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받았느냐
(사도행전 19:1-7)
몇 년 전에 성령운동에 관한 문제로 인하여 한국교회가 굉장히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성경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계속적으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오늘날 성령운동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서울의 두 교회가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심지어는 이단 시비까지 붙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서로에 대한 완고한 입장이 완화되었습니다. 이단이라고까지 함부러 정죄하지 말자는 것으로 되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긴장이 완화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어느 한 교회가 성경적인 견해를 바꾸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적 입장이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공격을 받던 당시에는 한참 세력이 커져가던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이제는 세력이 한국교계에서 무시할 수 없을만큼 커졌고 교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서로 이단으로 정죄해서 좋을 게 없으니까 좋은 게 좋다고 교리적인 논쟁은 서로 접어두고 친하게 지내자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로 교회를 키우면 어느 교회든지 세력이 커지면서 이단논쟁의 시비에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교계에서 무시할 수 없을만큼 커져 있을 때에는 아무도 시비를 걸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누구나 교회의 세력을 크게 하는 일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혹시 이단적인 논쟁거리가 되더라도 그들이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될 때까지 참고 지내자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단 논쟁의 도마에 올려놓는 그것이 그 교회를 키워주는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로 진리 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교회를 키우고 세력을 확장해서 힘으로 다른 교회를 눌러 자기의 목회 역량을 마음껏 발휘해 보자는 것입니다. 여기에 도구로 가장 많이 등장되는 것이 성령입니다. 성령을 도구로 삼아 교회를 마음껏 키워보자는 것입니다. 혹시 누가 성령의 문제에 대해 시비를 걸면 신비의 문제로 돌리고 영적인 문제니까 함부러 판단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소치라고 협박을 가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두가 믿음이 없이 주님께서 그를 신학교에 보내지도 않았는데 자기 혼자 주님의 소명이라고 하면서 신학을 해서 교회 사업을 벌인 결과입니다. 이는 목회자뿐만 아니라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교회에는 주님께서 보내주신 자만 올 수 있습니다.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아무나 왔다고 하더라도 주님은 자신의 십자가를 들이대서 비언약적 요소들을 늘 털어내는 작업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의지대로 찾는 하나님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과 다릅니다. 다른 예수입니다. 자기를 위한 예수입니다. 한국교회는 자기 구원에 도취된 교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구원받아야 한다는 당위성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교회 생활을 하면 할수록 \'그래 나는 훌륭한 인간이야 이렇게 훌륭한 인간이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당연하고 구원받는 것은 기정사실이야! 저 구석에 왔다가 그냥 가는 저런 교인보다는 그래도 나는 교회에 중추적인 일을 하고 있고 목사님을 잘 섬기면서 목사님의 총애를 받고 있으니 나만큼 잘난 인간은 이 교회에 없는 것같애! 하나님이 나같은 사람을 구원안하면 누구를 구원하나\'라고 늘 되뇌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 교인들의 실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기를 성령을 받지 않으면 예수를 믿을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받지 않고서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 사도가 말하는 바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에서 바울 사도는 에베소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그러자 그 사람들이 대답합니다. \"아니라 우리는 성령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그래서 바울 사도가 그 사람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은 한국교회가 성령운동을 할 수 있는 근거가 결코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받도록 안수하는 목사가 있다면 그 사람은 사기꾼입니다. 명백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고 있는 행위입니다.
에베소에서 일어난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계시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성령이 이렇게 오신다는 차원이 아니라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의도가 무엇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의 세례만 받은 자는 아직 구약시대에 사는 사람입니다.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물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미 세례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어야 하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라는 분이라고 선포했더랬습니다(4절).
그러므로 그들은 다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때 바울이 안수하니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다\"(6절)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성령받으면 무조건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방인이라도 누구든지 요한의 세례에만 멈추어 있다면 구약시대에 살고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그분 안에 있는 것은 성령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시는 뜻이 담겨 있는 말씀입니다. 그 증거가 방언도 하고 예언을 했다는 것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방언과 예언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식으로 기도와 연관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록된 말씀으로 주시기 전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못알아 듣는 말로서 계시를 주심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비밀에 감추어져 있으므로 죄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을 대적했던 인간들의 죄에 대해 방언을 통해 책망하시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죄인들인 우리들이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알게 된 것은 내가 잘나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7절에 보면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교회로 모이고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교회란 이렇게 성령을 받은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영이 장악한 자를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받은 자는 예수를 자신의 주로 고백하면서 주인을 위해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2-3).
성령을 받아야만 예수님을 자신의 주로 고백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받지 않으면 교회에 나올 수 없습니다. 왔다가도 언젠가는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전부 주님의 은혜만 자랑하는 모습으로 일관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는 자들이 모인 단체는 자기 자랑으로 도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분의 피로 사신 바 된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계 5:9).
그러므로 그분을 위해 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입니다. 나를 살려주신 그분을 위해 사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이제 내가 주를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하겠는데 무엇을 하면서 살까 라고 고민이 된다면 성령받은 자가 아닙니다. 무엇을 하면서 주를 위해 살까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아직 자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무엇을 하며 주를 위해 살까가 아니라 그냥 주님의 소유로서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내 삶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받은 자의 특징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데 있기 때문입니다(엡 4:12). 고린도전서 12:12에 의하면,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27절에 나가보면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 안에서는 자기를 바라보는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내가 존재할 뿐입니다. 그 나는 결코 나로서의 내가 아니라 주님의 몸으로서의 나입니다. 세상을 바라보거나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일상생활 속에서 문득문득 주를 바라보는 마음이 생깁니까? 그 때에 자기 자신이 잘나서 그렇게 된 것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성령께서 일하신 결과로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세례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 무엇인가? 이웃을 위해 사는 것이 예수님처럼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 바뀌어진 자여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냥 밋밋한데도 뭔가 다른 곳에 정신을 팔고 사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다른 곳이란 오직 하늘입니다. 위엣 것을 찾고 세상과 세상의 것을 공박하면서 사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에 더 이상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사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령받아서 모인 자들이 오직 하늘의 것을 보여주면서 사는 자들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 6:44)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지금도 동일하게 일하고 계십니다. 지금의 교회들은 이것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대부분은 성령을 도구화하려고 합니다. 성령을 도구로 해서 우리의 교회 사업을 멋지게 번창시켜 보자는 것입니다. 그 목적 때문에 현실적으로 교회는 설교를 잘하는 목회자는 원하지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어느 정도 한계가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많은 목사들이 비밀리에 최면술을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최면술을 걸어서 성령받은 것처럼 위장하려는 술수에 불과합니다. 이런 사기행각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입니다. 체험이나 경험을 우상으로 삼는 우리들 때문에 마귀가 장난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임의로 일하십니다. 그러나 철저히 자기 백성은 찾으시고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교회는 그 말씀에 순종하고 따를 뿐입니다. 심방한다고 해서 사람이 모아져서 교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영이 우리를 심방해서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주님의 증인노릇 하는 일에만 관심을 갖도록 우리를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주의 영이 하고자 하시는 대로 예수님을 위해서 사는 일에만 신경쓰시기 바랍니다
찬양+모음] 부활 찬양 메들리 (예수부활했으니 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