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강 요 8:1-11절 강해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요한복음8:1-11 /
오늘은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는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와서 세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고 하면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이러한 질문을 한 것은 고소할 꺼리를 찾기 위한 시험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원가를 쓰신 후 일어나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죄 없는 자가가 먼저 돌로 치라\" 그리고 또 다시 몸을 굽혀 뭔가를 쓰셨습니다. 그러자 그 곳에 돌을 들고 간음한 이 여인을 돌로 치기 위해 몰려 왔던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아 나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성전을 빠져나가고 예수님과 그 여인만 남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하던 자가 없느냐\" \"없나이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법치 말라\"고 하시며 그 여인을 돌려보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 속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예수님께 데려와 \"이런 여자는 모세의 율법대로 하면 돌로 쳐야 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말하시겠습니까?\" 질문하여 \"돌로 치지 말라\"하면 모세의 율법을 하찮게 여기는 자로 취급하여 고소하거나, 아니면 \"돌로 치라\"하면 평소 그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전혀 상관없는 헛소리하는 자라하여 공회에 고소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심은 그 동안 예수님 자신이 공생애 동안 외치셨던 하나님의 사랑도 세우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시한 모세의 율법을 통한 공의도 동시에 세웠던 것입니다. 분명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은 모세 율법대로 하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자입니다. 철저히 심판 받아 마땅한 자입니다. 그래서 분개하고 달려들어 돌로 치려하는 자들에게 \"돌로 치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칠 수 있는 자의 자격은 \"죄없는 자\" 였습니다. 이 땅에 죄없는 자가 있습니까?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가책을 입은 자들이 자리을 떠나고 예수님과 여인만 남아 결코 죄인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용서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세웠던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 사건은 단순히 예수님의 지혜로운 대답을 통해 공회에 고소 당하지 않게 된 예수님의 지혜를 소개하자는 것인가요? 그 정도는 아니겠지요? 아니면 예수님의 지혜로운 대답을 통해 율법에서 요구하는 간음자에 대한 공의로운 처벌도 만족시키고, 간음한 여인을 용서해 주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만족시키기 위해 오신 예수님 얘기를 하고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요한 복음 8장의 이 사건이 이 정도를 이야기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 12절 말씀 이후부터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고 자기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겠습니까? 잘 보십시오. 만약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 온 여자를 처벌하는 얘기가 예수님의 지혜나 아니면 공의와 사랑을 만족시키는 예수님을 소개하기 위한 것이라면 다음에 나오는 예수님 자신이 세상의 빛이기 때문에 나를 따르면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와 서로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연결되게 이야기가 되어야만 앞에 나온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의 사건에서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의 의미가 깊어지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오늘 본문 1-11절의 이 사건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말씀일까요?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목사님 가정에 아이가 평소 교회를 잘 다니며 헌금도 주면 꼬박꼬박 헌금도 하고 친구도 교회 인도 해 오고, 성경 퀴즈 대회를 하면 1 등을 도맡아하고, 찬송가 대회를 해도 1등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평소 부모님 말씀도 잘듣어 모범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에 친구를 대려 왔는데 그 친구는 도벽이 있어서 남의 물건을 슬쩍 잘하는 아이 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슬쩍 남의 물건을 도둑질을 하는 것을 목격하고 깜짝 놀랬습니다. 어찌 교회에 와서 저를 수가 그래서 그 아이의 도둑질 한 것을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은 딴 것이 아니라 목사님의 아들이 자신을 평가하기를 자기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고 생각하고서 당당히 그 아이의 죄를 들추어 정죄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이야기가 바로 오늘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의 사건을 통해 보여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면 자신들은 당당히 율법을 준수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평소 간음하지 않았고, 도둑질하지 않았고, 살인하지 않았고, 다른 신 앞에 가서 절하지 않았고, 십일조 안 때먹고, 안식일 꼬박꼬박 지켰고, 교회 충성했고, 싸움 안했고, 등등의 것으로 자신을 치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당당히 끌고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얼마나 하나님께 죄없는 자같이 살고 있는 가도 확인도 하고, 자기들의 눈에 까시역활하던 못된 예수도 공회에 고소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삐딱하게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렇게 말씀하심은 \'이 세상에 드러난 죄를 지은 이 여인만 죄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 세상에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죄없는 자가 없느니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입니다. 지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것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놓칠 수 있는 부분인 것입니다. 우리는 늘 주일날 교회에 와서 예배도 하고, 성경도 공부하고, 기도도 하고, 구제도하고, 금식도 하니 우리는 괜찮은 신자이다. 이러는 자들이 있습니다. 아니면 우리는 제대로 복음을 알았고 복음을 모르는 자 때문에 고난의 길을 가고 있는 자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께 할말이 있는 자들이다. 우리는 괜찮다. 이것은 큰 과오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은 마치 불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 그렇습니까? 보십시오. 