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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신학의 관점에서 본 한국 교회교육
-토라, 예언서, 지혜서의 교육적 기능에 관한 연구-
강규성(한국성서대학교)
1. 서론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인간 삶의 전 영역에 미쳐야 함을 역설한다. 이런 신학적 전제는 하나님의 문화명령(창 1:26-28)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위임 명령(마 28:18-20)에 잘 부합된다. 타락한 세상에서 이 명령을 수행 할 전투적 전진 기지는 바로 교회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성도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사회에서 책임 있는 삶을 살도록 철저히 교육해야 한다. 또한 그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삶의 전 영역에 적극 투영함으로 세상문화와 대응하는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창출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따라서 교회교육은 타락한 세상에서 발생하는 현안 문제들에 대해 도피하지 않고 거룩한 의식을 가지고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자세로 싸울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이런 교회교육의 초석(礎石)은 성경이다. 성경은 교회교육의 원리와 내용을 제시한다. 김광열은 교회교육이 세속적 교육원리와 방법이 아닌 성경을 전제로 하는 교육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교회교육을 논하게 될 때, 거기에서 논의 되는 교육이란 성경을 전제로 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진정한 교회교육은 단순히 세속적인 교육원리나 방법들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성경공부를 가르친다고 해서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교회교육이 정말로 21세기의 한국교회의 밝은 미래를 만들어 내기 위한 기초를 놓기 위해서는, 그 교육의 모든 원리와 내용들이 진정으로 성경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속에서 확립되도록 지속적인 교정작업이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세속적인 교육원리와 방법들은 성경의 하나님과 그의 말씀이 제시하는 역사관, 인간관, 종말관 등을 무시한 채 논의되어온 것들이므로 우리가 교회교육을 통해 가르치고 제시하려는 내용과 상충되는 원리들을 직.간접적으로 제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교육의 영역이란 넓게 봐서는, 신학의 한 분야인 실천신학의 영역이므로 신학의 근본원리인 하나님의 기록된 계시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과 교리의 틀 안에서 그 내용들과 목표들이 설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김광열의 지적처럼 세속적 원리와 방법들에 근거한 교회교육을 지양하고 성경에 근거한 교회교육이 되기 위해서 상호학문간 연구가 필요하다. 신학의 범주 안에 위치한 학문간 연구는 교회교육의 원리와 내용 그리고 방법들이 성경에 기초하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몇몇 연구들이 이런 시도를 했지만 구약신학과 교회교육간의 상호학문적 연구는 활발하지 못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신학회가 각 신학의 영역에서 교회교육을 바라보도록 한 학술 세미나를 개최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본다.
1.2 연구목적
본 연구는 정경으로서 구약자체의 교육적 기능에 관한 것이다. 연구자는 구약의 세 부분 토라, 선지서, 성문서의 교육적 기능이 무엇인지 고찰하여 그것을 한국교회교육의 원리로 제시하려고 한다.
1.3 연구방법과 절차
이비(C. B. Eavey)는 율법서와 역사서 그리고 시편과 마찬가지로 예언서에도 교육에 관한 많은 진술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좀더 적극적 의미에서 구약자체가 교육적이다. 부르거만(Walter. Brueggman)도 이 관점을 전제하고 구약 정경이 교육의 실마리로서 교육적 과제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그는 렘 18:18에서 \'제사장의 율법\', \'지혜로운 자들의 묘책\', \'선지자의 말\'이란 어구를 발판으로 히브리 정경의 세 부분, 토라, 선지서, 성문서(지혜서)를 교회교육의 기본 틀로 이해했다. 그래서 그는 이 세 부분이 제각기 가지고 있는 드러냄(disclosure)과 깨뜨림(disruption) 및 깨닭음(discernment)등의 특징들이 합쳐져서 신앙교육의 핵심이요 알맹이인 \'창조적인 말씀\'을 구성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연구자는 구약자체가 교육적이라는 입장에서 본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구약자체가 교육적이다는 문장에는 구약의 세 부분, \'토라\', 예언서, 성문서의 교육적 기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요지를 남긴다.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연구의 절차가 될 것이다. 그래서 연구자는 연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세 과정을 거치려고 한다. 첫째, \'토라\'의 교육적 기능에 관한 고찰이다. 둘째, 예언서의 교육적 기능에 관한 고찰이다. 셋째, 지혜서의 교육적 기능이다. 지혜서는 성문서에 포함되는 부분으로 잠언을 중심으로 고찰하려고 한다. 마지막은 모든 연구의 종합으로서 한국교회 교육을 위한 제언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
2. \'토라\'의 교육적 기능
\'토라\'라는 용어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일반적으로 오경을 지칭한다. 토라가 교육적이다는 것은 토라가 기록된 역사적 정황에서 이해 할 수 있다. 오경 저작설에 관한 논쟁이 있지만 전통적으로 모세 저작 설의 견지에서 볼 때, 저자 모세가 독자 이스라엘에게 전달하려는 오경은 그 자체가 교육적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체험한 이스라엘에게 모세는 그들을 구원한 하나님은 누구이시며, 이스라엘 자신은 누구이며, 그들이 왜 이집트에 있었으며, 왜 가나안 땅으로 가야 하는지, 앞으로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교육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런 견지에서 토라는 몇 가지 교육적 기능을 가진다.
