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강 약 1:25-27절 강해

야고보서 1장 25-27절


야고보서(14) 참된 경건의 척도 3가지


지난번에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율법은 우리의 속박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온전하지 못한 것이지 율법이 온전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율법은 실현 가능합니다. 사실상 율법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율법은 마지막에 가서 실천해야 합니다.
경건이란 실천에서 나오는 것이지 전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알기만 하는 율법은 심판자가 되어서 도리어 번민에 빠지게 만듭니다.
머리와 손의 불균형! 그것이 정신건강을 심각하게 해칩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고통만 많아집니다. 그리고 번민만 무성해집니다.
율법은 최종적으로 실천의 단계로 나아가야 그것이 경건한 삶입니다.

경건이란 하나님 앞에서 내면적 인식을 말합니다.
\"지금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라는 의식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이 경건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외면적인 모습으로 경건을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실한 경건이 아닌, 형식적인 경건! 그러면 속고 속이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경건이 광고의 수단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내면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경건이
사람 앞에서의 외면적 인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한 경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 자랑은 하나도 없습니다.
순전히 자기 자랑에서 시작해서 자기 자랑으로 끝납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아무개야! 그렇게 높아지고 싶으니?\"

80대 초 서울에 살 때 동네에 H 교회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걸핏하면 그 교회의 전단지가 저희 집으로 배달되었습니다.
그 전단지의 큰 제목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벌써 40일 금식기도 3번!\"
그러면서 사진이 여러 장 실려 있었고 그 밑에 이런 기록이 있었습니다.
<40일 금식기도 하신 목사님의 모습!>
<목사님이 40일 금식기도 했던 기도굴!>

교회를 깊이 알지 못했던 당시에도 저는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분이다! 왜 그런 식으로 광고를 꼭 해야 할까?\"
결국 그분은 그렇게 원하던 교회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교주처럼 행세한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렸습니다.

저도 목회를 하다 보면 이상한 일을 많이 겪습니다.
어떤 분은 심지어 명함에까지 \"40일 금식기도 3번!\"을 적고 돌립니다.
제가 신학교 강의를 할 때 그 얘기를 했더니 안 웃는 학생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학생들에게 이런 충고성의 말을 꼭 해 주었습니다.
\"지금은 웃지만, 나중에 정말 그런 행동을 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입니다.

신앙인들을 가끔 외적인 모습으로 자기의 경건을 높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나는 몇 시간 새벽기도 한다\"는 것이 놀라운 자랑거리입니다.
어떤 분은 \"나는 일주일에 몇 번 예배를 본다.\"는 것이 경건의 척도인 줄 압니다.
어떤 분은 \"나는 하루에 성경을 몇 장 읽는다.\"가 경건의 척도인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하는 것이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그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실속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면적인 경건이 없으면 외면적인 경건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경건이 외면적인 자랑거리가 되면 틀림없이 내면적 경건은 사라집니다.

그러면 우리가 정말 새겨보아야 할 참된 경건의 척도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는 세 가지로 실제적인 경건의 척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혀를 조심하는 것\"이 경건의 척도임을 말해줍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행하리니...\"

이 말씀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을 하면
정말 원망스런 하나님으로 너희에게 나타나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말조심해야 합니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리 무슨 종교행위가 있어도 경건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의 가장 큰 약점으로 사람들이 무엇을 지적합니까?
입으로는 경건, 경건을 말하지만 말조심을 하지 못하는 것!
오늘날 그것이 신앙인들의 가장 큰 약점이 되고 있습니다.
참된 경건은 말조심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 둘째,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는 것\"이 경건의 척도임을 말해줍니다.

고아와 과부는 옛날에는 무방비로 노출된 약자입니다.
까딱 잘못하면 노예로 끌려갑니다. 그래서 그들을 돌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고아와 과부가 불의한 주장을 해도 무조건 그 편을 들라는 말이 아닙니다.
일부 자유주의 신학자나 사회운동가는 무조건 그들의 편을 듭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편을 들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의의 편을 들기를 원하십니다.
다만 편드는 것과 상관없이 그들을 돌보라고는 명하셨습니다.

여러분! 돈보고 사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지위보고 사람 보는 것 아닙니다. 건강보고 사람 보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그에게 있음을 보고 그 사람을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참된 경건입니다.

돈이 없다고 무시하고 능력이 없다고 무시하고
머리가 나쁘다고 무시한다면 그것은 참된 경건이 아닙니다.
참된 경건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입니다.

결론은 무엇입니까? 두말할 필요 없습니다.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은 절대로 경건한 사람이 아닙니다.

3. 셋째,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게 하지 않는 것\"이 경건의 척도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아시지요? 고전 9장 27절에 나오는 고백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우리 자신의 몸을 생각해 보십시오.
가만히 내버려두면 별 짓을 다합니다. 그러므로 쳐서 복종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속에 물들지 말라는 말을
세상과 격리된 삶을 살라는 말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그 말은 오히려 세상 속에 들어가라는 전제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 들어가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원리로 세상을 빛깔 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경건입니다.

여러분! 이제 경건에 대해 분명한 시각을 가지십시오.
경건은 지식이 아닙니다. 감상도 아니고, 의식도 아닙니다.
그리고 모험적 신앙행위와 외적인 신앙활동도 경건이 아닙니다.
경건이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겸손하게 실천하며 사는 것입니다.

특별히 혀를 조심하시고, 어려운 사람을 돌보고 기도하며,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고, ]
세속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물들이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참된 경건을 소유한 여러분들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경배 찬양] 예수 사랑
  • 글쓴이:두나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