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강 요 10:7-18절 강해

생명


요한복음10:7-18 /
요한복음 10장 앞부분에서 제 양은 제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나가는 비유를 예수님께서 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이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 비유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대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곧 유대인들의 치명적인 오해는 자기들은 하나님에 의해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 메시야가 와서 하는 일은 이방인들과 현실적으로 구별된 사람으로 드러나게 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목자가 제 양만을 우리 안에서 불러내 가는 비유가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 속에는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면 다 구원된다는 사고방식을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혈통적 이스라엘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으면 구원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하시면서 이 문을 통과하지 않는 인간은 구원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비유 속에서 보면 목자는 특정 자기 양만을 부르려 매일 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양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목소리를 듣고 따라 나섭니다. 이 사실에서도 특정 양만이 \'우리 안\'에서 불려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제 목자를 따라 나가는 양은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해서 생긴 것입니까? 양이 \"이제부터 저 목자를 내 주인 삼겠다\"해서 어떤 목자가 자기 주인이 된 것이 아니라, 주인이 양을 선택하여 자기것 만들어 그 목자와 양과 관계를 맺고 난 뒤 \'우리\'에 집어넣고 불러내 가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비유하신 내용도 그와 같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구원의 대상인가? 유대인이면 모두 구원의 대상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결국 구약 성경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언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온 사고 방식인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흐르고 있는 사고 방식은 아브라함부터 예수님에게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택한 자기백성을 끝까지 은혜로 구원해 내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은혜의 흔적을 남겨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의 흔적을 거부하고 다른 신을 좇고 가나안화되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잃어버린 약속을 기억할 것을 지적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돌이키지 않으므로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게 하거나 죽게 하시는 일이 일어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하나님께서는 보여 주신 것이 있습니다. 죽지 않게 하시고,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은혜로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남는 자들과 잡혀갔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 남아 오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것을 구약성경에서 남은 자 사상이라고 합니다. 곧 남은 자는 자기들이 잘나서 남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남은 자를 구원하신 것은 이들을 통해 다 죽일 수밖에 없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남겨놓은 것은 은혜가 베풀어졌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자 봐라 지금 남아 구원된 인간은 누구인가? 눈을 똑바로 뜨고 봐라. 유대인들이 아니냐? 그러니 결론적으로 유대인이 잘나서 이렇게 구원된 것이다\" 이러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사랑 받을만한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틀려도 너무 틀렸던 것입니다.
지금 구약에서 남은 자들이 살아남게 된 것은 자기들의 우수함과 전혀 관계가 없었습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 였습니다.
예를 한 번 들을 봅시다. 짐승 키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키우는 짐승은 소, 양, 염소, 닭, 오리, 토끼 였습니다. 그런데 이 짐승들을 키우는 주변에는 사나운 호랑이와 늑대들이 우글거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짐승들이 잡혀 가 죽었습니다. 가만히 놓아두면 모든 짐승이 다 잡혀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가장 공격을 많이 받는 양의 우리를 지키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밤마다 양들은 거의 잡혀갔고 500마리 더 되는 양이 겨우 남은 것은 30마리 였습니다. 이렇게 남은 짐승의 입장에서 보면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남은 30마리 양들이 오해를 하여 우리가 특별나서 이렇게 살아남았다. 그러면 큰 오해를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런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이스라엘 민족을 뽑아 구원해 내고 남은 자를 통해 보여 주신 것은 특정한 민족을 구원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모든 타락한 인간을 이스라엘 민족을 뽑듯이 뽑고, 은혜로 남겼듯이 은혜로 구원하겠다는 것을 미리 보여 준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지금 우리도)이나 한결같이 모두가 다 은혜의 손길이 있어야만 살아남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본문 10절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 말씀 속에서 우리들이 관심을 가져야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생명을 운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곧 인간에게 생명이 제시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말씀은 \'지금 인간, 우리는 이미 생명을 가졌다\'는 것을 꾸지람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지금 인간이 확보해 놓은 부, 살아남게 하는 것, 인간을 유지시키는 것, 정신적인 것이던 물질적인 것이든 종교적인 것이든 그 어떠한 것도 예수님께서는 생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헌금을 많이 한 것, 전도를 많이 한 것, 교회 몇 개를 지은 것, 금식을 많이 한 것, 기도를 많이 한 것, 성경을 많이 잃은 것, 교인 수많이 확보한 것, 그 어떠한 것도 생명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생명은 인간이 그 무엇을 한 것에 딸려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생각했던 것에 있지 않는 것입니다. 이미 이 사실을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밝혀 주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먹을 것이 생명이라고 생각하고 먹을 것 달라고 할 때 만나를 내려 생명이 위에서 주어진다는 것 보여 주었습니다.(또한 자기들이 목말라하며 자기들의 생명은 물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물 없는 곳에서 3일 길을 헤매도록 하시고 난 뒤 쓴 물이 있는 곳으로 도착하게 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의하며 원망했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처 하나님은 모세에게 주변에 있는 나뭇가지를 꺽어넣게하시고 달게 하여 먹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는가하면 그들이 생각한 것은 무너뜨리기 위해서 입니다. 물이 생명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생명이 된다는 것을 세우시려는 것입니다.)