2.1 세계관의 변혁
토라의 첫 번째 교육적 기능은 세계관의 변혁이다. 세계관의 변혁은 창조기사에서 잘 드러난다. 인간과 우주의 기원에 있어서 21세기 기독교 사상의 큰 대적이 진화론과 빅뱅이론이라면, 인간과 우주의 기원에 있어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큰 대적은 아마도 당대를 지배하고 있던 신화론적 세계관 일 것이다. 특별히 신화론적 세계관들은 당시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지배하고 결정했기 때문에, 모세는 신과 우주 그리고 인간에 관련된 왜곡된 세계관을 분쇄하고 바른 세계관을 세우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선언은 이스라엘을 구속한 언약의 하나님이 곧 창조주이시다는 선언일 뿐 아니라 당시 만연했던 다신론적 세계관을 분쇄하는 선언이다. 밴게메렌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태초에 하나님이\'라는 귀절을 사용함으로써 성경은 모든 이교적 개념들에 대해 압도적으로 뛰어난 하나님의 으뜸성에 대한 진술로부터 시작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 그들은 우상과 이교도적 제의들, 마술, 제사장의 직능, 혹은 우주의 기원들과 이집트의 만신전에서의 신들의 위계질서를 설명하는 신화들에 무지한 것이 아니다\'태초에 하나님이\'라는 귀절은 이교도의 세계관을 분쇄하는 계시로서 변증적 기능을 함축한다출애굽하여 나오는 이스라엘에게 주께서 말씀하신다. 왜 우주적 힘들이나 운명을 무서워 하느냐?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다
밴게메렌이 잘 주목한 것 처럼, 출애굽 당시에 근동은 다신론적 세계관으로 다양한 창조신화들이 있었다. 그동안 학자들은 근동의 창조설화들과 창세기의 창조기사의 유사성에 근거한 비교연구를 통해 창세기 창조기사가 바벨론 신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하이델의 연구처럼 근동의 창조설화과 창조기사의 분명한 차이점이 들어난다. 우주론에 있어서 고대 근동의 세계관은 우주의 물질적 존재들은 신들의 투쟁 혹은 연합, 유출의 산물이었고 또한 우주는 신들의 권력투쟁 장소였다. 특히 신들의 운명은 출생과 죽음이 있으므로 그 한계를 드러낸다.
