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강 요 12:12-19절 강해

나귀를 타신 예수님


요한복음12:12∼19

오늘의 이야기는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유월절 명절이면 다른 지방에서 예루살렘에 올라와 유월절을 지내게 됩니다. 이 때 찾아온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종려가지를 가지고 환영 퍼레이드를 벌렸습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라고 하면서 자기들이 입고 있던 옷을 땅에 깔고 예수님을 크게 환영 했습니다. 무리들의 이와 같은 행동은 전에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리신 표적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재미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모습이 초라한 어린 나귀를 만나 타고 오셨다는 내용입니다.
자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한 번 의문을 가져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리들이 예수님을 환영한 것이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낸 것을 듣고 지금 에수님을 환영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표적의 의미(부활은 예수님이요, 생명도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죽었던 살았던 상관없이 부활과 생명은 예수님에게 달려 있다는 것)를 이해하고 환영을 했겠습니까? 아니면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 내신 그 일을 듣고 보니 이만하면 자기들이 기다리던 메시야(정치적, 경제적 해결사로서의 왕)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습니까? 이들은 분명 \"호산나(지금 구원하소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이스라엘의 왕\" 이라고 하고 환영하고 있는 것은 후자쪽 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수 있는가하면 요한복음 18장에서 이들의 행동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18장 39-40절을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요18:39)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요18:40) 저희(유대인)가 또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러라.\"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잡혀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 때 빌라도는 유대인의 명절을 기해 죄 없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예수님을 풀어 줄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무리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바라바를 풀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릴만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원하는 바, 지금 압제하고 있는 로마를 단번에 대항하여 꺾어,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만들 것으로 생각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바나바는 로마와 대항하여 싸우다 잡혔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기는커녕 한 번도 싸우지도 않고 지금 잡혀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고 있으니 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 바나바를 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잘 보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은 분명히 처음에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 메시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도록 내버립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메시야가 아닙니까? 결코 아니지요. 예수님은 분명히 메시야 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와 예수님께서 나타내신 메시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현재 교회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척도를 얻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가짜 교회는 예수님께서 마치 지금 세상에서 자기들을 억압하는 자들을 없애주고 자기들의 소원과 자기 계획을 이루어 주는 해결사로 소개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가짜교회는 물질도 하나님도 동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이상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이용해서 세상에서 뿌리를 내리려는 듯이 물질을 더 요구만 합니다. 이것은 세상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교회는 지금 세상에 것을 포기하게하고 관심을 예수님의 나라에 관심을 두게합니다. 결코 진짜 교회는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고 좋아하도록 하지 않습니다. 가짜 교회는 마치 교회가 돈이 없으면 망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예수님을 믿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을 돈이 없으면 안되는 줄 착각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가 돈이 있어야 운영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인간들은 지금 교회를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고 계신다는 것을 못믿는 사탄적인 사고 방식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가짜교회는 마치 유대인들이 추구하는 것을 안해주는 예수님을 죽였듯이, 오늘날 가짜 교회는 진짜교회가 부르짓는 세상에 것 포기하고 예수님만 따르다 죽자(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지자)고 하면 자기들이 추구하는 것과 다르다고 하여 진짜교회를 핍박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환영하고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려 냈으니 그 능력으로 압제 당하는 로마를 쳐서 이기는 일을 위해 오신 유대인의 왕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일을 위해 온 메시야가 아니라는 것을 메시지화하기 위해 오늘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실 때 나귀새끼를 타고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1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12:15) 이는 기록된바 시온 딸아 두려워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이 말씀은 스가랴9장9절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한 번 찾아봅시다. \"(슥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슥9: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그런데 여기 스가랴 9장에서 말씀하는 분위기를 잘 보십시오. 9절에서 왕으로 오시는 분은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오셔서 하시는 일이 이상합니다. 