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텬 강해
시 14 편 의인의 피난처
오늘은 시편14편의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이 시편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데 1절로 3절까지는 모든 어리석은 자들의 행위에 대해서 정죄하는 내용이고, 4절로 7절까지는 하나님께서 그 어리석은 자들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시의 배경이 어느 때인가 하는 것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다윗이 시온의 성소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 아들 압살롬에게 쫓기던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언약궤가 이미 예루살렘에 옮겨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다윗은 의인이 그 세대에서 끊어지는 그런 악한 때를 배경으로 이 시를 짓고 있습니다. 그 때의 배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기서 어리석은 자는 문맥에서 볼 때 \'하나님이 없다\' 하는 그런 사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은 없다\'고 단정짓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는 그 마음의 소욕을 좇아 마음 편한 대로 행하게 됩니다. 결국 그들의 행위는 부패하고 가증한 것으로 나아가고 맙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그들의 행위가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누구를 가리켜 말하고 있습니까? 일차적인 문맥은 이스라엘을 가리켜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심지어 언약 백성 된 자들까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입으로는 하나님을 말하되 그 마음과 행위로는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자들이 세상에 가득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어떻습니까?)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1절로 3절의 말씀은 바울이 로마서 3장 10절 이하에서 인용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바울은 그곳에서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 하는 것을 논증하는 구절로 이 구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세상에는 어리석은 자가 가득하고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들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한 자들뿐입니다. 다 치우쳐 있고 함께 더러운 자가 되었으며 선을 행하는 자가 없는데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다윗은 그들의 일반 도덕성을 막 공격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죠? 물론 그들의 행위가 가증하고 더러운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은 지금 그들의 윤리를 직접 공격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그들의 언약에 있어 불의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지금 다윗의 정죄를 받고 있는 이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하나님의 세우신 대리왕을 멸시하고 거부하는 자들이지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하는 이들이지요.
그들이 부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소의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지요. 다윗이 7절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한다\' 했을 때, 시온에 그 보좌를 펴신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죄의 본질입니다. 그것은 언약의 배교자로 서는 것이요, 세우신 대리왕을 통하여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죄입니다. 물론 그들의 타락한 행위가 동반되고 있지만 그것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세우신 구원자를 거부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고 다 함께 더러운 자가 되었다 했을 때 어느 때가 생각납니까? 노아 때나 소돔과 고모라 백성이 생각나지요? 그 때 백성들이 그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때 구원의 중보자를 세워 그들에게 말씀하실 때, 그들이 그런 식으로 그 말을 멸시하고 구원자를 조롱하였습니다. \'어디 하나님의 심판이 있느냐\'고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그들의 언약 배교의 상태, 하나님과 세우신 구원자에 대한 거부 그런 것을 다윗은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구체적인 죄의 항목들을 말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러이러한 죄의 항목들이 있는데 누구 하나 안 걸릴 사람 있겠는가? 그런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의 계시 가운데서도 배교자로 섰는가 하는 그런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에 그의 신성의 능력을 나타내시고 자기를 증거 하셨는데도 어떻게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이런 저런 죄를 지었는가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소에서 자기를 나타내시고 친히 율법을 주어 증거 하셨어도 어떻게 그들이 언약의 배교자로 서서 그 언약을 범했는가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도 직접 그들의 윤리를 공격하는 것이라기 보다 그들의 하나님의 세우신 대리왕을 거부하는 악함,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고 가난한 형제를 짓밟으므로 율법을 멸시하는 죄, 그런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부정하고 언약에서 떠난 그들의 죄를 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뒤에 있는 문장들이 이를 뒷받침 해 주고 있습니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뇨 저희가 떡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그럼 그들이 다 무지한 것인가? 다 무지해서 그런 죄악을 행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고 거룩한 율법이 그들에게 있으며 함께 하심의 증거로서 성소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무지한 행동을 하고 여호와를 부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떡을 먹듯이 하나님의 백성을 먹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6절에도 보면 그들은 가난한 자의 경영을 부끄럽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노략하고, 가난한 형제의 것을 빼앗는 자들입니다.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까지 탐내는 자들입니다. 그러면서도 두려움이 없는 자들입니다. 여호와의 백성을 삼키고도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어디 있느냐\'고 비아냥대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국이 어떻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까?
5\"--------\"\"저희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려움의 심판으로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노아 때와 같은, 소돔과 고모라 때와 같은 그런 두려운 심판으로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53편에 따르면 그들의 뼈를 흩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심판의 때에 그들은 두려워하고 크게 두려워 할 것입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의인의 편에 서시고 모든 의인들의 피난처가 되실 것입니다. 6\"--------\"여기서 \'가난한 자\'는 의를 인하여 핍박받고 전토를 빼앗기고 기업을 잃게 된 자들을 말할 것입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했을 때 바로 그 가난한 자를 가리킵니다. 의 때문에 포도원을 빼앗긴 나봇 같은 자들이 되겠지요.