생명은 인간이 율법 지킴이나 노력과 정성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전도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은 외부에서 오신 분에 의해 주입되어야 합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에스겔 37:1-10절까지를 보겠습니다.
\"(겔37: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겔37:2)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겔37: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겔37: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겔37: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겔37: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37:7)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겔37: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겔37: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겔37:10)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여기 에스겔 37장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어떻게 뼈들이 붙고 죽은 뼈들이 생기를 얻게되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이 마른 뼈가 붙고 생기가 생기게 된 것은 선지자의 명령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말씀이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생명은 여호와의 말씀, 곧 하나님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살리고 있고 그들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군대가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오늘날 성도가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군대요. 하나님의 알아보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반응을 일으키고 살아가게 된 것은 외부에서 오신 생명 불어넣으시는 예수님에게 근거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을 굉장히 기분 나쁘게 하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를 부정하게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신자와 가짜 신자가 판정이 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하는 자는 예수님에 근거를 두려고 하지 않는 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양의 문으로 삼으려하지 않습니다. 자기 경험과 선배들의 경험으로 신자되려고 합니다. 이렇게 헌금하면 복이 있다더라. 이렇게 봉사하면 복이 온다더라. 이렇게 전도하면, 이렇게 기도하면 복이 내것이 된다더라. 이런 식으로 복이 있다고 하는 그 사실을 무너뜨리는 말씀이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복이다. 내가 풍성하게 하는 존재다. 내가 진짜 인간에게 의미 있는 생명이다. 너희가 가지고 있는 근거가 생명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명을 주려 오신 예수님은 이어서 11절에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합니다. 어떻게 선하신 가를 말하시기를 양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라고 합니다. 생명을 주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생명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목숨을 버리기까지 해서라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 주신 자들을 위해 죽기까지 하시는 선한 목자랍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선한 목자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눅15: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눅15:4)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눅15:5)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눅15: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이 비유에서 목자가 일백마리의 양 중에 한 마리를 잃어버리고 그 양을 찾기 위해 헤매다 그 양을 찾아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 벗과 이웃을 불러와 함께 잔치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목자에게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양에 대해 결코 잃어버렸다 할지라도 그것을 찾아 목자로서의 끝까지 자기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구원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를 다시 확실히 정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내가 하나님을 찾아 헤매는 작업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생명을 버리기까지 하면서 우리를 향한 생명 주시는 작업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신자입니다. 신자에게 생명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 이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봉사한 것이 생명이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헌금한 것이 생명이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금식하고, 기도한 것이 생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종교적 행사를 따른 것이 생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성경 읽은 것이 생명이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교회 나온 것이 생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율법을 준행 한 것이 생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생명은 나의 행한 행동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오직 저 초월적인 하늘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생명입니다. 이 사실을 좇아 예수님과 같은 사고로 생명이 행하셨던 봉사를 하시고 생명이 행하셨던 헌금을 하시고 생명이 행하셨던 금식과 기도를 하시고 생명이 행하셨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찬양+모음] 부활 찬양 메들리 (예수부활했으니 外)
    예수 부활했으니 할렐루야 만민 찬송하여라 할렐루야 천사들이 즐거워 할렐루야 기쁜 찬송부르네 할렐루야 대속하신 주예수 할렐루야 선한 싸움 이겼네 할렐루야 사망권세 이기고 할렐루야 하늘문을 여셨네 할렐루야 길과 진리 되신 주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부활 생명 되시니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흰 옷입은 천사 돌을 옮겼고 누우셨던 곳은 비어 있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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