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강 요 8:12-15절 강해

어두움과 빛


요한복음8:12-15 /
오늘 본문은 지난 주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의 사건이 있은 후 예수님께서 이어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않게 되며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고 합니다. 이 말씀은 지난 주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의 사건과 연관을 가지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누가 어두움에 있느냐?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자만 어둠에 있는가? 아니다 였습니다. 그럼 누구냐? 그 여자를 잡아온 자들이나 현재 율법을 잘 지킨다 고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종교지도자 모두가 어두움에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현재 자기의 처한 자리에서 드러난 죄만 짓지 않고 있을 뿐이지 인간은 날 때부터 악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시 자기 노력으로 율법을 지키며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종교적으로 좀 괜찮다 고하던 이들은 이 말씀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잘 지키고 있고, 율법을 하나님께 받았으니 어두움의 자녀와는 상관없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들은 율법을 하나님께 받았고 지금 잘 지키고 있기 때문에 빛에 거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지키고 있다고 해서 빛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는 누가 빛에 거하는 자인가? 를 말씀하십니다. 오직 예수님을 따르는 자에 한해서 생명의 빛을 얻고 빛에 거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까지 이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봐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두움과 빛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다시 생각해 볼 것은 예수님께서 왜 자신을 빛이라고 하고 있고 자신을 따르지 않는 자를 어두움이라고 하고 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빛과 어두움의 일반적인 개념에서 출발해 보아야 합니다. 빛은 어떻습니까? 일반적으로 분별을 하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두우면 분별할 수 없다는 개념이 먼저 떠오릅니다. 빛이 있으면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막다른 골목인지 어디가 웅덩이이고 어디가 마른땅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두우면 분간할 수 없습니다. 빛이 있으면 분간할 수 있지만 어두우면 할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은 어두움이 무엇이며 인간이 어찌해서 어두움에 있는지를 알리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자신이 처한 삶의 현장에서 하고 있는 짓거리가 얼마나 죄악 투성이인지,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하나님과 동떨어진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욕심투성이의 기도를 하고 있으며, 얼마나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기 야심을 이루려고 하고 있는가를 밝혀 주시는 빛으로 계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랍니다. 이 사실을 절감했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누굽니까? 바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기 전에 고백하기를 \"나는 죄인 중에 괴수\"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 갈수록 자신이 보였던 것입니다. 자신이 터득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빛이시기 때문에 자기를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원효대사가 먼 여행을 하게 되었을 때 해가져서 동굴에서 목이 말라 손에 잡히는 것으로 물을 먹었는데 나중에 달빛에 비쳐보니 그것이 해골바가지 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빛이 없으면 모릅니다. 어둠 속에서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당연한 줄 알고 합니다. 그것을 박박 우겨 최고의 가치와 최고의 선으로 생각합니다. 인간은 모두가 이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과 만나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말한다면 예수를 믿는 사람은 빛되신 예수님께서 성도에게 비추고 있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잘못된 죄인 중에 괴수 같은 자신을 알게 되어 \'주님 나는 선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죄인이요, 회개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군요. 주여, 도와주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불신자는 비추는 빛이 자기의 몰골을 비추니 보기 싫어서 그 빛을 끌려고 덤벼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게 된 것이며, 오늘날에는 빛의 자녀들이 빛 되신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으니 자기들이 탈로 나니 죽이려 덤벼드는 것입니다. 마치 도둑에게 빛을 비추면 비추는 조명을 부셔 버릴려고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의 모습을 보여 주기 싫은 것입니다.
분명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으로 오셔서 인간의 잘못된 것을 비추어 들추어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그것을 고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인간이 자기의 죄인 된 모습을 보여 주면 안 고친다는 것입니다. 아니 차라리 못 고친다 고하는 것이 더 맞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기독교를 아셔야 합니다. 인간에게 예수를 아무리 설명하고 자기들의 죄를 지적하고 설득한다고 해서 인간이 변하지 않는 것이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성도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전해야 하느냐? 왜 십자가를 전해야 하고 예수님 자녀로서 선한 행실과 사랑을 베풀어야 하느냐?\' 바로 이렇게 전하는 이유를 마치 불신자를 신자 만들기 위한 작업으로 착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빛 되신 예수님을 소개하는 이유는 그들을 설득하는 작업도 아니요, 안 믿을 인간을 믿도록 기회를 주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철저히 이 세상이 어두움 자체이기 때문에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못 알아먹고 예수님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선한 행실과 사랑을 통해 그들을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이 어두운 세상 속에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가 침투해 들어오므로 살길이 일었났음을 비추기 위해서 인 것입니다. 결국 기독교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얼마나 어둠을 좋아하고 어둠 자체만을 위해 살아가는가를 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 되신 예수님께서 \"너희들로는 해결되지 않으니 내가 등장했다.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세상의 희망이었다는 것입니다.