10절에 보시면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겠다\" 고 합니다. 왜 왕이 와서 이런 일을 하십니까? 에브라임과 예루살렘을 유지하기 위해 있어야할 무기가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왕이 와서 왜 이런 전쟁 무기들을 없애고 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처음부터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 때 세상의 힘이 되는 말이나 병거나 활을 가지고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 백성을 적에게서부터 유지하게 할 때도 하나님의 힘으로 했지 전쟁용 무기로 유지 시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쟁용 무기를 의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힘을 무시하고 불신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예루살렘과 에브라임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전쟁용 무기를 의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왕으로 오시는 분이 전쟁 무기도 아니 어린 나귀를 타고 오셔서 예루살렘과 에브라임의 불신앙을 책망하기 위해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과 전쟁하는 활을 끊으시는 분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말씀은 당시 예루살렘과 에브라임이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가를 잘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직 의지하고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전쟁용 무기인 병거(전차), 말, 화살이었습니다. 이것으로 시온을 건설할 수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시온을 위해 왕을 보내셔서 \"시온은 세상적인 힘으로 건설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기위해\" 전혀 전쟁용도 아니요 다 자란 나귀도 아닌 어린 나귀, 나귀새끼를 타고 오시는 것입니다. 이같은 행동을 스가랴는 겸손이라고 합니다. 결국 겸손이라는 것은 얌전뜨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알아도 모르는체 하면서 자기 체면을 낮추는 것도 아닙니다. 철저히 세상적인 힘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힘을 의존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스가랴9장에서 왕이 나귀새끼를 타고 오셔서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과 활을 끊으심으로 말미암아 물리적인, 세상적인 힘으로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 요한복음 12장에서 예수님께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올라 오신 것도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물리적인, 정치적인, 경제적인 회복으로 하나님께서 만들려는 나라가 주어질 것이라는 것, 이것을 버려라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에서 유대인들이 호산나 - 지금 구원하소서 - 라고 외친 것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죄에서의 구원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자기들이 처해 있는 환경개선을 요구하는 구원의 외침 입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이것은 기독교 비슷한 종교에 불과 합니다. 만약 우리 교회가 그렇다면 이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회개해야 겠지요. 오늘 유대인들의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자기들의 처지와 환경을 변화시켜주는 해결사, 세상적인 것을 확보해주는 종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영생의 나라를 만들어 낼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만약 이 사실을 거부하는 인간이 있다면 예수님은 그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2장31절에서 \"(요12:31)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라고 말씀을 하시고 계신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고, 이 세상의 임금들이 쪽겨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과 이세상 임금이 추구하는 것이 철저히 예수님과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세상은 성능좋은 무기의 많음에 있다고 생각하고, 좋은 세상은 많은 물질을 확보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전쟁용 무기로 영생의 나라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귀새끼로 하겠다는 말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나귀 새끼의 등장은 전쟁 방식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힘으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곧 자신이 죽는 방식으로 이루어 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까지도 예수님의 이와 같은 행동을 전혀 이해 하지 못했다고 1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언제 그들이 이해 했는가 하면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이는 곧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일을 통해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12장 23-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요1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결국 예수님께서 만들어 내실 영생은 예수님 자신의 죽음의 결과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가 진짜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도데체 우리가 진짜 교회 입니까 가짜 교회입니까 자신을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오늘 우리가 유대인들이 바라는 것을 바라며 예수님을 향해 \"지금 구원하소서\"하고 있다면 우리는 가짜입니다.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할 바는 예수님께만 영생의 나라가 있는 줄 알고 예수님께 이래 달라 저래 달라가 아니라, 상한 마음으로 늘 자기 욕구 체움을 버리고, 예수님의 죽음이 영생의 나라를 만들어 냈음을 믿는 마음으로 은혜의 흔적을 남기며 순종하며 살아 갑시다.

찬양+모음] 부활 찬양 메들리 (예수부활했으니 外)
    예수 부활했으니 할렐루야 만민 찬송하여라 할렐루야 천사들이 즐거워 할렐루야 기쁜 찬송부르네 할렐루야 대속하신 주예수 할렐루야 선한 싸움 이겼네 할렐루야 사망권세 이기고 할렐루야 하늘문을 여셨네 할렐루야 길과 진리 되신 주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부활 생명 되시니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흰 옷입은 천사 돌을 옮겼고 누우셨던 곳은 비어 있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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