창세기의 창조기사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창조주 이심을 선언할 뿐 아니라 우주의 기원이 투쟁과 연합 그리고 유출의 산물이 아니라 말씀에 의한 창조임을 선언한다. 특별히 6일 창조기사는 그 당시 신적 존재로 여겨졌던 것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피조물에 불과 함을 인식시킨다. 왈키는 창 1:16절의 \'두 큰 광명체\'에 대한 주석에서 \'이 표현은 이교도의 만신전(pantheon)의 주요한 신들에 대한 논박으로서 역할을 한다. 고대 근동 신화에서 태양과 달은 주요한 신들인 반면에 여기서 그들은 한 분 창조자가 인간을 섬기도록 계획한 익명의 물질들이다고 말한다. 특별히 이집트인들은 태양은 \'레\' 신으로 땅의 창조물을 위한 생명의 근원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창세기의 창조기사는 그들의 이런 신념을 일축한다. 창조기사는 우주의 질서와 조화는 신들의 투쟁과 갈등의 결과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통치적 말씀에 의해서 이루어짐을 분명히 한다. 이것은 창세기의 창조기사가 고대 근동 신화의 반영이 아니라 고대 근동의 신화론적 세계관에 의해 왜곡된 우주관을 분쇄하고 바른 우주관를 위한 변혁을 시도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창조기사에 나타나는 또 하나의 세계관 변혁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선언에서 드러난다. 인간창조에 있어서 고대 근동의 자료들은 인간이 신적 본질에서 유출되었음을 보고한다. 그러나 창조기사는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독특하게 구별되는 \'하나님의 형상\'임을 선언한다. 그동안 많은 학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에 대해 많은 논의를 했다. 그러나 연구자의 관심은 \'하나님의 형상\'이란 개념이 가지는 교육적 가치는 무엇일까이다. 우리는 \'신의 형상\'이라는 개념이 고대 왕들에게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손석태는 이 점을 주목했다.
메소포타미아의 인사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발견된다. \'내 주 왕의 아버지도 바로 벨의 형상(salam bel)이요, 내 주 왕도 곧 벨의 형상(salam bel)의 형상입니다,\' \'땅의 주, 왕께서는 샤마쉬(Shamash)의 형상이십니다,\' \'오 주거하는 세계의 왕이시여, 당신은 마르둑(Marduk)의 형상입니다.\' 이집트에서 이집트에서도 왕의 이름으로 같은 개념을 묘사하고 있는데, 가령 투탄카문(Tutenkh-amun)은 \'아문(Amun, 신의 이름)의 살아있는 형상\'이라는 의미이다. 또 투트모스 4세는 \'르\'(Re, 신의 이름)의 모양이라고 불리웠다.
이것은 좀더 고찰이 필요하지만, \'신 형상\'이라는 용어가 왕들에게만 국한되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특별히 대우주로서의 신들의 세계와 소우주로서 인간의 세계라는 근동의 사고와 신들의 위계질서가 존재했다는 것이 그 가능성을 뒷 바침 해 준다. 그렇다면 고대 근동의 문맥에서 볼 때,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 더 나아가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선언은 과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이집트 노예의 신분으로 많은 세월을 보냈던 이스라엘에게 이 같은 선언은 놀라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창조기사의 이 같은 시도는 타락한 인간세계에 자리잡은 왜곡된 인간관을 바로 잡아 인간의 본질을 분명히 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창조기사는 왕 만이 신의 형상이 아니라 인간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대리 통치적 기능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토라는 세계관의 변혁이라는 교육적 기능이 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세계관의 변혁이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거룩한 백성으로 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토라는 당시 왜곡된 세계관이 만들어 낸 문화 속에 살았고 또한 살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계를 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바른 창조사관을 교육함으로 출발한다.
2.2 거룩한 백성의 정체성 확립
또 다른 토라의 교육적 기능은 정체성 확립이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언약공식(창 17:7; 출 6:7; 레 26:12; 신 29:13)에 잘 드러난다: ~yhi_l{ale( ~k,l\' ytiyyIh\'w> ~[\'l. yli ~k,t.a, yTix.q;l\'w> 여기서 우리는 \'선택\'과 \'백성\', \'언약\'이라는 개념을 생각 할 수 있다.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신 7:6-8)를 강조하면서 이스라엘을 열방과 구별된 독특한 위치로 만든다. 이스라엘이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은 창세기 구조가 가지는 신학적 의미가 잘 말해준다. \'톨레돗 문구\' + 내러티브 + 죽음 보고 + 비 선택계열 계보 + 선택자의 \'톨레돗 문구...\'으로 반복되는 창세기의 구조는 창세기 저자가 독자들에게 하나님-아담-노아-데라-아브라함-이삭-야곱-이스라엘에 초점을 맞추도록 한다. 이런 신학적 구조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약속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된 약속의 민족이라는 사실을 드러내 준다. 또한 족장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 속에 있으며, 그 언약에 근거해 이집트로 내려왔고(창 37-50), 그 언약에 근거해 하나님이 그들을 출애굽 시키셨음을 강조한다. 바로 저자는 이런 신학적 구조와 하나님의 약속, 그리고 족장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가르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다.