13절 말씀 이후를 보면 이렇게 어둠에 있는 이들이 자기 정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요8:13) 바리새인들이 가로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거 하니 네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도다.(요8: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 하여도 내 증거가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앎이어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증거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곧 이들이 어둠이라고 자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증거가 믿어지지 않을 수 밖예요. 어두움에 있는 이들은 어둠의 사고에서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상반된 이야기만 잔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예수님께서는 이미 예고했던 것입니다. 빛을 가진 자와 어두움에 있는 자들이 한 집에 있을 때 아버지와 아들이 싸우게 되고, 어머니와 딸이 싸우게 되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싸우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안 싸울 수 없는 것입니다. 빛과 어두움이 썩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순한 남녀가 만난다 할지라도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라면 싸움이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네 말이 어찌 맞는 말인가? 어찌 네 말이 맞는 말인가?\"라고 말입니다.
지금 13절에서 예수님만 따르는 길만이 생명의 빛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이 것이 바리새인들의 못 마땅한 점인 것입니다. 어찌 그런가 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지켜온 율법 이것을 꾸준히 지켜 왔고 착한 행실을 쌓아 왔는데 어찌 내가 생명의 빛이 없는가? 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빛이 있기 때문에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생은 자기들의 차지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아니라고 하니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결국 어두움에 있다는 것은 윤리와 도덕과 종교로 자기를 치장한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빛은 윤리나 도덕이나 종교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자 그런 예를 성경을 통해 봅시다. 누가복음 18장18-27절 말씀을 보면 어떤 관원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때 예수님께서는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고 하시며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관원은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관원은 큰 부자였기에 이 말을 듣고 심히 근심했다고 합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보시고 하시는 말씀이 \"(눅18:24)...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눅18:25)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듣고 있던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러면 \"...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라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눅18:27)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얼른 들어면 관원이 \"영생을 어떻게 얻습니까?\" 에 대한 답으로 \"십계명들을 지키고 추가로 가진 재산을 다 팔고 예수님을 따르면 영생이 주어지는구나! 그런데 관원이 재물 많은 부자라서 그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지 못하고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기에 영생을 못 얻었구나\" 로 착각하기 싶습니다. 이것은 큰 착각일 뿐 아니라 바로 그런 생각을 하는 자가 어둠에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이 관원의 질문에 대해 먼저 십계명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분명 영생은 십계명대로 다 지키는 인간이 되면 분명 영생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십계명을 다 지킬 인간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관원은 \"나는 어릴 때부터 다 지켰다\"고 합니다. 기가 찰 노릇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진짜 십계명의 정신인 사랑을 실천할 것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합니다. 그러자 부자 관원은 근심한 것입니다. 이것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진짜 십계명을 지키지도 않았으면서 지킨 것같이 살았습니다. 부자는 문자적인 율법을 지키면 영생을 얻어놓았는 줄 알았습니다. 바로 이런 자가 어둠에 있는 자 입니다. 그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싶다며, 다음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할 수 있다\"고 단언 하셨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관원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인간이 어두움이 것입니다. 이것이 무너지지 않으면 오늘 본문의 바리새인 같은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네 증거는 참되지 못하다\"
또한 어둠에 있는 자들은 16절 전반절에 보면 \" (요8: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육체로 판단하는 자들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밖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목수의 아들 예수로밖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모든 기준과 보는 바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던 5병2어의 표적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신18:15)를 예언한 신명기의 말씀을 이루려 오신 분임을 알리기 위해 보여 준 표적이었는데 어둠에 있는 인간들은 그것을 자기들의 육체의 눈으로 보니 인간들의 배를 채워 주로 온 메시야, 정치적인 메시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두움에 속한 인간들은 이렇게 밖에 판단하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정체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땅의 기준에서 예수님을 보고 땅의 사고로 예수님을 접근하는 자들이 어두움 인 것입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시는 분인 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추구하는 바가 땅에 것이 아닌 생명에 관한 생명의 빛을 위한 분이라는 사실을 아는 자만이 진짜 빛에 있는 자들입니다. 진짜 세상 속에서 빛을 비추고 있는 자들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분명 예수님에 의해 우리의 모습을 조명 받은 자들이라면 우리는 바울과 같은 고백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주여 도와주십시오.\" 라고 하면서 어두움의 자식들과 같이 않는 것을 추구할 것이 뻔합니다. 우리 자신들을 돌아 봐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