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강 행 9:32-43절 강해


치료의 역사와 선교의 역사


사도행전강해(21)

사도행전 9:32~43


성경의 역사와 오늘의 우리의 삶 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은 선교의 현장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은 하나님의 기적이 줄을 이어 나타납니다.
불신의 세계, 잘못된 영의 인도함을 받는 세계를 복음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강력한 무기와 복음의
능력을 증거하는 표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한 기적의 역사를 연출하고 계십니다.
선교보고는 기적의 역사 보고입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기억할 점은 하나님의 기적은 꼭 필요한 상황에만 우리에게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서커스처럼 구경거리를 주기 위한 나타난 기적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어깨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주의 복음이 힘있게 전파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힘이 강권적으로 요청되는 상황속에서만 기적이
제한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 성경의 역사는 오늘 우리시대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시대적, 문화적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의 시각으로, 또 성경의 시각으로만 획일적으로 역사를 보아서는 안됩니다.
오늘날도 사도행전의 역사가 똑같이 나타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른 신앙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시대적 상황에 적합하게 차별성을 가지고 오늘도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먼저 치유의 역사는 사도행전의 기록된 당시와 오늘을 엄청나게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은 의술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모릅니다.
과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병도 의술의 발달로 치료하고 있습니다.
남자를 여자로, 여자를 남자로 만듭니다.

그러므로 의술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또한 하나님의 역사로 받아들이는 수용적 자세가 필요합니다.
과거는 의술이 아주 저급한 수준이였습니다.
그래서 전적으로 목회자를 통해서 치료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의학과 약제술이 얼마나 발달했습니까?
목회자, 의사는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지혜, 기술 자원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학적인 발달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지식, 기술을 신앙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오늘 치유의 기적 사건은 분명한 방향성과 목표가 있습니다.
룻다에 사는 애니아는 중풍병자가 나음을 입은 사건, 또 욥바에 있는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병들어 죽었는데,
주의 종 베드로를 통해서 살아났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일은 오늘날은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사건입니다.

또 예수님 당시도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과 관련지어서 죽었던 사람 중 3사람을 살렸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 그리고 나사로입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일로 착각하면은 안됩니다.

그런데 이 사건 이후에 나타난 일이 무었이었습니까?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35절)

또 41절 이하의 말씀에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개인의 욕망과 명성을 이루게 하는 기적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직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기적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확장하는 방편으로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났음을 기억하면서 기적은 개인의 욕망을
이루는 수단으로 전락시키거나 오용, 남용해서는 안됩니다.

특별히 욥바에 도르가 라는 여제자는 아름다운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이 여자를 소개할 때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다했습니다.
또 베드로가 청함을 받고 올 때 39절 하반절 말씀에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성도의 참다운 삶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도는 복음의 전파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또한 이것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도르가라는 여인은 어려운 과부들 옷을 지어서 입혀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요, 고귀한 헌신의 삶입니다.
이런 성도의 고백은 교회에 가장 필요합니다.

상대방을 돕는다는 것, 구호로만 외쳐서는 안됩니다.
행동으로 섬기고,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대로 구체적으로 삶속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죽은 자를 살린 베드로의 기적도 큰 은사이지만, 이것 못지 않게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도르가의 섬김은
참으로 아름다운 은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참으로 놀라운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서신을 쓸 때, 헌신적인 이 사람들의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날 있어 시못이라 하는 피장의 집에서 유하니라.>(43절 말씀)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면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은 피장입니다.
피장은 가죽 가공업자로 유대사람들은 죽은 동물을 상대하는 피장을 부정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사람들이 기피하는 피장의 집은 베드로가 유합니다.
이것이 진정 자유함의 삶입니다.

진정 자유한 사람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만족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진정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은 머리와 등만 닿으면 아무데서나 잘 수 있어야 합니다.
반찬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입맛으로 맛있게 밥을 먹는 사람입니다.
찬양+모음] 부활 찬양 메들리 (예수부활했으니 外)
    예수 부활했으니 할렐루야 만민 찬송하여라 할렐루야 천사들이 즐거워 할렐루야 기쁜 찬송부르네 할렐루야 대속하신 주예수 할렐루야 선한 싸움 이겼네 할렐루야 사망권세 이기고 할렐루야 하늘문을 여셨네 할렐루야 길과 진리 되신 주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부활 생명 되시니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흰 옷입은 천사 돌을 옮겼고 누우셨던 곳은 비어 있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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