언약과 백성이라는 개념은 창조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독특한 관계를 규명한다. 팔머 로벗슨의 말을 빌리자면, 언약은 \'삶과 죽음의 약정\'으로 창조주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강력한 결속력을 보여준다. 이것은 또한 종주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헌신을 요구한다. 또한 이 언약 개념은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성에서 오는 충성과 헌신의 책임이 요구되는 뿐 아니라 수평적 관계 속에 언약 공동체 안에서 더 나아가 열방들에 대한 책임 있는 공동체임을 인식시킨다. 이 사실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기능에 관한 진술, 출 19:5-6의 내 소유(hL\'gUs.), 제사장의 나라(~ynIh]Ko tk,l,m.m;), 거룩한 백성(vAd+q\' yAg)에서 잘 드러난다. 하우스(Paul R. House)는 이 진술 목적을 온 열방을 언약에 참여케 하기 위한 선언, 언약의 기능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정체를 온 열방에게 중개할 수 있는 특별한 민족으로 삼는 것이라는 선언이라고 말한다. 카이저는 이스라엘이 제사장의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온 땅의 족속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중보자로서 사역을 해야만 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바톨로메우와 고힌(Craig G Bartholomew &Michael W. Goheen)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특별한 보물로 선택하셨는데, 그 선택이 단지 특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봉사를 위한 것이고 열방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고 강조한다.
토라는 이스라엘이 선택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에게 충성과 헌신을 다하고 열방에 대하여 중개자로서 책임이 있는 공동체임을 가르친다. 특별히 이스라엘이 창조주와 열방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은 창조 시 하나님께서 만물가운데 사람을 대리통치자로 세웠던 역할에 상응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창조명령의 수행자로 서 있음을 보여주는 교육이라 할 수 있다.
2.3 언약 백성의 거룩한 삶의 규범을 제시
2.2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언약관계로 규정했다. 이 언약관계를 더욱 결속력 있도록 하는 것이 언약규정에 대한 충성이다. 토라는 언약의 한 표현으로 언약 백성의 사고와 행동방식을 규정하며 삶의 규범을 제시한다. 그것은 토라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이 삶과 죽음, 번영과 파멸, 축복과 저주를 가름한다는 것은 언약의 구조적 특성에서도 잘 드러난다. 특별히 오경 본문들은 토라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교육하기 위하여, 모세로 하여금 가르치도록 기록했음을 분명히 한다(출24:12). 따라서 토라는 언약백성이 제사장의 나라(출 19:5-6)로서 거룩한 신분(출 22:31; 레 19:2, 신 26:16-19; 신 7:6)을 가지고 살도록 하기 위한 삶의 규범을 제시하는 교육의 기능을 가진다. 셀만은(M.J. Selman)은 언약 백성에게 주신 토라의 세 측면을 학습해야 할 교훈과 안내서, 순종하여 따라야 할 명령, 삶의 방법에 대한 안내라고 주장한다. 이런 토라의 규범들은 십계명과 언약서(출 20-24), 성막법(25-40), 레위기 법(레 1-27), 신명기에 드러난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의 거룩한 삶을 다루는 레위기 17-27장의 앞 부분 18-20은 우리 사회의 주요 문제인 성 윤리, 인권, 소득분배, 법의 공정성을 다룬다. 이것이 함께 다루어지는 것은 이 문제가 현 시대의 문제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과거에서 중요한 문제였고, 오늘날도 중요한 문제며 앞으로도 중요한 문제로 남을 것이다. 토라의 삶의 규범은 이런 문제에 대해 문화변혁적이며, 공의로운 사회 실현을 위한 언약백성의 책임을 요구한다.
요약하자면, 토라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세계관을 변혁시키고 그들의 정체성을 확립시킬 뿐 아니라 거룩한 백성으로서 삶의 규범을 제시하는 기능을 한다.
3. 예언서의 교육적 기능
예언서는 삶의 규범으로서 토라의 교훈을 가지고 역사 속에 살았던 이스라엘에 대한 진단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예언서는 과거 역사적 사건들의 의미들을 신학적으로 재조명한 교육이다. 연구자는 예언서의 교육적 기능을 세 면으로 고찰하려고 한다.
