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강 행7;1-19강해


스데반의 설교


사도행전강해(14)

사도행전 7:1~19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 교회 첫 번째 일곱집사 가운데 한 사람이요,
기독교의 첫 번째 순교자인 스데반의 설교입니다.
우리는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서 그의 훌륭한 인격과 신실한 믿음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오늘 1절 말씀에
<대제사장이 가로되 이것이 사실이냐.>
거짓 증인들이 말한 하나님의 성전을 모독한 것과 율법을 거스려 말한 것이 사실이냐고 스데반을 다그칩니다.

우리나라 재판은 비민주적입니다.
옛날은 내 죄를 내가 알렸다. 하고 묻습니다.
아주 살벌한 분위기요, 아주 민감한 사안을 가지고 심문하는 공회자리입니다.

사실 유대인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두가지를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는 성전이요, 다른 하나는 율법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사람을 공산주의로 몰아버리면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대사회는 성전모독, 율법 모독죄는 구제할 길이 없는 가장 무서운 죄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스데반은 가장 무서운 죄목으로 공의회에 기소되 있는 상태입니다.
자신이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운명이 결판나는 참으로 중요한 순간입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기소한 내용이 사실이냐고\" 다그치는 이 상황속에서 오늘 본문의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아주 담대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과거 일제시대 때 죽기를 각오하고 주기철 목사님이 하셨던 마지막 설교 「일사각오」와 같이
스데반은 일생일대의 처음이자, 마지막 유언과 같은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 설교의 특징은
첫째로, 목숨이 오가는 이 위기 상황속에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변론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구약의 전역사를 하나님의 구속사역으로 이해하고, 구속사역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를 아
주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크게 4시기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1. 아브라함과 족장시대(7:2∼8)
2. 요셉과 애굽에 추방되었던 시대(9∼19절)
3. 모세, 출애굽 광야시대(20∼44절)
4. 다윗, 솔로몬 왕국 시대(45∼50절)

여기에서 스데반이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은 어떤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제한된 적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우주적으로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지은 성전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마는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곳에 갇혀 사시는
분이 아니라고 스데반은 역설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엑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저가 본
그 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저희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갖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솔로모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더 나아가 너희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메시야를 십자가에 죽인 장본인이라고 오히려 책망을 합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꼬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럽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성전 건물과 율법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굉장한,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입니다.
신앙의 본질이 중요한 것이지 신앙의 본질을 담는 그릇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전 건물, 율법자체가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고,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로 사랑하고, 그 말씀대로 신실하게 사는 것이 믿음이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참 믿음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을 들고 있습니다.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사울이 교회를 잔명할쌔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아브라함은 대단한 인물입니다.
세계 3대 종교가 아브라함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깁니다.
유대교, 회교, 기독교. 특별히 유대인에게 아브라함은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지금 가나안 땅에 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메소바다미아에 살았습니다.
원래 고향은 하란입니다.

그런데 문물이 발달한 갈대아 우르에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을 가라 하시니>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나는 것입니다. 갈바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좇아 가는
삶이 믿음입닌다.

창세기에 아비 집을 떠나라 말합니다.
남자에게 있어서 제일 떠나기 힘든 곳입니다.
아브라함 당시 아버지의 존재는 자신의 전부입니다.

여자는 남자만 좋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웬만하면 자기의 삶의 근거지를 떠나지 않습니다.
살길이 막막할 때, 살기 위해서, 출세를 위해서, 고향을 떠나는 것이지, 고향에서 살말한데 고향을
등지는 남자는 없습니다.

더더군다나 더 나쁜 여건으로 간다는 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아브람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아브라함은 아버지를 못떠납니다.
믿고 따르던 아버지가 죽자, 비로소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주셨으면 순종하기가 쉬웠을텐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준다 하시고 자식 준다 하셨는데.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발 붙일 말큼도 유업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식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주신다고 약속만 하셨습니다.
요즈음 경제용어로 말하면 현금으로 주셨으면 좋았을텐데 현금대신 약속어음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 약속어음을 현금으로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입니다.
물론 중간에 실수한 것 사실이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 반드시 응답 받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을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의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요즈음 그리스도인은 매사가 너무 급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진득하게 기다리는 인내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빨리 빨리 이룰려고 합니다.
기도하고 바로 응답 받을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어떻습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은 다른 땅에서 나그네와 같이 삽니다.
종으로 400년 동안 삽니다.
그 후에 나와서 이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그리고 족장들의 삶이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진정한 복은 하늘나라에서 받습니다.
단순히 땅에서 잘 살자고 열심히 믿음생활 하는 것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 누릴려고 예수 믿는 것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처럼 종처럼 사는 삶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의 약속, 영생의 약속, 영광의 약속을 가슴에 품고서 사는 사람입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목회하시는 아버님께 불만이 많았습니다.
너무나 경제적으로 어렵게 삽니다.
담담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철이 들고서 아버님께 이런 말을 드렸습니다.
가난하지만 진실하게 목회하시는 아버님을 저는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또 땅에서 복을 다 받아버리면 하늘나라에서 받을 복은 없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생을 멀리, 길게, 깊게 영원한 세계를 보면서 평가하십시다.
그리고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사십시다.
찬양+모음] 부활 찬양 메들리 (예수부활했으니 外)
    예수 부활했으니 할렐루야 만민 찬송하여라 할렐루야 천사들이 즐거워 할렐루야 기쁜 찬송부르네 할렐루야 대속하신 주예수 할렐루야 선한 싸움 이겼네 할렐루야 사망권세 이기고 할렐루야 하늘문을 여셨네 할렐루야 길과 진리 되신 주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부활 생명 되시니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흰 옷입은 천사 돌을 옮겼고 누우셨던 곳은 비어 있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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