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강 요 7:37-44절 강해
내게 와서 마시라
요한복음 7:37-44 /
인간을 가만히 살펴보면 인간은 무단히 노력하는 것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떳떳해지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남이 자기를 세워 줄려고 하면 자존심이 꾸겨집니다. 그래서 자력으로 성공하려고 합니다. 만약 자신이 어려워 가난한 신세가 되었을 때 타인이 자기를 거지처럼 취급하거나 동정의 시선을 보내면 부끄러워 그 자리를 피하고, 어찌하던 거지 신세에서 면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자존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존심 싸움에서 자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거지처럼 외부의 도움에 의존하는 민족이 있었으니 이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 곳에서 나오게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자신들의 힘이나 노력이 없이 말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이 외부의 도움으로 구출되어 나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신앙고백 하라고 가나안에 들어가 유월절을 지키게 했습니다. 이 절기의 핵심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자기들이 애굽에서 나올 수 있게 한 것이 자기들의 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시한 흠없는 어린양의 대신 죽음으로 자기들이 살아 나오게 됐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이스라엘 백성들 내에서 유월절 지킴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그것을 지키면 그 결과로 상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과적으로 애굽에서 구출되어지게 한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기억하고 감사하기 위한 절기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 수요일에도 유월절에 이어 칠칠절(이시기가 유월절 지나 7번째 안식일 다음날이며, 보리 추수가 끝나는 시기여서 맥추절이라고도 함) 다음에 오는 초막절(수장절이라고도함. 이시기가 추수한 곡식을 창고에 저장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대해 살폈습니다. 초막절 역시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에 들어가 그들이 창고에 거두어 들인 곡식이 누구의 도움으로 얻어진 것인가를 바라보면서 즐기는 절기라고 했습니다. 이 절기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는 절기 입니다.
자 이와 같이 유월절,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과 같은 절기를 통해 결국 이스라엘은 자기들 스스로 애굽에서 탈출하게 된 일부터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일, 그리고 그곳에서 얻은 곡식까지 모두가 하나님의 덕택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주신 것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율법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왜 하나님께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는지 감을 잡으셔야 합니다. 결국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용서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알리고 거듭 거듭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이 아니면 희망이 없는 존재가 인간인가를 기억시키는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대인들 중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을 느끼기는커녕 이것을 이용하여 자기과시와 자기명목 세우기 위해 율법을 사용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안식일 지켰는데, 너는 왜 안식일을 안 지켜\"
\"나는 구제했는데, 너는 왜 구제 안 해\"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7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짓을 하고 있는 당시 유대인들이 모여 초막절을 지키고 있는 현장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7장19-24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7: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요7:20)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요7: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를 인하여 괴이히 여기는 도다.(요7: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주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주느니라.(요7:23) 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요7: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시 율법을 철저하게 지킨다고 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너희 중에 모세가 준 율법을 지키는 인간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을 이용하여 자기과시를 위해 문자적으로 지키고, 안 지키는 사람들을 정죄하는 잣대로 여기고 있지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을 바라는 인간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며 책망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5장에서 예수님께서 안식일날 38년된 중풍병자를 고쳐 주는 일을 했다는 것 때문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한 사실을 두고 말하고 있습니다.(요5:18)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초막절을 계기로 진정 율법의 정신을 들추어내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7장22-23절에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은 할례를 안식일날 하고 있지 않느냐? 이것은 율법이 요구하는 대로 8일째 되는 날에 맞추어 함으로 율법을 지키려는 의도가 아니냐? 그런데 내가 안식을 주기 위해 온 하나님의 아들로서 안식일날 몸이 온전치 못한 이들에게 안식을 주는 것이 틀렸느냐? 율법의 정신도 모르는 인간들아! 그래놓고 너희가 나를 보고 도리어 노여워하느냐!\"며 호통을 치셨습니다.
지금 유대인들은 율법의 정신이 무엇인줄 모르고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지켰느냐 안지켰느냐에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정신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의 정신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한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게 합니다. 곧 이스라엘을 구출하기 위해 하나님의 어린양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살아난 것처럼 당시 유대인들은 장차 진짜 하나님의 어린양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그리스도)이 오시면 우리는 지금 안식일날 쉬듯이 안식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라라는 것이 율법의 정신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것을 했느냐? 저것을 지켰느냐?\" 오늘날 식으로 표현하자면 \"헌금을 했느냐? 십일조를 했느냐? 주일성수 했느냐? 성경 몇독했느냐? 너는 제자 훈련을 받았느냐? 전도 몇명했느냐?\"로 신앙의 기준을 세우고 판단하고 있으니 웃기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율법은 누가 지켰느냐? 안지켰느냐?를 가름하여 누가 잘났고 누가 못났는가를 판단해 주는 잣대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좀더 이해하기 위해 신명기5장12-15절 말씀까지 보겠습니다.
\"(신5:12)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신5: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신5:14)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 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신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안식일을 지키면 거룩하게 되어 진다던가 아니면 뒤에 따라 오는 뭔가가 있기 때문에 지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무엇인가를 해 준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애굽에서 종되었던 너희를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인도하신 일을 기억해라는 차원에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자 그런데 우리는 여기 이 말씀에 동의를 하고 \"아멘 아멘\" 수없이도 \"아멘\"을 하면서도 신자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잘 넘어지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란 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해 드리고 싶은데요? 뭘 해드리면 될까요? 교회를 지어 드릴까요? 교회를 대교회로 성장시킬까요? 아니면 세계적인 큰 부흥사가 되어 드릴까요?\" 인간은 이렇습니다. 처음 시작이 긍휼과 자비의 손길을 바라며 불쌍히 여겨 달라고 시작한 인간이라면 이 세상 떠날 때까지 우리는 긍휼과 자비를 바라는 인간으로서 성령의 인도함 속에서 그분의 가르침 속에서 예수에게까지 자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착각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락한 본성을 가진 불신자가 가진 것과 동일한 떳떳한 뭔가를 하고 스스로 하나님께 해드려 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의 본성입니다. 이 문제를 신약에서는 이렇게 다루고 있습니다.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마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마7: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주여 주여\" 하며 오는데 예수님께서는 \"너는 아니다 너는 아니야\" 할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모르는데 자기들은 안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으니 웃기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장난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너는 아니다\"고 하는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들의 행위가 예수님의 말의 원리와 근거를 가지고 했느냐, 아니면 예수님의 말의 원리와 근거를 빼버리고 했느냐가 기준인 것입니다. 이런 근거가 예수님이 \"너는 아니야\"라고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은 자기과시를 위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덕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 성경의 끝없는 주장입니다. 자 이렇게 말씀을 드렸으니 이제 오늘 본문에 왜 예수님께서 \"명절(초막절) 끝날 곧 큰 날에 외쳐 누구든지 목이 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라고 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십니까? 초막절의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는 존재가 누구냐? 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떳떳하게 율법을 지켜 하나님 앞에서 초막절을 지키고 있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찬물을 퍼붓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인간들아 내게로 와서 마시는 자만이 시원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긍휼과 자비만이 너희의 목마름을 영원히 해결하리라는 것입니다. 이 길 밖에 인간은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나의 신앙생활이 나 자신의 떳떳함을 세우기 위함인지 아니면, 예수님의 믿는 자로서의 삶인지 점검합시다.
\"(요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