3.1. 약속의 땅에서 토라의 실천의 중요성
전기 예언서는 약속의 땅에서 발생한 이스라엘의 성공과 반역, 실패와 회복의 역사를 다룬다. 김지찬은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여호수아로 끝나는 역사는 여호와의 약속을 신뢰함으로써 결국 땅을 소유하게 되는 영광스런 역사이다반면에 여호수아서 이후에 역사는 땅을 소유하였다고 상실하는 역사이다라고 했다. 가나안 땅을 소유하고 상실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가나안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언약의 장소로 그 땅에서 이스라엘 생존의 지속성은 토라의 실천에 달려 있다(레 18:24-30).
고웬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땅의 소유와 상실이 좌지우지되는 것은 우리에게 알려진 고대 근동 문헌들 가운데 구약성서만이 유일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온 땅은 여호와의 소유이기 때문에 그 땅에서 어떻게 사느냐와 땅 소유와 상실의 문제는 직결된다. 출 23:32-33은 가나안 땅의 거민과 언약을 맺는 것은 \'올무\'을 만드는 행위이고, 수 23:12-13은 그 올무로 인해 멸절할 것을 선언한다. 특별히 신 4:25-26은 약속의 땅에서 언약을 파기하면, 그 땅에서 망할 것을 천지를 증인으로 불러 확고히 한다. 더나아가 신 4:27-28은 좀더 사실적으로 너희를 열국 중에 흩으실 것이라고 경고한다. 또한 레 26장은 복과 저주의 선언을 통해 이스라엘이 언약을 어기면 멸망과 포로로 잡혀 갈 것을 약속한다.
따라서 약속의 땅에서 토라의 실천은 그들의 운명과 직결되기에 전기 예언서에서 매우 중요하게 취급된다. 여호수아서는 토라의 실천과 땅의 정복과 실패의 관계를 잘 드러내는 본문이다(수 1:5-9). 사사기는 여호와와의 언약을 파기하고 가나안 원주민과 불법의 언약을 맺음으로 겪는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준다. 삼상 8장 이후로 계속되는 왕들의 이야기는 신명기 17:14-20에 기록된 왕의 규례를 지속적으로 상기시킨다. 즉 왕은 토라를 옆에 두고 읽어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배우고 그 모든 말과 규례를 지켜 행할 의무가 있다. 이런 강조는 사울이 왕으로 세워지는 과정(삼상 8-12장)과 다윗이 솔로몬에 대한 유언(왕상 2:2-4), 솔로몬의 성전건축 도중(왕상 6:12-13), 아히야 선지자가 여로보암을 만났을 때(왕상 11:38-39)등에 나타난다. 특별히 북방 이스라엘의 멸망의 이유를 기록한 왕하 17:7-23은 이스라엘의 패망 원인이 여호와의 토라와 명령을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겼기 때문이라고 규정한다. 저자가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속에 그들의 실패를 기록하면서 토라를 언급한 것은 그들의 삶의 터전에서 토라의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주는 교육적 기능이라 할 수 있다.
3.2. 책망과 심판 선언을 통해 일깨우는 교육
예언서의 또 다른 교육적 기능은 예언자들의 역할속에서 드러난다. 일부 학자들이 예언자들과 언약과의 관계를 회의적으로 보려 하지만, 예언자들은 토라의 설교자였고 언약의 기소자였다. 그들은 역사적 폭로를 통해서 발가벗겨 감춰진 것을 드러내어 깨우치는 것(겔 3:17)이었다. 이런 선지자의 사역은 현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심판선언 속에서 나타난다.
