 자기 중심이라는 것과 자기 편의를 위해 있어 주는 신이 있다면 귀신이든 온갖잡신이던 다 환영하는 존재라는 것이 우리는 세삼 느낌니다. 자신의 소원을 위해 예수님까지 이용하려는 존재 이것이 타락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어서 오실 메시야를 계시했는데도 불구하고 고작 한 짓이란 메시야를 자기 소원 풀이용 도구로 전락 시켰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오병이어를 보고 아주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생명의 떡을 줄자는 나밖에 없고 12바구니 남을 정도의 영원한 풍성이 나를 통해 일으날 것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도 떡먹는 재미로 교회에 나오고 있고, 자기 이익을 보장 받기 위한 예수님이 떡주는 방앗간 주인으로 여기도 있다는 것이 큰 착각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메시야가 이 세상에 와서 할 일이 결단코 인간의 먹고 마시는 것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고 하시며 무리들을 피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인간의 생각을 부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계획하고 시행하려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생각과 동떨어져 있는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요6:26-27)

결국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이시고 먹게 한 것은 인간들의 육의 양식을 생각해서 행하신 표적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양식이 되어 신자들에게 풍성한 생명의 근원이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6장 53절 이후에 \"(요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요6:57)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요6:58)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요6: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여기에 제자는 예수님을 자진해서 좇던 12명의 제자 외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 되지 않는 말씀이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아직도 이들은 육의 눈으로 예수님을 좇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과 표적을 이해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어야 하는지... 그래서 그들은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며 이후로 뿔뿔이 자진해서 예수님을 떠나 가버렸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기독교를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렵다고 하며 떠나가게 한 것은 예수님께서 인간들을 위해 죽어주시고 피흘려 주고 살을 찟어 주는 희생만이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키는 일을 돕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입니다.
이 선언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수 밖에요. 유대인들은 율법을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받아 율법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죄와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로마의 간섭으로 정치적인 경제적인 이 난관을 해방시켜줄 메시야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예수님께서 자기의 살을 먹고 피를 먹는자는 희망이 있다고 하시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육의 눈으로 보니 예수님께서 쓸데없는 짓을 하는 인간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분명 유대인들은 이 난관을 도와 주는 분이었으면 싶었는데 말입니다. 인간은 이런 존재입니다. 세계 곳곳에 흩어진 인간들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유대인과 전혀 다를바가 없는 자들입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환영받는 메시야는 오직 자기들의 죄를 지적하지 않는 메시야, 그뿐 아니라 자기들의 손에 잡히는 이익을 즉각 즉각 해결해주는 해결사 메시야인 것입니다. 뭐 죄 때문에 대신 희생되어 주는 메시야 그것은 싫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이 괜찮은 자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마치 저희 집에 찾아와 \"예수 그 새끼\"하며 욕하고 간 그 중과 같습니다. 이런 인간은 저주를 받을 수밖에요.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산다는 의미를 모르는 인간은 철저히 인간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인간은 자기에게 관심갖게 되어 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자기를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듯이 자기가 보이는 최고의 결정권자요. 신인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자를 성경은 \"육\"이라고 합니다. 육은 무익합니다. 살리는 어떤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6장54절에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54절)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먹는 육의 양식이 영생이 아니고 인간 자체가 영생이 못 낳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인간의 영생은 철저히 예수님의 죽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65절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요6:65)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철저히 영에 속한 것의 개입을 통해 거듭나지 않는 인간은 아버지께 접근하는 일이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살길이 없다고 합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일을 예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하는 일 밖에는 없다고 합니다.
이같이 예수님께서 인간을 두둔하지 않으니 66절에서 \"(요6: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오늘날 교회는 어떻습니까?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무서워 합니다.그래서 그너지 오늘날 교회는 편범을 쓰고 있는 곳이 한 두곳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감히 지적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정성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헌금이 하나님께 복 받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많이 갖다 바치세요.잘했어요.잘했어요...\"
자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 졌습니다. 분명 육을 부정하고 인간을 깍아냈고, 예수님께 똑같이 모였고 똑같은 표적을 보았고 똑같이 떡을 먹었던 자들 중에서 많이 물러가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 12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이 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 했습니다.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어디로 가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요6:67-68)\"
라고 하는 인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똑똑해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우리는 그동안 요한 복음 6장까지 살펴 보면서 이런 인간을 많이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이 있다는 것은 기적인 것입니다. 시몬베드로가 이런 고백을 한 것은 예수님을 영의 눈으로 \"영생의 말씀\"(즉 영생을 주는 하늘의 만나, 하늘 하나님을 계시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으로 본 것입니다. 베드로가 밥먹고 눈이 밝아 진 것이 아닙니다. 생수먹고 눈이 밝아 진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일이 일어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선택하여 거듭나게하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70절에서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않았다\"고 하시며 택하지 않은 가롯 유다를 가리켜 마귀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살리는 것은 영에 있었던 것입니다. 육에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영생의 말씀이 되시지 않으면 우리가 아버지를 계시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교회란 어떤 곳이 되어야 하는가 정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영생의 말씀이냐, 아니면 나의 자랑거릴를 칭찬받고, 내어 놓기 위해 모일 것일가? 친분 때문에 모일 것인가? 우리의 쌓은 물질과 봉사로 조직된 교회를 확시리히 보존하기 위해 모이는 곳이 되어야 합니까? 결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교회는 예수님 만이 영생을 주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말씀인 것을 고집하기 위해 모여야 합니다. 언제라도 하나님께서 이 교회에 \"너희들이 왜 모였느야\"라고 했을 때 \"예 영생의 말씀이 우리들에게 있기에 그길 만이 살길이라 모였습니다.\"라고 하는 교회를 유지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 딴데 관심이 있으면 우리는 교회를 떠나야 하며 교회 그만 두는 것이 차라리 이익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정리 해야겠습니다. 왜 우리가 모였는지 먹을 것 때문에 모였는지 아니면 영생의 주체되시는 예수님을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면 영생없어서 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