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강 행 15:1-21절 강해

주 예수의 은혜


(사도행전 15:1-21)
오늘날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더 이상 율법이 필요없는가? 이 문제에 대한 신앙적 입장은 한국 교회에 있어서 대단히 심각합니다. 심각하다는 것은 그 문제로 인한 논란이 많기 때문에 연구가 활발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전혀 연구가 없고 정체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도무지 이 문제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정리하려고 생각들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구약도 신약도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두 가지 다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골치아픈 문제는 신학자들이나 하는 것이지 일반 교인들은 교회 봉사나 잘하고 목사에게 충성하면 천국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한 가지만 알고 두 가지는 모르는 그런 현상이 발생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은 알고 신약은 모르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아는데 십자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습니다. 율법도 지키면서 예수도 믿으려고 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습니다.

사실 한 가지를 아는 것조차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한 가지를 아는 것으로 인해 엄청난 모순을 범하고 있습니다. 구약으로 신약을 이기려고 합니다. 구약에서 성전과 관계된 제사와 절기, 갖가지 제도, 율례 등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없애려는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거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행했던 온갖 율법들을 가지고 성령을 무시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교인들은 율법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오해합니다. 만약 율법이 완성되었다고 한다면 율법은 더 이상 필요없는 것이기 때문에 구약의 율법서는 찢어 버려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있어서 특히 레위기는 아주 매력이 없는 성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한국 교회가 구약의 모든 제사의식과 절기들에 대한 율법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율법은 지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온 이론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은 세 가지 법으로 나누어진다는 이론입니다. 소위 말해서 의식법, 사회법, 도덕법이 그것입니다. 의식법이란 제사와 관계된 법이고, 사회법이란 이스라엘의 사회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율례들을 말하고, 도덕법이란 십계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율법을 세 가지로 자기들 임의대로 나누어 놓고서는 의식법과 사회법은 당시 이스라엘에게 주신 법이기 때문에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도덕법인 십계명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유효하고 오늘날 우리가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십계명만큼은 모든 교회가 생명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교회에 오는 사람들을 이 법으로 꽉잡아매고 있습니다. 여기에 현대 교회의 법을 첨가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나 있었던 장로들의 유전과 같은 생활수칙들을 만들어서 교회에 붙여 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주일 성수, 십일조, 또는 성경을 매일 3장씩 주일에는 5장을 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년에 한 사람 이상씩 전도해야 한다든지 또는 교회의 기도시간을 정해놓고 매일 30분 이상씩 그 기도시간에 맞추어 기도해야 한다는 것 등입니다. 공공연히 주보 전면에 실어서 그렇게 지키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오늘날 교회의 율법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교인들은 그러한 율법에 길들여져 있고 그러한 율법을 수행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좋은 신앙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지키지 못하는 교인은 믿음이 없는 것처럼 만들어 버립니다. 결국에는 교회에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수칙들을 지켜서 천국에 가고자 하는 이방종교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율법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죄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십자가로 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들의 상상에서 나온 기독교의 모습입니다.

안디옥 교회에서도 이런 문제가 생겼습니다. 유대로부터 온 어떤 사람이 가르치기를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한다\"(1절)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방인들은 예수를 믿더라도 믿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매우 중요시했습니다. 할례는 아브라함 때에 주신 하나님의 언약으로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된 표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안디옥 교회는 근본적으로 유대로부터 온 사람에 의해 제기된 것이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알아봄으로 결론을 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 교회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왜 발생되어야 했습니까? 한마디로 이방인들이 믿음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발생되는 문제였습니다. 성경은 의도적으로 그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여행을 마치고 안디옥 교회에 다시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행 14:27).

뿐만 아니라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도 베니게와 사마리아를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역사하신 일들을 증거하였습니다(3절). 예루살렘에서도 이방인 중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을 말했습니다(12절).

본래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를 지셨고 성령이 예루살렘에서 임했습니다. 어쩌면 이런 모든 정황들이 기독교가 유대인의 전유물같이 보여집니다. 그래서 유대에서 온 자가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는 말에 혼란이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예루살렘만 아니라 사마리아를 비롯해서 이방인의 땅에까지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졌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은 이 문제 때문에 회의를 했습니다. 많은 변론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반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주님의 뜻을 알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8-10절).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같은 성령을 받았고 같은 믿음으로 같은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방인에게 주어진 은혜가 다르고 유대인에게 주어지는 은혜가 다를 수 없습니다. 은혜란, 내가 잘났는데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값없이 주어진다는 것은 내 힘과 내 공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주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내가 이 모양 이 꼴임에도 불구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주의 은혜가 임했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못났는가 하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습니다. 완성되었습니다. 갖가지 제도와 절기를 통해 언약의 뜻을 설명했던 시대는 구약입니다. 구약 시대에 주셨던 모든 것들은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희생의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언약을 완성하시고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지셨던 기대는 이스라엘이 율법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 하는 것을 보려고 하셨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을 주심으로 그 율법이 의미하는 바 인간의 죄를 드러내고 그 죄 때문에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시고 싶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율법을 가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19,20).

우리는 율법을 행하면 행할수록 내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자인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철저히 우리가 죄인임을 지적하고 폭로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자기를 속이는 정도가 아니라 주님과 맞붙어서 한번 싸워보자는 결투신청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실패한 것으로 오늘 우리 역시 할 수 없음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방인들은 자기들에게 복음이 전해졌을 때에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의 실패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이방인들은 오직 예수님만을 믿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자는 오직 예수님에게만 관심이 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에게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자기의 행동, 자기의 일에 대하여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증인되는 것으로 만족을 느끼면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만을 위해 살기 때문에 그분의 의도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만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이는 에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19-21절).

이것은 새로운 율법이 아닙니다. 구약은 완성되었지만 여기 새로운 율법을 주셨는데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초대 교회 상황에서 안디옥 교회에 이렇게 전하자는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 이방인들을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 우리가 율법을 가지고 막아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 이런 것들로 절제할 수 있다면 절제하자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이방인들을 자기 백성으로 만들어 나가시는 복음사역 때문에 이방인들 앞에서 절제할 수 있으면 하자는 뜻입니다.

이런 점에서 주님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3,24)고 하셨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백한 곳도 있습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 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18,19).

주님의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율법에 매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랑의 종노릇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증인되는 이 일 때문에 사는 것에 의미가 있게 된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스스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성령에 의해 장악된 자는 율법에 관심을 가지고 살지 않고 예수님께만 관심을 가지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를 귀하게 여기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1997.12.7)
찬양+모음] 부활 찬양 메들리 (예수부활했으니 外)
    예수 부활했으니 할렐루야 만민 찬송하여라 할렐루야 천사들이 즐거워 할렐루야 기쁜 찬송부르네 할렐루야 대속하신 주예수 할렐루야 선한 싸움 이겼네 할렐루야 사망권세 이기고 할렐루야 하늘문을 여셨네 할렐루야 길과 진리 되신 주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부활 생명 되시니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흰 옷입은 천사 돌을 옮겼고 누우셨던 곳은 비어 있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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