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강 요 7:1-10절 강해

초 막 절


요한복음7:1-10 /
이제 7장에 들어 와서 예수님께서는 유대 땅을 떠나 갈릴리 지역에서 사역을 계속하고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가 초막절이 가까워 왔을 때 였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숨어서 일하는 것이 못마땅해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유대로 가서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고 뭔가 하는 것처럼 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말함은 예수님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뿐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결코 사람들의 인기를 끄는 일이나 관심을 끌기 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형제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 한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말을 했습니다. \"예수 형님 뭔가 훌륭한 일을 한다고 하면 유대 시내 한 복판에서 큰 일을 해야 사람들에게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그 곳에서 돌로 떡을 만들어 보시지요, 성전 꼭대기에서 낙하산 없이 멋지게 뛰어 내려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사람들이 깜짝 놀라 굉장한 분이니 따르자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되지 않겠습니까?\" 형제들의 이러한 제안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요7:6)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 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의 의도는 \"나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일을 위해 유대에 올라간다거나 나 자신의 능력 발휘하기 위해 유대에 올라갈 때를 기다리고 있지 않다. 너희들이나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그런 후 예수님께서는 9절에 갈릴리에 머물러 계셨다고 합니다. 자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10절에 와서 어떻게 하셨는가를 보십시오.\"(요7:10)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나지 않고 비밀히 하시니라.\" 고 되어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이 단순히 갑자기 마음이 변해서 이런 돌변적인 행동을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분명 여기에는 예수님께서 의도적인 뜻을 가지고 행동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에서 그 이유를 찾아 그 의도가 무엇이며 그 의도를 통해 예수님께서 무엇을 메시지화 하려고 했는가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는 예수님을 유대에 가서 자신을 증명하면서 큰 일을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유대로 가지 않습니다. 그러다 숨어서 초막절이 진행되는 유대로 올라갔습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초막절에 예수님께서 자기 형제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기 증명하기 위해 올라가지 않고 비밀스럽게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분명 이것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에 나오는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에서 그 이유를 밝혀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예수님의 이같은 행동을 이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초막절은 무엇입니까? 초막절에 대해서는 구약 레위기 23장39-43절에 볼 수 있습니다.
\"(레23:39)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월 십오일부터 칠 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 팔일에도 안식할 것이요.(레23:40)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 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레23:41) 너희는 매년에 칠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 월에 이를 지킬지니라.(레23:42)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레23:43)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초막절은 수장절이라고도 하는데 이 절기는 토지의 소산을 거두어 들여 창고에 넣어두고 난 뒤에 7월 15일부터 7일 동안 자기들의 건축된 집을 떠나 광야에서 초막(텐트)생활을 하는 절기입니다. 이 때 초말절은 지키는 사람들은 첫날에도 쉬고(안식) 제팔 일에도 쉬는 절기입니다. 이 때 초막절을 지내면서 사람들은 분명히 불편한 생활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과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편안히 살다가 초막 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것도 매년 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초막절의 의미를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절기를 통하여 영원한 규례로 삼으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무엇을 깨달아 라는 것입니까?
그것은 초막절을 지키는 때가 언제였는가? 그것이 우리들에게 힌트를 줍니다. 곧 초막절은 곡식을 다 거두어 들이고 난 뒤에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초막절을 지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고에 거두어들인 이 결실을 초막에서 지켜보면서 \"이 결실은 내가 가진 것을 뿌려서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내가 한 것이 전혀 없다. 뿐만 아니라 누릴 자격도 없었던 자였다. 그런데 저기 창고 안에 결실을 거두어 드리게 하신 분이 계셨다\" 이것을 구별짓는 절기 였습니다. 결국은 초막절을 통하여 처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로 나오게 하신 분이 계셨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지금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곡식을 거두어 창고에 가득히 거두게 하신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이것을 물질적인 곡식을 통해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풍성히 주어졌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내가 추수를 했다 하더라도 이 모든 것은 내 땅이 아닌 하나님의 땅에서 온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절기가 바로 초막절인 것입니다. 결국 레위기 23장에서 보듯이 초막절을 지키는 이유는 \"애굽에서 가나안을 오게된 것이 내 힘으로도 아니요, 내가 거둔 풍성한 곡식 역시 내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풍성 이라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한 절기였던 것입니다.

