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강 행 4:1-22절 강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
2002-02-07 11:16:25   read : 49

사도행전강해(8)


사도행전 4:1~22



사도행전 전반부에 활동하는 사람들은 베드로를 중심으로 복음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중심교회인 지상에서 아직 하나밖에 없는 예루살렘 교회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독교와 유대교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질감이 심화됩니다.
나중에는 아주 강한 적대감을 갖게됩니다.
이런 적대감이 오늘 사도행전 4장에서 표면에서 표출되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의 공부한 베드로의 설교를 중심으로 복습해 보면 베드로의 설교는 크게 다섯가지 주제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기독교 용어로 케리그마라고 합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된 대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3:18)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예언의 성취입니다.
그런데도 문제는 성경을 연구한 세관,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몰라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것입니다.(3:20)

세 번재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사역의 가장 핵심적인 길입니다.
죽으심은 사랑의 극치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가장 큰 사랑은 죽음으로 표현됩니다.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능력, 승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 권세 이기신 것을 부활로 표현됩니다.

네 번째로 예수님은 예언된대로 반드시 재림하신다는 것입입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일입니다.
종말론적 신앙이 중요합니다.

다섯 번째는 회개하고, 용서를 받아 구원을 받으라.
내 공로, 내 노력이 아닙니다. 바로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 설교를 당시의 종교지도자, 사회지도층은 듣기를 싫어했습니다.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復活)하는 도(道) 전함을 싫어하여>

그래서 옥에 가두었습니다.
날이 저물어서 이튿날까지 가두어 놓습니다.
유대인은 중요한 일은 밤에 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재판은 밤에 하지 않습니다.
밤은 사람이 감정에 싸이기 쉽습니다.
교회는 밤에 중요한 논의는 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은 밤에 심문 당하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사람은 가두었으나 말씀의 역사는 가둘 수 없었습니다.
말씀을 듣는 자는 믿는 사람 남자의 수가 오천명이나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전하면 반드시 열매가 맺혀집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교회가 이것에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요즈음 한국교회의 정체의 여러요인은 가장 중요한 것은 전도의 열기가 사라집니다.
전도를 안합니다.
자연 교세가 감소됩니다.
다른 일에 열을 낼 것이 아닙니다.

요사이 교회는 집짓고, 땅 사고 물론 교회 발전을 위해서 필요하지만요.
사람 낚는 어부의 역할을 생각하는 것은 불행이요, 비극입니다.
하늘나라에서 큰 상급 받는 자는 이 땅에서 예배 잘 드린 자와 전도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목회자님은 인생 50이 넘었으면 남의 이야기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생 60이 넘었으면 자기의 삶을 이제는 정리해야 합니다.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해야합니다.

세상오락은 TV보는 것입니다.
이제는 줄여야 합니다.
신문도 열심히 볼 것 아닙니다.
이제는 전도를 열심히 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자기의 모습을 단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5절이하의 말씀은 산헤드린 앞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산헤드린은 이스라엘의 최고 재판소은 71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의장은 대제사장입니다.
과거 예수님은 산혜드린에서 심문 받고 재판을 받았습니다.

다만 사형권는 로마 총독부가 가지고 있기에 총독 앞으로 이동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단 바로 그 산헤드린.
과거의 베드로는 뜰에서 불쬐다 예수님을 3번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난 베드로의 모습은 과거와는 전혀 다릅니다.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광경을 연상해 보세요.
살기 등등한 기세로 질문을 합니다.
우리나라의 청문회를 방불케합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추안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개인이 용감한 것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로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사실 질문이 잘못되었습니다.
착한 일, 선한 일은 사람의 명령이 아닌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이런 사람 돌볼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말이 얼마나 담대합니까?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께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사람을 건강하게 하셨다.
너희들이 예수를 버렸으나 예수님은 집을 받치는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결론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담대히 말합니다
이말에 산헤드린 회원은 할 말을 잃습니다.
자기끼리 의논합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저희로 인하여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이것이 민간(民間)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경계하여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울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믿음의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감당치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 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 하고, 복음 전파하는 사명을 굳건하게 감당할 때 이 지역 사회가 뒤집어지는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救援)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찬양+모음] 부활 찬양 메들리 (예수부활했으니 外)
    예수 부활했으니 할렐루야 만민 찬송하여라 할렐루야 천사들이 즐거워 할렐루야 기쁜 찬송부르네 할렐루야 대속하신 주예수 할렐루야 선한 싸움 이겼네 할렐루야 사망권세 이기고 할렐루야 하늘문을 여셨네 할렐루야 길과 진리 되신 주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부활 생명 되시니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흰 옷입은 천사 돌을 옮겼고 누우셨던 곳은 비어 있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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