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7 편 하나님의 구원을 구하는 22 오늘 이 시는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를 담고 있는 시입니다. 그래서 표제를 보면 \'다윗의 기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 시에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간절한 탄원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로움을 호소하고 원수들의 악함을 고소하며 그 가운데 자신의 구원을 간절히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를 형식상으로 분류해 본다면, 탄원시로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시의 배경을 볼 때, 지금 다윗은 원수들에게 쫓기는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시의 내용을 볼 때, 아마도 적들로부터 포위를 당하고, 적들이 언제 공격을 감행해 올지 모르는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가 본문에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무죄함을 토로하는 것을 볼 때, 아마도 사울왕에게 쫓기던 그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하튼 다윗은 원수들에게 쫓기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구원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가 이 시에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무죄함을 강조하고 이와 대비하여 원수들의 잔악함을 고소하며 그리고 그것에 기초하여 자신의 구원을 간구하고 있다는 점이 큰 특징입니다. 이러한 특징을 따라 이 시를 나누어 본다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1절로5절까지로 자신의 언약에서 신실했던 삶을 기초로 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둘째로는 6절로 12절까지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원수들의 잔악상에 대한 고소를 기초로 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셋째로는13절로15절까지 본 시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악인의 심판을 통해 자신을 구원하실 것을 다시 한 번 간구하므로 시를 마무리짓고 있습니다. 먼저 1절은 시 전체를 여는 다윗의 간절한 탄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는 여기서 자신의 탄식과 부르짖음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간절히 호소하는 것으로 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1\"---------\" 여기에서 여러분은 무엇이 느껴지십니까? 그의 간절하면서도 강렬한 호소력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그의 삶에서 베어 나오는 담대함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저는 그의 이 기도문을 보면서 \'아 사람이 가지는 삶의 진실함이란 이렇게 베어 나올 수 있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만큼 그는 진실하게 간구하고 있고, 그러한 그의 기도는 강렬한 호소력을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삼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게 그 감정이 전달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하튼 그는 자신의 기도를 정직한 탄원으로, 거짓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오는 기도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기도는 하나님의 공평한 판단을 간구하는 것으로, 또 자신의 무죄함을 호소하는 것으로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2-5\"--------\" 그는 무엇보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음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감찰하사 판단하시고 이 고통스런 상황에서 자신을 구원하여 주실 것을 탄원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어찌 보면 당돌하다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무엇이관데 감히 하나님 앞에 무죄하다 말하는가? 그리고 아무리 자기 생각에 허물이 없다 해도 어찌 티끌 한 점 없겠는가 또 감히 하나님 앞에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저의 이러한 생각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정신과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지 않고, 어느덧 하나님 앞에 저의 존재를 묻는 것으로 저를 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다윗을 향해서도 \'대체 자기가 무엇이기에\'하는 방식으로 판단하려 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늘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네가 무엇이기에\'라고 묻지 않으시는데 우리는 어느 순간 \'우리가 무엇이관데\' 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시고 보이신 함께 하시는 언약의 관계를 따라 자신을 생각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과 구별시켜 객관화시키려는 시도를 우리는 늘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우리는 늘 추악한 자신을 쓰다듬고 살아야 하는 비운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서 이탈하는 순간, 우리는 끊임없는 자학 속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켜 생각하자마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발견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도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죄인으로 발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는 어떠한 담대함도 평안도 있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다윗이 보인 이런 담대함이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 존재를 묻고 탐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신 복음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거짓 복음입니다. 