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강 요 15:9-16절 강해

예수님의 친구

요한복음15:9-16

참포도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참포도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인간이 되려면 예수님과 상관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일을 누가 하시는가? 그것을 보혜사 성령께서 하신 답니다. 결국 보혜사 성령을 통해 예수님의 열매를 맺고 살 수 있는 인간은 아무나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포도나무의 가지가 되어 붙겠다고 해서 가지에 붙을 수 없듯이 말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길은 인간에게 안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열매 맺을 수 있는 인간 역시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6절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15:16) 신자가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과 같은 열매를 맺고 살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하신 조치가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선택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고 계시는가 하면 인간의 자랑을 무색케하기 위해서 입니다. 내가 목숨을 받쳤다던가 내가 봉사를 했다던가 내가 노력과 정성으로 예수님을 사랑했다던가 하는 것은 하나님께 안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의 가진 것과 상관없이 선택이라는 것을 동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창녀나 살인 강도나 병신들 가난뱅이나 무식한 인간들을 선택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원하는 열매는 스스로 못 얻는 대표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선택되어 바리새인과 서리관 보다 더 빨리 천국 백성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들 스스로 할 수 없고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인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9절 이후에 하신 말씀들 모두가 결국 신자들 스스로 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안에 들어 온 자들에게 요청되어 지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곧 이와 같은 요청들은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자기를 버린 사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사랑을 가르칩니다. 예수님께로 인도를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로 갈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10절 말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15:9-10)
이 말씀은 쉽게 말하자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셔서 한 번도 함께 안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처럼 예수님께서도 선택한 자들을 사랑하셔서 끝까지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보혜사 성령을 보내셔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아직 보혜사 성령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이미 보혜사 성령이 와 계십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다고요.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게 된 것을 보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제자들과 신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합니다. 곧 이 말은 네 마음대로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제부터는 보혜사 성령이 가르쳐주고 인도하고 생각나게 하는 것, 성경의 말씀을 좇아가라는 것입니다. 이게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계명(율법)을 지켜(율법을 완성) 아버지를 사랑하신다는 표시를 했습니다. 그처럼 신자들에게도 예수님의 계명(12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을 지키면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합니다. 지금 이와 같은 일이 어떻게 일어 날 수 있습니까? 나를 포기하고 나를 의지하지 않을 때 보혜사 성령에 의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때 신자 일어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쁨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요.(요15:11) 이 기쁨은 내가 만들어 내는 기쁨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기쁨도 아닙니다. 이 기쁨은 내가 애써서 누리는 기쁨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기쁨입니다. 그러니 성령을 통해 이 기쁨은 신자에게 전달되는 현상으로 주어집니다. \"항상 기뻐하라\" 고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말했던 바울의 그 기쁨 역시 없는 기쁨을 만들어 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기쁘지 않는데 기뻐하는 척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여기서 기쁨 역시 세상에서 누릴 수 없는 기쁨이 우리에게 주어 졌는데, 내가 아닌 예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기뻐 아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처지를 당하고 있다할지라도 말입니다. 마치 요한복음 14장에서 평안을 주노니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않다고 할 때 그 때의 평안과 같은 종류인 것입니다. 철저히 보혜사 성령에 의해 신자는 아버지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곧 아버지 안에 거한 사람이 되었다는 말은 예수님 안에 거한 사람이요 예수님 안에 거하고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입니까? 인간인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다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보내신 보혜사가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한게 없습니다. 16절에서 보다시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15:16전) 라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선택이 이와 같은 일을 준비했고 벌어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신자에게 무엇을 요구하겠습니까?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계명은 12절 말씀에서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15:12) 예수님의 계명은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신자를 사랑하신 것 같이 신자끼리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것을 보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줄 알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듣고 가면 \"아 또 우리에게 짐이 주어지는구나 성도끼리 서로 사랑해야 하는 짐\" 이러고 어려워할 사람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어려운 줄 아십니다. 왜냐하면 신자 스스로가 처음부터 예수님을 사랑할 수 없었고 예수님과 같은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16절 후반부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15:16) 결국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어떻다는 것을 한시라도 놓치지 낳고 계십니다. 여기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던지 구하라고 할 때는 인간들이 예수님과 같은 열매, 예수님 사랑하려는 인간 되지 못할 것을 아시고 처음부터 도움이 되셨던 분이 끝까지 도움을 주시는 분으로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를 때 신자는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고 예수님의 전부를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세상을 향해 회개를 외쳤는가? 왜 예수님은 세상에서 죽음으로 끝을 맺을 수밖에 없었는가? 이것을 알 때 신자 자신도 세상에서 미움을 당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고 예수님과 같은 길을 가며 예수님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를 때 예수님의 명하시는 것을 행하는 사람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런 신자를 14절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15:14-15) 곧 예수님의 명령인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이 되게 만들어서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친구\"로 삼겠다고 합니다. 참 신자의 운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의 도움 가운데 살아갈 때 기쁨이요 예수님의 마음에 드는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종으로 대우하지 않겠답니다. 왜냐하면 종은 주인이 무엇을 하며 왜 고난을 받아야 하며 뭔가 모를 지 모르겠지만 친구로 삼아 아버지께 들은 것을 낱낱이 알게 하여 예수님을 결국을 사랑하는 자로 만들어 놓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계획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구합시다. 그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곧 구한다는 것은 이것이 우리가 할 남은 일이기 때문에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아버지와 함께 하기 위해 할 일이 없었듯이 우리의 손에 달려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친구는 처음부터 예수님의 도움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되기 위해서도 우리는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 속에서 이제 주님을 알고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을 가르쳐 주셨으면 우리 형제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예수님의 친구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진답니다. 그것은 세상이 이런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특징이 있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자존심으로 살아갑니다. 곧 예수님을 사랑하고 사는 사람은 그 반대 인 것입니다. 자기의 자존심을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살아갑니다. 회개하는 인간이요. 이 세상을 버린 자요 오직 예수님의 나라만 좋아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미워한 세상이 예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좋아 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18-20절까지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요15:18-20)
예수님의 친구가 가야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오게하신다고 합니까?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신자의 처음이 예수님에게서 시작했다면 마지막 역시 예수님에게서 끝을 맺을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니 기도해야하고 그러니 보혜사 성령이 오셔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로서 주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 내 안에 이루어져 있는 현재의 천국을 예수님 사랑으로 보입니다. 이를 때 다가오는 세상의 핍박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시고 이것이 예수님을 따라가게 하시는 성령의 인도인줄 알고 묵묵히 살아갑시다.

찬양+모음] 부활 찬양 메들리 (예수부활했으니 外)
    예수 부활했으니 할렐루야 만민 찬송하여라 할렐루야 천사들이 즐거워 할렐루야 기쁜 찬송부르네 할렐루야 대속하신 주예수 할렐루야 선한 싸움 이겼네 할렐루야 사망권세 이기고 할렐루야 하늘문을 여셨네 할렐루야 길과 진리 되신 주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부활 생명 되시니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흰 옷입은 천사 돌을 옮겼고 누우셨던 곳은 비어 있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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