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강 요 12:1-8절 강해

주님의 죽음을 준비한 자(주님과 함께 않은 자들)


요한복음 12:1-8
시편 144편 2-4절을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시144:2) 여호와는 나의 인자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는 자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내 백성을 내게 복종케 하시는 자시로다. (시144:3)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시144:4)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이 말씀에서 시편 기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인자, 요새, 산성, 건지는 자, 방패, 피난처\' 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신앙인이 얼마나 이 세상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쫓기는 신세가 되고 환영 해 주는 곳이 없었으면 여호와 하나님을 피난처로, 방패로, 건지는 자로, 산성으로, 요새로, 인자로 삼겠습니까? 정말 세상에서 버림 받아 본 신자만이 하나님이 자기 앞에 가장 큰 가치임을 알게 됩니다. 아직도 세상에 미련을 두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실감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이 \'신들러 리스트\' 라는 영화에서 나옵니다. 독일군 수용소에서 아이들을 군용차에 잡아 가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에서 아이들 중에 몇 명은 도무지 피할 곳이 없자 피신 장소를 화장실 똥통 안으로 삼고 그 곳에 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얼마나 피할 곳이 없었으면 그곳에 들어 갔겠습니까? 이는 곳 똥통 외에는 더 이상 안전하게 피할 곳이 없는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 세상에서 인생의 가치가 헛것이요, 그림자 같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존재를 알아주시고 생각해 주시는 분이 우리 주님 이시라는 것을 안 신자는 주님을 자신의 가장 안전한 피난처로 삼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의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럼 오늘의 본문을 한 번 정리 해 봅시다.

오늘 본문을 보니까 유월절 엿새 전에 죽은지 나흘 만에 소생한 나사로가 살고 있는 베다니 동네에 예수님을 위해 잔치가 벌어 졌습니다. 마르다는 일을 보고 있었고,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앉은자 중에 있었습니다. 이 때 마리아가 값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씻자 향유 냄새가 온 집에 가득했습니다. 이를 지켜본 제자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말하기를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 말을 되 받아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고 꾸지람을 했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소생한 나사로의 집에 가셔서 잔치를 하셨다는 것과 그 때가 유월절 엿새 전이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이야기입니다. 곧 이 일은 유월절의 주인공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로 죽은 인간에게 이와 같은 잔치가 벌어질 것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전에는 죽은 시체였다가 무덤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자가 예수님께서 살리시니 이렇게 살아서 예수님과 같이 앉아 잔치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상징적인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다음의 이야기 입니다. 잔치가 무르익고 있는 가운데 동생 마리아가 그 동안 애써 모은 값비싼 향유 나드 한 근을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발을 씻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의 나드 한 근의 가격은 돈으로 삼백 데나리온 정도 였습니다. 이것을 당시 돈으로 환산하면 노동자 1일 일당이 한 데나리온이니까 300데나리온 같으면 1년 임금에 해당되는 돈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노무자의 일당 약 5만원으로하여 계산 해보면 1천 5백만원에 해당되는 돈입니다. 적은 돈이 아니지요. 지금 마리아의 이같은 행동에 대해 가룟 유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핑계대며 비난을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저를 가만 두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이 같은 행동은 자신의 장사할 날을 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리아를 보십시오 그녀는 지금 에수님께 대해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의미를 두고 있는가 하면 자신이 그 동안 모은 1년 노동자의 임금에 해당되는 돈보다 예수님의 가치를 더 크게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난한 자를 핑계 삼아 돈을 가난한 자에게 주는 것이 더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아니 이것이 오늘날의 교회 안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 신자의 최고의 관심은 예수님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분의 죽음이 우리를 살렸고 그 분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의미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예수님께 관심 두지 않고 있듯이 오늘날의 교회도 주님께는 관심이 없어지고 자꾸 교회당 짓고, 교회당 유지하는데 관심을 너무 갖고 있더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마치 임대 교회하다 어느날 주인이 교회 비워 달라하면 교인들이 흩어지게 됩니다만 그러나 주님은 임대 교회 하나 없어지면 교회가 망하고 주님이 손해 보시는 것이 아닌데 인간들은 주님의 인도인줄 알고 다시 주님께 관심만 갖고 주님의 인도를 기다리면 되는데 마치 망한 것처럼 호들갑을 떱니다. 그러니 임대교회하는 목사들은 이런 일이 없게하기 위해 교회 부지를 억지로 몇억씩 빚내서 땅을 싸고 교회 짓기에 혈안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성공했다는 소리도 듣고 뭔가 했다는 뿌듯함도 가지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사들의 관심입니다. 그러다보면 신자가 가져야 할 진정 가치와 의미를 예수님께 두어야 하는데 그 관심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교인들 안 놓지기 위한 작전으로 교회 부지 구입, 교회당 짓기에 관심을 갖게 되어 버리니 이는 곧 가롯 유다와 같이 교회를 위한 답시고 예수님께 관심은 없는 자들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진정 예수님께서 의미를 두고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마리아를 통해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교회 땅 구입하는 것도 아니요, 교회당 짓는 것도 아닙니다. 부차적인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들을 살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임을 믿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일입니다.
또한 우리는 유월절 엿새전에 일어난 마리아의 이와 같은 행동은 현재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신자들에게도 굉장한 의미를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면에서 의미를 주고 있는가 하면 분명 신자는 처음부터 자신의 가진 것으로 의미를 두지 않기로 한 자들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서 3장7-9절 에서 \"(빌3:7) 그러나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이 말씀 속에서도 철저히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의미를 두지 않고 그리스도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기로 한자들입니다. 만약 신자들 중에 만약 자신이 똑똑하면 그것이 주님께 유익이 될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돕니다. 노래를 잘하는 것이 유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착각입니다. 돈이 많은 것이 주님께 도움이 될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착각입니다. 뭔가 이 세상에서 자신에게 유익을 주겄고 인정받는 부분이 있아고 해서 그것이 주님께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가하면 큰 착각이요 오해인 것입니다. 바울은 분명히 말했습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은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자가 신자 입니다.