아모스는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려 졌음(암 5:1-2)에 애가와 함께 이스라엘의 실상을 폭로한다. 그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인신매매(2:6)와 인권유린(8:4-6), 가난한 자들을 탁취(4:1-4), 공의와 정의의 상실(5:7, 15, 24)에 대해 폭로하면서 이스라엘을 책망한다. 호세아는 종교적 매춘으로 인한 성적 부정(1-3장), 유혈과 강도질과 부정직(1:4, 4:2; 6:8-9)을 책망한다. 미가는 남의 농토를 뺴앗고 인권을 유린하는 것(2:2, 9)을 책망한다. 선지자들은 이런 폭로들을 통해서 그들의 가리워진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이런 현실은 언약파기에 해당함으로 선지자들은 심판을 선언한다. 이 심판 선언의 목적은 무엇인가, 고웬 같은 학자는 선지자들의 임박한 재앙선언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늦었기 때문에 회개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미래를 위한 집행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레이다누스는 아무리 임박한 심판 예언이라도 그것은 무조건적이지 않으며 여전히 조건적이다고 강조한다. 그는 계속해서 이미 결정된 심판이지만 우리가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돌이키신다는 것이 임박한 심판의 목적이다고 주장한다. 연구자는 그레이다누스의 입장에 동의한다. 그의 입장을 수용하면, 예언서의 교육적 목적은 책망과 심판 선언을 통한 깨우침이며, 언약을 파기한 삶으로 부터의 회복을 위한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3.3 역사에 대한 인식: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에 대한 선언
예언서의 세 번째 교육적 기능은 독자들로 하여금 역사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예언서는 나라의 흥망성쇠 속에 하나님의 주권적 의미를 강조한다. 또한 역사의 주관자 이신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열방들을 통치하시며 다스리시는 분임을 역설한다.
하우스는 열왕기 상하에 대한 타이틀로 그의 말씀으로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사용한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로서 열방을 통치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은 열방 들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선언에서도 나타난다. 아모스는 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 암몬, 모압의 잔학한 행위 때문에 그들의 심판을 선언하신다. 이사야는 앗수르, 블레셋, 아람, 에돔, 모압, 암몬, 애굽 민족에 대한 심판을 선언(사 13-27장)한다. 특별히 렘 10:10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를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렘 1:10)
창조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이 아니라 온 열방의 하나님으로 그들을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분임을 예언서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이스라엘은 이런 역사의식을 갖지 못하였기에 열방가운데 그들의 역할을 상실했고 제사장의 나라로서 그들의 거룩한 본분을 상실한 것이다. 역사의 주관자로서 공의를 행하시는 거룩하신 자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적 의지를 따라 행동하시는 분이다.
요약하자면, 예언서는 약속의 땅에서 토라의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할 뿐 아니라, 약속의 땅에서 범죄한 백성을 심판하시고 돌이키시는 분임을 가르친다. 그 하나님은 역사의 주권자로서 행동하시는 분임을 가르친다.
4. 지혜서의 교육적 기능
정경으로서 구약의 세 번째 부분은 성문서이다. 성문서는 다양한 성경들이 모여 있다. 이중 욥기, 잠언, 전도서는 지혜서에 포함된다. 연구자는 지혜서 중 잠언을 중심으로 지혜서의 교육의 기능과 방법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한다. 클라인(M. G. Kline)은 구약의 지혜는 하나님의 섭리의 일반적인 질서를 설명하고 그의 언약이 규제하는 그 세계 질서 안에서 사는 여호와의 종들에게 가장 적합한 삶의 자세에 관해 교훈을 한다고 말한다. 또한 부르거만은 지혜서가 이 세상과 관련하여 바른 신자가 되려는 대안적 시도를 제공하는데 있다. 따라서 지혜문학은 교육자로서의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지혜서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 언약 백성의 실질적 삶의 문제를 다루고 그것들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잘 보여주기 때문에 현 한국교회 교육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으라고 본다.
4.1 사람의 본분에 대한 깨우침: 하나님을 경외함
지혜서는 창조 세계 안에 사람의 본분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고 독려하고 강조하여 가르친다. 이것이 지혜자의 근본이다고 교육하면서 훈계(rs;Wm)와 법(tr:AT)을 떠나지 말 것을 명령한다. 잠언은 지혜자의 근본의 중요성을 교육하기 위해 지혜자/정직한 자의 길과 결과를 어리석은 자/ 거만한 자/미련한 자의 길과 결과를 대조하여 교육한다. 지혜자의 길의 결과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 네 목의 금사슬(1:9), 평안과 안전(1:33; 10:9), 장수와 부귀(3:1; 11-18), 은총(3:4; 8:35), 영광(3;35), 생명(4:4-10, 13, 22; 8:35; 9:11)등이고 어리석은 자의 길의 결과는 멸망(1:32; 5:23; 8:36; 9:18; 10:8), 땅에서 끓어짐(2:22), 수치(3:35), 혼미(5:23), 다툼(6:23)등이다. 전도서 또한 이것을 강조한다(전 3:4; 5:7; 7:18; 8:12, 13; 12:13). 특별히 전도서의 결론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고 마감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 그것은 바로 이 땅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다. 이 교육의 목적은 토라의 가르침과 예언서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신약이 강조하는 온전한 그리스도인과 상이하지 않는다.