불신자들은 자신들이 좀더 다른 사람들보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면 자기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TV 뉴스에 보도된 막가파 일당들이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니던 단란 주점 여주인을 죽이고 암매장했다는 뉴스를 듣고 치를 떨며 말합니다. \"저 자식들 완전히 맛갔구먼\"그럽니다. 그러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 하는 말 \"그래도 나는 살인을 안했어 그러니 나는 좀 괜찮은 사람이야\"이럽니다. 유교하는 사람들이 이 뉴스를 보았다면 뭐라 하겠습니까? \"저 못돼먹은 인간들 저놈들은 인간이야 인간이라면 저런 짓을 안 할거야\" 그러면서 자기들은 부모를 잘 섬기고, 친지 어른을 잘 모시고, 친구들과 의리 있게 지내고 있으니 자신들은 인간으로서 괜찮은 인간으로 여깁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있는 크나큰 문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드러난 죄를 보고 펄펄 뛰고 \'저 죽일 놈 살릴 놈\'하고 있는 자신에게 드러나지 않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막가파같은 인생을 살게되면 자기도 막가파처럼 막가버리게 되어 있는 죄악덩어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라고 하실 때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돌로 치기 위해 온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고 어른으로부터 젊은이에 이르기까지 하나씩 하나씩 자리를 떠났던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 밝히고 싶은 것이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어느 누구도 죄 없다고 하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율법을 받았다고 하는 인간들도 죄인이요. 지금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도 죄인이라\" 는 것입니다. 곧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시편의 말씀과 같습니다. 자 그러면 이와 비슷한 실수를 한 사람을 성경을 통해 찾아봅시다. 바로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나단에게 책망 받은 다윗입니다. 사무엘하12장1-7절 이후로 보시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삼하12:1)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와서 저에게 이르되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니 (삼하12:2) 그 부한 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삼하12:3) 가난한 자는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저와 저의 자식과 함께 있어 자라며 저의 먹는 것을 먹으며 저의 잔에서 마시며 저의 품에 누우므로 저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삼하12:4)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삼하12:5) 다윗이 그 사람을 크게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삼하12:6) 저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사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삼하12: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나단의 지적은 이것입니다. \"당신이 우리아의 아내 바세바를 범하여 임신을 하게 하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우리아를 적진에 보내 죽인 것은 마치 어느 못된 부자가 자기 집에 많은 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난한 집에 있는 새끼 양 한 마리를 잡은 파렴치 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이 지적은 단순히 다윗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못된 인간이라는 정도가 아닙니다. 다윗은 평소에 가난한자를 돌아 보았기 때문에 다윗 자신은 철저히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가진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세바를 범하고 우리아 장군을 적진에 보내고 죽이는 죄를 짓고 난 뒤에 나단이 나타나 이 예를 던 것은 바로 다윗 자신이 평소에 하나님의 긍휼을 좋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피할 수 없는 죄인이요, 회개할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긍휼을 사랑을 말했고 실천했던 자입니다. 그러나 바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이는 사건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51: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 하소서 (시51: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시51:3)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시51:4) 내가 주께만 범죄 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시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다윗 자신이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베풀 때는 죄인이 아니고 안 베풀었을 때 죄인이다 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윗은 깨달은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긍휼을 좋아하던 안 좋아하던 날 때부터 회개해야하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이 그런 것입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만 죄인인줄 알고 있는 인간이 이 세상에 허다합니다. 교회밖에 있는 인간들은 물론입니다. 그리고 더욱 문제는 오늘날 교회 나오는 사람들까지도 이런 실수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누가 죄인인가?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러면 어쩌자는 것입니까? 영생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을 세워두고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은 어디에 있느냐 너를 정죄하던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자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결국 인간의 영생은 정죄하실 분이 용서하시고 더 이상 정죄하지 않겠다는 일이 벌어지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인 죄인의 노력 여하에 있지 않음을 우리는 또다시 절감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8장 12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요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누가 죄인입니까?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만 죄인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을 때 양심에 가책을 입은 자가 죄인입니까? 아닙니다. 그곳에 있었던 자나 지금 이 성경을 읽고 이 사건을 얘기하고 듣는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인 너희가 지키고 있는 율법을 지키겠다고 노력하는 자가 영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드러난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이라고 해서 영생이 없는 것도 아니라, 진정 이 세상의 빛되는 예수님 자신을 따르는 자가 바로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길밖에 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