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강 행6;8-15강해


믿음의 집사 스데반


사도행전강해(13)

사도행전 6:8~15


오늘 본문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인 스데반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인물됨됨이는 본문 15절 말씀 한절로 충분하게 표현됩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자기를 죽일려고 공회 중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눈에 비친 스데반의 모습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데 우리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천사의 모습입니까?
아니면 성난 사람의 모습입니까?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말과 같이 사람들의 나이가 40을 넘었으면 자기 얼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얼굴의 모습은 우리의 삶으로 표현합니다.
우리의 얼굴은 우리의 작은 인생 이력서와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 그리스도인 됨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시간 생각한 것처럼 예루살렘 교회는 표면적으로는 구제문제였지만 내면적으로는 영적인 문제,
은혜의 문제, 말씀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도들이 이 문제원인에 대해 규명을 바르게 했고, 또 바른 처방을 내립니다.

성령과 지혜와 믿음의 충만한 사람, 그리고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선택해서 집사로 세우고, 봉사하고,
구제하는 일을 그들에게 맡깁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만 전념하게 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집니다. 예루살렘에 예수 믿는 사람이 심히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았던 제사장의 무리(그 당시 역사 문헌을 보면 제사장이 8천명 정도 되었다고 함)
그 중에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가르침에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나아가는 길은 결코 순단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교회를 향한 박해의 손길은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은 오늘 본문의 믿음의 사람 스데반에 대한 고발 사건입니다.
일곱집사 가운데 스데반아 가장 뛰어난 집사였었습니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게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 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사람들을 갈쳐 말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조금 뒤에 생각하겠습니다마는 스데반은 다섯가지면에서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믿음 충만, 은혜 충만, 권능 충만, 지혜 충만, 성령 충만, 스데반은 한마디로 모든 면에 균형 잡힌 가장 성숙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 이름대로 면류관 받을 만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스데반이 교회 모든 면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큰 도전이 그에게 닥치게 되었습니다.
똑똑한 사람은 고생을 많이 하게 됩니다.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갈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 새>

짧은 한 절의 말씀이지만 복음의 확장, 교회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 등장하는 지역 사람은 물론 이방인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11절 이하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유추해 보면 이 사람들은 유대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히브리파 유대인이 아니라 헬라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헬라파 유대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복음이 이제 유대인의 경계를 완전히 넘어선 것은 아니지만 예루살렘을 초월해서 점점 헬라 문화권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9절의 리버디노라는 말은 정확한 뜻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리베르티누스\'(라틴어)의 준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영어단어 자유를 뜻하는 liberty가 나옵니다.

이렇게 볼 때 리버디노는 로마로 끌려가 노예생활을 하다가 자유인이 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 사람들은 세력화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로마당국은 이들을 추방시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온 것으로 추정합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아프리카의 헬라철학이 꽃피웠던 지역입니다.
기독교 역사는 안디옥과 더불어 유명한 철학자, 신학자가 많이 나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어거스틴은 이곳 출신입니다.
길리기아는 우리에게 낯익은 지명입니다.

이 갈리기아 지방 다소에서 바울이 태어났습니다.
헬라철학이 발달한 지역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기독교의 대세가 예루살렘에서 헬라 문화권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복음을 듣기 보다는 스데반가 더불어서 변론을 했습니다.
변론은 헬라철학의 자기 논증의 원리입니다.
철학자는 서로 변론했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복음은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지 논리적으로 변론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신학적 논쟁이 중상 모략으로 발전했고, 급기야는 폭력을 동원해서 상대방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변론은 기독교 정신이 아닙니다.
회의도 조심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말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존중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의 열매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훗날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바울은 유언으로 말합니다.
<디모에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변론에서 스데반이 이겼습니다.
그러나 전도의 열매는 맺지 못했습니다.
상대방은 기분 나빠합니다.
복음을 더욱 배척합니다.

그래서 지나친 변론, 경쟁, 기독교 정신이 아닙니다.
승부욕이 강하다 보면 전도를 그르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잘못될 수 있습니다.

운동경기는 사람을 한데 묶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이번 방콕아시아 경기, 우리나라 백성들을 하나로 묶는데 크게 이겨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면 독선적인 사람이 됩니다.
오락, 운동해보면 그 사람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다혈질은 그대로 나타납니다.
윷놀이는 좋은 오락이 아닙니다.
소리 커지고, 싸우고, 판깨지고, 분위기 망칩니다.
상대방 말 잡아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상대방을 이길려고 하는 운동은 운동 효과 없습니다.

골프가 위험합니다.
상대방이 잘 치면 자기다 더 잘치려고 합니다.
사우나 실에서도 경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 사람보다 더 버터야지. 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에게 적당하게 하면 됩니다.
저사람보다 더 해야지하면 근육에 무리가 갑니다

결국 스데반은 변론에서 이기고 공회에 잡혀갑니다.
거짓 증인을 세워서 성전과 율법 모독죄로 죽이게 됩니다.
기독교의 첫 번째 순교사건입니다.

아무튼 오늘은 스데반의 신앙 진면목을 살펴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습니다.
서로 모순된 말 같습니다.
기독교에서 제일 좋은 단어는 바로 은혜입니다.
저는 이 말을 제일 좋아합니다.
은혜는 카리스, 영어로는 그레이스, 뜻은 사랑스러움, 부드러움, 친절함입니다.

권능은 뒤나미스 여기에서 다이나마이트라는 말이 나옵니다.
영어로는 파워풀니스, 강력함, 담대함이라는 뜻입니다.
즉, 사랑스럽고, 부드럽고, 강하고 담대합니다.
스데반의 모습은 지성과 야성을 겸비함 모습입니다.

온유함과 겸손함, 그러면서도 그 속에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지혜와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스데반은 명목적인 신앙인이 아니었습니다.
신학적으로 바르게 체계를 세운 신앙이었습니다.
주먹 쥐고 그저 선동하는 선동가가 아닙니다.

성경 말씀으로 잘 무장하고 삶속에 체험이 있는 신앙, 한마디로 지성적 신앙인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사실 무서운 사람입니다.
베뢰아, 교회 성도는 말씀과 삶이 하나된 사람입니다.
몇마디 말하면 성질부터 내는 사람은 뒤가 없는 사람입니다.
대단한 사람이 못됩니다.

논리정연한 사람은 쉽게 흥분하지 않습니다.
도사견이 짖는 것 보았습니까?
변견이 짖습니다.
요란하게 짖습니다.
그것도 자기 집앞에서만요.

지성적 신앙인 스데반은 가장 타겟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보다 스데반을 먼저 죽였습니다.
그런데 죽음 앞에선 스데반 어떻습니까?

천사와 같이 평온합니다.
죽이겠다고 야단인데 조용합니다.
저항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과 너무 대조적이지 않습니까?

한국의 정치지도자는 전혀 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스데반과 같아야 할 것입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찬양+모음] 부활 찬양 메들리 (예수부활했으니 外)
  • 글쓴이: 두나미스 신학대학교
    예수 부활했으니 할렐루야 만민 찬송하여라 할렐루야 천사들이 즐거워 할렐루야 기쁜 찬송부르네 할렐루야 대속하신 주예수 할렐루야 선한 싸움 이겼네 할렐루야 사망권세 이기고 할렐루야 하늘문을 여셨네 할렐루야 길과 진리 되신 주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부활 생명 되시니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흰 옷입은 천사 돌을 옮겼고 누우셨던 곳은 비어 있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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