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강 요 21:19절 강해

십자가를 지십시오/요21:19


< 우리가 따르지 말아야 할 것 >

오늘 본문 19절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시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따르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현저하게 달라집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주님을 따라 산다면 그것처럼 복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따르려면 다른 것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따라가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1. 욕심을 따라 살지 말아야 합니다.

가끔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명에는 관심이 없이 오직 복만 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돈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돈을 사모해서 생긴 돈은 저주가 되지만 돈이 우리를 사모해서 생긴 돈은 진정한 축복이 됩니다. 우리는 주님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하지 말고, 돈을 이용해 주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해야 합니다. 사명에 욕심을 가지면 축복받지만 돈에 욕심을 가지면 오히려 돈이 재앙의 도구가 됩니다.

2. 외모를 따라 살지 말아야 합니다.

미성숙한 사람은 외모에 관심이 많고 성숙한 사람은 내면에 관심이 많습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은 스타에 열광하는데 아쉽게도 교회도 그런 양상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폼 나는 예배, 폼 나는 성가대, 폼 나는 예배당에 매료됩니다. 그렇게 외형에 매료되어 따라다니지만 교회의 존재의의가 무엇인지, 주님의 교회를 위해 자신의 사명과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교회는 스타를 따라 다니는 팬클럽이 아니라 목숨 걸고 희생하고 충성해야 될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3. 문제를 따라 살지 말아야 합니다.

살면서 문제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문제만 바라보지 말고 그 문제를 통해 하나님의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가 있을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응답이 생긴다!”고 생각하고, 환난이 오면 “축복이 온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은 고난을 받을 때마다 항상 생각했습니다. “여기에는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야. 묵묵히 충성하자!” 그처럼 우리가 문제를 만나도 그 문제에 몰입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고 나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은혜와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 주님을 따라 산다는 것의 의미 >

우리는 욕심, 외형, 그리고 문제를 따라 살지 말고 오직 주님만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을 따라 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시간에는 4가지만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믿음을 가지고 살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결혼 9년 만에 임신한 임산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임신하면서 허약증세로 시달리며 가끔 헛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기도해준다고 찾아온 전도사가 산모에게 귀신이 붙었다고 했습니다. 그 후 11년 동안 수없는 귀신 쫓기 의식을 행하면서 귀신 공포증에 시달려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성경 말씀을 보면서 믿음이 생겼습니다. “귀신이 찾아와 죽이겠다면 죽이라고 하지! 나는 주님만 바라볼 거야!” 그 한 마디 고백으로 11년 만에 귀신 공포증에서 해방되었다고 합니다.

말 한 마디가 이렇게 사람을 죽일 수 있고, 말씀 한 마디에 대한 확신이 이렇게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확신입니다. 우리는 어떤 시련이 있고, 사단의 어떤 공격이 있어도 나를 사랑하는 주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2. 은혜를 추구하며 살라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존재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그날로 끝장납니다. 사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야 축복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셔야 길이 열릴 것입니다.

3. 주님만 바라보며 살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주님만 바라보며 살 때 나타나는 표시가 있습니다. 그것은 화사한 얼굴입니다. 가끔 신앙생활 하면서 표정이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들이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영적인 신랑을 바라보지 않고 엉뚱한 것을 신랑으로 삼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예배와 기도의 자리를 제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예배와 기도가 없으면 꽃이 꺾인 것처럼 처음에는 괜찮은 것 같아도 그 영혼은 점차 시들고 축복의 문도 점차 닫히게 될 것입니다.

4. 주님의 십자가를 지라는 말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영광의 길을 따른다”는 말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따른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존재는 어디에 가든지 주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십자가를 회피하고 우리의 영혼이 살고 축복 받는 길은 결코 없습니다. 축복을 원하면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잘 져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정수는 십자가입니다. 요새 신령하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환상을 보고, 천국을 보고, 예언을 하고, 신유의 은사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 분들이 최고의 성도일까요? 아닙니다. 최고의 성도는 주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성도입니다. 돈이 없고, 학력이 없고, 외모가 없어도 십자가를 지는 자는 어디에 가든지 인정받고 존경받습니다. 진정한 축복은 십자가의 희생 속에 있습니다.

가끔 아무 보람도 없이 삶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제일 먼저 할 일은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보람이란 섬기는 삶의 대가로 얻어진 정신적 보상이지만 공허는 자기 안일과 정욕을 위해 살다가 생긴 삶의 후유증입니다. 그러므로 삶에서 보람을 느낀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고 존귀하게 살고 있다는 표시이고, 삶에서 공허를 느낀다는 것은 십자가를 외면하고 비천하게 살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고, 사실상 알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헌신하는 마음으로 살면 하나님의 우리의 꿈과 비전과 미래를 붙들어주시고, 가장 복된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주실 것 하나만 알고 살면 됩니다. 항상 십자가를 잘 지고 승리하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찬양+모음] 부활 찬양 메들리 (예수부활했으니 外)
    예수 부활했으니 할렐루야 만민 찬송하여라 할렐루야 천사들이 즐거워 할렐루야 기쁜 찬송부르네 할렐루야 대속하신 주예수 할렐루야 선한 싸움 이겼네 할렐루야 사망권세 이기고 할렐루야 하늘문을 여셨네 할렐루야 길과 진리 되신 주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부활 생명 되시니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흰 옷입은 천사 돌을 옮겼고 누우셨던 곳은 비어 있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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