그리고 그런 거짓 복음을 가지고는 우리 안에 성령의 생명의 능력을 이루어 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과 복음 안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속박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자유케 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깊이 또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아는 것,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안에 구원으로 오신 복음을 아는 것, 그리고 그 가운데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에서만 갖게 되는 것임을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를 분리시켜 생각하고자 하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도록 늘 자신을 경계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하나님이 내신 언약의 법을 따라 보면 다윗은 무죄한 자입니다. 자신의 말처럼 주님께서 자기 안에서 어떠한 허물과 죄도 찾지 못한 것입니다. 티끌만큼도 죄 없냐?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는 그의 입술로 어떠한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을 지키고 어떠한 강포한 자의 길도 가지 않았습니다. 늘 하나님의 길을 좇고 그 길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는 담대함 가운데 하나님을 향해, 주께서 친히 저를 판단하여 달라고, 아무쪼록 공평하게 살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여기 다윗이 하나님 앞에 갖는 정직함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그가 말하는 정직함이란 하나님의 언약의 법에 대한 신실함입니다. 주의 말씀을 굳게 지키고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강포한 자들의 길로 행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길로 행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이 내신 언약의 법으로서 율법을 따라 행하는 것, 그것에 대해 조금의 거리낌이나 부끄럼이 없는 것, 그것이 여기서 말하는 정직함인 것입니다. 다분히 언약적인 개념이고 관계적인 의미입니다. 여하튼 다윗은 언약의 법에 신실했으며 강포한 자들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참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가운데 온유하고 겸손하게 주와 동행하였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그의 기도의 힘은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주의 뜻을 이루시게 하는 힘, 그의 간구를 듣게 하시는 힘은 바로 이러한 그의 삶에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야고보서 5장의 말씀처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은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우리의 이러한 삶이 뒷받침되는 기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허공을 맴도는 무기력한 기도가 되지 않도록 우리의 삶을 바르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기도가 될 수 있도록 주 앞에 흠 없이 드러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기도가 담대하고 강력한 호소력을 가질 수 있도록 언약을 따라 정도(正道)의 길을 가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둘째 단락인 6절로 12절의 내용입니다. 6-12\"----------\" 먼저 6절로 7절을 보면 다윗이 다시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은혜를 나타내 주시도록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자신을 에워 싼 원수에게서 자신을 건져달라는 8,9절의 간구와 더불어 10절 이하에서 자신을 치고자 하는 자들의 악함과 오만함이 어떠한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곧 그들의 악함과 오만함을 하나님 앞에 고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들의 악함과 오만함이 이러하니 그 악한 자들에게서 자신을 구원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앞 단락이 자신의 어떠함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따라 구원을 간구하고 있다고 본다면, 이 단락은 원수의 어떠함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따라 구원을 간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6절로 7절에 이르는 부분은 앞 단락의 1절의 내용과 상응하는 부분이 되겠고, 또 8절로 12절은 앞의 2절로 5절의 내용과 상응하는 부분이 되겠습니다. 먼저 6절과 7절에서 다윗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응답과 은혜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말하고 있습니까? \'피하는 모든 자들을 오른손으로 건지시는 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크신 은혜\'를 나타내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 기도에는 하나님을 향한 안타깝고도 간절한 마음,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애타는 심정이 녹아 있는 것입니다. 그가 바라는 구원은 어떤 것입니까? 8절과 9절에, 자신을 압제하는 악인과 악한 원수에게서 주의 눈동자처럼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마치 주님께서 눈동자를 지키시듯이 자신을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숨겨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눈동자처럼 지키신다는 말이나 주의 날개 아래 숨기신다는 말은 다 같이 안전한 보호를 의미하는 반복적이 표현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압제하는 악인과 원수가 어떤 자인지, 그들의 하나님 앞에서 행동거지가 어떤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저들의 심장은 굳어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심장이 굳어 있다는 말은 따뜻한 마음은 물론이려니와 일말의 동정심조차도 없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차갑고 얼음장같은 마음뿐이라는 말이겠지요. 그리고 저들의 입술은 오만함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합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자들입니다. \'어떤 하나님이 나로부터 너를 구원하겠는가, 하나님인들 나로부터 너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는 식의 오만한 말들을 하는 자들입니다. 마치 주님을 향해 오만한 말을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 때 주님을 향해 사람들이 무엇이라 했습니까?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하며 오만한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다윗도 지금 그러한 조롱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이 그들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향해 \'저들의 저 오만한 말들을 들어보시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저들의 오만한 입을 치시고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저들은 다윗의 뒤를 추적해 와 그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기회만 되면 다윗을 땅에 내치기 위해 벼르고 있습니다. 