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강 행 2:1-3절 강해


오순절 성령강림 주일

사도행전강해(3)
사도행전 2:1~13



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루를 기쁘게 살려는가? 이발을 하라.
한 주일을 기쁘게 살려는가? 자동차를 사라.
한 달을 기쁘게 살려는가? 결혼을 하라.
한 해를 기쁘게 살려는가? 새집을 지어라.
평생을 기쁘게 살려는가? 정직하게 살아라.
여기에다가 한가지 더 첨가한다면 영원히 기쁘게 살려는가? 주 예수를 믿으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언제 가장 기쁘고. 행복합니까?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가장 행복한 날이 언제입니까?
태어난 날입니까?
결혼한 날입니까?
자녀를 낳은 날입니까?
집장만한 날입니까?
좋은 선물을 받은 날입니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 감격, 기쁨이 남아있습니까? 여기서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한계가 있습니다.
끝이 있습니다.
영원히 지속되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잠시뿐입니다.
오직 영원히 지속되는 기쁨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 뿐입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이런 뜻에서 우리에게 가장 의미있고, 생명력 넘치고, 감격스러운 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날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계신 날입니다.
오늘 본문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의미있는 사건입니다.

이제 전혀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날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바로 여기에서 교회가 시작되었고, 복음이 전세계를 향해서 힘차게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정리해 보면, 오순절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역사한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눈길을 끄는 단어가 3개 있습니다.
홀연히, 임하여 있더니, 충만함을 받고.
여기에서 알 수 있듯 오늘날 사건은 사람들이 예측하여, 기대하던 때에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생각지도 않은 때 전적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맞이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 놀라, 기이히 여겼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은혜는 사람의 역사가 아닙니다.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향하시는 역사입니다.

목사가, 부흥사가 은혜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모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은혜와 은사를 주십니다.
은혜의 주체는 수여자는 오직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하니다.

오순절 사건은 한두 사람의 체험이 아닌 120명 이상이 체험한 집단적 사건입니다.
공동체적 사건입니다.
바로 여기에 교회의 존재 가치가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체험했다는데, 사건이 신빙성이 있습니다.
성경의 증언은 한 두사람의 주관적 경험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체험했습니다.

기독교적 은혜는 특별한 사람 한 사람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활은 500여 성도가 보았습니다.
은밀히 밀실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니다.
공동체를 이루며 특별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는 시간에 성령충만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회의하는 때는 혹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도 있지만,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회의 때 결정을 잘못할 때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배시간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충만한 시간이 예배시간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서 드리는 예배시간에 은혜 못받은 사람은 아무리 난리를 쳐도 은혜 받을 수 없습니다.
정말로 은혜 받기 원하십니까?
성도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이 공적 예배시간 정말 정성을 다해 준비해서 예배드리면 은혜를 충만히
받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성령충만한 사람은 인간의 정성이 가장 맑은 시간에 이루어졌습니다.
비몽사몽한 때 하나님의 영이 임하신 것이 아닙니다.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정신이 오락가락 할 때, 은혜받는 것이 아닙니다.
비몽사몽 은혜받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우리의 정신이, 영이, 몸과 마음이 맑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저는 한밤중에 철야기도 자주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저녁시간은 우리의 영과 육이 쉬는 시간입니다.

큰 문제를 앞두고 가끔 철야하는 것 귀한 일이지만 철야기도를 밥먹듯이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도
아니고, 인간의 생체리듬에도 맞지 않습니다.
실제로 우리 주님이 철야하신 것은 몇번 없으십니다.
공생애 준비하실 때, 제자들을 뽑으실 때, 그리고 십자가를 지실 때였습니다.

대신 예수님은 새벽제단을 매일 쌓으셨습니다.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독교 역사는 큰 사건은 사실 알고 보면, 아치 이른시간과 정오시간이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사건이 그러합니다.
출애굽 역사가 그러합니다.
애굽사람은 호곡하고, 장사지낼 때 당당하게 애굽을 빠져나왔스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난 시간은 정오때즘이였습니다.
이때 내년이맘때쯤, 이삭을 낳은 것을 통보받습니다.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시간은 정오때쯤이었습니다.
어두움이 전혀 없는 시간은 우리의 정신이 가장 맑을 때, 은혜를 받습니다.
수가성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시간은 정오때였습니다.
건전한 신앙은 우리의 상식과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을 더 성숙하게 만듭니다.
진정한 은혜의 사람은 더욱더 인간적이고 정감어린 사람이됩니다.
우리의 육신과 정신은 하나님의 영에 온전히 순복한 사람은 은혜의 사람입니다.

네 번째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말씀과 깊은 연관을 맺고, 일어났습니다.
<저희다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충만함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합니다.
방언에 대해 오해가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방언과 고린도 전서의 방언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쩜이뇨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 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방언을 통해서 언어가 소통됩니다.
서로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이 서로 말이 통하게 됩니다.
완전한 의사소통이 일어납니다.
과거 바벨탑 사건과는 정반대되는 사건입니다.
바벨탑은 언어가 혼잡하여 흩어지게 됩니다.
죄악의 본성은 서로 통하지 않습니다.
결국 흩어집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범죄집판 보았습니다.

교회의 불행은 사도행전을 지나서 고린도 교회는 서로 통하지 않는 방언을 말하게 됩니다.
통하지 않는 말, 방언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통하지 않는 일만마디 방언보다 서로 뜻이 통하는 한마디 예언이 더 낫다고 사도 바울은 가르칩니다.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방언을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서로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고, 뜻이 통하게 하는 역사입니다.
14절 이하의 말씀은 하나님의 영에 붙잡혀서 베드로가 설교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잘못된 우리의 생각, 오해, 다 걷힙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귀가 열립니다.
눈이 띄입니다.
마음이 열립니다.
입이 열립니다.

성경이 하나님 말씀으로 믿어집니다.
목사의 설교는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들려지게 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성경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말씀 듣는 것이 즐거움입니다.
설교시간이 기다려집니다.

우리의 입을 열어 주의 증인이 사명을 다하게 합니다.
전도하게 됩니다.
다섯 번째로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은 우리의 눈길을 끄는 점입니다.

1절 하반절 말씀에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여 있을 때>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함께, 한 곳에 있을 때 나타납니다.
가룟유다는 은혜의 자리를 박차고 나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판자가 되었습니다.

도마는 제자들과 함께 있어야 할 자리 함께 있지 못함으로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복음제단에서 함께 믿음 생활할 때 은혜의 사람의 됩니다.
이시간 우리 모든 성도들은 은혜받기를 원하고, 성령 충만하기를 원하며 내자 앉아야 할 자리,
서야할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천사도 자기의 자기를 떠남으로 타락하여 사탄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를 통해서 우리 주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러하자.>
성령 충만한 삶은 예배에 더욱 정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평상시 믿음 생활 잘할 때, 우리의 영적성장은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순복하는
성령 충만함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찬양+모음] 부활 찬양 메들리 (예수부활했으니 外)
    예수 부활했으니 할렐루야 만민 찬송하여라 할렐루야 천사들이 즐거워 할렐루야 기쁜 찬송부르네 할렐루야 대속하신 주예수 할렐루야 선한 싸움 이겼네 할렐루야 사망권세 이기고 할렐루야 하늘문을 여셨네 할렐루야 길과 진리 되신 주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부활 생명 되시니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흰 옷입은 천사 돌을 옮겼고 누우셨던 곳은 비어 있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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