바로 요한 복음 6장의 오병이어의 표적을 통하여 12광주리나 남는 풍성함이 있었다는 것 을 통해 누가 그 풍성을 안겨다 주었는가? 누가 영생의 떡이며 누가 영생을 위해 살과 피를 내어놓으시는 분이신 가를 상기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백성들을 위해 풍성한 생명의 떡으로 제공되시는 예수님, 이 예수님께서 초막절의 의미를 메시지화 시키기 위해 비밀히 오늘 본문에서 유대로 올라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폈듯이 예수님께서는 자기들의 형제들이 제안한 대로 드러나게 유대로 올라가 스스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을 왜 안하셨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세상에서 하시려고 하는 일은 뭔가 사람들을 놀래 주는 일이 아닙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음으로 사람들의 배를 채워주거나, 성전 꼭대기 위에서 뛰어 내려 종교적인 기적을 보여 신앙심을 갖게 하는 일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뭔가 세상 적인 이익을 보게 하거나 뭔가 도움을 주는 일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소위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데로 뭔가 큰일을 위해서는 큰물에서 크게 한 번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 PR을 해야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뭔가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보이면 큰 일을 하는 것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마치 교회가 세상 사람들의 눈에 띄는 구제를 하고, 교회가 세상 사람들 앞에 뭔가 교회 구실을 하려고 이벤트씩 큰 행사를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교회 주위 사람들에게 교회의 인심을 싸기 위해 좋은 선물을 돌린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일까요? 결코 이것은 사탄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형제들이 제안한 대로 유대에 가서 자기를 증명하기 위해 어떤 능력을 보인다던가? 뭔가 대단한 인물인 것을 나타내기 위해 유대로 올라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단지 예수님은 그 반대로 세상 사람들의 비위를 거스리게하는 분으로 계신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요7: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 함이라.\"
세상은 예수님의 혈육의 형제를 왜 미워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 사람들도 인정해 주고 그러면서 자기들에게 좋은 것도 제공해 주시는 분이 되어 주시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식으로 세상 앞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비밀히 유대 땅에 초막절에 참여하시려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초막절의 본래 의미를 메시지화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초막절에 비밀히 유대로 올라오심으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영생이 누구로부터 주어지게 된 것인가? 초막절을 상기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초막절에 초막을 짓고 창고 안에 거두어들인 곡식의 풍성함이 누구 덕택인가? 그것을 기억해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물질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 초막을 짓고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풍성한 구원을 기억했듯이 너희들도 기억해라는 것입니다. 누구로 풍성히 있을 것인가? 영생이 주어지게 된 것인가? 바로 알아라 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신 것은 결국 유대인들은 영생이 자기들에게서 출발한 행위가 있어서 시작되었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들도 결단의 결과인 것인 양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초막절을 통하여 보여 주었듯이 애굽에서 나오게 된 것부터 시작하여 가나안에 들어와 곡식을 거두어 풍성한 삶이 있도록 한 것이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듯이, 지금 요한 복음 6장에서 보여준 영생의 문제 이것이 누구로부터 주어졌는가? 이것 역시 너희들의 잘난 행동의 근거나, 따르겠다는 결심이 영생을 얻게 했거나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기적을 일으킨 것을 보고 그것의 결과로 사람들이 영생을 얻게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 비밀리에 유대로 올라가는 방식을 취하셨던 것입니다. 결국 영생은 사람들에게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 것임을 예수님은 철처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교회에 기적이 많이 일어나면 예수를 많이 믿게 될텐데하는 오해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식으로 예수님의 주시는 영생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인 중에 훌륭한 사람이 많으면 예수를 더 많이 믿게 될텐데 오해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영생은 결코 기적을 보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요한복음6장 44절에서 보듯이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예수님) 올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초막절에 유대로 올라가 자기들을 자랑들의 한 일을 자랑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남달리 교회를 사랑했으니, 남달리 구제를 많이 했느니, 남달리 주일 성수 했느니, 남달리 십일조 했느니, 남달리 전도를 많이 했느니, 남달리 헌금을 많이 했느니, 남달리 교회 일에 더 신경 써서 봉사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자기 공로를 듣기 싫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것이 영생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밀히 초막절에 올라가서 유대인들을 책망하시며 자기 자랑에 대해 구역질을 올려놓고 계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칠까 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자기 형제들의 말대로 유대에 올라가 뭔가 대단한 업적을 남기는 식으로 하여 하나님의 일, 영생을 위해 일하지 않는가를 명심하십시오. 결단코 영생이라는 것이 세상의 떠들썩한 방법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아무리 주의 이름을 걸고 그렇게 했다할지라도 영생은 이런 방법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비밀히 유대에 올라가 초막절 절기의 의미를 통해 철저히 하나님의 일, 영생은 비밀히 저쪽 나라에서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것을 알 때 교회는 인간의 방법을 동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 때 교회는 제대로 하나님의 일 영생을 위해 우리의 정성으로 한다거나 노력으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영생의 일을 위해 우리가 일하지 않는 것이요,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께서 보내셔야만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고 단지 신앙고백할 분일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자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밀히 성령의 인도를 받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