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강 행8;1-8강해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사도행전강해(16)
사도행전 8:1~8



오래전 장로회 신학교 교장이셨던 박형룡 목사는 본문 말씀으로 \"스데반을 위하여 울지 말라.\"라는 설교를
하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설교의 요지는 하나, 스데반의 순교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베드로를 순교하게 하지 않으시고, 스데반을 순교하게 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서 바울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심어주었고,
그 후에 그를 통해서 세계선교의 문을 여셨으니, 살아있는 사람보다 더 큰 하나님의 뜻을 이룬,
그 이름 그대로 스데반은 면류관 받을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음을 통해서 더 큰 역사를 이룹니다.
삼손, 스데반, 예수 그리스도, 수많은 순교자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에 있어서 중요한 전화점이 됩니다.
교회의 중심점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 지역으로 옮겨지고, 확대되어 가고 있습니다.

흔히들, 기독교 선교의 역사는 피로 쓴 역사라 말합니다.
좋은 여건 속에서 선교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고난과 핍박과 환난을 통해서 선교의 역사가 이루어 졌습니다.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사도행전 8:1)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히 여겼다 했습니다.
왜 이 짤막한 말을 사도행전 기자는 했을까요?

바로 뒷장인 9장은 사울의 회심 장면이 나옵니다.
사울은 훗날 바울은 사실 감정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신앙, 철학에 따라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 이런 사람이 무서운 사람입니다.

감정적인 사람은 사실상 다루기 쉽습니다.
기분만 맞춰주면 됩니다.
그러나 신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온전하게 설득당하기 전에는 쉽게 자기 사람을 만들 수 없습니다.

이런 사울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인 바울이 되었을까요?
그건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셨다는 말입니다.
회개는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 지혜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에 관한한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팝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큰 핍박은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게 만듭니다.
이들이 흩어지기 전에 스데반을 장사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가리켜서 경건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경건한 사람은 아름다운 호칭입니다.

구약의 맥락은 선민인 이스라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경건한 사람입니다.
신약은 국적을 떠나서 이 말이 넓게 사용됩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지만, 경건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점차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을 경건한 사람이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라고 듣고 있습니다까?
영리하다. 똑똑하다. 일 잘한다. 고집세다. 말 잘한다. 진실하다. 경건하다.
예수 믿는 사람은 경건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경건은 기독교 신앙으로 최고의 덕목입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경건이라 합니다.
사람을 대하면서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요셉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행동했습니다.
사람을 의식하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사는 것처럼 최선을 다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 경건한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이 경건한 사람은 스데반을 장사지내고 크게 울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스데반을 위해서 울 일이 아니었습니다.
스데반은 가장 귀한 삶을 살았습니다.
가장 고귀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사실, 죽어야 할 시간에 죽어야 복된 죽입니다.
보통사람은 그저 살려고만 합니다.
위인은 멋있게 죽은 사람입니다.

한경직 목사는 기독교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템플턴 상을 받았을 때, 첫 소감을 나는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
내가 신사참배를 했던, 실제로 신사참배를 한 것은 아니지만 신사참배를 못한다 말 못하도 몸이
아파서 못한다 했습니다.

죽어야 할 시간에 죽지 못하면 사실 부끄러워 집니다.
오늘 본문은 흩어진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핍박을 통해서 흩으셨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흩어진 사람은 복음의 말씀을 전합니다.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합니다.
어려운 상황은 이념, 관습을 초월하게 만듭니다.

오늘의 IMF는 교회가 위축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럴때 역으로 구제도 많이 해야 하고, 선교도 많이 해야 합니다.
북한은 기아로 고생합니다.
오늘 보도를 보면 기아로 지금까지 300만명이 죽었을 것으로 서방언론이 말합니다.
참으로 비참한 상황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몰고 갑니까?
이 속에 깊은 선교의 뜻이 있습니다.
이렇게 흔들지 않으면, 변화가 안됩니다.
어려움 속에서 복음의 문을 열고 계십니다.

보통 상황은 유대인은 절대로 사마리아로 안갑니다.
극도의 핍박,여려움은 하나님의 선교의 뜻에 순종하게 만들었습니다.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많은 사람에게 불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가장 큰 기적의 역사는 선교의 현장에서 나타납니다.
복음을 전하는 바로 그 자리는 영적싸움의 최전방입니다.
그리스도를 온전하게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증거하는 시간입니다.

7절 말씀에 더러운 귀신들이 다 나갑니다.
귀신은 한마디로 억압하는 존재로서 사람을 억압해서 자유를 빼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을 빼앗습니다.

기독교의 존재의미는 바로 여기입니다.
억압 받은 자는 참 자유를 회복하고 기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찬양+모음] 부활 찬양 메들리 (예수부활했으니 外)
  • 글쓴이: 두나미스 신학대학교
    예수 부활했으니 할렐루야 만민 찬송하여라 할렐루야 천사들이 즐거워 할렐루야 기쁜 찬송부르네 할렐루야 대속하신 주예수 할렐루야 선한 싸움 이겼네 할렐루야 사망권세 이기고 할렐루야 하늘문을 여셨네 할렐루야 길과 진리 되신 주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부활 생명 되시니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흰 옷입은 천사 돌을 옮겼고 누우셨던 곳은 비어 있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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