마리아의 이같은 행동은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목사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라면 모무 그렇게 알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 곧 예수님이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가를 바로 안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가장 최고의 피난처로, 방패로, 나를 건지는 자로, 요새로, 인자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리아와 비슷한 행동을 한 여자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식사를 하고 있었을 때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집아 앉아계시는 예수님의 뒤로가서 그 발 곁에서서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떨로 씻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이 때에도 가룟 유다와 같은 인간이 등장하여 그 옥합을 깨뜨린 것을 꾸지람하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의 행동을 칭찬하며 그녀에게 네 죄사함을 얻었노라고 말하셨습니다.(누가복음 7장36-50절) 바로 이 여자는 그 동네의 창녀 였습니다. 그녀의 이와 같은 행동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비난하며 죄있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면서 예수님까지 비난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으로 볼 때 죄인된 그녀가 진정으로 세상의 눈총과 세상에서 버림받고 세상에서 가장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안 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을 한 것을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이와 같은 행동을 하신 것을 칭찬하고 계신 것을 잊어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있은 것을 자꾸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 마시고 살아가도록 합시다. 그리고 가룟 유다와 같이 가난한 자 핑계 대며 뭔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면되는 것 처럼 여기지 마시고 예수님을 믿는 일,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일 외에 더 이상 중요시 하지 맙시다. 진정 우리의 관심은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자는 성도들입니다. 마치 시편 144편에서 세상에서 가장 쫓기는 신세상 되어 본 사람 버림 받아 본 사람, 예수님 때문에 환란을 당한 사람, 이런 자만이 주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방패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찬양+모음] 부활 찬양 메들리 (예수부활했으니 外)
    예수 부활했으니 할렐루야 만민 찬송하여라 할렐루야 천사들이 즐거워 할렐루야 기쁜 찬송부르네 할렐루야 대속하신 주예수 할렐루야 선한 싸움 이겼네 할렐루야 사망권세 이기고 할렐루야 하늘문을 여셨네 할렐루야 길과 진리 되신 주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부활 생명 되시니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흰 옷입은 천사 돌을 옮겼고 누우셨던 곳은 비어 있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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