4.2 실제적 삶의 지혜에 대한 교육
부르거만이 주목한 것 처럼 렘 18:18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세 교육 그룹, 제사장을 통한 율법교육(!heKomi hr\"AT), 지혜자들을 통한 삶의 지혜(~k\'x\'me( hc\'[e), 선지자들을 통한 말씀(aybi_N\"mi rb\"d\")이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 부르거만은 이것이 이스라엘의 지식의 출처와 권위이고, 토라와 묘책이 지식의 형태였다고 주장한다. 제사장들이 가르친 토라가 언약 백성의 삶의 원리를 가르쳤다면, 지혜서는 세상 속에 사는 언약 백성의 실질적 삶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창조 세계 안에 사는 하나님 백성의 지혜로운 삶을 위한 실질적 지침은 자세하고 상세하다. 첫째, 물질에 대한 교훈이다. 잠언은 물질을 지혜롭게 사용할 것(3:9~10; 11:28,29; 13:22; 14:24; 18:16; 19:4; 21:20,26; 22:26,27; 23:5,6; 25:21~22, 27:23~27; 28:8; 29:3), 뇌물을 피할 것(15:27,28; 17:8,23; 21:6,14; 23:3; 29:4.), 부당한 이익을 피할 것(1:10~19; 16:8; 23:10; 24:15; 29:24), 가진 자는 물질만 의지한다(18:11; 21:27; 22:16), 탐욕을 멀리하라(30:15~16; 27:20; 25:27)고 교훈한다.
둘째, 대인관계를 신중히 할 것에 대한 가르침이다. 1) 가족과 부부관계이다. 잠언은 우물과 샘물의 비유를 통해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 할 것(5:15-19), 슬기로운 아들(10:1), 어진 여인(12:4), 서로 사랑하는 것(15:17), 화목한 집(17:1), 아비를 근심케 하는 미련한 자(17:21), 부모를 저주하는 자(20:20), 가정의 불화(21:9; 25:24), 자식의 훈계(23:13-19), 부모에 대한 순종(23:22-26), 부모의 물건을 도둑질 한 자(28:24), 부모를 저주하는 자(30:11), 현숙한 아내(31:10-31)에 관해 교훈한다. 2) 이웃과 친구 관계이다. 잠언은 평안한 이웃을 해하지 말 것(3:29-31), 이웃을 위한 담보(6:1-5; 27:13-17), 이웃을 멸시하며 헌담하는 자(11:12-13), 이웃을 인도하는 의인과 미혹하는 악인(12:26), 친구 사귐(13:20; 16:27-29), 고아들의 땅을 침범하지 말 것(23:10), 위기에 처한 자를 구원할 것(24:11-12), 친구의 책망과 원수의 입맞춤(27:5-6), 이웃에 대한 아첨(29:5)에 대해 교육한다. 3) 상사관계이다. 잠언은 지혜로운 자는 왕의 진노를 쉬게하며(16:14), 슬기로운 종은 부끄러운 짓을 하는 주인의 아들을 다스린다(17:2)고 가르친다. 그리고 왕의 노함과 은택(19:12), 왕 앞에서 슬기로운 태도(25:2-7), 종을 다루는 법(29:19, 21), 종을 주인에게 비방하지 말 것(30:10)에 관하여 가르친다.
셋째, 개인의 삶에 대해서 교훈한다. 잠언은 근면하고 성실 할 것과 겸손히 행할 것을 가르친다. 또한 내면세계에 대해 마음의 평정(4:23; 13:12; 14:10,30; 15:13; 17:22; 18:14)을 유지하고 감정을 절제(12:16; 14:29; 15:8; 16:32; 21:29; 22:24,25; 23:1,2,4,7,27~35; 24:1~2,17,19,29; 25:28; 27:3~4; 29:8~9,11,22; 30:32~33) 할 것을 교훈한다. 그리고 성적으로 깨끗한 삶(2:16~19; 5:3~4,20; 6:25~35; 7:6~27; 11:22; 29:3; 30:15~16,18~20; 31:3)과 공의와 정직한 삶, 가난한 자를 돕는 삶(3:27,28; 11:24~26; 14:20,21,31; 19:7,17; 21:13; 28:3,15,27; 29:7,14; 31:20)에 대해서 교훈한다.