바로 그 심판과 구원의 날을 시편기자는 소망 중에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시온에 그 보좌를 펴신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실 것을 시편 기자는 소망 중에 확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하는 것은 원어를 보면 \'그 운명을 돌이키실 때\'하는 말입니다. 곧 심판의 때를 일컽는 것입니다. 온갖 죄악을 행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그 마음을 높인 자는 비참하게 되고, 의를 인한 가난과 고통 중에 애통했던 자들은 웃게 되는 때를 말합니다. 바로 그 심판의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심판과 구원의 때를 다윗은 기다리고 있고 그것은 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다윗이 다시 왕위에 오르고 그 나라가 영광스럽게 서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때 다윗과 함께 했던 자들은 영광을 얻었고, 떡을 먹듯 하나님의 백성을 먹었던 자는 두려운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궁극적인 성취를 그리스도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그 나라를 세우시므로 그 의미가 참되게 성취된 것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여기 시편 기자나 구약의 경건한 의인들이 소망했던 바로 그 돌이키심의 때, 심판의 때가 임하였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눅 6: 20-25\"----------\"
이제 이 나라에서는 그간 의를 인하여 가난하게 된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린 자가 복이 있고 우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배부름을 얻고 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간에 배부름 중에 웃고, 형제를 압제하며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했던 자는 애통하며 슬피 울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가 임하였거든요. 심판이 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참다운 구원이 시온에서 나온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바로 그리스도에게서 이 시편은 온전히 성취되어진 것입니다. 이 시편에서 노래한 바로 그 시온의 구원이 우리 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 시편의 성취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아들의 선언하신 나라에서 그 백성의 운명을 돌이키시는 심판은 시작되었습니다. 우는 자는 이제 웃게 되었습니다. 웃었던 자들은 이제 울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들의 부활에서 시온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아들의 부활에서 사망의 권세에 대한 영원한 심판을 보았습니다. 의인과 악인의 결국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는 즐거움과 기쁨은 교회에게서 영원히 성취되어졌습니다. 이제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고 말할 수 없는 즐거움 중에 시온에서 난 구원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교회의 위치입니다.
우리가 지금 현재 그런 즐거움으로 충만하지 않다고 해서 교회의 위치가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상태에 관계없이 교회는 이미 하나님의 구원 안에서 하늘의 기쁨으로 충만한 그런 위치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기뻐하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기쁘지도 않는데 마치 우리의 내면을 설득하듯 억지로 기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즐겁지도 않는데 우리가 의식적으로 즐거워하면 마음의 상태가 즐거움의 상태로 바뀐다는 그런 말도 아닙니다. 바울은 우리의 구원역사적인 위치를 말하고 거기에서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 시편이 말하는 시온의 구원이 우리에게서 영원히 성취되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라\'했는데, 바로 교회에서 이 말씀이 성취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이기는 심지어 죽음의 권세까지라도 이기는 그런 구원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니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인가를 알았을 때만 참다운 기쁨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내면을 설득하는 것도 아니요, 인위적으로 자기 성격을 바꾸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알고 믿는 것은 모든 것을 이기는 참다운 능력이요, 기쁨의 원천입니다. 바울처럼 옥에 갇혀서도 즐거워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인 것입니다. 빈부에 처한 모든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인 것입니다.
그것은 관념적인 것이 아닙니다. 실재 우리를 자유케하고 평안케 하고 기쁨 중에 살 수 있게 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그 안에 평안과 자유함을 갖게 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참으로 주께서 이루신 구원이 무엇인가를 알 때만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일이 무엇인가를 알 때만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구원의 주님과 긴밀히 동행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도 한 때 하나님을 대항하는 언약의 배교자로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셔서 아들 안에서 친히 우리에게 오심을 통해서 이제는 예수를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예수 안에서 영원히 우리의 의로운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그의 의로우심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가 원수 되고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완악함 가운데 하나님을 대항하는 자로 서 있을 때,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사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 안에서 영원한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습니다.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그런 자가 아무도 없을 때,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아무도 선을 행치 아니할 때, 바로 그런 죄인들을 위하여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선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런 구원을 이루셨고 우리로 아들의 기쁨에 참여케 하셨습니다.
물론 지금도 세상은 어리석은 자들로 가득합니다. 온 세상은 예수의 증거를 받고도 하나님을 모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없다\'하는 조롱하는 입술을 높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안다 하는 이들 가운데서조차 세상에 있는 자기 평안함 때문에 실제로는 하나님을 부르지 않은 경우들이 많습니다. 입술로는 주를 시인하되 행위로는 부인하고,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되 그 사는 방식은 \'하나님이 없다\'하는 방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까지라도 신약의 백성은 낙심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아니됩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의인과 함께 계시고 의인의 영원한 피난처 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들과 함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배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제 교회는 예수와 함께 보좌 우편에 있고 우리는 예수와 함께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이 평안은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하늘에 오르셨기 때문입니다. 썩어지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기업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님 오시면 모든 어리석음은 드러나게 될 것이고 우리의 억울함은 벗겨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눈물은 씻기고 그 영광스러움은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이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기뻐하고, 이미 이루신 구원을 인하여 즐거워하며 패역한 세대 가운에서도 신실히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의인들로 이 땅을 사실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