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강 요 18:38-40절 강해


바라바를 주시오


요한복음18:38-40

현대인들이 하루를 살아가더라도 모든 것을 만족하고 있다면 이상세계를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려운 현실을 피해 보려고 남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청소년들이나 사업에 실패하거나 직장에서 강한 스트레스를 받아 더 이상 현실에서 살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마는 이유는 현실의 괴로움을 제거시켜 줄만한 것이 더 이상 주위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피하여 그런 괴로움이 없는 세계 속에서 살고 싶은 것입니다. 자살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최종적으로 취하는 행동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지금 현실을 만족하지 못하면서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는 아직도 자기들의 삶의 현장에서 자기를 도와 줄 수 있는 존재를 발견했기 때문에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걸인들의 인생이 얼마나 괴롭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체면을 버리고 손을 내미는 것은 누군가가 자기를 도와준다는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구걸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느 누구나 한 가닥의 희망을 주는 존재가 자기에게 있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특정인에게 한 가닥의 희망을 잃게되면 또 다른 이들에게 기대를 가져보는 것입니다.
바로 유대인들이 현실 속에서 그랬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기적들을 일으켰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왕의 신하의 아들이 죽어 갈 때 먼 거리에서 살려주신 일과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고 38년 된 병자를 고치고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는 기적 등을 보였습니다. 얼마나 유대인들이 그렇게 바라던 놀라운 일이요 이만한 능력을 소유한 분이라면 자기들이 바라는 메시야임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와 같은 기적을 일으켰지만 인간들의 욕망과 자기 소원을 이루어 주시려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 때에 특사로 풀어줄 사람을 예수님과 바라바 중에서 누구를 택할 것인가? 라고 물었을 때 바라바를 택한 것입니다. 당시 바라바는 열심당원의 한 계파에 속해 있었나 봅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이 바라는 보이는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 오는 메시야를 기다린 그런 무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유대인들의 독립된 나라를 위해 살인까지 해가면서 싸운 독립투사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 이후 솔로몬이 건설한 강대한 나라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오시는 메시야가 그 곳에 건설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무력하게도 그렇게 많은 기적을 일으킨 예수님께서 로마와 한 번 대항하여 싸우지도 않는 것입니다. 단지한다는 것이 당시 유대인의 종교 지도자들을 욕하고 도리어 마귀 자식들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소리를 듣기 싫어하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하게 된 것이요. 급기야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도 예수님을 잡아죽이는데 동조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자기의 희망을 무너뜨리고 도리어 그 희망마저 포기하라고 하는 그 소리가 듣기 싫으니 가만둘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잡혀가서 대제사장들(당시 대제장은 두명이었다-안나스, 가야바)과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잡히시기 전에는 예수님을 자신들의 한 가닥 희망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산나 찬송하리로다.\"(12장) 하던 이들이 어디로 간 것입니까? 모두 자기들이 바라는 소원을 이루어 주지 않는 예수님은 이제는 희망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자기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행악자라고 합니다. 29-30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저희에게 나가서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18:29-30)
또한 빌라도가 예수님께 아무 죄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풀어 줄려고 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19장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요19:12)
민중들은 예수님을 결국 자기들의 쓰레기로 여기고 로마를 대항하는 정치범으로 몰아 로마의 사형 방식에 의해 십자가에 죽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정말 왕이었습니까? 예수님은 왕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18장33절 이후에서 빌라도가 심문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습니다. 33-37절부터 읽겠습니다.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예수님은 왕이시되 이 세상에 속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이 말은 유대인을 포함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해 보이는 뭔가를 제공하는 왕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고 하늘에 속해 있는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보내진 왕이신 예수님께서 제공하려는 것은 진리에 대한 것입니다. 이 \"진리\"라는 것은 요한복음 17장17절-19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17-19)
여기에서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전하고 있는 이 말씀들이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진리로 말씀하고 있는 핵심이 뭐냐고 할 때 그것은 바로 \"영생은 사람들의 손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요한복음에서 예수님 자신이 공생애 동안 표적을 통해 자신을 보여준 것입니다. \"인간은 물렀거라 인간 냄새는 더 이상 싫다 나의 나라에서 인간의 힘은 전혀 의미가 없다. 그래서 내가 왕으로 와서 인간들을 다스려야 한다.\" 는 것입니다. 곧 이 진리를 전하기 위해 이 세상에 보내진 왕이었습니다. 종교지도자 뿐만 아니라, 땅에 나라의 법칙대로 살아가는데 익숙한 군중들 역시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있으니 같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차라리 바라바가 더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죽여 놓고 살리는 쪽이었다면 바라바는 군중들의 자존심도 세워주고 이익을 위해 자기의 몸을 희생하는 영웅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의 종교 지도자들과 군중들은 바라바를 바라는 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한 행동이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군중들은 정말 보아야할 것을 못 본 것입니다. 인간들은 항상 현재 자기에게 희망이 되는 쪽으로 가고 있음을 본문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예가 구약 사무엘상13장 이후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13장 8-14절을 읽겠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삼상13:8-14)
사울이 왕이 되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기 위해 사무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한 날에 사무엘이 도착하지 않게 되자 사울은 전쟁을 위해 모인 백성들이 흩어질 것을 우려하고 사무엘이 진행해야 할 제사를 자기가 해 버렸습니다. 이것은 사울의 큰 실수 였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은 이스라엘이 치르고 있는 전쟁이 하늘에 속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방 나라와 같이 백성들의 단결력이나 용기로 승리를 이끌어 내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정한 자에 의해 진행되어야 할 제사를 단지 백성들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것과 그들의 동요를 두려워해서 제사를 치렀으니 이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사울은 또 한번의 실수를 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아말렉을 치되 짐승들과 모두를 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사무엘상 15장 15,21절에서 \"사울이 가로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
사무엘이 전멸하라고 명령한 아말렉의 왕과 짐승들 중에 좋은 것을 가지고 온 것은 백성들의 의견과 백성들을 존중하겠다는 데서 나온 발상인 것입니다. 곧 사울은 자신의 정권 유지가 백성들을 존중하는데서 출발하는 줄 착각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울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백성이 더 두려웠던 것입니다. 결국 사울은 이렇게 하여 망한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을 보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인가?\" 라고 예수님께 물었지만 진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오직 관심은 지금 자신이 유대인들의 동요를 두려워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군중들 역시 자기들에게 현재의 도움을 주지 못하는 쓰레기 예수님을 정치범으로 몰아 죽이고 차라리 보이는 독립 운동을 하는 바라바가 자기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군중들을 보면서 모든 인간들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모든 인간들이 무엇을 항상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미련한 존재인가를 아시고 오늘 우리 자신을 나 좋은 쪽으로 몰아가지 마시고 예수님 쪽으로 갈 수 있게되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인간 모두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하늘에서 보내진 왕이십니다.

찬양+모음] 부활 찬양 메들리 (예수부활했으니 外)
    예수 부활했으니 할렐루야 만민 찬송하여라 할렐루야 천사들이 즐거워 할렐루야 기쁜 찬송부르네 할렐루야 대속하신 주예수 할렐루야 선한 싸움 이겼네 할렐루야 사망권세 이기고 할렐루야 하늘문을 여셨네 할렐루야 길과 진리 되신 주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부활 생명 되시니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흰 옷입은 천사 돌을 옮겼고 누우셨던 곳은 비어 있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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