4.3 초월하신 하나님과 인간 지혜의 한계
잠언은 지혜의 근본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고 교훈한다. 잠언이 가르치는 그 여호와는 공의롭고 지혜로우신 분(3:19~20; 8:22~31; 21:30)이다. 또한 그는 창조자(30:24-28)이시고 그를 의지하는 자를 인도하고 보호하시는 분(3:25~26; 4:11,12; 6:22~24; 14:26,27; 15:25; 16:3,9; 18:10; 21:1; 23:11; 30:5)이시다. 특별히 잠언은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16:1)는 형식을 통해서 인간의 지혜와 지식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교육한다.
요약하자면 지혜서는 창조 세계 속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실질적 교육이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의 명령을 따라 살 것을 명령한다. 삶의 터전에서 부딛치는 많은 유혹과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한 실질적 교훈이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며 초월하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사는 것임을 가르친다.
5. 종합적 결론
지금까지 연구자는 구약성경 자체가 교육적이다는 전제 아래서 토라와 예언서 그리고 지혜서를 고찰했다. 서론에서 한국교회 교육은 성경을 전제로 하는 교육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주목할 때, 구약성경의 교육적 원리와 내용은 한국교회 교육의 기본적 틀이 되어야 한다. 이점을 주목하면서 한국교회을 위한 몇가지 제언을 하려고 한다.
첫쨰, 한국교회 교육은 숫자적 성장에 집착한 교육이 아니라 성도의 가치변혁과 정체성 확립을 위한 교육이어야 한다. 중생한 그리스도인들의 실질적 삶의 터전은 교회가 아니라 타락한 세상이다. 그 세상의 왜곡된 가치와 유혹 속에 능동적으로 바르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는 토라의 세계관 변혁의 교육적 기능처럼 성경의 가르침을 통한 세계관의 변혁을 가져오는 교육이어야 한다. 적쟎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타락한 물질 세계와 발을 맞추어 적절하게 사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 세계관의 변혁은 성경읽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아쉽게도 한국교회 교육은 가장 기본적인 교육의 출발인 성경읽기를 등한히 한다.
둘째, 한국교회 교육은 현대 사회 속에 사는 언약 백성의 삶의 규범과 삶에 대한 실질적 지침을 주는 교육을 해야 한다. 토라에 제시된 언약 백성의 규범들은 당시 문화와 구별되어 변혁을 일으키는 규범들이었다. 예를 들면, 레위기 18장에 제시된 근친상간-간통-동성애-수간으로 이어지는 성적관계들의 금지는 당시 종교-문화 이데올로기 속에 자리 잡은 타락한 문화로 부터의 변혁이었다. 특별히 현대 교회에서 다루지 않고 심지어 교육하기를 주저하는 성 윤리 문제를 레위기 17-27장에서 다루는 거룩한 삶의 문제중 우선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문제이다. 또한 레위기에서 18-20장에서 성 윤리 문제와 동일하게 현대 사회의 문제인 소득분배, 인권, 법의 공정성 문제가 함께 다루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교회 교육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좀더 적극적이고 교육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의 규범으로 제시해야 한다. 따라서 세상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적극적 삶이 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지혜서의 교육을 다룬 것 처럼 교회교육은 세상과 동떨어진 교육이 아닌 실제적 삶의 내용이어서 성경에 근거한 자신들의 삶에 자신감 있게 살 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교회교육은 말씀을 통한 책망을 통해 바르게 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셋째, 한국교회 교육은 역사의 주관자 이시고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갖게 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특별히 초과학 시대를 살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주의 원리를 역행하려는 이 세대의 도전에 대항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선지자들이 인식했던 하나님이 이 세대의 불의와 악함에 대해 침묵하시지 않는 다는 분명한 교육은 그리스도인으로 자신 있는 삶을 살도록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토라의 실천여부가 이스라엘의 삶을 좌지우지 했듯이,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는 교육이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