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강 행 18:1-11절 강해


하나님의 백성


(사도행전 18:1-11)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대로 살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만큼은 앞으로의 더 나은 삶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막연한 기대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남보다 앞서야 하고 자아를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려고 합니다. 남에게 지배받지 않고 군림하며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를 군림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될 그 때에 자신은 또 하나의 누군가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우리가 스스로의 힘에 의해 지배당함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중요한 한가지 사실은 인간은 누구나 다 어둠의 세력이나 아니면 빛의 세력 중에서 한가지에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울 사도와 그 일행은 아덴을 떠나서 고린도라는 도시에 오게 되었습니다. 거기서도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말씀을 강론하였습니다. 고린도라고 하는 도시는 항구도시로 사회적인 부도덕이 팽배한 도시였습니다. 어쩌면 바울에게 있어서 고린도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무모한 것으로 보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5절) 증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어떤 의지에 따라서 말씀을 전하고 전하지 않고 하는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느냐 안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습니다. 말씀에 붙잡혔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이는 단순히 말씀을 전한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말씀을 인격으로 표현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명의 참 떡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던 자들이 다 떠났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그런데 그 다음 말을 보면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요 6:69). 베드로는 자신을 내세웠습니다. 자신이 믿고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다른 사람들이 다 떠나는데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고 남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6:70).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요한복음 6:65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요 6:65/참고 37-40,44절)는 것입니다. 때문에 베드로가 고백한 것도 자기 마음대로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영생의 말씀에 대해서 언급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베드로를 영생의 말씀이신 예수님께 오도록 하신 것이었습니다.

결국 베드로를 영생의 말씀에 사로잡히게 하신 분은 주님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울 역시 이 말씀에 붙잡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그 말씀을 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우리를 붙잡아서 우리로 하여금 말씀을 토해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이렇게 생각합니다. 성경 말씀을 가지고 부단히 연구하면 내적인 실력이 쌓이고 그 실력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내가 연구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고 깨닫게 하실 때에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말씀이 말씀되도록 전하는 것도 우리가 임의로 전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를 붙잡고 있을 때에 말씀되게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에 그 말씀에 대한 인간들의 반응이 어떠한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죄 아래 있는 인간들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단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는 구절이 바로 5절에 이어서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거하니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 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바울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가 믿는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었고,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일어난 이런 일로 말미암아 후에 바울이 어떻게 고백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전 2:3). 바울은 실로 부도덕이 횡행하고 복음의 말씀으로 인해 자신을 대적하는 유대인들로 인해 두려워하며 떨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9,10절).

하나님은 오래 전에 노아를 통해, 아브라함을 통해 그리고 모세와 다윗을 통해 이미 자신의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는 언약의 후손으로 뱀을 짓누를 여인의 후손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 언약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짓밟아 승리하는 방법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본래 오신 목적, 즉 \"자기 백성들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는\"(마 1:21) 일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승천하신 주님은 계속해서 그 일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떤 방해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완성해 가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사도행전은 바로 그러한 일을 보여주고 있는 책입니다. 사도들이 얼마나 훌륭한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이 죽도록 고생했다는 기록이 아닙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그 일 때문에 베드로와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이 주님의 뜻대로 움직여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이 환상 때문에 힘을 얻었다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자기 일, 곧 말씀을 이루어 가시는 것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시에 투입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다는 근본적인 뜻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 자신의 어떤 유익을 위해 일하시는 주님이 아니라 주님 자신의 말씀이 성취되는 그것 때문에 바울을 붙잡고 계시고 고린도에 복음을 드러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 백성에게 말씀을 전하고자 하시는 그것 때문에 지금 바울을 붙잡고 계신 것입니다. 바울이 아니면 주님의 일이 안된다든지 바울이 없으면 복음 전파하는 일이 그르치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복음에 대하여 나타내는 반응과 같이 모든 인간들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하여 싫어하고 거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께서 바울을 말씀에 붙잡아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바울을 붙잡으시고 자기 백성들을 복음 앞에 굴복시키고자 하시는 그 뜻 때문에 바울은 할 수 없이 고린도에 있어야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있을 수 있는 여건이 되느냐 안되느냐 하는 것은 바울이 문제 삼을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두렵고 떨리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

인간은 누구나 다른 세력에 의해 장악 당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존재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사탄의 말을 추종할 때에 원했던 것은 자기가 신이 된다는 것에 솔깃했던 것입니다. 아니 전적으로 사탄의 그 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신이 되기는커녕 신이 되고자 하는 투쟁 속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선악을 아는 인간으로 전락하게 되었을 때에 인간은 자신이 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신으로 만들기 위해서 모든 것을 투자하는 어리석은 인간이 된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이 복음의 말씀에 장악된다는 것은 도무지 우리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가 아니고는 죄인이 주님의 말씀에 굴복되어지지 않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와서 이 사실을 한번 더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에 이르기 전에 아덴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는 철학적인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바울은 오직 십자가만 전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1,2).

이 말씀이 바울은 이제 더 이상 다른 것을 전혀 배우지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가 전하는 것은 더 이상 철학이나 세상적인 것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방법조차도 철학적이거나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라는 뜻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더 이상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복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11절에 의하면 \"일년 육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고 했습니다. 개인적인 두려움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가 고린도에 1년 6개월을 머물면서 복음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바울의 위대함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신의 뜻,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자신의 언약 때문에 바울을 말씀에 붙잡아 매어서 일하신 것입니다.

이 도시에 하나님의 백성이 혹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말씀에 붙잡혀 말씀을 드러내는 도구로 쓰일 수밖에 없는 자를 두고 하나님의 백성이요 성도라고 하며, 그 사람들을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아니면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주님은 주님 자신의 기쁘신 뜻에 의해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말씀은 자신의 언약대로 일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언약의 말씀에 붙잡혀 살아가는 것이 기쁨이 되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라는 공동체는 교회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 자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밝혀주고 있는 교회상은 이렇게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들은 교회되기 위하여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제자훈련, 전도훈련, 입시 기도회, 일천 번제 예배 등등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그러한 모든 인간적인 방법들은 교회아닌 단체를 교회되게 하고 유지시키자는 교회보존운동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말씀에 그저 그냥 말씀에 붙잡혀 있는 것으로 교회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냥 존재하는 것을 가지고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운동이 있고 일거리가 있어서 부단히 움직여야 교회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말씀이 교회를 낳는 것입니다. 교회란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회개하게 되는 자들로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자들입니다. 그렇게 사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도 장악당하기 싫어하고 누구에게도 다스림을 받기 싫어하는 인간이 자기라고 하는 신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섬길 수 있는 자가 되었다면 주님의 은혜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주의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자기라고 하는 신을 날마다 무너뜨리고 제거하는 작업을 하십니다. 그 자리에 또 다시 자신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고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살아가는 것은 날마다 말씀에 붙잡히는 것으로 가능하다는 진리에 순종하는 자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런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찬양+모음] 부활 찬양 메들리 (예수부활했으니 外)
    예수 부활했으니 할렐루야 만민 찬송하여라 할렐루야 천사들이 즐거워 할렐루야 기쁜 찬송부르네 할렐루야 대속하신 주예수 할렐루야 선한 싸움 이겼네 할렐루야 사망권세 이기고 할렐루야 하늘문을 여셨네 할렐루야 길과 진리 되신 주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부활 생명 되시니 할렐루야 우리 부활하겠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흰 옷입은 천사 돌을 옮겼고 누우셨던 곳은 비어 있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사망권세 모두 이기시었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 할렐루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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