마치 앞에 먹이를 두고 어슬렁거리는 사자처럼, 수풀 사이에 숨어 웅크리고 있는 사자처럼 기회만 되면 덤벼들 태세입니다. 그들은 무자비하고 거만하며 잔인한 자들입니다. 야수와 같은 잔혹함이 그들의 특성입니다. 바로 그런 자들이 지금 다윗의 생명을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처럼 절대절명의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눈동자 같이 지키실 것을, 주의 날개 아래 품으실 것을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보호뿐 아니라 다윗은 하나님께서 칼을 들어, 권능의 손을 들어 저들을 치실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친히 저들에게 보이실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13절입니다. 13\"---------\" 그런데 저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저들은 이생에서 자기 몫을 다 누리고 사는 자들입니다. 저들에게 다음 세상이란 없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이생에서 주어진 육신의 복을 유일한 낙으로 삼고 삽니다. 저들은 부와 권세와 건강을 구하고 또 그런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께서 그 생명으로 기르신 모든 양식으로 배를 채우고 삽니다. 많은 자녀를 얻고 다복합니다. 그들에게 근심과 걱정이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가진 것을 다 쓰고도 남아 그 부를 자식에게까지 물려줍니다. 이에 반해 하나님의 백성 다윗은 어떻습니까? 그 앞에는 고난과 위험의 연속입니다. 조롱과 수치의 연속입니다. 저들은 배부르고 얼굴에는 기름기가 흐르고 있는데, 다윗은 배고프고 초췌합니다. 저들은 웃고 즐기는데, 다윗은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저들의 삶은 평안하고 그 쌓은 부는 하늘에 닿는데, 다윗은 그렇지 못합니다. 저들은 그 쌓은 부를 주체 못해 삼대를 대물림하고도 남습니다. 그런데 다윗 자신을 보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어쩌면 평안을 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부를 쌓고 힘을 쌓아 자기 세계를 구축하여 가는데, 정작 우리 손에는 아무 것도 없어 보일 때, 우리는 때로 두려움과 조급함에 빠질 수 있습니다. 세상의 부유하고 높아진 자들을 어느 결에 동경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저들을 시기하고 미워하거나 때로는 낙심 가운데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15\"---------\" 그럼에도 자신은 어떤 불의의 길도 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오직 의로움 가운데 주님을 바라겠노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단지 주의 모습을 뵙는 것만으로 만족하겠다고 말합니다. 여기 \'제가 깰 때에는\' 하는 말은 아마도 다윗이 지금 밤 깊은 중에 이 시를 짓기에 이런 표현을 쓰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아침이 되면 주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을 소망하는 그런 표현이 될 것입니다. 그는 아침이 되면 주의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원수에게서 승리하고 가나안 땅의 왕조가 굳게 세워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실제 그는 원수에게서 구원되어 무궁한 다윗의 왕조를 세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또한 그 길을 가셨습니다. 이전에 다윗이 걸었던 그 길을 가신 것입니다. 가시되 새로운 언약의 주로, 하늘에 속한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그 길을 가셨습니다. 그 모든 다윗의 삶을 하늘의 질서로 완성하시는 길을 가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원수의 조롱 중에도 온전한 신뢰의 길, 믿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다윗은 원수의 조롱에 대해 저주하고 그들을 고소하였으나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을 욕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저들을 용서하시고 긍휼히 여겨주실 것을 구하였습니다. 그는 다윗의 길을 가시되 그 길을 완성하시는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세상이 다 죄의 길, 불의의 길을 가고 있을 때, 주께서는 하나님 앞에 의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음에서 깰 것을 기대하셨고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을 소망하셨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시므로 죽음에서 그를 건지셨습니다. 우는 사자와 같은 원수의 손에서 그를 건지신 것입니다. 그는 이 땅에 계실 때, 말할 수 없는 눈물과 탄식으로 간구의 소원을 올렸고 결국 하나님의 들으심을 입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나라를 영원한 왕국으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을 온 세상 가운데 증거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의 구속함을 입어 주님의 길을 가는 자 되었습니다. 이전에 다윗이 갔던 길, 우리 주님께서 완성하신 길,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으며 신뢰함으로 걷는 의의 길을 가는 자 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하나님 앞에서의 기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삶이 뒷받침되는 기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간절한 기도이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승리를 본 자로서의 기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구원이 이르지 않은 것처럼, 아직도 그 승리를 못 본 것처럼, 탄식 중의 기도하는 것은 바른 것은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도리어 이미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승리를 본 자로서 기쁨 중에 그 나라의 임함과 완성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확정된 소망 중에 우리의 구원의 성취와 완성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아직도 세상은 오만한 자의 입술로 그들의 높아짐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치 죽은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마치 세상의 부와 영광 앞에 부끄러움을 당한 자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의 구원을 볼 것을 기대하고 힘써 간구하며 하나님의 원하시는 의의 길을 묵묵히 가야 하겠습니다. |